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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기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아그립바 왕
사도행전 26:24-32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지난 주 우리는 벨릭스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노골적으로 거절하고 그 대신 바울에게서 뇌물을 기대하며 바울을 자주 불러 만난 사실을 보았습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음을 확인하고도 그를 풀어주기는커녕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계속 바울을 가이사랴의 헤롯 궁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2년이 되자 벨릭스 자리에 보르기오 베스도를 앉히셨습니다. 그래서 베스도가 유대의 총독이 되었습니다. 베스도는 안토니우스 벨릭스의 뒤를 이어 주후 59년부터 62년까지 유대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가이사랴에서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지 삼 일 뒤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러 갔습니다. 새로운 곳에 처음 부임한 베스도는 자기 관할 구역의 실태를 하루라도 빨리 파악하고 또한 그 지역의 유지들과 친밀한 관계를 여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은 유대인들 및 그들 종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자리에서 베스도에게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이 얼마나 집요한 사람들입니까? 복음의 원수들은 결코 복음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를 버리는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인류의 역사를 마치는 그 날까지는 결코 복음의 원수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영적으로 전투하며 어둠의 세력을 이기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그들은 전에 벨릭스에게 한 것처럼 베스도에게도 아첨을 하며 환심을 산 후 바울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렇게 간청한 이유는 사람들을 길에 매복시켰다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바울을 죽일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스도 역시 그들의 간계함을 한 눈에 알아보고 예절 바르게 거절합니다.
“저는 빨리 가이사랴로 가서 총독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으니 그 사람이 정말로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 여러분들 중 몇 사람이 저와 함께 가이사랴로 가서 그 곳에서 그를 고발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답변을 한 베스도는 예루살렘에 며칠 더 머물다가 고발하는 사람들 몇몇과 함께 가이사랴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는 재판을 열고 재판석에 앉아서 바울을 감옥에서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벌써 공식적인 재판만 세 번을 받게 되는 셈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아무런 증거도 없는 혐의와 억지 주장 때문에 또 다시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바울이 나타나자,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 무거운 죄목을 대며 바울을 고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유대 지도자들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을 기억하고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는 척 하며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여러 가지 고소 문제에 대해 내 앞에서 재판 받기를 원하는가?”
바울이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황제의 법정에 서 있습니다. 나는 이 곳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듯 나는 로마인이며 어떤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재판에서 최종 판결을 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겠습니다.”
바울 역시 베스도의 간교함을 이미 꿰뚫어 보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주의 말씀에 따라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한편, 당시 로마 황제는 그 악명 높은 네로였습니다. 네로 황제의 통치 기간과 바울의 선교 사역 기간은 많이 겹칩니다. 그는 주후 54년부터 68년까지 무려 14년을 로마 황제로 재위했습니다.
아무튼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자, 베스도는 바울에 대한 판결 문제를 배심원들과 상의한 후에 “그대가 황제에게 상소했으니, 황제에게 가게 될 것이오”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판결 또한 결국 죄 없는 자에게 공의로운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유대인들의 환심을 맞추어주는 처사였습니다. 이 면에서 베스도 역시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빌라도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유대의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환영 인사를 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왔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아그랍바 왕은 아그립바 2세로서 세상적 지혜로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용모가 출중해서 그가 있는 곳은 환하게 빛이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돈과 명예와 권력과 탐욕에 있어서는 최고를 누리던 분봉왕이었습니다.
그는 주후 27년에 태어나 73세를 살았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주후 100년에 죽었습니다. 그는 헤롯 대왕의 증손입니다. 헤롯 대왕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베들레헴 및 그 주변 지역의 2살 이하의 어린 아이를 전부 죽인 무서운 폭군입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 분봉왕 헤롯 필립 1세는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추면서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했을 때 세례 요한의 목을 벤 왕입니다. 그리고 아그립바 2세의 아버지 아그립바 1세는 헤롯 아그립바로서 사도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를 죽인 왕입니다. 이처럼 헤롯 아그립바 2세의 가문은 살벌하고 극도한 악으로 점철된 왕족이었습니다.
