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 피면 바지락 살이 오르기 시작한다. 아카시아 꽃 필 땐 이미 살 투성이인 맛살마저도 살 두께를 늘린다. 갯벌, 뻘 아래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일.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꽃냄새만으로 눈으로 본듯 안다.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비봉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제부도 방향으로 20여분 달린다. 제부도에 이르기 전 삼거리에서 궁평리 방향으로 꺾어 잠시 더 가면 서해일미마을이 나타난다. 경기도가 선정한 슬로 푸드 마을이다. 어촌이자 농촌인 이곳 마을은 1,000년 역사를 자랑한다.
경기 화성시 서신면 공평리 688. 서해와 갯벌을 마주한 서해일미마을의 중심이다. 마을 사람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농토와 바다·갯벌에서 삶을 일군다. 논처럼 경계를 나누지 않아도 고토의 갯벌을 손금 들여다 보듯 꿰고 있다.
진달래와 아카시아의 개화에서 갯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이곳 사람들은 송화가루가 날릴 때면 바지락으로 젓갈을 담는다. 바지락 7, 소금 3의 비율이다. 소금은 서신면 인근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을 쓴다. 바지락 젓갈 맛이 얼마나 맛 있으면 촌로는 “젓가락에 감긴다”고 표현했을까.
바지락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조개다. 간장의 기능을 돕고 피로를 회복한다. 영양학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과거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뻘을 끼고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었다. 축복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해일미마을에서는 텃밭에서 상추 뽑아먹듯 바지락을 캐다 먹는다.
살아 있는 바지락을 씻은 뒤 바닷물을 부어 놓으면 알아서 스스로 해감을 뱉어낸다. 손질한 바지락과 호박 등 야채를 넣고 국수와 함께 끌여내면 바지락칼국수다. 바지락칼국수는 그 시원한 맛 때문에 전국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바지락으로는 젓갈을 담그고, 미역국·잡채·죽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8자 모양의 구멍 2개를 갯벌에 흔적으로 남기는 바지락보다 낙지는 구멍을 더 많이 뚫어 놓는다. 지능이 더 높아 잡기 용이하지 않다.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채취할 수 있는 바지락과 달리 낙지를 잡으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낙지를 잡으면 바지락보다 더 돈이 됐다. 백춘화 부녀회장(54)의 남편 김호식씨(60)는 이 동네에서 최고 낙지잡이꾼으로 통한다. 하루에 250마리 넘게 잡은 적이 있다. 낙지 잡은 돈으로 땅을 사고 3남매를 키웠으며 대학공부까지 시켰다. 갯벌을 다니면서 낙지를 잡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자식 커가는 모습을 보며 고단함을 잊었다.
낙지의 자식사랑은 부부에 뒤지지 않는다. 8월말부터 젓가락에 통째로 감아 맛있게 먹는 세발낙지.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어린 낙지다. 세발낙지의 자양분은 어머니의 희생이다. 낙지는 6월말에서 7월초 뻘 속에다 새끼를 낳은 뒤 자기 몸을 새끼 먹이로 공양한다. 새끼는 엄마의 살을 뜯어 먹으며 성장한다. 그 낙지를 사람이 다시 먹는다. 서해일미마을 앞 갯벌에서는 매년 이러한 지극한 모성애가 반복된다. 파도는 무심히 모성애를 지울 뿐이다.
굴은 마을의 자랑이다.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했을 정도로 맛이 탁월하다. 초장 대신 간장에 찍어 먹어도 된다. 그 만큼 비린내가 없기 때문이다. 방파제나 배를 타고 20분가량 나가야 하는 도리도에서 딴다. 자연산이기 때문에 잘다. 양식굴은 덩치가 커 껍질에서 깨끗하게 떼어낼 수 있다. 이곳 참굴은 크지 않아 알맹이를 깔 때 ‘쩍’이라 부르는 껍질가루가 살에 붙는다. 마을 사람이면 바닷물에서 채질해 쩍을 제거하는 비법을 안다. 숙취해소는 물론 간식거리로도 그만인 ‘굴물회’는 정말 일미다. 동치미국에다 깐 굴을 넣고 배 썬 것, 도토리묵 채, 김가루를 섞는다.
일미마을에서는 민꽃게 또는 돌게라고도 하는 박하지를 밧봐야 한다. 간장으로 박하지장을 담그면 참게장에 전혀 손색이 없다. 꽃게는 10년전만 해도 전량 일본에 팔았다. 도리도 앞까지 일본 배가 들어와 무게를 달은 다음 포장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어부는 엔을 받았다. 지금은 국내 수요를 대기도 벅차다.
바지락·낙지·굴·소라·꽃게·박하지·모시조개…. 농어·광어·우럭 등 온갖 생선까지 없는 게 없는 일미마을. 바닷가 마을에서 풍요로운 맛을 즐기다 보면 어느 틈에 갯벌을 온통 붉게 물들인 낙조 속 풍경이 된다.
〈글 안치용·사진 정지윤기자 3Dahna@kyunghyang.com">ahna@kyunghyang.com〉
천혜갯벌 생태공원 도시민들 바다체험
-갯벌 3등분 자연휴식년제 도입-
서해일미마을은 천혜의 풍요로움을 이용해 도시민을 맞는 체험어장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가장 큰 자원은 갯벌이다. 조상 대대로 바지락, 낙지 등 풍부한 해산물을 생산해준 갯벌을 이제 생산지와 체험장을 결합한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무계획한 개발로 어장 황폐화를 경험한 인근 제부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90ha의 갯벌을 3등분해 순서대로 30ha씩만 일반에 개방할 생각이다. 1년동안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한 다음에는 2년동안 쉬게 해 갯벌의 생명력을 회복케 한다는 복안이다. 사람이 많이 밟고 다닌 오솔길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무가 안자라듯 마구잡이로 수많은 인파가 들이닥친 갯벌에는 해양생물이 종적을 감춘다.
벌써 이곳에는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많이 다녀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채취가 아니라 방생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체험학습에 관한 아이디어가 많다. 어린이들에게 바지락을 캐는 대신 산 바지락을 나눠주고 갯벌 속에 숨어드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더니 더 좋아하더라는 설명이다.
바지락이 슬금슬금 기어 깃벌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30여분이 걸린다. 두개의 작은 구멍을 존재의 흔적으로 남긴다. 아이에겐 이 모든 광경이 신기할 뿐이다.
어른을 위해서는 입장료를 받고 바지락을 캐게 하는 것 말고 더 다양한 내용의 체험어장프로그램을 구상중이다. 경기 화성시 서신면 공평리 어촌계 선단 소속 어선 48척을 활용해 생선은 물론 주꾸미잡이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주꾸미는 어패류껍질에 숨어드는 속성을 이용해 그물에다 소라껍질을 묶어 잡는다. 그물을 걷어 올리면 소라껍질 속에 숨어 있는 주꾸미를 볼 수 있다.
104명의 부녀회원은 체험어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진행요원이다. 도시 사람들을 갯벌로 데리고 가 시범을 보여주면서 낙지를 잡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김희섭 이장은 “앞으로 도시와 어촌이 함께 할 수 있는 내실있는 체험어장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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