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 이상의 상이한 개체나 요소들이 만나서 하나로 통합되는 융합 현상은 세계적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항공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닌데, 최근 들어서는 비행 방법 자체가 다른 상이한 항공기들이 융합을 통해 신개념 항공기로 탄생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고정익기와 회전익기의 장점만을 융합한 차세대 항공기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Bell
첨단기술 전문 매체인 뉴아틀라스(newatlas)는 헬리콥터와 프로펠러 항공기의 장점만을 딴 V-280 항공기가 미 육군의 주력 항공기인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대체할 다목적 용도의 차세대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링크)
미 육군이 다용도의 차세대 항공기로 낙점
항공기 역사는 날개 형태에 따라 ‘고정익기(fixed-wing aircraft)’와 ‘회전익기(rotary wing aircraft)’로 나뉘어진다. 고정익기는 여객기처럼 양쪽 날개가 동체에 붙어있는 항공기를 뜻하고, 회전익기는 헬리콥터처럼 날개가 회전을 하는 항공기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고정익기는 회전익기보다 속도가 빠르고 항속 거리가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넓은 면적의 활주로를 필요로 한다. 반면 회전익기는 속도와 항속거리가 고정익기에 비해 떨어지지만, 좁은 공간에서도 수직으로 이·착륙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장단점 때문에 항공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두 항공기의 장점을 하나로 합친 융합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V-280’은 바로 그런 시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V-280은 일종의 틸트로터(tiltrotor) 항공기다. 틸트로터란 고정익기와 회전익기의 장점만을 따서 만든 비행체로서, 회전익기처럼 수직으로 이·착륙을 한 뒤에 일정 고도에 이르면 고정익기처럼 빠르게 전진하며 비행할 수 있다.

항공기의 역사는 고정익기와 회전익기로 구분된다 Ⓒ Aero Med Express
고정익기 중에서도 V-280에 적용되는 모델은 프로펠러 항공기다. 프로펠러 항공기의 정확한 명칭은 터보프롭(turboprop)으로서, 제트엔진이 장착된 동체의 날개에 프로펠러를 부착한 항공기다. 다시 말해 과거에 유행했던 양 날개에 프로펠러를 단 항공기라 할 수 있다.
틸트로터기를 미 육군이 차세대 항공기로 채택한 가장 큰 이유는 수직 이·착륙과 제자리 비행 능력이 있어서 협소한 지역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활주로가 없어도 뜨고 내릴 수 있고, 고속 비행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차세대 항공기로 주목한 것.
V-280에 대한 미 육군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는 이 모델에 ‘블랙호크의 후계자’라는 별명을 붙여준 데서 잘 드러난다. 블랙호크는 현존하는 전투 헬리콥터 중 최고 성능을 자랑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전력화된 쌍발 터빈 헬리콥터로서, 개발된 지 40여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얼마나 이 헬리콥터가 유명세를 치렀던지 ‘블랙호크 다운’이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따라서 블랙호크를 대체할 다목적 기동 항공기로 V-280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수한 성능으로 주요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
V-280은 최대 탑승인원이 15명 정도다. 탑승인원만 놓고 보면 블랙호크와 유사하지만, 훨씬 빠르고, 소음도 적다. 또한 작전 행동반경도 블랙호크보다 훨씬 넓은 1500km에 달한다.
최근 미 육군은 시제품으로 제작된 V-280을 대상으로 엔진의 정상적 작동 여부 및 속도, 그리고 호버링(hovering) 등 주요 성능에 대한 테스트를 실시했다. 호버링이란 회전익기가 공중에 정지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엔진의 정상 작동 여부는 항공기 동체를 단단하게 고정한 후 두 개의 프로펠러를 최고 속도까지 회전시켜 동체와 엔진에 문제가 없는지를 파악하는 테스트로 검증했다. 그 결과, 엔진은 안정적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순항 속도를 점검하는 테스트에서는 설계 당시의 목표대로 시속 520km(약 280노트)를 기록했다. 재미있는 점은 순항 속도 테스트를 마친 후 모델명이 V-280으로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일정 고도에 올라가면 프로펠러를 앞으로 하여 직진하는 틸트로터 Ⓒ Popular Mechanics
순항 속도 점검에 나섰던 미 육군 관계자는 “순항속도가 280노트여서 해당 숫자를 아예 이름으로 삼았다”라고 밝히며 “이는 설계상의 목표였을 뿐 실제 테스트에서는 시속 556km(약 300노트)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거뒀다”라고 소개했다.
마지막 점검인 호버링 테스트는 V-280 개발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시험 과정이다. 특히 틸트로터의 핵심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저속 호버링 테스트에서 V-280은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다.
개발진의 관계자는 “틸트로터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고속으로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고도에서도 정지 비행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호버링 상태에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 저고도 비행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호버링 테스트를 무난하게 통과한 이유에 대해 항공 전문가들은 V-280의 설계가 정교하게 이루어진 점을 꼽았다. 틸트로터는 두 개의 프로펠러가 동체와 멀리 떨어진 날개에 부착되어 있어서 헬리콥터에 비해 저속 호버링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불리한 요건에도 불구하고 V-280이 뛰어난 호버링 성능을 보이며 우려를 불식시킨 점에 대해 전문가들은 “V-280이 블랙호크의 후계자로 완전한 낙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테스트 결과만 놓고 볼 때 다른 경쟁 기종들을 능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