아그립바 2세는 글라우디우스 로마 황실에서 자라나면서 교육을 받았고, 그는 그의 부친 헤롯 아그립바 1세처럼 친로마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주후 66년에 로마 제국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의 반란이 터지면서 전쟁이 났는데, 그 결과 유대는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그때 그는 로마 권력에 속하여 유대인들과 싸웠습니다.
주후 44년에 그의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별세했을 때 아그립바 2세의 나이는 불과 17세였습니다. 그래서 아직 아버지의 영토를 이어받아 다스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로마 총독이 유대 땅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후 50년에 글라우디우스 황제는 이제 충분히 성장한 23세의 아그립바 2세를 할키스(Chalcis)의 왕으로 임명하였고 이때부터 그는 팔레스틴의 통치자로 부상하였습니다. 그후 글라우디우스 황제는 그에게 더 많은 영토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아그립바 2세는, 빌립의 관할 지역, 아빌라(Abila), 트라코니티스(Trachonitis), 아크라(Acra) 등을 다스리게 되었고, 심지어 네로가 황제가 된 이후에는 갈릴리, 다리게아(Tarichea), 디베랴(Tiberias)까지 그의 통치가 확장되었습니다(Jos., Wars II). 따라서 지금 베스도가 주후 59년에 유대 땅의 총독이 되어 가이사랴로 왔을 때 팔레스틴에서의 아그립바 2세의 권력과 세력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아그립바 2세는 헤롯 대황의 증손으로서 매우 친로마적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반로마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공작을 하였고, 66-70년에 걸쳐 있었던 유대 열심당원들과 로마의 전쟁기간에는 더욱 철저히 로마에 충성했던 관계로 전쟁 후 더 많은 영토를 부여 받았습니다. 이처럼 아그립바 왕은 로마와의 밀착된 관계 속에서 특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로마 총독이 팔레스틴에 부임할 때마다 그 총독을 예방(禮訪)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 아그립바 2세와 동거하는 버니게는 그의 누나입니다. 아그립바 2세의 또 다른 친 누나는 지난 주에 소개된 벨릭스의 아내 드루실라입니다. 즉, 드루실라는 버니게의 친 여동생입니다.
버니게는 일찍이 알렉산더의 아들이며 철학자 필로(Philo)의 조카인 마르쿠스와 약혼했지만 남편이 죽자 그녀의 삼촌인 할키스와 결혼했습니다. 주후 48년에 남편이 죽자 남 동생인 아그립바 2세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길리기아 왕 폴레몬(Polemon)과 두 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곧 이혼하고 다시 오빠 아그립바 2세에게 돌아왔습니다. 이때부터 이들 사이에는 근친상간(近親相姦)의 불륜이 저질러졌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늘 함께 살았습니다. 이로 보건대, 그 둘은 근친상간의 관계였습니다. 이 사실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고대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60-140)의 글에서 확인됩니다. 또한 그 둘의 불륜 관계는 유대인들과 로마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알려진 관계였습니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한 주후 70년 이후 버니게는 아그립바 2세와 함께 로마로 돌아갔는데 거기서 그녀는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과 그의 아들인 티투스(Titus)와도 애정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로마의 황후가 되고자 했지만 끝내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여론의 악화로 모든 관계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동생 아그립바 2세와 함께 베스도의 부임을 축하하러 온 것은 삼촌과의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후 남 동생 집에서 함께 살면서 부부행각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둘은 뻔뻔하게도 로마 총독과 유대 지도자들, 로마 병사들, 시민들, 그리고 바울 앞에 함께 나타난 것입니다. 오히려 그 둘은 권력과 쾌락과 미모와 용모의 뛰어남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 둘은 너무나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고 당당해서 죄에 대한 수치를 전혀 느끼지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아무튼 아그립바 2세왕과 버니게가 가이사랴에 와서 베스도의 부임을 축하하며 여러 날을 머뭅니다. 이에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을 만나 바울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베스도의 입장은 이미 예민한 대로 예민하여진 유대 지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되고, 그러면서도 또한 동시에 로마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건은 이미 아무런 혐의가 없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때문에 아직 종료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아그립바 왕과 그와 동거하는 버니게가 찾아왔으니 베스도는 너무나 반가웠고 곧바로 바울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를 묻게 된 것입니다.
