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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雲門寺) 매표소 옆 돌기둥에 ‘호거산운문사(虎踞山雲門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 범종각 앞에도 ‘호거산운문사(虎踞山雲門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왜 ‘운문산 운문사’가 아닌 ‘호거산 운문사’인가?
운문사 뒤에 운문산은 있지만 호거산이라는 지명은 없다.
그렇다면 호거산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호거산(虎踞山)은 ‘호랑이(虎)가 웅크리고 있는(踞) 모습’을 뜻한다.
운문사 4대 부속 암자(북대암,내원암,청신암,사리암)가 자리한 동북쪽 지룡산(池龍山) 일대가 엎드려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예부터 복호산(伏虎山)으로 불러왔다.
또다른 이야기는 절 뒤 가장 높은 산인 운문산(1,195m)을 호거산으로 지칭했다는 설이 있고, 운문사 서북쪽 암봉인 호거대(등선바위, 장군봉516m)를
호거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장이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반풍수인 필자는 운문사 남쪽 최고봉인 운문산을 중심으로 우청룡(지룡산) 좌백호(호거대, 장군봉)의 산세로 보았다.
우청룡 중심봉에 지형도상의 지룡산(池龍山)이 있고, 여성의 자궁에 해당되는 중심부에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사찰이 자리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지룡산성에서 유래된 이름인 지(地)룡산은 지렁이와 관련이 있다.
지룡(地龍, 지렁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견훤의 탄생 설화에 기원을 둔 어원이다.
견훤산성, 호거산성으로도 불리는 이 성은 후백제 견훤이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을 공격하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지룡산의 한문 표기는 못 지(池)를 쓰면서 지렁이와 거리를 둔다.
운문호(池)를 향하여 목을 길게 뻗고있는 용(龍)과, 복호산(伏虎山)에서 엎드려 있는(伏) 호랑이(虎)를 떠올리면 용호(龍虎)의 기운이 새삼 느껴진다.
거의 15년 만에 다시 찾은 지룡산 줄기에 온갖 산이름의 표석이 낯설다.
지룡산 능선에서 제일 높은 823m봉은 내원봉(內院峰)이라 새긴 표석이 헬기장 가장자리에 서있다.
여기서 10분이 채 안되는 또다른 헬기장(807m)에는 또 삼계봉(三溪峰) 표석이 있고, 뒷면에는 ‘가지산맥(迦智山脈)’이라고 새겨져 있다.
내원암 위에 있다고 내원봉, 삼계리에 있다고 삼계봉, 가지산(迦智算)에 맥이 닿아 있다고 가지산맥이라고 한 것 같은데,
고증되지 않은 산 이름을 봉우리마다 세운 건 아무래도 좀 거시기해 보인다.
GPX
참고 개념도(부산일보>
참고 개념도<국제신문>
버스는 '서울산IC'에서 내려 구불구불 운문령을 지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698-2'에서 정차를 한다.
운문사로 꺾어 들어가는 삼거리로...
삼거리엔 '승호장가든'이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부화한 거북이들이 바다로 달려가는 것처럼 냅다 산으로 해달린다.
뒤따라 오르며 돌아본 모습.
널따란 무덤들이 자리한 곳은...
'통정대부 밀양손씨' 묘역인 듯하고...
끝자락엔 '밀성손씨 운포파 6대제단'비석도 있다.
밀양(密陽) 손(孫)씨와 밀성(密城) 손씨는 같은 말로 밀양을 예전에 밀성으로 불렀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 만나는 전망대에선...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가 보이고, 왼쪽 산자락은 방음산자락.
밀성손씨묘를 지나고...
유선이 없었던 예전에 많이 보았던 TV안테나도 지나니...
옹성(甕城)을 닮은 듯한 바위 봉우리가 위세를 뽐내고 있다.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가까이의 방음산 능선 너머 까치산(613m) 능선인 듯 도드라진 모습이 보인다.
호거대.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았다는 그곳. 삼각뿔로 곧추선 암봉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고, 좌측 멀리 억산의 깨진바위도 선명하다.
억산에서 우측으로 뻗어내리는 두번째 능선의 솟은 봉우리는 귀천봉, 더 뒤론 운문지맥의 힘찬 용트림이다.
반대 방향으론 곧 찾게 될 옹강산(좌)과 문복산(우)이 웅자(雄姿)를 보여주고 있다.
직벽 밧줄구간을 피하여 우측으로 우회하다 만나는 석굴. 밑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운문사주차장가는 길인 듯.
