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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부 15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전 국무대신으로, 신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이 젊은 때부터 견지해온 신념이란 다름 아니라, 새가 벌레를 먹고 날개와 깃털을 지니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이 천분이듯, 그 자신도 고급 요리사가 만든 고급 요리를 먹으며 몸에 잘 맞는 값진 옷을 입고 빠른 준마를 타고 다니는 것이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그 전부가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각종 국고금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다이아몬드가 박힌 휘장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훈장이 늘면 늘수록, 그리고 지위가 높은 남녀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근본 신념에서 보자면, 그 밖의 것은 모두 무의미하고 흥미 없는 일이라고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생각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이러한 신념에 입각해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40년 동안 페테르부르크에서 생활하고 활약한 결과 국무대신 자리에 앉게 되었던 것이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이 이 지위를 얻게 된 중요한 자질은, 첫째로 그가 공문서나 법률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서투르나마 서류를 제대로 작성하고 철자도 틀리지 않게 쓸 수 있었다는 것, 둘째로 몹시 늠름하고 때에 따라서는 도도할 뿐만 아니라 남이 가까이 갈 수 없을 만큼 위엄을 보이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야비할 만큼 비굴해질 수 있었다는 것, 셋째로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반적인 주의와 주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누구하고나 손을 잡을 수 있고 또 헤어질 수도 있었다는 데 있었다. 이와 같이 행동하면서 그는 자신의 체면을 유지해가고 자가당착을 노출하지 않는 데에만 노력해왔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 자체가 도덕적이건 비도덕적이건, 그리고 자기 행동으로 러시아제국이나 전 세계에 최대 행복을 가져오건 최대 해악을 가져오건 그런 데는 전혀 간심이 없었다.
그가 국무대신이 되었을 때는 그의 세력권 안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그의 세력권에 드는 사람이나 부하의 수는 매우 많았다) 모든 일반인들이나 그 자신까지도 그를 매우 총명한 국가적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는 이렇다 할 만한 일도 하지 못하고 아무 수완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생존경쟁의 법칙에 따라 그와 똑같이 서류나 작성하고 해석하는 것을 배운, 아무 주의나 주장도 없는 대표적 관리들에게 떼밀려 하는 수 없이 퇴직하게 되자, 비로소 그가 총명하거나 사려 깊은 인간이 아닐뿐더러 자신만만하기만 하고 대단히 천박한 교육자인 동시에 보수 신문에 실린 사설 정도의 견해밖에 갖지 못한 인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나 뚜렷이 밝혀졌다. 결국 그라는 인간도 그를 밀어낸 별로 교양 없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다른 관리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 그 자신도 그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해마다 막대한 국고금을 받고 자기 예복에 달 새 장식품을 받는 것이 당연지사라 생각하는 그의 신념은 너무나 확고해서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연금이라든가, 정부 최고 기관의 일원으로서 받는 봉급이라든가, 또는 여러 가지 회의와 위원회 회장으로서 받는 수당이라는 명목으로 해마다 몇만 루블의 수입을 얻고 있었다. 그 밖에 해마다 어깨와 바지에 새로운 금몰을 달고, 연미복 밑에 새로운 술과 에나멜 성장을 다는, 스스로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권리를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각 방면에 연줄이 많았던 것이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은 실무자에게 보고라도 받는 듯한 태도로 네흘류도프의 이야기를 들었고, 다 듣고 나자 그에게 소개장 두 통을 써주겠다고 말했다. 하나는 원로원 상소부의 볼리프 의원 앞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소문이 구구하지만, dans tous les c'est un homme tres comme il faut(어쨌든 훌륭한 인물이지)"하고 그는 말했다. "게다가 그 사람은 내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줄 거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이 쓴 또 한 통의 편지는 청원위원회의 유력자 앞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네흘류보프가 말한 페도시야 비류코바 사건은 꽤나 그의 흥미를 끌었다. 네흘류도프가 황후께 직접 청원서를 올릴 생각이라고 말하자, 그는 사실 이 사건은 매우 감동적이므로 기회를 봐서 자기가 이야기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을 해주지는 않았다. 어쨌든 청원은 청원대로 내두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기회가 있으면, 목요일 petit comite(소위원회)라도 열리면 그때 얘기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백작이 써준 편지 두 통과 마리에트 앞으로 보내는 이모의 편지를 받자 네흘류도프는 곧 그들을 찾아 나섰다.
