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노인복지 전문가이며 활동가인 연꽃마을 각현스님이 최근 정화운동 재조명 및 기념사업회 발족을 위해 나섰다. 정화와 복지는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이 스님의 가르침이다.
“은혜를 여실하게 깨달아 報恩하는 것이 불교”
노인복지와 병원 일에 매달려 다른 일은 관심을 두지 않던 연꽃마을 이사장 각현스님이 최근 종단 정화운동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나섰다. 스님은 얼마 전 포교원장 혜총스님,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스님, 불교인권위원회 진관스님 등 10여명의 스님과 함께 50여년 전 종단 정화사를 되돌아보는 세미나를 개최한데 이어 기념사업회 발족에 나섰다. 노인복지와 정화(淨化), 전혀 관련성이 없을 것 같은 일에 발 벗고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정화운동은 현재의 조계종 재건한 불교혁신운동”
기념사업회 설립, 회관 복원, 기념일 제정 ‘과제’
지난 21일 스님은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밤이 이슥해서 대구에서 올라왔다. 고속열차를 타고 천안에서 내리면 파라밀 병원이 있는 안성까지 1시간이면 닿는다고 한다.
‘노인 복지와 정화가 얼핏 잘 연관이 안된다’고 하니 스님은 “다들 은사스님 때문에 나선 것으로 아는데 은사 스님께서도 내가 정화운동을 기리는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적극 말리셨다. 이는 순전히 내 스스로 생각이며 오래전부터 고민하던 사업이다”며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종단이 정화운동을 통해 탄생했으니 이를 기리고 그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종도(宗徒)로서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아주 복잡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일이나에게 이익이 될까. 남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등 일을 하기도 전에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가 지레 포기하고 만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 일이 옳은가 그른가, 꼭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만 판단하면 된다. 옳은 일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면 하면 된다.”
각현스님의 은사는 월탄스님이다. 1960년 11월 종단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 죽음을 각오한 ‘대법원 6비구 할복’ 사건의 주인공이다. 종단이 소송에 패해 위기에 빠지던 찰라, 스님들이 조계사에서 모여 밥솥을 내걸고 단식 정진했다. 월탄스님, 성준스님 등 6명이 대법원에서 할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법원으로 달려가 농성을 하다 320여 명이 경찰서에 연행돼 이중 6명의 비구와 대법원 청사 안으로 들어갔던 18명의 스님들이 구속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각현스님은 “은사 스님께서는 누가 보더라도 당신을 부각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으니 당신은 이를 원치 않는다며 극구 말리셨다. 하지만 1960년 대법원 사건은 1954년부터 통합종단이 출범하는 1962년까지 긴 여정에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당시 대부분의 비구 비구니들이 종단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나섰다. 종단이 출범하고 진작에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정화정신을 기렸어야했는데 반세기가 흘렀다. 누구든 나서야한다. 마침 총무원장 스님께서도 관심을 보이고 적극 돕겠다고 하니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곧바로 광화문 근처에 사무실을 내고 집기를 들여놓았다. “가장 시급한 일은 정화운동에 나섰던 분들의 증언을 녹취하는 일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입적했다. 남은 분들이 가시기 전에 빨리 증언을 청취하고 사진 및 자료들을 모아야 한다. 이를 자료로 모아 계간지로 묶어 발간할 생각이다. 시간이 없다. 누군가 하겠지, 종단이 하겠지 하며 미뤄둘 일이 아니다.”
기념사업회가 구상하는 사업은 세 가지다. 기념사업회 설립과 불교정화회관 복원, 불교정화기념일 제정이다. 스님은 “50여년 전 불교정화운동은 조계종을 재건한 운동이었다. 이는 불교혁신운동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계종 스님뿐만 아니라 재가불자들까지도 불교정화운동을 모른다. 그 이유는 내부 문제에 오랫동안 소진하면서 불교정화운동을 찾지 않았고 이념을 외면하고 역사 교육에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스님들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목숨까지 버리겠다는 처절한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당시 정화에 헌신했던 스님들의 위대한 정신을 찾고 기리며 계승해야하는 것이 후학들의 과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요일, 밤이 늦었는데도 파라밀 병원 사무실 전화는 끊이지 않고 울렸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각현스님은 노인복지의 대표다. 스님이 펼치는 사업규모와 사회적 영향력은 불교를 넘어 한국을 대표한다. 노인복지의 총본부격인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이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당시만 해도 아무도 노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다. 마포 아현동 고개의 작은 센터에서 출발한 연꽃마을은 현재 38개의 산하 시설에 시설 종사자만 600여명에 이르며 하루 자원봉사자가 1600명에 달한다. 노인전문 병원과 요양원, 복지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한국최고의 노인 전문 기관으로 우뚝 섰다. 이 모두를 각현스님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일궜다.
