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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自警文 5 강
惟斯末運(유사말운)에 去聖時遙(거성시오)하야
魔强法弱(마강법약)하고 人多邪侈(인다사치)하야
成人者少(성인자소)하고 敗人者多(패인자다)하며
智慧者寡(지혜자과)하고 愚痴者衆(우치자중)하야
이것 팔양경에 나오는 소리입니다. 팔양경에 이 말이 있더군요. 팔양경이 僞經이라지만 위경이거나 말거나, 위경이라도 글은 좋거든요. 좋은 글이 많거든요. 이런 좋은 말이 팔양경가운데에 있어요. 위경이라고 해서 닐라리날라리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惟斯末運에,
오직 이 말법운수에. 그러니까 鬪諍牢固시대에 이 말이지요.
“상법말년 때에” 이 말입니다.
●去聖時遙하야,
去聖時遙. 이것을 옛날부터 모든 사람들이, 요새도 “성인이 간 때가 멀어서” 이럽니다. 성인이 간 때가 멀어서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글이 안 맞는 거래요. 성인이 가신 때가 멀어서라고 하려면 聖去時遙라고 해야 문법상 된답니다. 성인은 가시고 오시는 것이 바로 있는 게 아닙니다. 해가 어디 가고 오고 그럽니까? 日ㆍ月이 가고 오는 것이 아니거든. 가고 온다면 우리가 가고 오는 것이지. 안 그렇습니까? 성인은 본래 不生不滅입니다. 不生不滅이고 不垢不淨이고, 가시고 오시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去聖時遙를 뭐라고 해야 되느냐?할 것 같으면 “성인하고 떨어진지가 오래 되어서” “떨어진 때가 오래 되어서” “성인하고 우리가 성거한 때가 멀어서” 성인하고 우리 중생들 하고 떨어진 때가 너무 오래 되었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불전불후해 가지고.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성인을 거하기 때가 멀어서” 그래야 됩니다. 그러니까 성인의 법문이 귀해져 버렸고요.
선지식 만난 지가 오래 되고 선지식을 우리가 많이 떨어졌어요. 선지식이 어디를 가고 온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信心만 있으면 지금도 부처님 만날 수 있어요. 영산회상이 흩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영산회상을 바로 볼 수도 있는 겁니다. 불신이 충만의 법계니까요.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가득차서 어디든지 계시니까요.
우리가 신심만 있으면 당장 문수보살도 친견할 하고 보현보살도 친견할 하고 관세음보살도 지장보살도 친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신심이 워낙 없어가지고 우리가 봉사라서 못 보는 것이지 눈만 확 뜨면, 진리의 눈만 확 뜨면 다 그냥 볼 수 있는 겁니다. 자기 눈 어두운 것은 얘기 아니 하고, 안 보인다고 없다고... 봉사들이 해인사 구경 와서 법문 듣고 경치 좋다고, 봉사 단청구경이라고 하더니... 그런데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해도 설명하면 탁 그려서 훨씬 좋게도 생각하고 그러거든. 그리고 사람 말소리 들으면 건강하다 안 건강하다 늙었다 안 늙었다 대번에 알아. 말소리 들으면 몇 살 먹었다는 것도 대번에 알아. 30대 40대 50대 60대말소리가 각각 다르거든. 열 살짜리 스무 살짜리 말소리가 각각 다르답니다.
末運이 돼 가지고 去聖時遙해서 성인을 聖去하기 때가 멀어서
●魔强法弱하고 人多邪侈하야
마구니는 강해지고 법은 약해지고 사람들은 다분히 모두 邪侈 해져서, 이 邪侈라는 것은 우리가 “사치스럽다” 하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옷을 너무 사치스럽게 입었다.” 하는 그 사치는 ▮奢侈이고, 사람이 아주 사사스러워서 마음이 변덕스럽고 금방 성 냈다가 금방 헤헤하고 귀신기가 많은 사람이 ▮邪侈한 것입니다.
