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의 믿음
(사66;10-12,눅2;8-14)
2015.12.25.9시 태안장로교회 (1부)
2015.12.25.11시 태안장로교회 (2부)
충청남도자살예방위원
글:-남제현목사
성탄의 믿음과 성탄절의 믿음은 차이가 있고 그 뜻이 전혀 다르다..성탄의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그 기쁨에 감격에 젖어 울어 나오는 믿음이고, 성탄절의 믿음은 12월 25일 금요일 공휴일이라..4월 초파일 절간에 가서 떡 얻어먹는 종교심과 같다..(행17: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많다'고 한 것은 그들의 도시에 신전과 신상들이 많았던 때이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들의 경건이나 종교적인 성향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무분별한 미신적인 태도에 대한 비난이다..종교심의 의미는 ‘신이나 초월자에 대한 귀의에서 우러나오는 경건한 마음.’ 이라고 하였다..그런데 종교심과 믿음의 출발점은 다르다..
종교심은 믿음과 달리 바로 인간 자신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이 믿는 신에게 귀의의 과정이다. 그래서 종교심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종교를 바꿀 수 있다. 그 종교심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믿음은 자신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부터 시작한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갈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게 믿음으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해 주시며 뒤에서 호위해 주신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이다..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갖고 살아 갈 때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믿음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믿음의 객체가 된다. 그래서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그래서 믿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겸손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내세울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심 있어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종교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기의 의와 자랑거리 만 늘어놓게 된다.
초대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로 종교심으로 출발한 사람이다..그래서 그 주체가 자신이 되고, 신앙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성령님>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분명 초대교회의 일원이다. 누구나 교회의 일원이 되면 다른 성도들이 하는 헌신의 모습에 동참하게 된다. 그런 기회는 자신의 종교심을 드러내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믿음이 아닌 종교심으로 수고하고 헌신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없으면 헛수고가 된다..(히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그런데 좋은 종교심은 사람들의 덕목을 만들어 낸다..통일, 평화, 사랑은 모두 종교적 덕목이다..
그러나 열매가 없다..통일을 주창하는 데는 통일이 없고, 평화를 강조하는 데는 평화가 없고, 사랑을 말하는 데는 사랑이 없다. 통일이 안 되고, 평화가 없고 사랑이 없는 것은 내가 만든 종교심 안에 따라오는 이기심이 때문이다. 아덴사람들은 종교심이 많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철학은 많으나 우상만 만들어 낼 뿐이다..우리에게는 종교가 아닌 믿음이 필요하다..철학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예수님>에게 딸의 치유를 위하여 애처롭게 매어달리는 울부짖는 이 여인이 있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절규하며 따르지만 주님은 일언반구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 제자들 간청에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집이 누구라고 그렇게 애절하게 부르짖는 여인의 소리를 거절하셨을까..? 그러나 그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주님,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이번에 하신 말씀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런데 이 여인은 "주여 옳습니다. 어떻게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은 얻어먹지 않습니까?...“
이 여인은 위대한 우리에게 신앙을 보여 주었다.."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믿음이란 절대적 주님에 대한 신뢰이다....한국 교회는 현재 안팎의 도전에 직면했다고 한다..그것은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 교회는 방향에 큰 변화를 들고 나왔다.
여기서 미래 교회는 개 교회 중심에서 벗어나 한다는 것이다..그러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대변하고, 각종 악에 대항하는 자기희생적인 메시아 공동체를 들었다..그동안 한국 교회가 개 교회주의와 성장 중심주의의 한계가 봉착했다. 이유는 사회적 편승에서 덕을 보았다...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나라 중심의 교회로 선교와 봉사의 통합을 이루어야 할 시기가 왔다.
교회 성장을 위한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한 교회로 체질개선이다..현재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해서 미래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나가 운동을 하고 기분 좋게 식사 후 멋진 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책상 앞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해외여행도 계획한다. 수 십 년 후 살 집을 지을 생각을 하면 그는 현재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몸 안에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한다면.. 그는 미래를 예측하고 웃고는 있지만 착각일 수 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세밀하게 돌아보아 수시로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을 결정짓게 되는 데 현재의 안위에만 초점에 만 몰두하면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우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평안함에 안주하거나, 순간의 고통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하자..<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의 모습은 눈앞의 있는 안락함을 포기했다.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일을 즐거워 한 일이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영광을 누리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삶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다면 다가오는 내일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현재의 모습만 보고 내일을 판단해서는 아니라, <하나님>중심으로 바로 서야 한다..지난 충청남도가 주관하는 2015년 12월 7-9 일 행정자치부 마을기업 육성사업으로 마을기업 설립을 위하여 예산 농업기술지원센터에서 정책 세미나에서 전 교육을 이수한 부락에 정부에서 8천 만 원이 지원하는 교육이다..여기에 모인 충남 시군에서 모인 200여명의 마을 주민들의 활기찬 눈매에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반듯이 마을기업의 창립하고 하는 사업계획서가 필히 작성하여 제출하여 합격한 마을에 선택받게 된다. 사업계획서는 작성은 보통이 아니다. 인생은 모두 삶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그래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주실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 농사하는 사람, 그리고 직장인은 세밀한 계획서(사업계회서)를 작성해보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하는 교회와 개인과 단체에게 주시는 축복이 준비 되어 있다..성탄의 축복은 들에서 밤을 새워 양치는 목자들에게 임하셨다..(눅2:7-11)“-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마을과 지역을 품고 전진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하여 마을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바라고 있는 지 파악하고 교회가 마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같은 마을 안에 있는 교회와 주민은 이원화 된 것이 아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예배하는 교회, 교육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교제하는 교회, 구제 봉사하는 교회였다. <예수님>재림하실 때까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이러한 다섯 가지의 원칙은 벗어 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모이는 교회(에클레시아)와 흩어지는 교회(디아스포라)이다.
예배, 교육, 교제는 모이는 교회의 모습이고, 선교 구제 봉사는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신뢰하지 못한다면 선포하는 복음 역시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2013년 한국교회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수준이 불신율(44.6%)이다. 그래도 긍정적인 평가에는 사회봉사활동이다.
각 종파별 순위는 개신교(41.3%), 가톨릭(32.1%), 불교(6.8%)로 조사됐다. 한국교회는 그간 상당 기간 동안 양적 침체기를 겪으면서 이대로 몰락이냐, 회복이냐, 이대로 손 놓고 있을 것인가? 아니다..도농 간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눈물로 씨를 뿌리고 정직을 솔선수범으로 보여줘야 하며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일은 삼가야 한다.
교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빛과 소금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완벽한 의인은 될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도록 경각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한다. 교회는 사회봉사나 발전과 통합에 기여하려고 한다면 무한한 자원이 있는 곳이 교회이다..지난 18일 도청 회의실에서 충청남도 자살방지 위원회가 모여 진지한 의회를 갔다.
oecd 국가에서 제일이고 충남남도는 강원도에 이여 두 번째 떨 어지 않고 그리고 태안군이 세 번째로 별 진전이 없다. 도청 보건정책과 <김형성>과장이 “ 내 소원은 충남 자살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는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이야기이다..백석대학교 <최명민>교수 결과 중에 심리부검에서 기독교 비율에서 2-30% 해당된다. 성탄절은 성탄의 믿음과 성탄절 믿음이로 구분된다..
성탄의 첫 메시지가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냥 따라 즐기며 구경하는 무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아기 <예수님>성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큰 기쁨의 소유자가 되는 무리가 될 것이다...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