베스도가 말합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이 곳에 벨릭스가 옥에 가두어 둔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내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을 한 후 예루살렘에 갔더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 사람을 고소하면서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행 25:14-15).
여기서 베스도가 한 말에서 주목할 것이 있는데, 대제사장을 복수로 말하고 있는 점입니다. 사실 사도행전 전체도 그렇고 더 나아가 신약 성경 전체가 대제사장들이라는 복수형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의 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오직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신약에서 복수의 대제사장들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유대가 로마의 속국으로 있게 되면서 로마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대제사장이 경질되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안나스라는 대제사장이 있다가 주후 16년에 총독 그라투스에 의해 해임되고 안나스의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으로 있다가 또 해임되고 그후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가 주후 18년에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야바 역시 주후 36년에 시리아의 총독 비델리우스에 의해 해임 됩니다.
하지만 유대 법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종신제였기 때문에 유대 나라 내부에서는 대제사장들이 여럿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실세는 안나스 대제사장이었고, 법적으로는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둘이었습니다.
지금 바울 때에도 법적으로는 파비의 아들 이스마엘이 대제사장입니다. 이는 헤롯 아그립바 2세가 벨릭스 통치 말에 아나니아를 밀쳐내고 이스마엘을 대제사장직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스도가 유대 총독이 되자 로마의 권력과 밀착된 아그립바 2세는 요셉을 다시 대제사장직에 앉힙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겨우 2년 밖에 대제사장직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베스도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하였을 때 대제사장들로는 아나니아가 있고 그리고 법적으로 그 당시 대제사장인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지할 것은, 로마 총독과 로마 황제가 임명한 유대 분봉왕들의 관계입니다. 총독과 분봉왕의 관계는 모호했습니다. 그 이유는 둘 다 로마 황제가 임명하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는 유대가 로마 속국이기 때문에 로마 총독이 유대 분봉왕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유대 분봉왕이 로마 총독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명령을 주고 받는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유대 분봉왕은 로마를 대신하여 유대 백성들과 그들의 종교를 직접 관리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편, 그 악한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주후 59년까지 11년간 대제사장으로 활동하다가 아그립바 2세에 의해 파직되었습니다(Ant. 20.102). 그러나 아나니아는 배후에서 바울을 처치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에게는 대제사장으로서의 경건함이나 자비로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고, 항상 잔인하였으며 술수가 능하고 그 역시 로마에 빌붙던 자였습니다. 주후 66년에 유대 열심당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로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유대 열심당원들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집과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가 사는 궁전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에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유대 지도자들이 도망쳤지만, 아나니아는 헤롯 대왕 궁전 뜰에 있는 수로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War 2.441). 그의 죽음은 그가 바울을 죽이려 하며 복음을 노골적으로 대항한지 겨우 6년 후였습니다.
자, 아무튼 베스도는 계속 아그립바2세와 버니게 앞에서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에게 어떤 사람이 고소를 당했을 때, 그 사람을 고소한 사람과 마주하게 해서 고소한 것에 대해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 주는 것은 로마의 관습에 어긋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나를 따라 이 곳 가이사랴로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끌지 않으려고 곧바로 그 이튿날, 재판을 소집하고 재판석에 앉아서 그 사람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일어나 그를 고발하며 죄목을 늘어놓았지만, 아무런 혐의가 없었고 결국 예수라는 어떤 죽은 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자가 살아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 문제에 대해 재판 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판결을 받을 때까지 가이사랴에서 그대로 갇혀 있겠다고 해서 나는 바울을 로마에 계신 황제에게 보낼 때까지 그를 이곳에 가두어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말합니다.
“나도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싶소.”
이에 베스도가 대답합니다.