스님은 늘 창의적이면서 폭넓은 아이디어가 넘친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시행하는 놀라운 추진력이 장점이다. 올해부터는 노스님 간병비 후원제도를 만들었다. “평생을 수행에 전념하고 나이 들어 병환으로 고생하는 노스님들의 간병비 요양비를 후원금으로 모금해서 재가자들은 스님을 공양해 복을 짓는 기회를 제공하고 종단에서 고민하는 노스님 복지의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 운동을 펼친다”는 것이 스님의 뜻이다.
스님의 노인복지 고민은 이제 노인문화 개념으로 확장 발전했다. 그 첫 사업으로 전국 어르신 백일장 대회를 개최했다. 스님은 “이제 노인은 시대의 뒤안길에서 쓸쓸히 사라져가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의 황금기를 누릴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고 생각을 바꾸어야한다. 당연히 노인문화가 존재해야한다. 청소년 장애인 여성문화는 독립적인 장르로 인정하면서 왜 노인문화는 없는가. 어르신들의 다양한 경험과 경륜을 문화로 표출한다면 문화유산 계승 발전과 노인을 우대하는 풍토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孝 사회화 운동 20년…복지법인 ‘연꽃마을’ 건립
스님이 최근에 관심을 두는 분야는 효(孝)다. 효는 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정착해야 할 문화며 덕목이다. 단순히 내 부모를 잘 모시는 가족 이기주의를 넘어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상은 불교의 효 사상이라는 것이 스님의 철학이다. 최근 효 운동에 적극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효를 강조한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대부분에서 효를 설명하고 있다. 유교의 효와 방법과는 다르다. 유교의 효가 자녀가 부모에 대해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상하관계와 무조건적인 의무인 반면 불교는 나의 생명을 있게 하고 양육시킨 부모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실천적 행위를 효로 본다. 은혜를 여실하게 깨달아(知恩), 그 은혜에 보답할 것(報恩)을 강조한다. 불교의 효는 신분적인 상하의 윤리가 아니고 지배복종의 관계가 아닌, 양쪽이 평등하게 인간적인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수평의 도덕이다. 이것이 불교의 일여평등(一如平等)과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의 사상에서 나왔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부모님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는 연기의 법칙 즉 상의상존(相依相存) 관계에 따라 양쪽이 평등한 인간적인 입장에서 관계를 맺는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실천규범이다.”
불교에서는 네 가지 큰 은혜(四重大恩)를 말하는데 첫째가 부모의 은혜며 둘째 중생의 은혜, 셋째 국가의 은혜, 넷째 삼보의 은혜다. 이 네 가지 은혜를 잊고 배은하는 것을 큰 죄악으로 여긴다. 그런 점에서 각현스님이 옛 스님들의 정화정신을 기리는 것과 나이 드신 수행자를 모시는 노스님 공경운동, 그리고 전 국민적 효 사상 전개는 모두 은혜를 갚고 기리는 한 정신에서 나온 서로 다른 가지들이다.
스님은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정화를 왜 했는가. 사회에 잘 회향하기 위해서다. 회향이 바로 복지다. 그래서 정화와 복지는 원인이며 결과다.”
각현스님은…
스물네 살 때인 1968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원로의원 월탄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깨달아 열심히 중생을 교화하라’는 의미에서 각현(覺賢)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은사 스님과 노스님인 금오스님은 화두 정진하는 수좌의 길을 원했지만 홍콩을 다녀온 뒤 복지에 눈떴다. 의왕 청계사 주지, 홍콩 홍법원장, 5교구본사 법주사 부주지를 역임하고 1990년부터 연꽃마을 불사를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효의 사회화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동국대에서 복지학을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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