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저의 아버지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존경을 받지는 못할망정 관심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저에게 슈퍼맨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에게 혼쭐을 내 주었고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어머니 몰래 장난감을 사 주시며 저 대신 어머니께 꾸중을 듣고,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울면 하던 일을 멈추시고 저를 위해 자전거를 찾으러 다니시고 저를 위해선 뭐든 다 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도 아버지는 저에게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선 농기계 수리를 하셨습니다.
남들이 “아버지 뭐하시노?” 라고 물으면 저는 당당하게
“저희 아버지는 농기계 수리 하십니다!” 라고 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남들은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을 할 수 있는 직업이냐고 물으면
저는 “저는 이 직업을 가진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농기계 뿐만 아니라 집안 가전제품도 고치시고 동네 어르신들 자전거나 오토바이도 무료로 고쳐주시며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정말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시고
기계를 고쳐 버신 돈으로 저희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고
더 많이 배우라고 학원도 보내 주는대 당연히 자랑스러운거 아니가?” 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저에게 우상이자 존경스러운 사람인 아버지와 제가 사이가 틀어지게 된 건 고등학생 시절 부터였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통영과 거제지역에 조선소가 급격하게 많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농경지가 조선소로 바뀌고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많이 줄어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평소 즐겨마시던 술을 마시는 양이 급격히 늘어나시고 그 자상하시던 분이 매일 술에 취해 집으로 귀가하시면 가족들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기 시작하시는 겁니다.
일감이 많이 줄어서 저희에게 못 해 주는게 많아지다 보니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예전부터 앓고 계시던 당뇨병에 합병증까지 겹치다 보니
술기운에 저희 가족에게 모든 설움을 푸시는 겁니다.
/*보니, 보니 이렇게 계속 이어서 글을 쓰지 말라고 표시해 둔 걸 줄 바꿈하라는 말로 알아들었구나..*/
처음에 그러실 때에는 ‘많이 힘드신가보다‘ , ’시간이 지나다 보면 괜찮아 지실거야‘ 라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모든 설움, 울분을 다 받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겁니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던 저는 머리로는 왜 저러시는지 이해가 가면서도 몸과 말은 머리가 이해 하는 것 과는 정 반대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 저희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시는 날이면
저도 맞받아 치고 한번씩 분에 못이겨 물건을 집어던지시는 날이면
저는 칼을 들고와서 “매일 이렇게 행동 할 거면 그냥 다 같이 죽자. 아니다. 그냥 나를 먼저 죽여라.” 며 아버지 앞에 들고 온 칼을 내미는 아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진 후 군대를 다녀오고 아버지께서 건강관리를 하신다고 술을 드시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드시고 가족들에게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등학생때 무례하게 굴었던 것을 사과 드리고 다시 사이가 좋아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 가지 않아 다시 과음을 하시고 집에오면 제가 고등학생 때 하셨던 행동들을 다시 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도 아버지니깐 나라도 이해를 해 드리자.’ 라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술 마시고 계시면 억지로라도 집에 데리고 들어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나아지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겁니다. 어느 날, 평소에 들어오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찾으러 나가니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길바닥에 누워 몸을 가누질 못해 집에 오시질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일단은 집에 모시고 가는 게 급선무여서 아버지를 부축해서 집에 가려고 하니 “네가 여기 왜 왔냐? 너 같은 아들놈 둔적 없다. 꺼져!” 라고 말을 하시는 겁니다. 전역 후 이때까지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했던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이는 겁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화를 참지 못하고 부축하려던 아버지를 내팽겨치며 “XX 그렇게 싫으면 날 왜 낳아서 길렀노? 그냥 낳지 말지 왜!!!!!!!!!!!!!!!!” 라는 말을 남기고 길거리에 쓰러져 계신 아버지를 두고 평소 자주 가는 바닷가에 앉아서 밤새 바다를 보며 그 동안 쌓여있던 설움을 풀었습니다. 그 뒤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저에게 말을 하시지 않으시고 그날 했던 행동과 말이 미안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신 아버지가 너무 미워 휴대폰 번호를 바꿔 버리고 아버지께는 휴대폰을 해지시켰다고 말을 해버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타지에 와서 생활을 하셔서 따로 만나서 이야기 할 친구 분들이 가까이 없다 보니 전화로 제 안부를 묻고 별일 없어도 전화하셔서 저의 목소리를 듣는게 유일한 낙이신 분이십니다. 단지 아버지가 싫고 미안한 마음 때문에 아버지의 유일한 낙 조차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저에게 우상과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저에게 관심조차 받으시지 못하는 아버지.
지금은 못난 아들이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예전처럼 존경받고 온 가족이 웃으면서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