우회하는 길은 거대한 바위 옹벽을 우로 돌아가는 길로 온통 돌무더기들이 언제 쏟아질지 모를 급경사 너덜지대.
우회길에 거북이가 길게 목을 내밀고 있다. 담합한 용과 호랑이에 쫓겨난 것일까? 슬픈 눈이 느껴진다.
돌무더기 조심~ 낙석 조심~조심~
주능에 올라섰다.
우회길의 이정표에 운문사주차장 표식이 있다. 우회길 도중에 바로 내려서면 운문사주차장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
억산을 중심으로 가까이에 호거대, 그 뒤 능선의 귀천봉, 더 뒤 좌로 휘돌며 운문지맥의 구만산과 육화산이 모습을 감춘다.
밧줄을 타고 오른 일행들을 보고 역(逆)으로 진행...
삼각점이 있는 암봉에 접근을 한다.
누군가 돌멩이에다 신선봉이라 새겨 놓았고...
해발 635m 암봉에 마련된 작은 주사위같은 앙증맞은 삼각점.
635m 암봉에서 올려다 보는 복호산. 그 너머로 영알의 산군들이 물결을 이룬다.
복호산에 올랐다.
복호산(681m)은 이렇다할 조망이 없어 다소 갑갑한 느낌이다. 예전 국제신문의 개념도를 분석해 보면 지룡산의 표석이 이곳에 있었던 듯하다.
이곳을 신선봉이라 했던가? 지형도상에 나와있는 유일한 산이름인 지룡산을 포함해서 봉우리마다 백인백색 왔다리갔다리 헷갈리기만 하다.
복호산 밑에 신원동천(新院洞天)이라 새겨져 있다. 신원리의 지붕(하늘)이란 뜻인가?
허물어진 지룡산성의 흔적인 듯하다.
고려시대 삼별초의 활동에 동조한 김사미의 난 때 농민군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으며, 임진왜란 때 청도 의병장 박경전과 의병들도 이 산성을 중심으로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허물어진 지룡산성을 밟고 산성의 흔적을 더듬으며 봉우리에 오르자...뜬금없이 이곳에 정상석이 서 있다. 이 봉우리는 지룡산 직전의 삼각점이 있는 659m봉. 일행들 틈에 끼여 시원한 탁음료를 곁들인 점심을 들었다.
그리곤 기념사진.
예전의 인증사진과 비교하니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완죤 틀린다.
이 지점의 삼각점.
지형도상의 지룡산(666m)에 올랐다. 국제신문의 개념도엔 이 봉우리를 그냥 전망대라고 표기되어 있다.
지형도상의 지룡산은 아까 정상석이 있는 삼각점봉보다 조금 더 높다.
암봉 바로 밑의 남아 있는 석축은 지룡산성의 흔적인감?
지형도상의 지룡산(666m)에선 조망이 시원하다.
진행방향으로 내원봉과 삼계봉, 그리고 더 멀리 좌측으로 쌍두봉의 모습과 영알의 맏형인 가지산이 하늘을 받치고 섰다.
좌측 구름모자를 살짝 덮어쓴 운문산과 우로 내달리는 운문지맥의 잘록한 딱밭재, 중간에 살짝 솟은 범봉, 깨진바위의 억산, 이 지맥은 구만산으로 내달린다.
운문산 북쪽으로 깊숙히 쏟아지는 계곡은 결국 학심이골로 흘러들어 이골저골 골골을 샅샅이 훑어 모은 후 운문사를 거쳐 운문호로 흘러든다.
깊숙한 학심이골 널따란 분지에 구름(雲)이 넘나든다(門)는 운문사(雲門寺)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연꽃을 닮아 연꽃의 화심(花心)에 비유되곤 하는 운문사와 발아래 내원암은 산골짜기에 묻혔다.
운문사(雲門寺)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잘 알려진 절집이다.
경내에는 대웅보전(보물 제835호)을 비롯한 7점의 보물과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만세루 등 많은 문화재를 지니고 있다.<당긴 사진>
이 암봉은 운문사조망바위.
발아래 숲속에 숨은 내원암을 살펴본다.
이제 더 진행하다 돌아보니 우측으로 우리가 걸었던 꿈틀거리는 지룡이 능선과 발아래 깊숙한 계곡의 내원암과 운문사가 펼쳐진다.
운문사 방향으로 조망이 열려...
운문사에서 내원암으로 오르는 차도가 확보된 듯하여...
