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Agatha Christie (애거서 크리스티 1890-1976)
80여 편의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을 발표하여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린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영국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로,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린다.
그녀의 작품들은 추리소설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까지도 높은 인기를 누리며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치밀한 구성,
독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이끄는 수법,
반전과 독창적인 아이디어,
인간 성격을 기반으로 한 갈등 구조,
주변 인물 관찰을 토대로 하는 추리 기법 등을
특징으로 하는 그녀의 작품들에서
현대 추리소설의 모든 설정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필명으로 약 80여 편의 소설들을 썼으며,
그 밖에도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연애소설을 쓰고, 희곡, 어린이 소설 등도 썼다.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탐정들이지만,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들도 많다.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10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어권에서만 10억 부 이상,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 이상 판매되면서 기네스북에 올랐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본명은
애거서 메리 클라리사 밀러로,
1890년 9월 15일 영국의 데번 주 토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레드릭 앨버 밀러는 미국인 사업가이며,
어머니 클라라 보머는 영국 귀족이다.
3남매 중 막내였는데,
언니와 오빠는 그녀보다 10살 이상 위로 나이 터울이 많아 기숙학교 생활을 했고,
크리스티는 나이 많은 유모와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숲과 정원이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저택 애슈필드에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 애슈필드 저택과 그곳에서의 유년 시절은 후일 그녀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6세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건강 악화로 남프랑스 지역으로 잠시 떠났다.
이곳에서는 어머니의 교육관에 따라
집에서 어머니에게 직접 프랑스어와 고전, 피아노와 만돌린 등 여러 교육을 받았다.
독서를 좋아하던 크리스티는
어린 시절 주로 언니의 책들을 읽으며 지냈는데,
그중에는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도 있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유모, 어머니와 어울려 (그녀가 탐정 놀이라고 칭한)
수수께끼 풀이를 즐겨 했다.
11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부터 집안 형편이 기울었으나
할아버지의 유산과 결혼한 언니의 도움으로
애슈필드 저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무렵부터 시와 단편소설을 습작하고 잡지들에 투고하기 시작했으며,
음악가로 성공하고 싶어 했다.
12세 때
토키의 미스 가이어 여학교에서 춤과 음악,
독일어 등을 배웠으나 잘 적응하지 못했다.
16세 때에는
성악과 피아노를 배우고자 프랑스 파리로 가서
마드모아젤 샤버네, 마로니에 부부, 미스 드라이든 등 일류 음악가들을 사사했다.
하지만 무대 공포증이 있었고,
전문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기에는 재능이 미흡하다는 말에 음악가의 꿈을 포기했다.
20세 때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어머니 클라라가 중병에 걸려 요양차 카이로로 떠나기로 한다.
여행을 다녀온 후 카이로 여행에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소설을 써서
이웃에 살던 소설가 이든 필포츠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에게 좋은 평을 듣고 추리소설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크리스티는 자원봉사 간호사로 육군병원 약국에서 일했는데,
이때 얻은 각종 약 지식을 후일 작품에 많이 활용했다.
그해 말 크리스티는 영국 육군 항공대 소속 아치볼드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남편이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군대를 따라 이동이 잦자
그 시기에 그녀는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탐정 에르퀼 포와로가 등장하는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출판사에게 계속 거절당하다 1920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비밀결사》, 《골프장 살인사건》, 《포와로 사건집》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으며,
1926년
크리스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출간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크리스티의 개인적 삶은 불행했다.
어머니의 죽음, 남편의 외도와 의처증에 시달리던 크리스티는
1926년 12월 3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드라이브를 하겠다고 나간 뒤 실종되었다.
이튿날 그녀의 차와 소지품만이 발견되자,
약 10일 동안 경찰들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 팬까지 몰려들어
무려 1만 5천 명이라는 대인원이 수색에 나섰다.
10일 후 크리스티는 헤로게이트의 스완 하이드로패틱(지금의 올드 스완 호텔)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녀가 실종 이튿날부터 그곳에서 가명으로 숙박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크리스티는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고,
세간에서는 작품 홍보 혹은 남편에게 경고하려는 목적에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설이 돌았으나 그녀는 이때의 일을 끝내 함구했다.
1928년,
아치볼드와의 사이에서 외동딸 로절린드를 낳았으며,
그해 남편과 이혼했다.
이혼 후 크리스티는 홀로 중동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고고학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 여행 중 메소포타미아에서 그녀는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을 만났고,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며칠 동안
그와 사랑에 빠져 1930년 재혼했다.
당시 크리스티는 40세, 맬로원은 26세였다.
이후 크리스티는 맬로원이 발굴 조사를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닐 때 동행하고 고고학을 습득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 《메소포타미아 살인사건》, 《나일 강의 죽음》 등이 탄생했다.
또한 고고학 답사에 관한 논픽션 《와서 사는 법을 말하라》 등도 썼다.
그런 한편 이 시기부터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봄에는 없는 것》 등 몇 편의 연애소설을 쓰기도 했다.
1930년,
콜린스 사에서 〈크라임 클럽〉이라는 추리소설 총서를 간행하기 시작했으며,
크리스티는 존 로드, 필립 맥도널드 등과 함께 이 총서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할머니 숙녀 탐정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첫 작품 《목사관 살인사건》이 탄생했다.
이후 크리스티는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불리면서
《ABC 살인사건》, 《벙어리 목격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0시를 향하여》,
《살인을 예고합니다》 등 수십 편의 추리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다.
1947년에는
메리 여왕이 80회 생일을 맞이해
BBC 방송국 특집극으로 크리스티의 극을 듣고 싶다고 요청하여
방송극 〈쥐덫〉을 집필했다.
〈쥐덫〉은
1952년 크리스티의 각색으로 앰버서더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오늘날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연되면서
사상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쥐덫〉을 시작으로 크리스티는 1950년대에 〈검찰 측 증인〉 등을 각색해
연극 무대에 올렸으며,
〈거미줄〉, 〈초대받지 못한 손님〉 등
희곡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영국과 미국에서 추리연극의 시대를 열었다.
1967년
여성 최초로 영국 추리협회 회장이 되었고,
1971년
추리소설에 대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 2등급을 받고
'데임 애거서 크리스티'로 불리게 되었다.
1976년 1월 12일,
런던 근교 월링포드의 자택에서 85세로 사망했는데,
〈쥐덫〉의 제작자 피터 손더스는
'버킹검 궁, 국회의사당, 런던 탑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조의를 표했다.
사후 1년 뒤에 직접 쓴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 청아출판사(이한이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