그는 우선 마리에트네 집으로 갔다. 그는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귀족 가정에서 자란 그녀를 처녀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다. 처세술에 능란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도 알았고, 그 남자에 대한 좋지 못한 소문도 듣고 있었다. 특히 수많은 정치범들을 가혹하게 대하고 괴롭히는 것을 자신의 특수한 의무인 양 여기고 있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학대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압제자들의 편에 서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마치 압제자들의 행동이 합법적이라고 인정하듯이, 몇 명 안 되는 유명한 사람들이라 하지만 그들 자신도 모르고 있을 평소의 잔인한 행동을 좀 늦춰달라고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간청하기가 그로서는 정말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언제나 내면의 분열과 불안을 느끼면서 부탁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부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요컨대 독방에 갇혀 고생하는 불행한 여인이 석방되고 그녀와 그 친척들은 고통을 면하게 될 테지만, 대신 그는 마리에트나 그녀의 남편 앞에서 어색하고 부끄럽고 불쾌한 꼴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는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그쪽에서는 아직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자들에게 의뢰자가 되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그는 일종의 위선을 느꼈고, 그 스스로 옛날의 익숙한 궤도로 빠져들어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박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벌써 이러한 느낌을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이모에게서 경험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는 매우 중요한 일을 그녀와 의논하면서 어느덧 농담조로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페테르부르크는 항상 그렇듯이 육체적으로는 자극을 주면서도 정신적으로 둔화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편리하고 잘 설비되어 있었으나, 특히 사람들이 도덕적인 면에 무관심한 탓으로 생활이 너무나 안일해 보였다.
아름답고 말쑥하고 겸손한 마부가 역시 아름답고 말쑥하고 겸손한 순경 옆을 지나, 아름답고 깨끗하게 물을 뿌린 포장길과 역시 아름답고 깨끗한 집들을 지나서 마리에트가 살고 있는 운하 곁의 집으로 그를 데려다 주었다.
현관 주차장에는 눈을 가린 영국 말 두 필을 단 쌍두마차가 서 있고, 볼에 절반이나 수염을 기르고 영국인과 같은 제복을 입은 마부가 거만하게 채찍을 들고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말쑥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곳에는 금몰이 달린 더 말쑥한 제복을 입고 보기 좋게 턱수염을 기른 하인 한 명과, 깨끗한 새 정복을 입고 총검을 든 당직 사병이 서 있었다.
"장군님은 면회하실 수 없습니다. 사모님도 마찬가지고요. 곧 외출들을 하시니까요."
네흘류도프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의 편지를 전하고, 자기 명함을 꺼내 방문객 방명부가 있는 탁자로 다가가 뵙지 못해 대단히 유감이라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하인이 층계 쪽으로 달려가고 문지기는 현관으로 달려가더니 "준비!"하고 외쳤다. 당직 사병은 부동자세로 양손을 바지 솔기에 갖다 대고는, 키가 작은 가냘픈 귀부인이 장중한 태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총총걸음으로 층계를 내려오는 것을 눈으로 배웅했다.
마리에트는 털이 달린 큼직한 모자를 쓰고, 검은 옷에 검정 코트를 걸치고 까만 장갑을 끼고 있었다. 얼굴을 베일로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네흘류도프를 보자 베일을 올리고는 눈이 반짝이는 귀여운 얼굴을 내밀면서 의심쩍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나,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공작님 아니세요!"하고 그녀는 명랑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진작 알아 뵀어야 하는데....."
"제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셨던가요?"
"기억하고말고요. 저는 동생과 둘이서 당신을 사모한 적도 있었는걸요"하고 그녀는 프랑스어로 말했다. "당신도 많이 변하셨군요. 아, 정말 유감이에요, 마침 나갈 일이 생겨서. 그렇지만 잠깐 올라가세요." 그녀는 망설이는 듯 걸음을 멈추면서 말했다.
그녀는 벽시계를 보았다.
"역시 안 되겠군요. 카멘스카야 댁의 고별식에 가야 하니, 그분은 몹시 상심하고 계세요."
"카멘스카야라니, 어떤 분이지요?"
"어머, 모르세요?....그분 아드님이 결투를 해서 죽었어요. 포젠하고 결투를 했답니다. 외아들이었어요. 무서운 일이죠. 그 어머니가 어찌나 상심하시는지."
"네, 저도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가는 게 좋겠어요. 내일이나 오늘 밤에 다시 와주세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경쾌한 걸음으로 재빨리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오늘 밤에는 찾아뵐 수가 없습니다." 그는 그녀와 같이 현관으로 걸어 나가면서 말했다. "실은 당신에게 부탁이 좀 있어서 왔습니다만." 그는 현관에 대기하고 있는 밤색 말 한 쌍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무슨일인데요?"
