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12:26~27
교회는 고통도 즐거움도 함께 하는 곳이다(동고동락)
몸에 대한 이해로 교회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공감이 되었어요. 교회가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몸에 연결된 지체들이 성령의 은사를 통해 자라나고 세워져 가는 생명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의 몸에 연결된 손과 발 등이 각자 떨어져 있으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몸에 붙어 있기 때문에 자라나고 영양을 공급받으며 사는 것이지요. 내 몸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내 몸을 대하는 태도와 이해를 돌아보았어요. 세상의 율법에 맞게 살아가려고 애쓰며 더 나은 나로 살아가려고 애쓰던 지난날이 떠올랐어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생명을 바라보니 세상의 율법 속에서 생명을 바라보고 똑같이 기계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내 몸과 마음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고 있는지 잘 돌아보며 이러한 생각이 생명답게 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해야겠어요.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요한삼서 1:3~4
꽃만 바라보며 만나는 관계의 한계를 말씀하셨어요. 꽃은 반드시 시들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관계가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물과 공기를 예로 들어 가장 흔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 기억나요. 가장 흔한 것들이 삶에서 중요해진다는 것은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라는 생각에서 우리로, 세상에 있는 들풀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겠구나 싶었어요. 생명들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를 인식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구나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생명들을 만날 수 있는 자연, 나무와 물이 있는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서로 주고받는 기운으로 사는 것이 생명으로 사는데 이롭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흔하고 작은 생명들에 관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 주변에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떠올랐어요. 요즘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기사에서 쉽게 접하고 있는데 꿀벌에 대한 관심과 목공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점점 기계만을 사용하려고 하는 흐름이서 벗어나 수공구를 사용하는 목공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게 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전 14:3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을 전하지 않고 머릿속에 있는 지식만을 전하는 것도 방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혹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도를 전하게 되면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겠죠. 신앙적인 언어를 듣는 이에 맞게 때론 비종교적인 언어로 전환해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수는 어떻게 전하셨나 살펴보니 실제적인 비유로 설명하셨어요. 말씀을 어떻게 일상의 언어로 전할 수 있을지 고민되었어요. 결국 도를 전할 준비가 일상 속에서 이뤄져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