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심을 깨치는 글 >
[현안 스님의 아메리칸 육바라밀] - 제 3 편
인욕바라밀 Patience Paramita
글 | 현안賢安 (XianAn)
보살의 세 번째 바라밀은 인욕(忍辱, Patience)이고,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생인, 법인, 무생법인.
1. 생인 生忍 patience of production
2. 법인 法忍 patience of dharmas
3. 무생법인 無生法忍 patience of non-production of dharmas
인욕바라밀이 무엇일까요? 인욕바라밀은 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바라밀 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불교 수행에서 인내를 키우는 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에서 진전을 원한다면 더 큰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역으로 수행에서 진전이 생기면, 인내심도 늘어납니다. 그렇다면 생인(生忍)이 뭘까요? 여기서 생 生이란 생각이 일어남을 뜻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여러 생각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하나 일어나면, 그다음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끊임없이 생깁니다. 그래서 생인 즉 “생기는 걸 참는다”라고 부릅니다. 앉아서 인내심을 갖고, 많은 생각이 일어나지만 참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인입니다.
예를 들어 '다리가 아프다'라는 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다음 생각은 '다리를 풀자', 세 번째 생각은 '다리를 안 풀면 다칠지 몰라', 그리고 그 후 '이게 뭐 하는 짓이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다음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건 말도 안 돼', '그냥 그만두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말도 안 돼' 이렇게 흘러갑니다. 그래서 선칠 수행에서는 지침에 따라서 이런 생각에 응하지 않고 일정대로 앉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 선칠에 참여했을 때, 마음속에 잡념이 많이 올라와서 명상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마음은 수많은 생각으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때, '이건 그냥 내 머릿속 잡음이야. 원치않는 생각일 뿐이야. 닥쳐! 난 원하는 걸 해내고 말겠어'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처음 명상하면 우리 마음속에서 늘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 진전하려면 이런 생각이 일어날 때 응하지 않고 견뎌내야 합니다. 더 많이 앉고, 더 많이 참을수록, 인내심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명상 지도자들도 이런 걸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명상하려고 앉았을 때, 첫 생각이 일어나면,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일어나는(생 生) 것에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이 올라와도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생기는(생 生) 것에 대한 더 큰 인내심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더 인내하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인내해야만 합니다. 그냥 앉아서 생각이 일어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생인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법인(法忍)은 무엇일까요? 앉아서 명상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방귀를 뀝니다. 선 수행하는 곳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그걸 법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보통 '아이고, 창피해. 어머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내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거기 반응하게 만드는 원인을 법(法)이라 부릅니다. 더 쉬운 법인의 예는 모욕을 참는 것입니다.
명상하려고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방귀를 뀌고, 싸우고, 시끄럽게 합니다. 혹은 본인 스스로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합니다. 그런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참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걸 인내라고 부릅니다. 미국 위산사에서 선칠이 시작되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옵니다. 처음 위산사에 가서 장엄한 법당을 기대했다면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참선해야 할 시간에 많은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좌선할 시간에 들어와서 비닐봉지를 뒤적거리면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 갑자기 팍 들어와서 뛰어가는 꼬마 아이, 코 골면서 자는 스님 등 다양한 종류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보통 첫 반응은 '뭐야? 참선하러 왔는데, 법당이 뭐 이래?'라고 합니다. 그건 인내가 없습니다. 전통적 불교 문화에 익숙한 동양인에게 이런 법당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스님은 얘들이 법당에 들어와서 뛰어다녀도 의도적으로 내버려 둡니다. 저도 첫 몇 년 동안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면 계속 불평하는 생각이 올라와서 매우 괴로웠습니다. 이것이 법인(法忍)을 키우는 훈련입니다.
사실 이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 참기 힘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난 실력 있는 명상 수행자야'라는 태도로 옵니다. 그러면 영화 스님은 아이들이 법당에 들어가서 '엄마'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다니게 합니다. 그리고 음식 냄새가 들어올 수 있게 창문을 열게 합니다. 음식 준비하는 아줌마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법당까지 다 들리게 합니다. 그때 그들이 진짜로 명상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실력 있는 명상 수행자”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이 있습니다. 무생법인은 무슨 뜻일까요? 이건 생(生)과 법(法) 둘 모두를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졸업해서 무생법인으로 갈 수 있습니다. 먼저 “생인” 즉 일어나는 생각에 대한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다음 “법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무생법인으로 졸업합니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졸업입니다. 생(生)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고, 무생(無生)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무생법(無生法)이란 누군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모욕하고, 칭찬하고, 비방해도 생각도 법도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약하자면 인욕바라밀에서 인욕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참선반 학생이 저에게 매일 결가부좌로 한 시간 앉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결가부좌 자세로 한 시간은 수월하게 앉을 수 있는데, 매일 여전히 한시간씩 앉으신다면, 그건 인욕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결가부좌로 10분 이상은 도저히 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노력해서 11분 또는 12분을 견뎌냈다면 그것이 바로 인욕입니다. 참을 수 없는 걸 참아야 인내입니다. 참을 수 있는 것을 하는 건 인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해야 인욕의 훈련이 시작됩니다. 쉬운 일을 해내는 것은 인욕이 아닙니다. ‘이건 참을 수가 없어.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더는 못 참아!'라고 하면서 참아내는 것을 인욕이라고 부릅니다.
현안(賢安, XianAn)스님은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법을 소개해왔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불광미디어 홈페이지 연재를 비롯해 미주현대불교, 브런치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청주 BBS불교방송 라디오 ‘4시의 불교산책’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2021, 어의운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