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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사당 전경 |
관 리 : 논개사당(의암사) 관리사무소 063-351-4837, 350-2561)
개 요 : 의암사는 지방기념물 제 46호로, 장수 현감 정주석이 주(朱)논개의
충절을 찬양하며 장수 탄생일을 기리기 위하여 1846년 논개생장향수
명비를 세운 후, 1955년에 군민들의 성금으로 남산에 사당을 건립하
였으며,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
경내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가
있고, "의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에는 논개의 영정(김은호 화백
작)이 있으며, 외삼문과 내삼문, 충의문이 차례로 있다.
기념관에는 약간의 논개의 유품과 남편 최경회 장군의 유품이 진열
되어 있다.
논개는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 남편
최경회, 김천일, 고종후 장군 등이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자, 남편
의 원수를 갚고 설욕하고자,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 승전 잔치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하였다. 주흥에 도취된 왜장을 남강가 바위로
유인, 그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강속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당시 논개의 나이는 19세였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순절을 높이 찬양
하며, 예문관으로부터 의암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주 촉석루 곁에
사액 정문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하였고, 투신한 바위를 의
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1955년 장수에 사당을 지어 "의암사"라 명하고,
논개의 영정을 모셨으며, 매년 음력 9월 3일 주(朱)논개제에는 각종
문화행사가 치뤄진다.
주변에 백운산, 장안산, 마이산 도립공원 등이 있다.
입 장 료 - 없음
개관시간 - 09:00 ∼ 18:00(동절기), 09:00 ∼ 19:00(하절기)
휴 무 일 - 없음
주차시설 - 무료 / 의암사 입구, 의암공원 주차장
편의시설 - 화장실, 음수대, 공중전화, 주차장
현지숙박 : 업소명 전화번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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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장 063-351-8881 장수터미널 옆 200m
황토방모텔 063-351-0500 장수터미널 옆
도로안내 : 1) 장수 - 남원간 국도(19번) 장수터미널 기점 500미터, 장수리 남산
공원과 연계되어 있다.(장수터미널에서 남원방향으로 300m 지점
에서 좌측으로 논개사당 진입로)
2) 장수읍내 우체국 4거리 →남쪽으로 600m 지점에 논개사당 진입로
→의암호수 →논개사당 주차장
3) 88올림픽 고속도로 장수분기점 - 19번 국도 - 장수
4)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 장수IC - 19번 국도 - 장수
현지교통 : 1) 전주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 1시간 30분 소요
2) 남원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 40분 소요
3) 진안에서 장수행 직행버스 / 40분 소요
4) 장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의암사 논개사당까지는 도보로 10분 소요
정보제공자 : 논개사당(의암사) 관리사무소장 (063)351-4837 |
논개사당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 산3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1981년 4월 1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었고,면적은 28,274㎡이다.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의기 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의암사는 장수 현감 정주석이 주(朱)논개의 충절을 찬양하며 장수 탄생일을 기리기 위하여 1846년 논개생장향수명비를 세운 후 1955년에 군민들의 성금으로 남산에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1974년에 현 위치로 옮겨왔다.
경내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 가 있고, "의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에는 논개의 영정(김은호 화백 작)이 있으며 외삼문과 내삼문, 충의문이 차례로 있다.
기념관에는 약간의 논개의 유품과 남편 최경회 장군의 유품이 진열되어 있다.
논개는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이 진주성을 점령, 남편 최경회, 김천일,고종후 장군 등이 남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자 남편의 원수를 갚고 설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벌어진 왜군 승전 잔치에 기생을 가장하고 참석하였다. 주흥에 도취된 왜장(게야무라로쿠스케)을 남강가 바위로 유인, 그의 허리를 껴안고 함께 강속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당시 논개의 나이는 19세였다.
조정에서는 그녀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며, 예문관으로부터 의암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주 촉석루 곁에 사액 정문을 지어 그 넋을 위로, 추모하게 하였고 투신한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논개의 순국사실은 입으로만 전해 오다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되면서 글로도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한 『동국신속삼강행』에는 기생의 정열을 표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락되었다.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진주 고을민들은 강변에 제단을 마련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영조 16년(1739)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종 5년(1868)부터 가무와 함께 3일간의 대규모 추모행사를 마련하였다.
일제시대 때 중단되었다가 1954년 당대 일류화가인 김은호가 고증을 통해 논개의 초상화를 그리고 부통령인 함태영 선생이 직접 현판을 쓰면서 1955년 남산 공원에 사당을 지어 "의암사"라 명하고, 논개의 영정을 모셨으며, 1973년에는 성역화 작업이 승인되어 장수읍에 2만여 평의 대지를 마련, 사당을 이전하고 담장과 삼문을 세우고 단청까지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주논개의 탄생일인 음력 9월 3일을 군민의 날로 조례제정하여 의암 주(朱)논개 대축제를 개최하며,각종 문화행사가 치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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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논개 사당은 댐 건설로 현위치로 이전하여 조성하였습니다.예전엔 포항에서 교통이 불편하여 접근이 불편하였으나 현재는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건설로 접근이 용이하고 가을에 장안산 억새 산행과 연계하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