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622)... 입맞춤과 키스펩틴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키스팹틴(kisspeptin)
‘근대 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프랑스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입맞춤(The Kiss)’의 주제는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의 신곡(神曲) 중 <지옥편(地獄篇, Inferno)>에 나오는 금지된 사랑 이야기로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비극적인 사랑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지옥의 문(Porte de l'Enfer)>에 있는 청동조각(높이 74cm)이며, 그 외에 ‘생각하는 사람’, ‘순교자’, ‘무릎 꿇은 탕녀’, ‘사랑의 도피’,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들’ 등 여러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로댕은 13세의 어린나이에 미술학교에 들어가 드로잉과 모형제작을 배웠다. 19세기 말에 회화(繪畵) 이외의 장르인 조각(彫刻), 판화(版畵) 그리고 사진 분야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조각의 경우 로댕은 사실적인 조각을 통해 외적인 형식미보다는 인간의 내적 심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렬했다.
단테는 1265년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의 피렌체의 ‘알리기에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13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예언가, 신앙인으로서 영원불멸의 거작 신곡(La divina commedia, 신적인 희극, 神曲은 일본어 표기)을 남겼다. 중세에서 근대로 건너가는 격변기에 살던 단테는 시대와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지식인으로서 ‘신곡’을 통해 삶의 지침을 제시하고자 했다. 단테는 1321년 라벤나에서 말라리아(malaria)로 사망했다.
신곡의 구성은 단테 자신으로 추정되는 한 인간이 기적적으로 저승세계로 여행할 수 있게 되어 지옥ㆍ연옥ㆍ천국에 사는 영혼들을 찾아가게 된다. 여행은 1300년 수난의 금요일에 시작하여 일주일 후 부활절(復活節)을 지나 목요일에 천국에 도착하게 된다. 그 사이에 여러 교황과 왕, 제후들과 예술가, 은행가, 숱한 범죄자, 온갖 추문의 주인공들, 자신의 친척들과 어릴 적 친구들도 만나게 되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과는 대화도 나눈다.
신곡은 영적인 나들이인 동시에 우주를 관통하는 여행이다. 지옥(地獄)에서 시작하여 연옥(煉獄)을 지나 잠시 지상의 낙원(樂園)을 거쳐 마침내 천국(天國)에서 하느님을 마주함으로써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떠다니는 상태에 이른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그리고 ‘천국편’ 등 3부로 구성되어 각각 한 권으로 되어 있고, 각 권은 33개의 서사시(敍事詩)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신곡은 지옥편에 시 전체의 서문 역할을 하는 곡(曲, cano) 한 개를 포함하여 모두 100개의 서사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곡은 136-151행 정도의 길이이며, 시의 운율체계는 3운구법(韻句法)으로 당시 신성한 숫자인 ‘3’이 신곡의 어디서나 나타난다. 신곡 1곡은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 했었네”로 시작된다.
<지옥의 문>은 1880년 프랑스 정부가 새로 건립하기로 한 장식미술관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로댕에게 의뢰한 것이다. 로댕은 출입문을 구상하면서 단테의 신곡 가운데 <지옥편>을 주제로 작업하였다. 지옥(地獄)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청동의 문(세로 635cm, 가로 400cm, 너비 85cm)에 각인되어 있다. 로댕은 이 작품을 오랜 시일에 걸쳐 작업을 했으나 주문이 취소되어 완성하지 못했다.
이에 일부 조각은 따로 개별 작품화 시켰으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옥의 문> 상부 팀파늄(tympanum)에 턱을 괴고 앉아있는 남성인 ‘생각하는 사람’이다. 청동(靑銅)으로 만든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에서 자신들의 죄로 인해 처절한 최후를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내려다보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거친 질감으로 나타내어 인물의 본질 묘사에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he Kiss’ 작품 속 주인공 프란체스카(Francesca)는 귀족의 딸로, 첫눈에 반한 말라테스타 가문(家門)의 차남(次男) 파올로(Paolo)를 사랑하지만 가문의 이익을 위하여 장남(長男)과 결혼한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 두 사람은 금지된 사랑을 시작했으며 열정적인 키스에 빠져 들었다. 형수(兄嫂)와 시동생의 금지된 사랑이 애욕(愛慾)으로 표현된 이 조각상의 주인공들은 결국 프란체스카 남편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된다. 금지된 사랑을 나누던 남녀는 지옥(地獄)에서 그 죗값을 치른다.