사람이 삿되다는 것이지요. 이 삿되다는 것은 貪嗔痴慢疑, 탐심 진심 치심 교만심 거기다가 의심. 그 다음에 無懺無軌嫉慳悔. 부끄러운 생각도 없고 뉘우칠 생각도 없고 질투심이 많고, 아끼는 생각 간탐이 너무 많고 후회하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종류를 十顚十邪라고 그러는데 십전십사가 다 邪侈한 것에 속합니다. 십전십사가 다 邪侈한 것입니다.
●成人者少하고 敗人者多하며
사람 되는 자는 적고 사람 패하는 자는 많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 노릇해야 사람이지요. 사람 되는 것이 成人者입니다. 성인 자는 적고 사람 패하는 자는 많다 이 말입니다. 술 많이 먹는 사람들이 사실상 본성은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술을 안 먹으면 마음은 좋은데 술만 먹으면 주사가 불어서... 술 먹으면 개귀신이라고... 敗人者多하며 사람 패하는 자는 많으며,
●智慧者는 寡하고 愚痴者는 衆이라.
지혜자는 적고 愚痴者는 많아서, 愚는 미련한 것이고 痴는 어리석은 것인데 어리석은 것이나 미련한 것이나 다 비슷한 것으로 愚와 痴를 항상 붙여서 말을 많이 하지만, 우매하다. 얼빵하다고 할 때는 愚자를 쓰고, 痴라고 할 때는 어리석어서 잘못 되는 것이지요. 정당하지 못한 남녀관계를 痴情사건이라고 하지 愚情사건이라고 안 하지요. 愚는 좀 바보스럽다는 말이지만 미운 바보는 아닙니다. 조금 봐 줄만한 바보. 좀 미련하다 이 것이지요. 愚와 痴를 새기려면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하면 됩니다. 愚자는 자기를 낮출 때 많이 씁니다. 자기를 낮춰서 愚見으로는 할 때는 “내 미련한 소견”이라는 말로 자기를 낮춰서 쓰는 것입니다.
痴보다는 愚가 조금 낫지요.
옛날에 백담사에 류大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지금은 盧泰愚가 있는데...
유大痴라는 분이 백담사에서 속인으로 나와서 상투를 기르고 서울 다동 거리에서 한약방을 하면서 개화운동을 했거든. 개화운동을 해서 그의 제자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김옥균 서재필 홍윤식 박영효가 유大痴 제자거든. 그 때는 痴자를 안 쓰고 致자를 썼어요. 泰愚나 大痴나 안 같습니까? 大痴하고 태愚하고 같아요. 그렇지요? 클太자나 큰大자나 같고 어리석을愚자나 어리석을痴자나 비슷하니까요. 노나 류나 로료루류 그것도 비슷하고요. 그래서 요즘 제가 노태우가 류대치 후신이라고 그러지요. 거의 틀림없어요. 노태우가 전생에 중노릇 하던 사람입니다. 전생에 중노릇했기 때문에... 노태우가 대통령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지요. 전두환이가 대통령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아무도 몰랐지요.
대한민국에 안 사람 하나도 없었을 겁니다. 갑자기 그만 대통령 되었지요.
전생에 백담사스님으로서 개화운동을 하던 스님들입니다. 한국불교를 민주화를 위해서 아주 애 많이 쓰던 스님들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에 개화승으로서 박동인스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가 일본에 가서 망원경과 석유를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최초로 석유불을 켰거든요.
