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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다가스카르 선교편지(05-10) *
목사님 사모님 안녕하세요? 잠이 깨어 자판 앞에 앉았습니다. 멀리서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Antananarivo(약칭 Tana)- 수도이지만 숯으로 밥해 먹는 이들이 많고 바로 옆집에서 돼지가 꿀꿀거리고 좀도둑이 극성이어서 밤새 개가 많이 짖기도 하는데....... 그래도 점차 정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가난했지만 인정이 넘쳤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온 느낌마저 듭니다. 가끔씩 다른 별 나라에 서 있는 이방인처럼 낯선 모습의 풍경과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그럴 땐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곤 하지요. 가정과 교회 모두 평안하시지요? 여기도 하루하루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무탈합니다. 고국에서 무거운 소식들이 들려올 때마다 밝고 환한 소식을 전해야 하겠다고 마음먹는데 선교지 상황이 평안하지만은 않군요. 이 땅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는 고난 속에서 기쁨과 소망을 찾아야만 하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2010. 5. 25(화) 마다가스카르에서 최인규/이애란선교사 드립니다.
1. 교회 소식
(1) 기도 요청(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
이 나라는 정치적인 소요가 지속되면서, 최근에는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와 목사님을 탄압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군경이 술이 취해 밤중에 총을 들고 목사님 집에 들어와 가족이 피신하기도 하고, 교회 기물을 가져가거나 파괴하는 일 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라디오와 TV 방송국이 문을 닫았고, 가장 큰 교단인 FJKM에서 내보내는 라디오 방송만이 기독교인들의 보호 아래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일(목)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현 정부에 반기를 든 잔다르메 거주처인 ‘모졸레’에 모여들었고, 사전 정보를 입수한 정부 측의 마라밀라가 이곳을 덮쳐 수색하는 과정에서 양측에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사님 한 분, 잔다르메 3명이 죽고 12명의 기독교인들이 총상을 입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30여명의 잔다르메가 체포되었고, 21일(금)에는 나머지 50여명의 잔다르메와 라디오책임자 7명이 또 잡혀갔습니다. 이 나라의 권력은 우리와 달리 폴리시, 잔다르메, 마라밀라의 세 축으로 군경의 힘이 분산되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목사님은 매를 맞고 성경은 땅에 던져져 군홧발로 짓밟히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조롱을 당했습니다. 현 정부 뒤에는 프랑스의 힘이 자리하고 있으며, 비상내각의 총리도 얼마 전에 프랑스인으로 임명하여 그야말로 섭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군부도 프랑스인에 의해 움직여지는 상태이니 아직도 식민지 체제에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가 다시금 마다가스카르를 식민지화 하려 한다, 또는 꼭두각시 정권을 조정하며 마다가스카르를 돈으로 사려고 한다고 쑥덕거립니다. 친기독교적인 전 대통령을 몰아낼 때 내건 제일 안건이, ‘대우’가 마다가스카르에 99년 조건으로 거대한 땅을 임차한 것을 두고 한국이 이 나라를 식민지화하려 한다고 선동하였는데, 이도 은연중에 미국, 한국 등의 진출을 꺼리는 프랑스 등의 유럽 언론이 뒤에서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약소국의 운명 뒤에는 강대국의 이권이 개입하는 현상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독교 측의 방송마저 사태 이후 폐쇄되고 모든 관제 언론만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라디오조차 없는 시골이나 산간 오지의 주민들은 정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또 그렇게 우매와 무지의 통치를 하는 것이 프랑스 식민지를 겪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현주소입니다. 프랑스는 각 나라의 엘리트층들에게 자국의 시민권과 함께 여러 혜택을 주며 충성하게 만들고는, 뒤로 그들을 조정하여 자국의 실익을 챙깁니다.
