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봉 기자의 글, “가톨릭은 교황의 종교인가”를 읽고 나서,
8월 7일 자 가톨릭 뉴스 지 ‘지금여기’에 실린 한상봉 기자의 글 “가톨릭은 교황의 종교인가”를 읽고 나서 필자는 한기자가 과연 참된 신심을 지닌 가톨릭 신자인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이 글에서 한기자는 1년 전 한국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이 교회의 최고 어른으로서 교황님을 파파라고 부르며 열렬히 환영하고 사랑과 존경심을 나타냈던 것에 대하여 백안시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마태오 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아 교회를 맡기신 복음 구절을 인용하면서도 뒤에서 구차한 이유를 부가하여 로마 교황의 정통성을 폄훼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선교하였고 카이사리아에 주둔하였던 로마의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를 포함한 이민족에게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베드로 사도는 바오로 사도가 설립한 안티오키아 교회와의 율법논쟁으로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뛰어난 조정력을 보여 이를 수습함으로써 가톨릭이 유대교의 분파로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 종교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한기자가 설파한 내용 중 대표적인 요설(妖說)은 로마의 시민권이 없는 갈릴레아 출신 어부인 베드로가 로마 교황이 된 것이 이상하고 교황이 왜 ‘어부의 반지’를 끼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기자 말대로라면 아르헨티나 시민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 교황으로 취임한 것 역시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추상적인 사상(思想)의 대상으로 세우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동체로 세우셨고 시몬 베드로(반석)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삼으셨다. 베드로 사도는 42-43년 경 로마 교회를 창설하였고, 로마에서 그의 첫 번째 편지를 썼으며 네로의 박해 때인 64년 경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사도의 으뜸으로서의 베드로의 지위를 계승하는 것이다. 이미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 세계의 으뜸임을 증언하였다. 로마 주교의 교회의 수위권은 고대로부터 실시되어 내려왔으며 가톨릭 교회도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70)에서 교황의 수위권을 신조(信條)로 정의하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에서 재확인하였다. (교회헌장 22)
더군다나 베드로 사도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초기성전에 대하여 ‘수백개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하면서 잡석을 세워 기초로 하였다’는 문장은 극도의 경멸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성체제, 권위에 대하여는 깔아뭉개고 보려는 인격 파탄자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한기자의 글에서 다음 부분은 읽는 사람을 더욱 씁쓸하게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주님으로 섬기는 분이 ‘목수’였으며, 초대교황이 ‘어부’였고, 그들이 ‘아버지’라고 불렀던 하느님이 이집트 노예들을 해방시킨 분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종교를 만들지 않고 당파를 구성했더라면 아마도 ‘노동당’이 적당하였을 것이다.”
해방신학을 믿는 이들에게 모든 행위는 정치에 귀결된다. 복음도, 교황님의 말씀도 자신들의 목적에 합당한 것만 취사선택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고 듣고 믿는다. 이들은 복음을 사랑의 실천이라는 관점보다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믿음은 사라지고 정치의 목적인 정의를 식별하고 남을 심판하고 응징하는 데에 모든 초점이 모아진다. 그 기준은 참된 믿음에 바탕을 둔 선이나 의로움이 아니라 그들의 시기심과 증오심에 바탕한 ‘정의’가 선악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만약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노동당’의 당원이며 이들과 정치적으로 한편이라면 이들에게는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이겠는가?
한상봉 기자가 글에서 ‘교황군주제’,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교황을 공격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하여 역대 교황이 그가 신봉하는 해방신학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개혁을 입에 달고서 교계의 상층부에 있는 주교들을 비난하고 공격하여 왔지만 애달프게도 그가 그처럼 바라는 개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신부들이 전에는 그나마 한기자 말대로 강정마을로, 송전탑으로, 광화문 길거리에서 개겼지만 지금은 그마저 숫자가 줄고 있으며 평신도 애국단체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진보적이며 반국가적인 세력들 입맛에 맞는 경구를 말씀하시고 이들이 천군만마를 만난듯 날뛰고 있지만 기실은 이들이 교황님의 뜻을 자기들 입맛대로 왜곡하고 포장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한가지 예를 들면 2014년 1월 6일 수원교구 기산성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은 대통령 퇴진미사를 하면서 교황님의 사진 아래에 ‘좋은 천주교 신자는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는 구호를 써넣은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그러나 사실 교황님은 2013년 9월 13일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강론하시면서 로마의 백인대장처럼 겸손한 정치인이 많이 나오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이런 정신으로 정치에 참여하라고 당부하신 것이지 ‘대통령 물러나라’는 데모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다.