고종황제가 깜짝 놀래가지고 “맹물에서 불이나니 도깨비불 아니냐?” 그랬다는 겁니다. 망원경을 거꾸로 들여다보니까 남산이 몇 백리 밖으로 확 달아나 버리거든요.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하여 봤더니 남산이 확 들어와서 이마를 탁 들이받는 것 같거든요. “야~, 이거 무슨 조화 속이로다” “조화가 아니라 지금 온 세상이 이렇게 바꿔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개화해야 됩니다” 하니까 “네가 개화 한번 해 봐라” 고종황제가 해보라고 그랬대. 그래서 그 사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겁니다. 그런데 국민의 협조를 못 받으니까 3일 만에 그냥 망했지. 3일 천하로 그냥 꺼졌지. 그네들이 전두환하고 거시기가 탁몽성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의 제자로서 백담사에서 중노릇을 하면서 개화법을 다 배워서, 세계민주화법을 다 배웠어. 그 사람들이 금생에는 군인 노릇만 했지만 전생에 다 운동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개화운동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대통령을 했지요.
智慧者는 寡하고 愚痴者는 衆하야.
●自不修道하고 亦惱他人하나니
자기도 도를 닦지 아니하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도 괴롭게 하나니, 자기만 공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남까지도 공부 못하게 애먹인다 말입니다.
●凡有障道之緣은 言之不盡이라
무릇 도에 장애하는 그 반연이 있는 것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恐汝錯路故로
너 그릇 길들일까 두려워하는 고로, 너 그릇 길들일까 무서워서, 너 잘못 길 들어갈까 무서워서, 이 두려울 恐자는 진짜 두려워서 恐자가 아니라 ‘그럴까 무서워서’ 이 말입니다. 恐汝錯路故로 네 그릇 길들일까 두려워하는 고로,
●我以管見으로 撰成十門하야
내가 管見으로써 十門을 撰成해서, 管見이라고 하는 것은 대[竹]쪽을 구멍을 뚫어서 본다는 말입니다. 대 구멍으로 얼마 보이나요? 얼마 조금 밖에 안 보이거든요. 대롱으로 본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소리지요. 널리 보는 소견은 아니고요. 내 조그만 소견을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사양해서 하는 소리입니다.撰成十門하야, 열 가지의 법문을 지금 만들어서, 지어 만들어 이루어서, 碑文같은 것은 撰이라고 그럽니다. 찬했다=지었다.
●令汝警策하노니
너로 하여금 경책하노니, 주인공, 너한테 경책을한다 이 말입니다. 내가 어디 다른 사람보고 경책을 하겠나? 주인공, 너나 보고 경책을 하지.
●汝須信持하야
주인공, 너는 모름지기 (= 반드시)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수지해서
●無一可違를 至禱至禱하노라
하나도 가히 어김없기를 지극히 빌고 지극히 비노라.
그래놓고 뒤에 와서 “頌曰” 그러는데, 頌이라는 것은 노래 부른다 이 말입니다. 노래를 하여 가로대, 그러니까 옛날 사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서양 오페라에서는 얘기를 실컷 해놓고, 그 얘기 끝에 노래를 부릅니다. 파계나 사운드오브뮤직은 수녀영화인데 마리아는 어떻고어떻고 얘기해놓고 척 돌아서면서 ♪마♪리♪아♪는♪말♪괄♪량♪이♪♪ 이런 식으로 하는데 부처님경전에도 법문을 잘 해놓고 그 법문을, 이시에 세존이 이때에 세존이 욕 중선차의하사 지금까지 말씀하신 이 뜻을 거듭 펴고자 하사 重宣此義하사 거듭 이것을 펴고자 해서 而偈頌曰 게송으로서 노래하여 가로되 하고 척~ 하니 글귀 노래를 부르거든요. 인도에는 말이 말도 많지만 시가 더 많아. 頌이라는 것은 노래입니다.
頌曰 “노래하여 가로대” ●愚心不學增憍慢이요
어리석은 마음으로 배우지 않는 것은 교만만 더하는 것이요.
●痴意無修長我人이로다
어리석은 뜻으로 닦지 않는 것은 아인만 기르는 것이로다. 그랬거든. 교만 가운데는 세 가지 교만이 있다고 그랬지? 제일 첫째는 ▮我勝慢이라. 내가 네 보다 낫다. 내가 네 보다 이긴다. 그 다음에 ▮我等慢이 있어요. 나도 네 하고 같다.