얼마 전 가나 선교사님이 시내 중심지에서 검문을 당하고 이유 없이 잔다르메에 손목과 입에서 피가 흐를 정도의 폭행을 당한 후 구금이 되어 9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감옥에서는 딱딱한 ‘만육’(전분이 있는 나무뿌리)을 하루 한 끼만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외 외국선교사에 대한 탄압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혼란이 지속되면서 외국의 투자와 원조가 끊어지고 많은 공장들은 문을 닫고 서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하루속히 정치가 안정을 되찾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빠꾸(쓰레기) 줍는 모녀 이야기
오후 5시 쯤, 심방하기로 한 가정의 모녀가 나타났다. 우리 집 마당에서 기다리던 터라 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대문까지 나와 보니 손자까지 와 있는데 두 모녀의 발을 내려다보니 신발이 없다. 옷은 말끔하게 차려 입었는데 맨발인 것이 신경이 쓰이지만 이내 내색을 하지 않았다. 휴지를 주어 삶을 꾸려가는 모녀이기에 그 생활은 지레 짐작이 가지만 정말 신발이 없는 것인지 아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주일에는 신발을 신고 왔던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교인인 푸치와 함께 일가족을 차에 태우고 달렸다. 그리고 골목의 중국인 공장을 조금 지나 길가의 상점에서 이 가정에 선물할 쌀 5kg과 아이에게 줄 과자를 샀다. 길은 ‘꼬뮨’(구청이나 동사무소 정도에 해당)을 지나 ‘만드리암베로’의 호수 못 미쳐 왼쪽 공장지대 쪽으로 꺾어진다. 요즈음 정치 소요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아고아’ 협정을 종결했기 때문에 된서리 맞은 옷 공장들이 즐비한 곳이다. 몇 천 명 일하던 곳들이 몇 백 명이 남아 일하면서도 그나마 언제 문을 닫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공장들이 태반이다. 주변 땅을 가리키면서 푸치가 온통 프랑스로 망명간 전전(前前) 대통령의 땅이라고 일러준다.
정말 아프리카의 빈곤은 제도의 문제요, 정치인들의 도덕성으로 빚어진 점이 많다. 서민들은 쓰레기를 뒤져서라도 목구멍에 풀칠하며 살아가는데, 대통령들은 엄청난 땅을 사유화하고 외국에 살면서도 이 나라의 정치에 아직까지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장 지대의 돌길을 지나니 맨땅이다. 한참을 비스듬히 오른편으로 내려가자 항상 큰 호수의 중간 길로만 다닐 때 감감하던 남쪽 끝 둑길이 나타난다. 왼편은 탐바리(논), 오른편은 물이다. 푸치가 ‘라누 타파나’라고 호수 이름을 댄다. 둑길을 거의 건널 즈음 호수 끝부분을 가리키며 이곳에서 침례를 한다고 일러준다. 그래 경치는 괜찮지만 물이 더러워 위생상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부활절에 집안의 전 주인이 만들어 놓은 작은 양어장을 개수하여 만든 침례탕의 깨끗함을 상기시키자, 40살이라는 마담 ‘블루루’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남편은 일찍이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곁에 앉은 21살의 딸 ‘마리나’는 남편이 집을 나갔으며, 5살의 사내아이 ‘빈치’를 데리고 세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빈치는 감기가 들었다가 나아가는 중이다. 교회에서 두 모녀는 천사처럼 미소만 짓고 그림자처럼 왔다가는 데 빈치도 별 말이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망울을 닮아 맑은 두 둔이 초롱초롱하고 영특해 보인다.
흙길을 계속 달려가자 호수 건너편의 동네로 접어든다. 가톨릭 에꼴(학교)을 지나 얼마를 달리자 동네 끝 두 갈래에서 언덕 윗길로 올라챈다. 이제 호젓한 야산 등성이를 따라 나무숲을 달린다. 축구를 하는 공터 건너편에 공사 중인 건축구조물이 보이는데 아포칼립스(apocalypse)에서 세우는 학교라고 한다. 이 나라에는 수많은 종교단체들, 거기다 이단들도 아무 경각심 없이 들어와 사람들을 미혹하고 영적으로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 차가 등성이 건너편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한적한 곳에 다다르니 집이 예닐곱 채가 나타난다.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다. 이런 서민들의 집들은 주로 붉은 흙으로 위를 향해 좁고 길쭉하게 짓는다.
