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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요14:6절
제 목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일 시 : 2026. 9. 27.
요1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새번역 요한복음서 14:6/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도마가 이렇게 질문합니다. 요14: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했습니다. 도마는 두 가지 사실을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 첫 번째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라고 고백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그 목적지를 모른다는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모른다는 질문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도마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도마가 두 가지의 질문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의 두 번째 질문인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내가 곧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도마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천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가 계신 천국으로 가는 길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과 목표(목적지)에 대해서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그 길과 목적지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곧 진리이며 생명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유일한 길이요,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생명이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거짓을 들어내는 폭탄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 외에 어떤 종교나 신도 길이 아니며 진리가 아니며 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치 핵폭탄을 터뜨리는 것보다 더 큰 위력과 파괴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짜 종교와 가짜 신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의미와 가치와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안다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짜 종교들과 가짜 신들을 향하여 분노가 일어나야 합니다. 가짜이면서 진짜처럼 포장지만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수많은 가짜 종교들을 바라보면서 의분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도마가 질문한 그 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자신은 유일한 진리이며, 유일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길이 참된 길이라면 반드시 그것은 진리여야 한다는 뜻이며, 또한 그 길이 참된 진리의 길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 가지 길과 진리와 생명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이라면 세 가지 모두가 가짜라는 뜻입니다. 유일한 길과 유일한 진리와 유일한 생명이 함께 공존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도 믿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길이 참된 길이라면 반드시 진리(참=거짓의 반대)여야 합니다. 만약 길이 있기는 한데 그 길이 가짜와 거짓이라면 그것은 길이 아니고 사람을 멸망시키는 함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진리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길이 없다면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 가짜이며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만약 생명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길(아버지께로 가는)이 없다면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멸망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생명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진리여야 하고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어야 합니다. 진리와 길이 없는 생명은 가짜생명입니다. 그것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마의 속임수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들이 바로 그런 가짜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길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거기에는 생명도 없습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도둑질해서 지옥, 멸망으로 인도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나는 유일한 길이다 라고 했습니다.
영어로는 I am the WAY 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보다 먼저 온 선지자들은 진리와 생명에 대하여 길이 무엇인지를 가리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 길 자체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 길의 목적인 그 진리이며, 그 생명자체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이르도록 하시는 중보자이시지만, 그 자신이 하나님 자신이시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수님은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한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천국 가는 그 길을 알려는 도마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천국 가는 길보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국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외에 별도로 천국을 생각하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난 독립적인 선(善)이나 진리나 행복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곧 유일한 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모든 인류가 따라가야 할 참된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나를 따르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곧 길이라는 말씀은 곧 예수님 자신이 곧 유일한 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지키고 따르고 살아야 할 법도입니다. 삶의 지침서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은 운전을 해 본 경험이 있거나 차를 타고 다녀 보았을 것입니다. 만약 번잡한 사거리나 오거리에서 신호등이 고장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과거에는 가끔씩 신호체계가 고장나서 차들이 뒤엉킨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교통경찰이 와서 손으로 교통정리를 하기 전까지는 차들이 서로 뒤엉켜서 도로는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는 선한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바른 길,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내가 곧 유일한 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그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새번역 시편 119:105/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라고 했습니다.
발의 빛이란 발이 헛디디거나 넘어지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비추어주는 빛이라는 뜻이며, 길의 빛이란 내 인생이 넘어지거나 실수하거나 실패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빛이라는 뜻입니다. 누가요? 예수님이 그렇다는 뜻이며, 예수님의 말씀이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수와 실패는 그 사람이 걸어가는 인생 길에 빛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왜 부도나고 보이스피싱에게 당합니까? 길에 빛이 없어서 인생이 어두우니까 그런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넘어지고 쓰러지고 부도나고 사기당하고 불필요한 일 때문에 고생합니다.
물론 말씀대로 순종해서 사는 삶에도 고난이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원수들의 방해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게 되면 때가 되면 반드시 보상이 있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갚아 주십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인생은 풀리지 않고 점점 더 꼬이고 어떤 보상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됩니다. 참되고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이 없이 사는 인생은 고아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과 고향과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인생의 길 되신 예수님을 날마다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나는 유일한 진리다 라고 했습니다.
진리란 알레데이아 라고 하는데 진리, 참되게, 진실성, 참되다 라는 뜻으로 참이며 거짓과 가짜가 아니며 변질되지 않는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특징은 진리를 알 때 참된 자유를 준다는 것입니다. 거짓과 죄로부터의 자유를 줍니다. 그래서 요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천국과는 정반대인 죄와 악과 사탄 마귀 귀신을 이기며 승리하는 자유를 준다는 뜻입니다.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 죄를 범하고 죄를 이기지 못한다면 아직 진리를 안 것이 아니며, 진리를 아직 삶을 통해서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119:104/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명철하게 되면 세상에 있는 모든 거짓 행위와 악을 미워하게 됩니다. 진리를 알면 절대로 거짓과 죄를 가까지 하거나 세상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통해서만 참된 자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왜 세상을 멀리하고 사람들을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까? 세상과 사람들은 친구처럼 닦아 오지만 사실은 내가 가진 자유를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영화나, 유튜브나, 인터넷이나, 게임들이 얼마나 재미가 있고 즐거움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보면 그것들은 내가 가진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자유를 빼앗아 가 버립니다. 나를 얽어 메고 나를 종으로 삼아 버립니다. 나중에는 게임에 노예가 됩니다. 영화에 노예가 됩니다. 자꾸만 게임을 하고 싶어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심하면 게임에 중독이 됩니다. 영화나 유튜브 동영상이나 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 것들을 안 보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줍니다. 어느 것도 나를 얽어매거나 나를 억압하지 않습니다. 나를 노예로 삼지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3. 나는 유일한 생명이다 라고 했습니다.