그 다음에는 ▮我劣慢이라. 나는 네 보다 못하다. 네 보다 못하면 어쩌냐고 달려드는 그것도 교만입니다. 이것이 세 가지 안 배우려는 교만심입니다.
내가 네 보다 나으니까 안 베우고, 내가 네하고 같으니까 네한테 배울 것이 없고, 내가 네 보다 못해도 네한테는 안 배운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아열만입니다. 증상만 하고는 영 다르지요. 증상만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그것은 약간 정신이상자입니다. 자기가 깨치지도 못했으면서 깨쳤다고 생각하는 것이 증상만입니다.
자기가 더 올라갔다고 하는 교만심을 가지는 것. 내가 부처하고 같다고 하든지, 내가 관세음보살하고 같다고 하든지, 그것은 어떤지 간에 쉽게 말해서 정신이상자지요. 자기 생각이 꼭 그러니까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망어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망어에 속하는 것은 아니나 어쨌든지 간에 그것은 정신이상자니까. 요즘도 꺼떡하면 자동차 큰 사고 냈어도 그 사람 정신이상자라고 하면 괜찮대. 화재를 냈어도 그 사람 원래 정신이상자인데 어쩌겠느냐하면 괜찮대. 희한하지. 정신병원에서 진단서만 받으면 그만 죄가 없어진대. 과거에 정신요양원에 한번 갔다온 경력이 있다든지 하면 더 수월하고. 증상만이라는 것도 약간 그래. 70인가 80넘은 노인이 저지른 죄는 죄가 안 되고, 7살인가 8살 미만의 어린 아이가 지은 죄는 죄가 안 되듯이 증상만인도 큰 죄가 안 된대.
痴意로 無修는 長我人이로다 어리석은 뜻으로, 바보 천치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닦지 않는 것은 我相人相만 기르는 것이로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그렇지요? 그런데 배우는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지고, 마음을 닦는 사람은 마음을 닦아갈수록 마음이 공해지고, 마음이 공해지니까 마음이 훤해지고 밝아진다 이 말입니다. 빛이 나거든요. 그러니까 그 빛을 다른 사람이 받으면 그냥 그대로 저 사람도 기쁘고 즐거워지고 편안해지고 마음을 닦으면 이래 되는 것인데, 조금 배웠다고 조금 안다고 떡 하니 고개 뒤로 바짝 제치고 교만심을 잔뜩 가지고 아상을 내미는 것도 교만심이거든요.
‘내다’ 하는 생각요. ‘내다’ 하는 생각이 없으면 ‘너다’ 하는 생각도 없지요. 그것은 상대가 있는 것이니까요. 내다. 너다. 내가 잘 났고 너는 못 났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하는 그런 시비지심이 모두 있어서 중생상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내다 너다 하는 상대 관념에서 교만이 나타난다 이겁니다.
그것이 중생상인데 그래서 무슨 일이 어떻게 되었다. 어떻게든지 결과가 나타난 것이 수자상입니다. 수자상을 결과로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아상은 因이고, 인상은 緣이고, 중생상은 業이고, 수자상은 果라는 말입니다. 因ㆍ緣ㆍ業ㆍ果.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 이 도리만 잘 알면, 이 이론만 잘 알면 금강경 배우는데 아주 쉽습니다. 금강경이 계속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했으니까요. 금강경 다 배우고 나서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뭔지 모릅니다. 중생상 수자상이 뭐냐고 해석 하라고 하면 중생상은 중생이고, 수자상은 오래 사는 거라고 하는데 오래 사는 것이 뭡니까? 말이 안 되거든요. 결과를 말하는 겁니다. 공부를 아니 하면 아상 인상만 자꾸 길러내는 것이다.