“그러면 내일 그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행전 25장 22절에서 아그립바가 말한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는 표현을 자세히 보면, (에블로멘)으로 미완료 직설법으로서 그 뜻은 바울에 대하여 알고 있으며, 이전에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듣고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상당한 호기심 가운데 은근히 기뻤습니다.
한편, 바울은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로 이미 지난 번에 베스도 앞에서 판결이 난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재판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 재판이 열린 것은 황제에게 바울을 보내며 상소 내용에 들어갈 혐의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즉, 어떻게든 혐의를 만들어서 상소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 마디로,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천부장도 알고, 벨릭스도 알고, 베스도도 아는 것입니다.
아무튼 어떻게든 혐의를 만들기 위해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를 모시고 재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죄목으로 만들 뾰족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입니다.
그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는 화려한 행렬을 갖추고 군대 지휘관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과 함께 재판정에 나타났습니다. 베스도가 명령하자, 바울이 끌려 나왔습니다. 손에 사슬이 매여있고 배고픔과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핏기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 때, 베스도 총독이 말합니다.
“아그립바 왕 전하,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이 사람을 보십시오. 이 사람은 이 곳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면서 나에게 고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가 판단하기에 그는 죽임을 당할 만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황제에게 상소하였으므로 그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 관해서 황제께 써 보낼 만한 혐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 특별히 아그립바 왕 앞에 불러 낸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사람을 심문하면 황제께 보고할 혐의 자료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황제께 죄수를 보내면서 그 죄목이 무엇인지 알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스도 총독의 말이 끝나자 잘 생긴 아그립바 왕이 직접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바울, 당신에게 당신 자신에 대해 해명할 기회를 주겠소.”
그러자 바울이 해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시여, 저와 관련하여 유대인들이 고소한 것에 대해 오늘 왕 앞에서 해명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왕께서 유대인의 관습과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고 있는 문제들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제 말을 끝까지 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저의 일생을 다 알고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동족 가운데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저를 안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격한 바리새파 사람이고, 또한 바리새파 사람으로 철저하게 생활하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 서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에 대한 소망 때문입니다. 그 소망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이나 낮이나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이시여, 바로 이 소망 때문에 저는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그 소망은 예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것을 믿지 못합니까? 한때는 저 역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예루살렘에서 했던 일이 그런 일이었습니다. 저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많은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는 일에 찬성했습니다. 저는 회당마다 찾아다니면서 여러 번 그들을 고문하고 처벌했으며 강제로 예수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그들을 향한 저의 증오가 어찌나 심하였던지 저는 다른 도시에까지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위임 받아 다메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그 곳을 향해 가다가 정오쯤 되어 하늘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저와 제 일행을 둘러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 때에 저는 히브리 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로 차 보아야 너만 다칠 뿐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제가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라! 발을 딛고 서라! 내가 이렇게 네게 나타난 것은, 너를 나의 일꾼으로 삼아 네가 본 것과 앞으로 내가 네게 보여 줄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너를 이 백성과 이방인들에게서 구원할 것이며,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어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고, 또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백성들과 한자리에 들게 하겠다.’ 아그립바 왕이시여, 저는 하늘로부터 받은 이 환상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다메섹 사람들에게,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중에는 이방인들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새로운 삶을 살라고 선포했습니다. 바로 제가 이렇게 그 도를 전한 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저를 성전에서 붙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든 사람 앞에서 제가 본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것이 나사렛 예수에게서 성취된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예언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것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실 것과 자기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포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바로 구약 전체가 알려준 바로 그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히 주가 되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지금까지 벌써 법정에 네 번째 서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는 그의 복음 전파가 다 담겨 있습니다.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지금 그의 생사를 결정하는 재판 앞에서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 전에 가장 많이 정든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마지막으로 만나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행 20:17-27)
이런 고백을 한 바울이 지금 그 당시 세계 최고의 권력자들과 로마 병사들과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 앞에서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그들에게 다 전하였습니다. 아무런 혐의가 없는 재판을 당하면서도 억울한 표현이나 낙심이나 좌절이나 자기 변명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 대신 바울은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바울이 재판을 받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죄인을 살려낼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고, 바울은 그 재판에서 또 다시 재판을 받아오던 유일한 이유인 복음 전파를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부분, 즉 복음 전파를 죄로 삼아 재판하는 이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적하는 것은 세상 나라들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 및 세상 관원들처럼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 2:1-12)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니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외칩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
사랑하는 여러분!