살짝 당겨보니 내원암은 골짜기 아늑한 자리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반대쪽에는 8월달에 가기로 되어있는 옹강산의 모습이 잡힌다.
돌아본 지나온 길이 보기에 따라서 용의 모습이기도 하고, 지룡이의 모습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제 내원봉과 뒤에 삼계봉이 가까워졌다.
뒤의 삼계봉에서 나선폭포로 이어지는 좌측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왼쪽에 살짝 솟은 곳에 도드라져 보이는 바위지대는 최고의 전망대였다.
중간에 쌍두봉이 나도 여깄소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헬기장이 있는 내원봉(823m)이다.
예전에 없었으니 인증을 하고...
나무 위에 달린 '준.희'님의 표식기도 살핀다.
구름모자를 덮어쓴 운문산과 운문지맥.
딱 10분 만에 삼계봉(807m) 표석이 있는 헬기장에 섰다. 삼계봉에선 나선폭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삼계봉 표석.
배너미재로 가면 등로는 훨씬 좋겠지만 나선폭포로 방향을 잡았다. 나선폭포로 향하면서 만난 전망바위.
아까 내원봉 직전에서 삼계봉 좌측으로 뻗어내리는 능선에서 바라보이던 하얀 암반이 바로 이곳일 것.
이 전망대는 오늘의 전망 최고 포인터.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옹강산(좌)과 문복산(우) 사이로 멀리 경주 단석산인감?
우측 쌍두봉 좌측 멀리 고개를 내민 산은 낙동정맥의 고헌산인 듯.
오늘은 화요일. 만덕에서 이따금 참가하는 분이 예쁜 포즈를 취했다.
그 새 우루루 일행들이 도착하여...
그 새 못다한 산행의 즐거움을 예서 채운다.
조금 이동하다 만나는 갈림길에 있는 바위를 낙타바위라고 부르지만, 글쎄다. 쌍봉의 낙타봉이...
이래도 아니고. ㅋ
다시 쫓아온 일행들.
이제 다소 급한 내리막을 내려서야만 한다.
나선폭포 직전에서 만난 솟은 바위에서 우측 아래 나선폭포를 내려다보니......
눈 앞이 아찔.
다시 5m 아래를 내려가면 나선폭포의 상단부. 나선폭포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이미 말라 있었지만...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누가 먹나요? 바싹 말라있는 물줄기가 나선폭포 암반을 만나면서 아기 오줌줄 만큼이나 쫄쫄 흐르고 있어...
우리의 박치용 고문님이 토끼들이 먹는 옹달샘으로 쪼르르 내려 가셨다.
그리고는 그 귀한 나선폭포 옥수(玉水)로 세수를 하였다는 말씀.
이제 하산길은 내려온 길을 10여 미터 되올라와 폭포 우측으로(폭포 아래에서 보았을 때) 돌아 내려가야만 한다.
그러니까 아까의 폭포 상단에서 보았을 땐 좌측으로 둘러 내려가야 한다는 말씀.
* 폭포 상단부에서 계속 오르는 방향으로 표식기가 걸려있고, 발자국이 있지만 그건 잘못된 시그널. 따라서 폭포 상단부에선 반드시 U턴을 하여야 한다.
나선폭포를 우측 어깨에 걸치고 내려서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길로...
천천히 조심조심 내려와야야만 한다.
그러나저러나 폭포를 우회하며 내려서는 데는 소요시간 불과 5분여. 당산나무인 듯 노거수를 만나니 나무앞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옛사람들은 민간신앙으로 여러가지 자연물이나 장소에 음식과 물을 바치고 복을 빌거나 제사를 지냈었다.
우리가 내려오기 직전 나선폭포에 두 명의 무당들이 머물고 있었다.
물마른 나선폭포를 고개들어 올려다 보니 아까 우리가 머물렀던 상단부는...
하늘로 통하고 있었다.
장마가 한창인 이맘때 장관을 이루어야할 폭포는 그냥 밍밍한 암벽. 겨울철 폭포가 얼어 붙으면 빙벽꾼들이 붙는다고...
이 폭포에서 2011년 12월 30대 울산 여성이 30여m의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20cm의 얼음덩이에 맞아 사망한 사고가 생겼다.
해빙기 낙빙(落氷)으로 인해 인명사고가 발생한 지역으로 밧줄 안으론 들어가지 마세요. -남부지방산림청장님의 말씀-
똑 같은 이유로 주의하기 바란다는 청도군수님의 말씀.