●空腹高心은 如餓虎요
빈 배에 높은 마음은 주린 호랑이와 같은 것이요. 빈 배에 높은 마음은 주린 호랑이와 같다. 양반이 욕은 못하고 북~ 한다든지.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배는 고프면서도 체면에 배고프다는 소리는 못하고 헛기침 하듯이, 그래도 내가 호랑이인데 암만 배고파도 쥐새끼야 잡아먹을 수 있나? 큼직한 멧돼지를 한 마리 잡아먹어야지 한다든가 그런 것이요. 빈 배에 높은 마음은 주린 호랑이와 같은 것이요.
●無知放逸은 似顚猿이로다 아는 것 없이 아무 것 없이 방일하는 것은 깨병이, 노는 것을 방일이라고 하거든요. 이것은 말하자면 엎어진 잔나비와 같음이로다. 엎어진 잔나비는 미친 원숭이다 이 말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하고 미륵부처님하고 과거 전생에 둘이 도반이래요. 미륵부처님이 석가모니부처님보다 훨씬 더 선배고 사형이고 그렇대요. 그런데 미륵부처님은 공부를 좀 깨울깨울 했고. 석가모니부처님은 참 아주 부지런히 수행을 했어요.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하니 一切無有如佛者라는 게송을 하루저녁에 1000번을 외우면서 예배를 드리고 아주 용맹정진을 했대. 그 인연 공덕으로 몇 겁을 초월해서 먼저 성불을 한 것입니다. 미륵불이 의당 먼저 성불해야 될 텐데 석가모니불이 먼저 성불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 얘기도 있어요.
●邪言魔語는 肯受聽하고 聖敎賢章은 故不聞이로다
삿된 말, 마구니의 말은 즐겨히 받아 듣고, 성인의 가르침과 현인의 글은 짐짓 듣지 않음이로다. 그렇지요? 학교에서 공부하기 싫으면 소설책 책상에다 놔놓고 열심히 보고 앉았잖아요. “니 뭐 보나?” 하면 “아니요. 지금 공부 하는데...” 이렇게 하고요. 만화책 숨겨놓고... 요즘은 만화책도 어른 만화책이 있다더군요. 成人만화책 고약한 것 많다고 그래요. 아주 음담패설을 적어놓은 저질 만화가 邪言魔語거든요. 그런 얘기는 즐겨히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나한테 참 유익할만한 聖人의 가르침과 현인들의, 성현들의 글은 짐짓 듣지 않는다. 안 배운다 이 말입니다.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마찬가지겠지요.
●善道에 無因커니 誰汝度리오. 선한 도에 인이 없는데 누가 너를 제도 할까보냐? 선도에 인이 없는데, 좋은 일에, 아무 좋은 일을 닦은 원인이 없는데 누가 너를 제도 하리요.
●長淪惡趣苦纏身이로다. 길이 악취에 빠져서 苦가 몸에 얽힐 것이니라. 전부 고통덩어리 뿐일 것이다. 그러니까 경계하는 말씀이지요.
서문이 다 끝났습니다. 삿된 말, 마구니의 말이라는 邪言魔語에 대해서는 화엄경 이세간품 가운데 마구니 말, 마구니 해에 대해서 10가지가 쭉~ 나오는데 긴 말들이 있어요. 긴 말들이 있는데 그것 뭐 다 할 것도 없고요.
어떤 것이 삿된 말이고, 어떤 것이 올바른 말이냐? 할 것 같으면
▮邪來煩惱至하고, 삿된 말. 삿된 것이 오면 번뇌가 생겨요. 번뇌 망상이 생겨요. ▮正來煩惱除라. 정당한 말, 옳은 말씀 부처님말씀이 오면 번뇌가 제해져요. 번뇌가 없어진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차이가 있는 겁니다.