베스도의 이 반응은 오직 이 땅의 것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향해 갖는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즉, 그들은 복음을 가장 어리석게 생각하며 복음을 믿는 자들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 1:18-25)
한편,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복음을 전했는데 그 반응이 오늘 베스도처럼 나타나면 그에게 복음을 계속 전하는 것은 개와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즉, 이는 돼지나 개들은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배교자나 세상 것만 탐하는 자나 거짓 신자들이나 불신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가치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더 전하면 복음을 거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복음을 물고 뜯고 조롱하고 찢는 모양으로 그들이 어둠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지금 베스도에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헛소리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모든 관심이 가 있는 사람에게 어찌 거룩한 진주 같은 복음의 말씀이 와 닿겠습니까? 그에게 바울은 미친 사람이요, 공부를 많이 하다가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베스도는 바울의 과거 경력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한 그 자리에서 너무나 완벽한 논리를 펴며 자신의 체험을 묘사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고는 그의 뛰어난 학식과 비범함과 지식과 예리함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우며 율법에 정통했고 헬라 철학이나 당시의 최고 학문에 대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스도는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복음의 메시지 때문에 자신의 무지를 탓하기보다 바울이 너무 많은 학식을 배워서 그가 미쳤다는 정말 한심한 논리를 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그 당시 재판장에 서 있는 바울은 주를 향한 헌신과 충성에 있어서나 또한 그의 성품과 지식 등 모든 면에서 거의 흠이 없는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미친 자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악한 욕을 듣고 말도 안 되는 형편없는 평가를 들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이 때뿐만 아니라 선교 사역을 다닐 때에도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3-14).
바울은 베스도가 “네가 미쳤도다”라고 말하자 차분하게 대답합니다.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행 26:25).
바울은 전혀 미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정중한 태도로 알려줍니다. 이로써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은 미친 사람의 말이 아니라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 참되고 온전한 상태에서 전한 가장 소중한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베스도에게서 얼굴을 돌려 아그립바 왕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겠습니다”(행 26:26).
아그립바 왕은 대제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가진 성전의 보호자였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구약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울의 증언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 어떤 지식을 갖고 있고 어떤 지위에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사건을 뚜렷하게 지적합니다.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즉, 예수님의 삶은 공개적인 것이었고 그분의 죽음 또한 여러 증인들에 의해 목도 되었고(눅 23:26, 35-37). 무엇보다 예수님의 부활은 '빈 무덤'이라는 객관적 증거와 함께 로마 군사들을 포함한 5백명 이상의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주의 부활 사건은 그 당시 가장 공공연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몰래 비공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그립바 왕은 그 일을 전부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은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 가운데 계신 만왕의 왕이신 나사렛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문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즉, 바울은 구약의 선지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을 말한 것을 분명하게 하면서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나는 당신이 선지자를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선지자를 믿는다면 나사렛 예수의 메시야 되심과 또한 부활로 입증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당연히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주로 모시라고 강하게 도전한 것입니다.
이로써 바울은 마침내 아그립바 왕을 정확하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을 다 이루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아그립바가 삶 전체를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모시고 새로운 출발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 바울은 아그립바 왕의 답변을 기다립니다. 아그립바 왕 역시 바울의 질문을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선지자를 안 믿는다고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논리적인 질문에 논리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사랑하는 여러분!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죄에 묻혀 살면서도 권력과 부귀와 건강과 영광을 다 누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세상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무지 그들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불륜을 저질러 놓고도 사업 잘 되고, 인기가 꺾이지 않으면 도리어 불륜을 드러내 놓고 공개하는 상황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아그립바 왕은 ‘그래, 내가 내 누나와 불륜 관계다. 그래서 어쩔 건데’라는 자세로 유대 땅을 활보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러한 세속적인 부패가 빌립보 교회에 들어왔을 때 바울이 말했습니다.