"이건 이모님이 쓰신 편지입니다"하고 네흘류도프는 크게 성명을 박아놓은 좁다란 봉투를 내주면서 말했다. "이걸 보시면 잘 아실 겁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께서는 제가 남편 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는가 봐요. 그런데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전 아무 일에도 간섭할 수 없거니와 또 간섭하고 싶지도 않아요. 하지만 백작 부인이나 당신을 위해서라면 전 물론 언제라도 제 규칙을 깨뜨릴 용의가 있어요. 대체 어떤 일이죠?" 까만 장갑을 낀 조그만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며 그녀는 말햇다.
"요새 감옥에 한 처녀가 수용돼 있는데, 그 여자는 병자인 데다 사건과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 여자 이름은요?"
"슈스토바. 리지야 슈스토바라고 합니다. 편지에 쓰여 있습니다."
"잘 알았어요. 되도록 노력해보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진흙받이의 옻칠이 햇살을 받아 번쩍거리는, 폭신폭신하게 깔개가 깔린 사륜마차에 사뿐 올라타서 파라솔을 폈다. 하인이 마부석에 올라탄 후 마부에게 떠나라고 신호했다. 마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가 파라솔로 마부의 등을 쳤으므로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영국 말들은 고삐가 당겨져서 아름다운 목을 움츠리고 날씬한 발로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멈추어 섰다.
"다시 들러주세요. 하지만 그땐 용건 없이 말이에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방긋 웃어 보였다. 그녀도 자기 미소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마치 연극이 끝나서 막을 내리듯 베일을 내려 썼다. "자, 갑시다"하고 그녀는 다시 파라솔로 마부를 건드렸다.
네흘류도프는 모자를 들었다. 순종의 밤색 말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포장길에 말발굽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마차는 울퉁불퉁한 길에서 가끔 새 고무바퀴를 가볍게 퉁기면서 쏜살같이 달려갔다.
부활 2부 16
네흘류도프는 마리에트와 나눈 미소를 생각하면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뒤돌아볼 새도 없이 또다시 그 생활에 휩쓸려들어갈 뻔했군.' 그는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비위를 맞춰야 할 때 항상 일어나는 자기 분열과 의혹을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헛걸음치지 않으려면 어디를 먼저 가고 어디를 나중에 가야하나 생각한 끝에, 네흘류도프는 먼저 원로원으로 갔다. 그는 사무실로 안내되었고, 장엄한 실내에서 공손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수많은 관리들을 보았다.
관리들은 마슬로바의 상소장이 이미 수리되어, 이모부가 소개장을 써준 볼리프에게 심리 조사를 위해 넘겨졌다고 설명해주었다.
"원로원 회의는 금주에 있을 예정인데, 마슬로바 건은 이번 회의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청원을 하시면 금주 수요일에 상정될 수도 있을 겁니다"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원로원 사무실에서 사건 문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네흘류도프는 또다시 결투에 관한 이야기와 카멘스키가 피살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페테르부르크를 온통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엇다. 그 사건은 이러했다. 장교 여럿이 어느 조그마한 술집에서 굴을 먹으며 여느 때처럼 폭음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카멘스키가 근무하는 연대에 대해서 좋지 않은 말을 했다. 카멘스키는 그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욕을 했다. 그러자 그는 카멘스키를 때렸다. 그 이튿날 결투가 벌어지고 카멘스키는 복부에 탄환을 맞고 두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살인자와 결투 입회인은 체포되어 영창에 들어갔으나, 두 주 후면 석방되리라는 것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원로원 사무실에서 청원위원회의 유력자인 보로비요프 남작 댁으로 갔다. 그는 으리으리한 관사에 살고 있었다. 문지기와 하인은 네흘류도프에게 면회일 이외에는 남작을 만날 수 없을뿐더러, 오늘은 황제 폐하를 뵈로 가셨고, 또 내일도 보고하러 가시게 되어 있다고 준엄한 어조로 말했다. 네흘류도프는 편지를 내주고는 원로원 위원 볼리프 댁으로 마차를 몰았다.