성현의 말씀하고 마구니 말하고 삿된 말하고는 어떻게 차이가 있느냐? 삿된 말, 마구니 말은 번뇌가 생겨나고, 그런가 아닌가 마음이 자꾸 싱숭생숭해지고 결정이 안 되고 자꾸 그냥 왔다 갔다 해지는 겁니다. 성인의 말씀은 탁 들으면 환해지고 밝아져서 번뇌가 없어지고 마음이 저절로 기쁘고 즐거워지는 겁니다.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원래가 바른 말이라고 해도, 아주 옳은 말을 했다 하더라도 삿된 사람이 옳은 말을 하면, ▮邪人이 說正法하면 삿된 사람이 정법을 설하면,
▮正法이 悉歸邪라. 정법이 다 삿된 말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설사 삿된 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 안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선지식. 正人이 설하면, 올바른 사람이 설하면 邪法이 悉歸正이라. 사법이 다 정법으로 돌아갑니다. 삿된 말하고 바른 말이라는 것이 원래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에 경허 스님께서 해인사 큰 법당에 와서 대 방 광 불 화 엄 경... 글자 일곱자를 가지고 7일 동안을 설법을 하는데, 일곱자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큰 大자 하나만 가지고 하는 겁니다. 큰 大자 하나만 가지고 하는데 “큰 大자여~~” 해놓고 “대 라, 세숫대도 대고, 곰방대도 대고 긴대 짧은대 시누대 오죽대” 하면서 이대를 들먹거리는데 대를 수 십 가지를 들먹거려 놓고 그 이유를 다 얘기하는 겁니다. 그 이유가 화장장엄 세계가 대방광불화엄경의 이치거든요. 화엄경의 이치가 어디에 간섭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겁니다. 삼천대천세계 모든 중생세계 가운데 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이겁니다.
사람 몸뚱이에 똥과 오줌은 더러운 것이라고 해서 그것 더러운 것 다 없애고 깨끗한 것만 있는 다면 그게 사람인가? “사람”하면 깨끗한 것 더러운 것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안 그래요? 아주 지당한 말씀입니다. 오늘저녁에는 大자 법문 하나만 들었어도 환희심을 내고 하루 종일 大자 법문만 하셨어요.
그 이튿날은 方자 법문만 하는 겁니다. “안방 지대방 큰방 골방” 하면서 “새촉방 색시방 사랑방” 들먹거려 놓고 그것을 또 다~ 화장장엄 세계에 다 맞추는 겁니다. 그렇게 법문을 하더라 그러는데~~~
그것이 無有定法이지요. 결정된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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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有定法. 결정된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邪人이 說正法하면 正法이 悉歸邪라. 正人이 說邪法하면 邪法이 悉歸正이라. 그런데 어떤 것이 정인지 어떤 것이 사인지 그것도 분간 못하잖아요. 듣고서 우리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참 아주 신심이 나면 그것은 ▮정법이고, 자꾸 마음 가운데 의심스럽고 생각이 자꾸 침침해지고 오리소리 해지면 그것은 ▮사법입니다. 그런데 우리 듣는 사람도 문제가 있어요. 듣는 사람도 신심이 있는 사람이 그렇다 이 말입니다. 불법의 인과를 믿고, 생사대사를 해탈하겠다는 아주 바른 발심을 한사람이 그렇지 사사스러운 사람이야 사사스러운 소리 들으면 더 신이나지요. 안 그래요?
其一에서부터 其十까지는 마을에서는 이것만 딱 떼어가지고 十寶經이라. 열 가지 보배경이라고 해서 마을 선비가 읽고 있대요. 그런데 이 뒤에 아불의우생리족 하는 것이 있거든. 우리 부처님 옷과 발우떼. 그런 것은 유교글로 말을 좀 바꿨어요. 명심보감이라는 글 있지? 명심보감이라는 것이 서산대사가 지은 글입니다. 유교의 대강용, 좋은 말들을 모두 뽑아 가지고 명심보감ㆍ유교구감ㆍ선가구감ㆍ삼가구감. 보감 구감이 다 서산대사의 문체라는 겁니다. 천안 각원사 법인스님이 박사학위 논문을 그걸로 썼지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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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법문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