집들 사이의 공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낯선 외국인에게 ‘마나후나’ ‘살람마’하며 반가운 인사를 보내온다. 가난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행복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이다. 모퉁이를 돌아 모녀의 집 앞으로 나서니 산 아래로 펼쳐지는 넓은 논들과 이어지는 산 위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이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하며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깨끗하게 쓴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니 출입문 어귀에 흙으로 만든 우리에서 토끼가 뛰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방 안으로 들어서니 모녀가 함께 살아서일까, 지금까지 심방해 본 여느 집보다 정갈하고 깨끗하다. 흙벽 중간의 창문이 열려 있어 여전히 아름다운 들판과 노을이 한눈에 보인다. 천사 같은 마음씨의 집주인과 어울려 펼쳐지는 대자연의 장엄함....... 하지만 이들이 우물을 저 산 아래 논가에서 길어다 먹으며, 그 먼 곳까지 주변 마을의 쓰레기장을 뒤져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주님, 아무것도 없는 철빈의 이 가정에서 더한 제 마음의 빈곤을 봅니다. 물질의 풍요로 사람을 보고 잣대로 나누는 세상, 문명에 길들여진 눈으로 사람을 대하는 제 영혼의 가난함을 깨닫습니다. 주님, 저 대자연을 온 마음으로 품고 천사의 미소를 짓는 모녀에게서 오히려 배움을 얻게 하옵소서. 아멘.
(3) 침례 예식과 성경 보급
부활주일(4월 4일)에 침례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시내에 있는 호수는 물이 너무 더러워 교회로 나가야 하는데, 차편도 없고 마땅한 물가도 먼데다가 기름 값도 한국보다 비싼 점을 감안하여, 교회 옆의 전 주인이 벽돌로 만들어 놓았던 방치된 정사각형의 양어장을 개수하였습니다. 시멘트에 세크레티(방수제)를 섞어 바르기만 하면 임시로 쓸 수 있는 훌륭한 침례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3월 한 달간은 침례자들을 선정하여 침례문답 등을 공부시켰으며, 구원의 확신 등 기본적인 신앙을 점검하였습니다. 이 날 침례는 현지인 5명(Elodie, Elissa(자매), Sahondraniaina, Ben Aime(부부), Laurent)과 사업차 방문하여 이곳으로 이주할 예정인 한국인 1명(최운성 성도)까지 모두 6명에게 행하였습니다.
말씀만이 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터인데, 성경도 없는 많은 가정들은 말씀을 대할 기회가 적습니다. 교회에서는 지속적으로 한 가정에 한 권씩의 성경을 보급해 나가고 있습니다.
침례 후의 기념 촬영 주일학교 아이들
(4) 혼인신고와 결혼식 준비 및 성찬예배
매달 둘째 주일에는 성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의 예배가 형식(침례, 성찬식 등)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또 예배가 다 끝난 후 해당되는 사람들만 모여 성찬식을 따로 행하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침례를 받고도 성찬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알아봤더니 꼬뮨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신랑 신부는 호적 같은 서류를 가지고 꼬뮨에 가서 약간의 돈을 내고 신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땅은 크고 교통 사정이 좋지 않기에 서류를 떼러 고향까지 다녀오는데 먼 곳은 가는 데만 20만Ar(12만원 정도)가 넘는 곳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인터넷으로 서류를 떼는 일은 이들에게 환상입니다. 여기는 서민을 위한 행정은 엉망이지만 서식과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엄격한 것이 특징입니다. 관청은 백성들 위에 군림하여 주민들이 그 앞에서는 벌벌 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천성이 착한 이들이지만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됩니다.