볼리프는 마침 가벼운 식사를 끝마치고, 여느때처럼 소화를 잘 시키기 위해 시가를 피워 물고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네흘류도프를 맞았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 볼리프는 과연 un homme tres comme il faut(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의 이러한 특질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 높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로서는 이 특질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 덕분에 자기가 원하던 지위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결혼해서 1년에 1만 8천 루블이란 재산을 손에 넣게 되고, 자기 노력으로 원로원 위원 자리를 얻게 되엇다. 그는 자신을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청렴한 기사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 청렴함으로 그는 개인에게서 뇌물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요구하는 모든 일을 노예같이 실행하면서, 그 대신 여비라든가 보수라든가 일당이라든가 한는 온갖 돈을 국고에서 받아내는 것은 별로 파렴치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폴란드 인민들이 국민을 사랑하거나 조상의 종교에 충실하다고 해서 몇백 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빈궁 속에 빠뜨리고, 유형에 처하거나 감금하는 것은 조금도 불명예스러운 일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고결하고 남자답고 애국적인 공훈이라고 믿었다. 그는 폴란드의 어느 현 지사였을 때 그런 짓을 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자기에게 반해버린 아내와 처제의 재산을 모두 자기 앞으로 돌려놓고도 역시 파렴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안을 바로잡는 현명한 처사였다고 생각했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의 가정에는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내와 처제(그는 처제의 재산도 자기 수중에 넣어 그녀의 영지를 판 돈을 자기 명의로 예금했다), 얌전하고 어리벙벙하고 못생긴 딸이 있었다. 딸은 괴롭고 외로운 생활을 보냈는데, 요즈음에는 알린이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 댁 모임에 나가 복음서 낭독을 하며 삶의 위안을 찾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의 아들은 사람이 좋기는 했으나 열다섯 살 때부터 턱수염을 기르고 술을 마시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죽 그렇게 살다가 학교 하나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못된 친구들하고만 사귀어서 빚을 진 나머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한번은 그의 아버지가 빚 230루블을 갚아주었고, 다음에는 빚 6백 루블을 갚아주었다. 그때 아들에게, 이것이 마지막이니 개심하지 않으면 집에서 쫓아내 부자의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아들은 개심은커녕 또 천 루블이나 빚을 지고 뻔뻔스럽게도, 오히려 집에서 이렇게 사는 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라며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그때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아들에게 어디로든 가버리라면서 이제는 부모도 자식도 아니라고 선언햇다. 그때부터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아들이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해왔고, 가족들도 누구 하나 그의 앞에서는 아들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정을 정리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볼리프는 상냥하면서도 다소 조소 어린 웃음을 띠면서 -이는 그의 평소 태도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무의식적인 표현이기도 햇다 -시내를 거닐던 걸음을 멈추고 네흘류도프와 인사를 나눈 다음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했다.
"자, 앉으십시오. 실례입니다만, 거닐면서 말씀을 듣게 해주십시오." 그는 재킷 주머니에 양손을 찌른 채 말쑥하게 정돈된 큼직한 서재를 대각선으로 가볍게 거닐면서 말했다. "이렇게 알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이반 미하일로비치 백작의 부탁은 되도록 힘써보겠습니다." 그는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입에서 시가를 떼고 향기로운 파란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사건이 처리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만약 피고가 시베리아로 가야한다면 되도록 빨리 출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하고 네흘류도프는 말했다.
"네, 그렇군요. 니즈니에서 떠나는 첫 번째 기선을 타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남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언제나 앞질러 생각하는 볼리프는 특유의 겸손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피고의 이름은 무엇이지요?"
"마슬로바입니다......"
볼리프는 탁자로 다가가더니 다른 서류와 함께 철해둔 서류를 뽑아서 들여다보앗다.
"아아, 옳군, 마슬로바. 좋습니다. 동료들에게도 부탁해놓겠습니다. 수요일에 이 사건을 심의하겠습니다."
"그러면 변호사한테 그렇게 전보를 쳐도 되겠습니까?"
"변호사에게 의뢰하셨나요?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그러나 원하신다면 상관없습니다."
"상소 이유가 빈약할지도 몰라서요"하고 네흘류도프가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선고는 확실히 오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원로원이 사건의 본질을 심의할 수는 없는 겁니다"하고 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시가의 재를 바라보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원로원은 다만 법의 적용과 그 해석이 옳은지 그른지만 조사할 뿐입니다."
"이번 경우는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마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무슨 사건이든 모두 특별한 경우니까요. 우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것뿐이에요." 담뱃재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지만 금이 가서 위험한 상태였다.
"페테르부르크에는 자주 오시지 않습니까?" 볼리프는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시가를 들며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역시 재가 떨어질 것 같았으므로 그는 조심스럽게 재떨이로 가져가서 재를 떨었다. "그런데 카멘스키 사건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훌륭한 청년이었죠. 게다가 외아들이었고요. 그러니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는 요즈음 페테르부르크에서 떠들고 있는 카멘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되풀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백작 부인과 그녀가 열중하고 있는 새로운 종교적 경향에 대해서 말한 다음(블라디미르 바실리예비치는 그 종교적 경향을 비난도 찬성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고상한 성격으로 보자면 불필요하다고 보는 게 분명했다) 벨을 눌렀다.
네흘류도프는 작별 인사를 했다.
"시간 있으면 만찬에라도 들러주십시오." 볼리프는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수요일이 좋습니다. 그때는 확실한 대답을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이미 시간이 늦었으므로 네흘류도프는 이모네 집으로 마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