생명이란 조에 라고 하는데 생명, 삶, 생애라는 뜻으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생명이란 멸망의 반대입니다. 멸망이란 계속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옥의 삶이 멸망입니다. 계속해서 죽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계속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롭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후4: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겉 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육체를 가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이것과 대조되는 속 사람은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영혼을 의미합니다. 장차 다가올 새로운 세대의(내세를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겉 사람이 낡아져 가는 것은 이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생성소멸의 원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 사람은 도리어 새로워지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식이 새로 와지며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엡4:15,골3:10). 이 새로워짐은 종말과 재림의 때에 완성되는 것이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인해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날마다 새롭도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풍성히란 페렛소스 라고 하는데 (양적으로)넘치는, 또는(질적으로)우월한, (함축적으로)과다한 부, 탁월이라는 뜻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넘치고 탁월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얻게 하다란 에코라고 하는데 소유하다, 동반하다, 간직하다, 보관하다 라는 뜻으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풍성히 즉 넘치도록 탁월하게 소유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면에서 더욱더 풍성하게 되어야 합니다.
요11:25-26/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원한 생명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7:2-3/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갈 때 주어집니다.
또한 이 생명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5:11-12/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연결되어 있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에서처럼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영원한 생명이 계속해서 공급되고 주어집니다.
믿는 자들이 받아 누리는 영원한 생명은 생명수의 강으로부터 즉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22:1/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끊어지지 않고 연합되어 있을 때 생명수의 강이 그 사람에게 공급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누리게 됩니다.
믿는 자들이 생명수를 받아 누리를 또 다른 방법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22: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주님께로 나오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오늘의 말씀을 받아서 읽고 듣고 암송하는 것이 예수님께로 나오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를 마시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의 영혼이 날마다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말씀이 없이 살아가는 삶을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죽어가고 있는지 새로운 생명을 얻어서 날마다 새롭게 되는지를 삶을 통해서 보아야 합니다.
4. 내가 길 되신 예수님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다음 세 가지를 통해서 예수님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새번역 시편 119:67/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킵니다./라고 했습니다.
길 되신 예수님에게서 벗어난 사람은 고난이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난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크고 작은 고난이 이어지는 것을 통해서 내가 길 되신 예수님에게서 벗어났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친구목사님들과 함께 영주에 있는 깊은 산으로 산삼을 캐러 간 적이 있습니다. 산이 얼마나 험한지 수풀을 헤치고, 가시덤불을 뚫고,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면서 온 산을 헤매고 다녀 보았습니다. 온 몸은 나무 가지와 가시에 긁히고 땀은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삼은 구경도 못하고 산 도라지와 더덕만 케 왔습니다. 길 없는 산을 하루 종일 다녀 보세요. 정말 고생이고 힘이 듭니다. 우리의 삶이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벗어나면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되는 일은 없고 고생만 합니다.
2) 새번역 시편 119:133/내 걸음걸이를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떠한 불의도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내가 길 되신 예수님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불의(죄악)가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불의란 아벤이라고 하는데 쓸데 없음, 고통, 헛됨, 악함이라는 뜻으로 헛되고 아무런 유익이 없는 불필요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배하다란 솨라트 라고 하는데 군림하다, 지배하다, 허락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으로 불의가 나를 지배한다는 것은 가짜이며, 아무런 유익이 없는 불필요한 것들이 나를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악한 영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길 되신 예수님을 벗어나면 가짜들과 헛된 것들과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하는 것들이 나를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나 권력과 같은 것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허무한 것들이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려서 무능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3) 새번역 시편 119:165/주님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평안이 깃들고, 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길 되신 예수님을 벗어나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나 환경이 나를 괴롭히고 방해하는 장애물이 됩니다. 그러나 길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모든 장애물이 없어집니다. 장애물이 많다는 것을 통해서 내가 길 되신 예수님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드립니다. 게으름, 무기력함, 잠, 후회를 불러 일으키는 허무한 것들이 나를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실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서서히 인생을 망가뜨리고 쓸모없고 무능한 인간을 만들어 버립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써 예배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전도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납니다. 어떤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인데 벌써 학원을 7개나 다니다가 지금은 6개 학원을 다닌다고 합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깨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매일 야구하고 축구하고 동생 벌 되는 아이들과 어울려서 놀고만 있다 가 가로 늦게 철이 들어서 6학년이 끝나는 무렵이 되어서야 학원에 다닌다고 허둥거립니다. 이미 많이 늦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수학을 배우고, 국어나 그 외에 다른 것을 배운 아이와 초6학년이 되어서 이제서야 공부하는 아이와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깨달아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 나오는 것, 예배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등등이 쓸데 없어 보이고 시시해 보이고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 반드시 후회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왜 이제서야 깨달았지? 너무 늦었구나! 하는 것 때문에 가슴을 치면서 후회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이 반드시 따라야 하고 걸어가야 할 유일한 길이 되시고, 참된 진리가 되시고, 영원한 생명이 되십니다. 지금부터라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아멘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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