한기자는 글에서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교황과 신부가 세상과 교회를 바꾸는 시대는 지나갔다. 본당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사회교리학교를 개설하여 신자들을 그들의 동반자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미 필자는 일전에 “부산교구의 사회교리학교를 고발한다”는 글에서 정의평화위원회를 위시한 반국가세력의 의도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바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1980년대 대학가를 휩쓸었던 의식화 교육을 신자들에게 행하여 이들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혁명의 전위대로 끌어들이고자 혈안이 되어있다.
청주교구에서 가을에 행하는 청년대회에서 ‘사회교리 골든 벨’ 경연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사회교리 골든 벨’인가? 8월 11일자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이 사회에 대한 편견이 없고 미래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청년들에게 자신들이 마음대로 조작하고 거짓으로 포장한 사회교리라는 독약을 주입시키겠다는 것인가?
2013년 11월 22일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박창신 신부는 온갖 반역적인 내용의 강론을 하면서 특이하게 성모 마리아의 마니피캇을 읊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사촌 엘리사벳을 향하여 부른 사랑의 노래는 그들에게는 대통령을 쫓아내고자 하는 응원가로 들렸던 모양이다. 이를 가리켜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속담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성모 마리아의 마니피캇은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가 사회교리를 전파하고자 개설한 ‘뜻밖의 소식’에도 나온 바 있다. 레지오 마리애의 주회시간에 낭송되는 성모마리아의 마니피캇이 이처럼 진보세력의 레파토리가 되고 있는 슬픈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들이 진정 청년들에게 사회교리를 가르치겠다면 반국가 선동으로 가득한 내용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진정한 교황님의 회칙의 정신을 청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예컨대 레오 13세 교황님의 회칙 ‘새로운 사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소수의 탐욕적인 부자들이 무수한 노동자에게 고통의 멍에를 씌우고 있다.
2. 이러한 악의 치유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질투심을 불러 일으켜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동재산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3. 사회주의자들의 해결책은 명백히 정의에 어긋난다. 사유재산은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
4. 인간의 욕구는 한번 충족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5.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사회적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6. 근로자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고용주는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7. 사회주의자들은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끊임없이 싸우기 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이성과 진리에 완전히 상반된다. 인간은 투쟁없이 계층 간에 화합할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 발표한 훈령 ‘자유의 전갈’은 해방신학이 마르크스 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첫 번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동 회칙은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주장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 주의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부자의 자선이 아니라 정의라고 말한다. 부자는 자선을 행함으로써 양심의 짐을 덜고,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는 계속해서 빼앗는다는 것이 마르크스 주의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마르크스 주의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의 자선을 받으며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자에 대한 가난한자들의 투쟁의식은 크게 약화된다고 본다. 따라서 개별적인 자선과 사랑의 활동은 결국 현상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이 말하는 정의라는 것은 더 이상 자선이 필요하지 않는 상황, 즉 가난한 자들이 자신들의 몫을 온전히 갖는 상황을 뜻한다. 즉 현상(status quo)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타파되어야 하며 이는 곧 무엇을 뜻하겠는가? 바로 계층 간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 즉 무산계급,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뜻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회를 뒤집어엎는 것이다. 이것이 해방신학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사회교리를 전파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첫댓글 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자들이 많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주관으로 파악한 것을 두 손으로 들고 자랑스럽게 펼쳐보입니다.
가톨릭 뉴스 지 ‘지금여기’에 소속된 기자들이나 정구사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만190인 선언’을 발표한 명단에 포함된 17명의 주교들 다 똑같은 놈들입니다. 특히 주교들은 신학에만 파묻혀 일생을 보내서 그런진 몰라도 너무 무지하고 무식이 철철 흐릅니다. 뭐, 한눈을 팔았는지는 알 수도 없지만.
1950년 6월 25일 남조선 무력 적화통일을 위한 남침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명을 죽인 북한의 통일전선부가 벌려온 집요한 선전선동 공작과 이때 인민군에게 점령된 지역에 붉은 완장을 차고 나타나 무고한 양민을 죽창과 낫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남조선 노동당'의 잔당들이 함께 어우러져 오늘을 가져 왔습니다.