나선폭포를 벗어나 돌무더기가 있는 배넘이재 갈림길에 섰다.
된비알을 10여 분 올려치면 배넘이재(해발 약 500m)가 나오고, 널찍한 고갯마루에는 ‘운문산 생태보전지역’ 안내판이 서 있다. 내려서면 학삼이골.
직진은 배넘이재(0.88km), 나선폭포는 우측으로 240m, 우리가 내려가는 천문사는 700m.
배넘이재로 통하는 길은 고속도로 수준.
사방공사가 이루어진 듯 예전에 없었던 징검다리를 건너고...
안내판 앞에서 오늘 동선(動線)의 궤적을 살펴보다...
천문사 후문을 만나 절문을 들어선다.
천문사는 새로 단장한 듯 온갖 조형물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새로 단장되었지만 몇백년 몇천년이 흐른다면 유적으로 자라매김할 것.
조각연도가 일천하지만 선각(線刻)으로 새긴 모습에 옛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우선 지장보살님 가피(加被)로 옆의 수도꼭지를 열어 쏟아지는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마애지장보살' 안내문.
아직도 한창 불사가 진행 중인 삼천불전과 대웅전을 뒤로하고...
천문사 일주문을 빠져 나온다. 천문사는 대부분 온갖 석물(石物)로 꾸며져 있지만 조형물에서 느껴지는 삭막감마전 어쩔 수 없다.
조그만 땅덩어리에도 이렇듯 기후변화가 극심하다. 다른 지방엔 많은 비로 피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이곳엔 거의 비가 오지 않은 듯하다.
계곡엔 물이 바싹 말라 있어 다리밑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횡재를 만났다. 땅밑으로 숨었다가 솟아난 맑은 계곡수가 소(沼)를 이루어 필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 자락 천만 남기고 훌러덩 벗어 제꼈다. 은폐엄폐물이 없이 뻥 뚫려 있었지만 큰 대수는 아니었다.
맑은 계곡수는 닦지도 말고 그냥 말리라는 선인들의 선견지명대로 물기를 그냥 꼭꼭 찍어 옷을 갈아입고 의관(?)을 정제하였다.
그리곤 청도와 언양을 잇는 69번 지방도에 올라왔다.
남의 주막집에 걸린 작자 미상의 '청도 가는 길'의 아름다운 싯귀가 눈에 들어온다.
가지산/ 운문령 너-머/ 청도 가는 길/ 삼계리는/ 여름이 좋아라//
산 높아 서늘한 바람이/ 흐르고/ 골 깊어/ 호기로운 수다가/ 쏟아진다//
문복산에 이른달 올라/ 중천에 걸리면/ 너른 내 바위는/ 하얀 등을 보인다//
쪽달이
배너미 골을
넘는 밤
홀로
술잔을 들어도
좋아라
그리고 우리 버스가 대있는 한뼘만한 그늘 자리엔 일행들이 벌써 '초복 이븟날'의 오리백숙 만찬을 즐기고 있다.
처음 마시는 음료는 탁음료로 갈증을 해소하고, 탁음료 석 잔 후엔 맑은 이슬(!)로 머리와 가슴을 정화한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귀가 채비를 서두르다 담 모퉁이에 핀 능소화를 보았다. 꽃말과 전설이 더 애잔한 능소화.
옛날 복숭아 빛 고운 뺨의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어느날 임금의 눈에 띄어 빈(嬪)의 자리에 올랐으나 임금은 더이상 한번도 빈의 처소를 찾지를 않았다.
다른 빈들의 시샘과 음모로 궁궐의 가장 외진 곳에 기거 하게 된 소화는 그것도 모른 채 임금이 자기를 찾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왔다가 돌아가지는 않을까 담장을 서성이는 안타까운 기다림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불쌍한 여인은 그만 세상을 뜨게 되었다.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장례도 치루지 못한 채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고 하였다.
다음 해 이맘때 소화의 처소 담장에는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의 노랑바탕의 옅은 주황색 꽃이 피었다.
능소화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수명장수와 부귀영화는 우리 인간들의 오랜 숙원이지요. 해답은 산과 바다에 있다고하니 새겨 듣겠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 했지만 너무 과한 찬사라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제멋에 겨워 몇날을 곱씹으며 추억을 되새김한 흔적이죠.
사진은 쌍두봉 오름길에서 돌아본 장면으로 겨울철 소갈비짝같은 설경이 인상적이고,줌인한 얼어붙은 나선폭포 또한 진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