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3:5]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 국가의 권세에 굴복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 '권세'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그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권세자가 하나님의 사자 즉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선을 장려하며 악을 징계한다는 대의 명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이 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성도는 그 권한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노를 인하여만...양심을 인하여 - 본문의 '노를 인하여'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권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므로 권세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뒤따른다고 볼 수 있고,
국가 권력은 이를 대행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바울은 '양심'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고 악에 대해서는 죄의식을 느끼며 또한 하나님께 대해서는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이 양심을 따라 정당한 권세에 굴복해야 한다. 결국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권세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자명한 당위성을 갖는 것이라고 할진대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도 권세에 굴복해야 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감과 충성을 위해서 굴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권력에 복종하는 동기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양심의 준수에서 나타나야 한다.
한편 '양심을 인하여' 즉 '양심을 따르기 위해서'라는 표현은 기독교인이 지상의 권력에 대하여 지녀야 할 태도의 기준이 융통성 있다는 것을 제시해주는 것으로 해석하게 한다. 여기서의 양심은 분명히 하나님 말씀의 법에 근거한 양심이다. 따라서 어떤 지상의 권력이 '권선징악'에 합당하게 그 권위를 행사한다면 마땅히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 권력에 복종해야 하겠지만 혹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 양심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칼을 휘두른다면지상의 권력에 의한 핍박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이므로 모든 제도에 대해 순종함에 있어서 주를 위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롬 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공세를 바치는 것 - 바울은 국가에 대한 의무 이행 즉 복종의 구체적인 예로 납세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본문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이미 로마 국가가 부과한 세금을 내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납세를 거부하거나 납세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혹 로마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이교도의 국가인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징벌이 두려워서 억지로 세금을 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비록 이교 국가라 하더라도 로마 정부가 가진 권위를 부여하신 분이 하나님이므로 세금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혹자는 세속적인 권력에 대한 납세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바울의 납세관이 복음서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의 가르침에 의해 영향받았다고 본다.
한편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이 구절을 해석하기를, 여기에 나온 권세에의 복종은 지상의 권세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천사나 보이지 않는 권세자들에 대한 복종이라고 했는데, 이레니우스는 그의 저서 '이단 논박'서 본 구절에 대하여 이 문맥에서 말하는 권세에의 복종을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이 아니라 지상의 통치 세력에 대한 복종임을 증거했다.
하나님의 일군 - 본문의 '일군'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이투르고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본래 제정 일치 사회의 왕적 제사장직에서 온 말로 70인역에서는 '제사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코이네 헬라어 개념에서는 일반적인 국가의 관리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또한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의 문헌들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고귀한 봉사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대개의 학자들은 이 말이 4절의 '사자'보다 높은 권위를 가진 말이라고 본다.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 여기서 '이 일'이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볼 경우 이는 관원들의 직무를 부분적으로만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관원들이 오직 세금을 징수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직무를 가리킨다고 보는데 이렇게 보는 것이 본문의 의미를 좀더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관원들이 세금 징수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은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통치자들에게도 깊은 의미를 제공한다. 즉 통치자들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위임해준 일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하며 그들의 직무가 갖는 이러한 성격을 잘 인식하고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 안에 머물러야 한다. 한편 '항상 힘쓰느니라'는 말은 적어도 통치자들이 공공의 일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롬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 '공세'는 피정복민이 지배 국가에 바치는 '조공'을 의미하며 '국세'(텔로스)는 국가에 내는 세금을 가리킨다. 6절에서는 독자들이 세금을 바쳐야 하는 근거와 세금을 부과하는 정당서을 묘사한 것이고 본절에서는 마땅히 납세를 해야 할 것임을 언급한다.
만약 당시의 모든 성도들이 다 세금내는 일을 잘 준수하였다면 바울이 본절을 말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이로 보아 당시에 세금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들이 세상의 일상적인 질서, 현세의 정치 질서를 부정하는 열광주의자들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바울은 본절을 통해 그들에게 현세의 질서는 하나님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은 이 질서 안에 머물러 있어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 여기서 두려움과 존경은 실제적으로 권력 또는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내면적인 태도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권력에 대해서 절대적인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정당한 두려움과 존경을 품어야 한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 본문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성도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갚지 않고 남겨두는 빚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이란 성도들이 지불해야 하는 빚으로서 '다갚음'이 없는 영원한 부채라는 것이다.
한편 '아무에게든지'라는 표현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는 대상이 '성도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까지 확장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다 이루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레로켄'은 현재완료형이다.
이는 사랑하는 순간 율법을 이룬 것임을 말해준다. 여기서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마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