[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8-19)
아그립바 왕은 오직 로마 황제만이 두려웠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밥줄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그랍바 왕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음을 도전 받자, 이 세상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로마 집정관들과 유대 땅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종교인들 앞에서, 그리고 자신의 여러 신하들과 로마 군인들 앞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복음과 관련된 종교적인 것들은 실컷 누리면서 그 복음이 요구하는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참된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다르게 표현하면,
“감히 네가 그렇게 수치스런 복음으로 짧은 시간에 나를 설득하려 한단 말인가? 나는 이 사람아, 대제사장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는 사람이야. 나도 내 나름대로 하나님을 조용히 믿고 있다. 나사렛 예수를 꼭 알 필요가 뭐 있느냐. 열심히 종교 행위를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되지 무슨 나사렛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냐”
라는 뜻입니다.
오! 이 얼마나 방자하고 거만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제가 복음을 전할 때도 이런 일을 자주 겪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면 ‘감히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하며 저를 멀리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예절을 지키며 따뜻하게 행동하던 사람이 “이제 바르게 예수님을 믿으셔야지요”라고 권하면 “감히 나에게 예수를 제대로 믿으라고 전도를 해?”라고 하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 중에는 친척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과거에 직장 동료들도 있습니다. 즉,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다 맘에 들지만 복음을 들고 와서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할 때는 “감히 네가 …”라는 생각을 하며 저를 갑자기 멀어지고 싫어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세상에서 형통한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신학도 잘 알고, 외모도 뛰어나고, 여자 친구도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죄도 틈틈이 짓고,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자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버젓이 드러내 놓고 죄를 지으면서 ‘그래서 어쩔 건데’라고 하며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바르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감히 네가 내게… 내가 얼마나 신앙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데… 나도 너보다 알면 더 알지 네게 밀리지 않는다. 건방진 놈. 누구에게 뭘 전하려는 거야. 너나 예수 잘 믿어. 나도 내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라고 대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은 잘 안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오늘 본문의 아그립바 2세입니다.
혹시 사회에서나 친구 앞에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감추십니까? 왜 감추십니까? 교회에서는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세상에서는 신자인 것을 감추십니까? ‘이단들이 많아서 오해 받을까 봐’라고 하며 핑계하십니까? 그러나 주께서 하신 이 말씀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농담으로 여기시겠습니까?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3).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눅 12:8-9)
여기서 부인한다는 단어가 다른 곳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히노라”라는 말과 같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이로 보건대, 교회를 다니며 종교성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심지어 교회 내에서 높은 자리에 앉더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모시고 어디서나 주를 시인하며 따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아그립바 2세와 같은 사람입니다.
세상 영광 다 누리면서 액세서리로 신앙을 교양처럼 취하며 복음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세상적인 것만 취하는 사람들이 바로 아그립바 왕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생명과 삶을 주께 걸지 않으며, 죄와 싸우기를 피흘리기까지 하지 않으며, 주를 경외하며 순종하기를 싫어합니다. 항상 언제나 어디서나 저만큼 성경과 교회를 멀리하며.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그런 형식적인 신자로 살아가는 자가 아그립바 왕입니다.
아무튼 아그립바는 오늘 바울을 통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해 온 그분이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 받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말을 단 한마디도 부정하지 못했습니다. 즉, 바울의 말에 대해 믿지 못할 근거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재판을 위한 청문회를 마쳤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베스도와 그곳의 배심원들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행 26:31-32)
이 말은 결국 결국 바울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사실을 확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으로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바울이 있던 곳을 상상하며 그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여 있고, 그 외모는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초췌합니다. 어쩌면 감옥의 더러운 냄새까지 풍기는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의 최고의 권력가들과 영광을 누리는 자들과 군사들과 세력들 앞에 서 있습니다.
