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공원관광이야기 1 )
보은군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은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공원) 그 주소지가 “보은군 보은읍 성족리 산16번지”이다. 이곳을 찾은 날짜는 2023년5월24일이다. 이날 새벽 05시15분에 아파트 단지를 출발했다. 조수석에는 집사람을 태웠다. 여행경로를 지나서 보은군 보은읍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공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5월24일 08시30분이었다.
우리의 여행경로는 중부고속도로 청주분기점에서(청주jc) 청주/상주간고속도로로 진입해서 달리다가 보은ic를 빠져나나왔다. 그리고 보은군 보은읍 성족리 산16번지 소재의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보은군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주차장 입구에 있는 표지석 모습 사진)
(보은군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주차장 입구에 설치된 공원내 조감도 모습.)
(1번-주차장/7번-죽림광장/11번-민중광장/14번-하늘길계단/17번-위령탑/15번-빛의계단길)
(위령탑공원내 산책로 주변의 전시물 소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지역은 상당히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둘러본 거점은 1번주차장-7번죽림광장-11번민중광장-14번하늘길계단길-17번위령탑-15번빛의계단길 순으로 둘러봤다.
우리가 지나는 거점과 거점 사이에는 동학농민혁명군을 위로하는 격려문이나 역사적사실을 적은 판넬판과 각종 사진들이 벽에 붙어 있거나 세워져 있다.
(공원내 조감도상의 1번 위령탑공원 주차장 부근의 전시물 소개)
위령탑 공원내 주차장 부근에는 “위령탑 기념공원 표지석” “위령탑 기념공원의 종합안내도” “경복궁을 침입한 일본군 모습” 과 “그 안내문 내용” “청일전쟁 발발 모습과 그 안내문 내용” “청일전쟁 참화에 시달린 백성들 모습과 그 안내문 내용” “보은 동학도의 의병봉기 모습과 그 안내문 내용”이 도로변의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공원 주차장에 전시되어 있다.
(일본군인들이 경복궁내실로 침입하는 모습의 벽화사진/바로 주차장옆에 설치되어있음)
(경복궁을 침입하는 일본군에 대한 안내문 내용임. )
(주차장 주변에 있는 경복궁 침입하는 모습에 대한 안내문1 내용)
“1894년7월23일 새벽4시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점거당하였다. 경복궁 수비병은 무장 해제되었고 백성들은 다투어 도성밖으로 피신하는 등 민심이 흉흉하였다. 국왕은 궁궐안에 유폐되기에 이르렀고 ”
“조정에서는 일본군을 몰아낼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커다란 혼란을 겪었다. 일본은 친일 개화파를 내세워 정권을 장악하고 갑오개혁의 추진과정에 간섭하면서 국정을 농단하였다. 나라 전체가 크나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서해안 아산만 풍도부근에서 발발한 청일전쟁모습)
(청일전쟁의 발발 경위에 대한 안내문 기록 내용.)
(주차장 주변에 있는 청일전쟁의 발발 안내문2 내용)
“1894년 7월25일 오전7시 아산만 풍도 부근에서 일본함대가 선전포고 없이 청나라 군함에 함포사격을 가해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
“이어서 7월29일에는 성환전투, 9월16일에는 평양전투가 벌어졌다. 9월17일에는 압록강 어구에서 황해해전이 전개되었다. 마침내 요동반도를 점령한 일본은 조선의 국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열강과 더불어 대륙을 침략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서 국가의 독립을 보전해야 하는 커다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청일전쟁 참화에 시달린 아무 죄 없는 조선백성들 모습)
(청일전쟁 참화에 시달린 조선 백성들에 대한 안내문)
(주차장 주변에 있는 청일전쟁 참화에 시달린 백성들 모습 안내문3 내용)
“충청도 경기도 평안도는 청일전쟁의 무대로 변해 도시가 파괴되고 마을이 불타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
“일본군은 충청도 아산에 들이닥쳐서 곳곳을 방화하고 관청과 마을에 들어가 인명을 해치며 돈과 곡식을 빼앗아 갔다. 또한 평양 주변의 마을들은 백성들이 전란을 피해 산속으로 피신하여 폐허로 변했다. ”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청나라.일본 군대가 서로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참혹한 시기를 겪어야 했다. ”
(보은에서 동학도들의 의병봉기 모습)
(보은군에서 동학도들이 의병봉기한 내용에 대한 기록문)
(주차장 주변에 있는 보은 동학도의 의병봉기에 대한 안내문4 내용)
“1894년 8월2일 보은군 사각면 (현재의 탄부면) 고승리 냇가에는 동학도 수 백명이 하늘을 뚫는 의기로 집결했다. 보은 군수 정인량이 집결지를 찾아오자 산골짜기 집회장소로 안내한 동학인들은 국가의 위기를 맞아 관민이 함께 창의할 것을 요구하였다. ”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한 지 10일만에 보은에서 처음으로 의병봉기에 나선 것이다. 이와 같은 계획은 동학 두령인 임규호 황하일 이관형 김재현이 주도하였다. ”
“동학의 대도소가 위치했던 보은은 이 해 가을 동학교단이 대규모 무장봉기를 결정한 뒤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의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모여드는 중심무대로 떠오른다. ”
“보은은 국가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반일 민족운동에 앞장선 의로운 지역이었다. 아 우리는 보은의 의기를 깊이 새겨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공원 주차장에서 민중광장까지의 산책로 주변 표지판과 표지석 모습들)
주차장에서 민중광장까지 걸어가는 산책로변의 숲에는 “輔國安民” “동학의 성지 보은” “事人如天” “사람이 하늘이다” “동학혁명군 추모가 표지석” “종곡리에서 동학농민혁명군 추모시”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세상인심노래” 라는 동학의 교훈과 이념을 기록한 나무 말뚝과 비석 등이 숲속에 세워져 있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보은군은 동학교도의 성지가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보은군은 반란의 본거지가 아니다. 보은군은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자고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보은군을 찾는 여행객으로 하여금 안도하는 마음이 들게해서 무척 다행스럽다.
