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대 특집 / 주일학교 부흥 위해 다시 뛰자!
당회
한국교회, 투자 1순위를 찾아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교육을 테마로 하는 연설에서는 어김없이 한국을 단골 모범사례로 언급해왔다.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 알링턴에 있는 중학교를 방문해 교사들 앞에서 행한 연설에서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 건설자로 알려져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는 “미국도 한국과 같은 수준으로 교사를 존경하면서 대우해야 교육이 향상 된다”라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이전에도 새해 국정연설에서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의 성공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교사이다.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불린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오바마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교육을 통해 다시 일어선 국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모의 교육이 아니라 교육열이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주고 있다. 그 덕에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예를 든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김용 세계은행 총재 같은 인물들…, 예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교육’으로 일어나고 과다한‘교육열’ 때문에 국가가 흔들리고 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건국이념 교육이념이 아니라 자녀들의 개인적 성공과 출세를 위한 과다한 교육열이 대한민국을 위태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교육의 모델로 삼으려고 했다면 차라리 유대인의 부모교육을 제시해야 했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대한민국의 교육, 특히 부모들의 자녀교육열을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바마, 교육내용이 아니라 교육열에 찬사
오바마 대통령이 찬사를 보내며 부러워한 것은 한국의 교육제도나 교육방향, 교육성과가 아니라 교육열이다. 자녀들의 성공이라면 기러기아빠도 감수하는 그 대단한 교육열, 오마바는 바로 그것을 강조해서 미국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자극시켜 교육 열기를 지펴내고 교육개혁을 시도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 엄마들의 교육열을 본받으라는 오바마의 찬사 속 이면에는 미국 흑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미국 흑인들은 아직까지도 백인들에 비해 교육열이 낮다. 지적인 열등감이나 피부로부터 오는 피해의식-패배주의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오바마는 미국보다도 미국 흑인들에게 교육으로 일어서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흑인들은 대통령까지 배출한 대단한 혈통이 되었다. 이런 자긍심으로 백인들에 대한 증오심이나 적대감을 버리고 이제는 교육을 통해 실력을 쌓고 백인들을 상대로 실력으로 대등하게 경쟁하라는 것이다. 그 모델이 바로 ‘개천에서 용을 나게 하는’ 대한민국 엄마들의 교육열이다. 그래서 오바마의 한국교육 예찬이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오바마가 부러워하는 한국인들의 교육열, 학생들이 학교-학원-개인과외로 이동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 심지어 청소년 자살까지 초래하는 문제점을 다 알고 있다면 과연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을 본받으라고 미국 국민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새해 국정 연설 등을 통해 “한국에서는 교사들이 국가 건설자라고 불린다”라고 언급한 대목에 한국인들은 은근히 기분은 좋지만 뭔가 낯 뜨거운 얼굴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오바마가 유대인 교육, 그중에서도 유대인 부모교육을 본받으라고 했다면 세계가 더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칭찬하는데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낯이 뜨거운 것은 한국의 교육이 아니라 부모들의 교육열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음세대의 교육을 논하면서 다시 유대인 부모교육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는 150년도 안 되어 자녀신앙의 대물림이 실패했고 유대인들은 2천년동안 계속적으로 유대교의 대물림이 성공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자녀관
유대인들은 자녀가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속한 소유물이라는 투철한 사상을 갖고 있다. 내가 낳고 키우지만 자녀는 하나님의 것이요, 조국 이스라엘의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필요한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께 필요하고 조국(祖國)에 필요한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대인은 자식의 장래를 랍비에게 맡긴다. 랍비가 내 자녀의 고등교육 과정을 선택한다. 인문계, 공업계, 예능계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랍비에게 전적으로 위임한다. 아무리 인문계로 가고 싶어도 랍비가 아이의 적성검사를 보고 공업계로 가라면 두말없이 가야 한다.
이토록 유대부모들이 랍비 말에 순종하는 것은 자녀는‘내’소유가 아니라‘우리’의 소유라는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랬다면 선생님들 멱살 잡히고 야단날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보석(寶石)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 보석이 될 자녀를 맡겨 놓았기에 자녀교육은 부모에게 주어진 최고의 임무로 여기며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내 가정에서 출생되는 어린 생명들은 흙 속에 묻힌 보석과 같은 것이다.
유대인에게‘부모(父母)’는‘어떤 모양으로 만든다’라는 의미다. 부모는 자녀들을 먹여주고 입혀주는 양육자만 아니라‘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주는’교육자이다. 부모들은 자녀를 어떤 모양으로 만드는 책임을 조상들(fathers)의 신에게서 부여받았다. 자녀들 속에 묻혀 있는 재능과 재질들을 발굴하고 계발해 주면 어린 자녀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된다.
그렇게 다듬어 지는 과정은 부모의 책임이요 아울러 보람이다. 자녀를 보석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은 교육의 힘이요, 부모는 그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로 자처하였다.
교회학교-주일학교 교육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내가 담임하는 아동은 내 소유가 아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이요 교회를 통해 교육과 양육을 맡긴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아동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할 여호와의 백성들이다.
내 반 아이들이니 마음대로 한다는 식의 교사들은 없는가? 교회 중심보다는 내 중심으로 운영하는 반 목회는 아닌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는 아동보다 내 말을 더 따르는 내 제자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교육이 잘못되었다. 그 아동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들이요 교회의 학생이다. 그 사실을 명심할 때 제대로 된 교회교육이 나온다. (생략) 6월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