버니게가 얼마나 엄청난 치장을 하고 나타났겠습니까? 세상의 영광에 미쳐 있는 아그립바 왕은 어떤 복장을 하고 어떤 관을 쓰고 어떤 향수를 바르고 얼마나 장엄하게 나타났겠습니까? 원래 미남이고 세상적으로는 완벽한 남성인데 그의 풍채와 거만함과 도도함과 자신만만함은 어떠했겠습니까? 베스도는 어떠합니까? 그는 황제 다음으로 높은 총독으로서 로마의 속국에서는 법적으로 속국의 왕보다 더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휘하에 있는 철저하게 훈련 받은 로마 군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또한 수천 년의 종교 역사를 자랑하며 복잡한 예식과 복장과 장식물로 가득한 휘황찬란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내는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그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종들과 함께 있습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는 적어도 1천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고, 로마 대표, 유대 대표, 군사 대표 등, 모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의 최고의 영광이 그 자리에 집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련한 한 연약한 사람을 죽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로마 법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가련한 자는 바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가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리어 그들이 불쌍했습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줄 착각하고 자신의 과거 모습처럼 여전히 마귀의 종교에 사로잡혀서 참된 진리이신 영원한 만왕의 왕을 거스르며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들이 가련했습니다. 바울은 그를 억울하게 대하고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미친 놈이라고 말하는 그들 앞에서 정중하고 진실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의 모습은 만왕의 왕의 최고 전령관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하늘의 모든 권세를 잡으신 분이 이 땅에 계실 때 가난하고 가엾은, 머리 둘 곳 조차 없이 사셨던 나사렛 예수님처럼 한없이 겸손했습니다. 그 곳에 있는 그 어떤 사람보다 더욱 학식도 많고, 영원한 왕권을 지니신 만왕의 왕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사도였지만, 목적은 단 하나,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고 구원 받기를 원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자들이 세상적으로는 대단한 자들이지만, 그러나 고작 어둠에 속한 자들이요, 죄의 종노릇하는 죄인들일 뿐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저 짧은 인생 사는 동안 사탄의 권세 아래 사탄에게 속아서 살고 있는 덧없는 인생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초라해 보이는 바울, 그러나 그 마음은 성령 안에서 만왕의 왕 예수님과 한 마음이 된 상태에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손과 발에 차꼬가 채인 상태의 바울입니다. 그 두 손에 쇠사슬이 있습니다. 그 쇠사슬을 두 팔로 들며 주변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단지 저처럼 쇠사슬에 매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에서는 제외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바울의 마음을 조금 배워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반짝이는 색종이로 몸에 옷을 입히고, 가짜 돈 게임을 하며 세상에서 최고가 된 줄 착각하는 세상 사람들을 봅니다. 잠시 세상의 영광을 누리는 듯 하더니 가장 비참한 자리에 떨어진 사람들도 봅니다. 최고의 영광에 있는 듯 하더니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하는 사람들도 봅니다. 끝까지 거만하게 살면서 돈과 쾌락과 권력과 인기를 유지하면서 자기 의와 자존심 하나로 사는 지독한 사람도 봅니다. 그러나 짧은 안개와 같은 인생이 곧 마치면, 심판자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것입니다. 그 분 앞에 섰을 때, 완전한 의인 외에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참된 믿음을 소유한 자들 외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완전한 의인이 되는 비결은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은 내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나를 붙들기에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한 심판 앞에서 형벌이 없으며, 또한 그 외를 믿음으로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분을 닮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주신 생명을 받아 주를 닮기 위해 힘쓰고 노력하는 자들이 천국을 보장 받은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감히 내게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이 정도 믿으면 됐지, 뭘 더 하라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과 함께 이 자리에 계신 단 한 사람도 아그립바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온 마음으로 남은 삶을 주께 의탁하며 더욱 주와 함께 동행하기로 언약하는 거룩한 예배 시간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 이 설교의 성경 인용 중 많은 부분이 쉬운 성경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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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