(산책로변에 세워진 동학교도의 교훈이 적힌 표지말뚝 모습 1)
(산책로변에 세워진 동학교도의 교훈이 적힌 표지말뚝 모습 2)
(산책로변에 세워진 동학혁명군 추모가를 기록한 표지석 모습 )
(동학혁명군 추모가 표지석 기록내용)
“보국안민 제폭구민 갑오동학혁명
우러러 보이고 머리 숙여지네.
겨레의 새길을 열어준 그 혁명
혁명은 꺾여도 겨레는 살았네
외국군 때문에 좌절된 그 혁명.
상처는 깊어도 동학은 자랐네.
(후렴)
세상을 위해 목숨 바친 거룩한 님이여
우리들 앞날을 열어 주소서.”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위해서 하나뿐인 생명을 바쳤으니 그 거룩한 뜻을 어떻게 숭상하지 않으리요. “영령들이여 부디 편안히 잠 드소서” 라는 말 이외는 그저 할말이 없다.
(산책로변에 세워진 종곡리에서 라는 동학농민혁명군 추모시 기록내용)(종곡리는 북실마을을 의미함)
(“종곡리에서(=북실마을)” 라는 동학농민혁명군 추모시.)
-도종환-
“ 장렬하게 패배한 자의(=동학농민군의) 생애는 아름답다.
떨잎이 (=떨어질 잎=죽음이) 될 걸 예감하면서도
단풍의 불꽃으로 온몸을 태우는 나무들은(=동학농민군들)
아름답다.”
“ 당당하게 쓰러진 자의(=동학농민군) 뒷모습은 아름답다.
굴욕의 나날을 살기보다
떳떳한 패배를 선택한 그들이(=동학농민군이)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하늘.
그들의(=동학농민군의) 영혼이 맑게 씻어놓은
푸른 하늘을 오늘 우리도 본다. ”
“ 나뭇잎이 썩어서 나무뿌리를 키우듯
그들이 영혼이(=동학농민군과 그들의 영혼이) 썩어서
우리 정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자의(=동학농민군)생은 아름답다”
“ 그들이(=동학농민군이) 흘린 피를 우리는 역사라 한다.
그들이 온몸으로 쓰고 간 역사위에 우리가 서 있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이들의(=동학농민군)
한 생애는 아름답다. ”
“ 대나무 끝에 깃발처럼 목숨을 걸고(=죽창에 목숨을 걸고)
그들이 흔들었던 빛나는 패배의 정신
출렁이며 살아오는 불굴의 햇살은(=동학농민군)아름답다.
당당하게 패배한자의(=동학농민군은)생애는 아름답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혁명당시의 세상인심을 표현한 노래말 표지석 모습 )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동학혁명 당시의 세상인심노래-보은군 버전1)(보은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공원에 세워진 노래비 내용임)
“ 새야 새야 파랑새야(=관군아 관군아)
녹두밭에(=동학군에게) 앉지 마라(=동학군 공격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동학군이 패배하면)
청포장수 울고간다.(동학군 장군이 울고간다.) ”
“새야 새야 파랑새야(관군아 관군아)
녹두밭에 앉은 새야.(동학군을 공격하는 관군아)
녹두꽃이 떨어지면(동학군이 패배하면)
부지깽이 매 맞는다.(백성들에게 야단맞는다.) ”
“새야 새야 파랑새야(관군아 관군아)
녹두밭에 앉은 새야(동학군을 공격하는 관군아)
아버지의 넋새보오(아버지의 넋을 보고)
엄마 죽은 넋이외다.(엄마 죽은 넋이오니) ”
“새야 새야 파랑새아(관군아 관군아)
너는 어이 날라왔나.(너희들은 어떻게 날와왔나)
솔잎 댓잎 푸릇푸릇(솔잎과 댓잎이 푸르고 푸르니)
봄철인가 날라왔지(봄인줄 알고 날아왔느냐) ”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동학혁명 당시의 세상인심노래-전라북도 고부군에서 유행한 버전2로서 전북 황토현기념관에 전시된 내용임)
당시 전라도지역에서 널리 불러진 녹두장군 응원노래는 아래와 같았다.(전북 황토현기념관에 전시된 내용임)
“새야 새야 파랑새야.(관군들아 관군들아)
녹두밭에 앉지 마라.(동학군 잡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동학군이 궤멸되면)
청포장수 울고간다.(전봉준장수이 울고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관군들아 관군들아)
전주 고부 녹두새야 (전주 고부 동학군아)
어서 바삐 날아가라.(어서 바삐 도망가라)
댓잎 솔잎 푸르다고 (대나무 소나무잎 푸르다고)
하절인줄 알았더니 (여름철인 줄 알았느냐)
백설이 펄펄 엄동설한 되었구나.(백설이 펄펄 날리 는 엄동설한이 되었구나)
이 노래들은 정말 1890대말 조선말기 지방관아에서 탐관오리들의 행패에 항거하던 백성들의 인심을 읽을 수 있는 시대상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탐관오리는 전라북도 고부군수 조병갑과 충청감사 조병식을 들 수 있다.
(보은군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공원 관광이야기2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