북한이 남한에 심은 5만 간첩과 이 간첩들이 포섭한 종북 반역자들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15년을 보내며 전국방방곡곡, 요소 요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김일성이 직접 교시한 '남조선 종교계 침투 명령'은 그 어떤 목표보다 우선적으로 실행되었을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그 꼴 눈 앞에 보고 있습니다.
타인들에게 왜?! 해방신학이 사랑으로 가득차야하는 우리 성스러운 천주교인의 정신세계와는 맞지 않은가에대한 설명을 하려 할때에 힘들여 장황하게 설명을 하여야하였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은 없고 저주와 투쟁으로)사회를 뒤집어엎는 것이다. 이것이 해방신학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사회교리를 전파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라고 설명을 하려니 왜 이리도 편안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간단 명료하게 정리해주셔서요.
이웃사랑으로 뭉친 우리 대수천의 사랑의 모범 꽃인 김원률안드레아 교리상임연구위원장님 !!! ^**^
김원률 안드레아 교리상임연구위원장님의 친절한 설명에 감사를 드리며, 늘 사랑과 존경을 드립니다.
김원률위원장님의 논리 정연한 반박에 속이 다 시원합니다.
위원장님을 위해 묵주 1단 바칩니다.
jjks님, Iron Cross님, 위풍당당 님 항시 제 글에 관심을 가지시고 의견을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분심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특히 저를 위해서 묵주기도를 드려주시는 콜베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은 제가 특별히 존경하는 성인이라서 콜베 님에게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군요.
그들의주장은복음정신을 훼손한그들 편한대로정의한그들만의정의에대한 개념입니다 복음정신의훼손 복음정신의 핵심인사랑위에 해방신학이군림하여 양을 다스리겠다는 함양미달의 위장복음정신을갖고 내가그리스도의대리인등신앙의스승임을주장하는그들이가증스럽네요제자리로돌아가시어회심하세요 지금평신도가 중세시절 성경을 접할수없던 바보등신 십자군에 전대사 유혹에 빠져들것이라착각마시고선량한양들을기만하지마시고사제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시면 순명과 존경은 저절로해결됩니다해방신학! 많은신도들을학살한 북한공산주의와무엇이다른지 논리적으로설명하세요예수님께서도 용서할수 없으시다는 성령을모독한죄!그들을응호하는목자!
안드레아소장님깊이있으신 지식의글 여러 교우들과 공유하여 그들이 어떤잘못을저지르는 회칠한 위선자들인지 널리 알리겠읍니다 소장님께서 저희들과 함께 하심이 늘든든합니다 에너지넘치는문장력! 진심으로 감사드리고항상건강하세요 늘 하느님은총이가득 하시기를!!
요세비님, 감사합니다. 요세비 님 말씀대로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사랑이 없는 정의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최고의 정의는 최고의 불의와도 통한다'는 경구를 싣고 있습니다. 요세비 님에게도 건강과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제주교구장 한국가톨릭 주교 강우일 ! 그는 프랑스에가서 반 로마 가톨릭을 공부하더니 이젠 본격적으로 해방신학을 바탕으로 작금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천주교 만들어 교주가 되는게 꿈인가? 참으로 답답한 강우일 주교라 아니할 수가 없구나. 그의 안중엔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켜나가는 국가시책을 사사건건 반대를 하지않나, 교황성하를 교종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하지를 않나.... 반골도 이런 반골을 처음구경하는 판이되니....! 지금 제주교구는 종래 6만 신자교세였는데 강우일이 부임하고난 뒤엔 달랑 4천명만 주일을 지킨다 하니....! 천사가 비뚤게 나가면 사탄(마귀)가 된다더니 이제그의 면상을 보면 그꼴로 짐작이 되는 느낌이니..
지난 6월 대수천 제주지부에서 지방신문에 강우일 주교와 임문철 신부에 대한 광고를 게재하였습니다.(이들은 100인 명단에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강우일 주교는 강정마을에서 교구내의 신부들로 하여금 번갈아가면서 생명 평화미사를 드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도 알렉산델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강주교가 프랑스 유학시절 해방신학을 공부하고 한치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대수천 제주지부에서 자신은 40명이나 되는 외인을 입교시켜 표창까지 받은 사람인데 강주교 이후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고서 한숨을 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