가난한 이들은 결혼식을 대부분 치르지 않고 살기 때문에 혼인신고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이 일은 예식업을 하려다가 사업을 접은 교민이 결혼예복을 기증해 주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인 중에도 그런 부부들이 더러 있기에 결혼식을 치러 주기로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전에 이들의 혼인신고를 도우며, 서류를 가져오면 꼬뮨에 등록을 시켜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 성찬식 참여 문제도 자연 해결될 것입니다.
(5) 아프리카의 전반적인 이슬람 세 확장
아프리카에 대한 이슬람의 정책이 점차 노골화되면서 적극적으로 공략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들의 상황들을 살펴볼 때 이들은 매우 전략적이면서도 공격적으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으면서 아프리카, 나아가 세계를 모슬렘화하기까지 그들의 공격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프리카 서부의 나이지리아의 유혈사태는 이미 많은 인명 희생을 냈고, 가나 역시 북부는 모슬렘들 지역입니다. 동부에 있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거대한 모스크와 학교까지 세워져, 개종하는 자들의 자녀들은 이슬람학교에서 무료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케냐는 최근에 이슬람이 증가추세이고, 더군다나 모슬렘에 기반한 법이 통과될 우려에 놓여 있습니다. 원래 동부 아프리카에서 많이 쓰이는 스와힐리어의 원류가 아랍어에서 나왔고, 이들의 일부다처 전통이 이슬람법과 맞아 떨어지니 동화가 쉬울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슬람은 막대한 석유자금을 갖고 케냐의 중요 기업들을 사들여 경제권을 쥐고 생활 전반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은 석유공급회사(Oilibya), 텔레콤 기업(Zain), 나이로비의 ‘시티센터’, 호텔(Laico)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시골까지 비즈니스를 확대하면서 곳곳에서 그 지역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슬람으로는 종교를 쉽게 바꾸는데, 기독교로의 개종에는 가족과 사회의 갖은 억압과 핍박이 따른다는 점입니다. 이제 아프리카 동부의 관문이요 경제 상업의 중심인 케냐가 이슬람에 안방을 조금씩 내준다면 사하라 남부에 대한 이들의 전략이 쉬워질 것입니다.
여기에다 저들에게 있어 측면으로 지원할 마다가스카르의 지리적 요충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현 정부가 서방 기독교 세계에 등을 돌리고 프랑스와 아랍에 유화적이기에 저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마다가스카르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과거에도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나오는 중요 길목이어서 해적들의 기지로, 또 노예 무역상들의 중간 기지로도 이용된 섬입니다. 또한 과거 역사를 되돌아보면 포르투칼,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지의 그늘이 스쳐지나간 아픈 역사의 땅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곱고 순수한지, 아름다운 풍광과 땅에서 나는 사파이어 등 기이한 보석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동식물들(방사선 거북이, 마키(긴꼬리 여우원숭이), 바오밥나무, 장미목, 흑단 등)....... 말라가시들의 해맑고 희디흰 천연 웃음, 인도양처럼 깊디깊은 맑은 눈빛, 언제나 파란 하늘만큼이나 매혹적인 섬나라입니다. 때로 싱그러운 열대 과일과 온갖 화려한 꽃 속에서 새들이 노래하면,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싶지요. 그런데 권력층과 특권층들,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열강들이 만들어내는 이 땅의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2. 한글 학교
한글학교에서는 지난 4월 23~24일(금,토)에 캠프를 했습니다. 주제는 “한글학교 역사캠프(한국의 기원)”로서 공항 근처 ‘이바투’에 있는 교장선생님 댁에서 행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고 또 선생님들의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특별 강연도 들었습니다. 게임도 즐기고 영화도 보면서 모처럼 교민 자녀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골든 벨 역사퀴즈’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 기도 편지
1. 마다가스카르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과 억압이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2. 우민화 통치가 끝나고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돌보는 행정이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3. 현지인 교회를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가족이 영적으로 늘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4. 설교를 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현지어 습득의 수준이 더욱 향상되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5월 25일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에서 최인규/이애란선교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