로댕은 사랑과 불륜, 살인이 얽힌 이 비극을 실물 크기 대리석으로 조각함으로써 남녀가 포옹하며 입 맞추는 찰나를 조형물로 재탄생시켜 누드로 강력한 감정과 생명력을 표현했다. 우리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이야기를 모를지라도, 연인이 서로를 갈구하며 겹쳐있는 모습을 통하여 인간의 사랑을 쉽게 느낄 수 있다. The Kiss(Le Baiser)는 서로에게 금지된 간절한 사랑이기에 비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의 주제가 당시 로댕과 그의 제자였던 클로델(C. Claudel, 1864-1943)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로댕은 1864년 재봉사인 로즈 뵈레를 만나 일생을 같이하였으나, 제자인 까미유 클로델과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했다. 클로델은 어린나이에 뛰어난 재능 인정받아 훌륭한 조각가로 활동하기 위해 로댕의 제자가 된다. 제자와 스승 사이로 만나 로댕의 작업을 도운 그녀는 로댕을 사랑하게 된다.
키스(kiss)를 진화(進化)학자들은 상대방을 판단하기 위해 서로 냄새를 맡는 행동이 진화를 거쳐 ‘입맞춤’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진화론적으로 타액(唾液) 교환을 해보면서 가장 적절할 생물학적 파트너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이 키스를 하는 이유는 호감(好感), 인사, 존경, 사랑 등 다양하다. 생물학적으로 키스는 구애(求愛)와 구혼(求婚)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키스에는 미각(味覺), 촉각(觸覺), 후각(嗅覺) 등 세 가지 감각이 사용되며, 키스를 하면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분비를 줄여주고, 호감을 높여주는 옥시토신(oxytocin) 분비를 촉진한다. 키스를 하는 동안 나오는 도파민(dopamine), 엔도르핀(endorphin) 등의 신경 전달 물질들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높여준다.
또한 키스를 자주 하면 혈중 콜레스테롤(cholesterol) 수치를 낮춰준다. 서로의 입 안에 있는 박테리아를 교환해 면역력(免疫力)이 높아지며, 두통을 줄여주고 저혈압 치료에 도움을 주며, 자존감 향상을 도와준다. 3분간의 키스에는 약 15칼로리(kcal)가 소모된다. ‘달콤한 키스’는 단순한 은유(隱喩)가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표현이다.
키스펩틴(kisspeptin)이란 1970년대 발견된 ‘KiSS-1’ 유전자의 펩타이드(peptide, 아미노산의 중합체) 산물로 사춘기(思春期)의 생식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10대 청소년들이 과도하게 성(性)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시기에 키스펩틴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키스펩틴이 여성에서는 난소(卵巢)에서 난자가 배출되는 배란(排卵)을 촉발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키스펩틴은 인간의 뇌(腦)에서 솟아나는 ‘로맨틱 호르몬’으로 사랑의 묘약(妙藥)이다. 그동안 사랑의 묘약이라고 불린 약물은 미국 파이자(Pfizer)사에서 1998년에 개발한 발기부전(勃起不全)치료제 ‘비아그라(Viagra)’이다. 비아그라는 발기부전으로 성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전 세계 남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어, 매출이 2조원(2012년)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비아그라는 완벽한 사랑의 묘약이 될 수 없다. 즉, 육체의 문제만 해결해줄 뿐 마음은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키스펩틴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 즉 뇌의 연애 세포를 깨우는 것은 물론 불임(不姙)이나 우울증(憂鬱症) 치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 불임치료는 대부분 생물학적 요인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키스펩틴은 부부 관계를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임신을 유도할 수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초콜릿 속에 들어 있는 키스펩틴(Kisspeptin)이 사춘기 청소년들처럼 강한 성욕을 갖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의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월짓 딜로 교수는 “키스펩틴이 성관계와 생식(生殖)에 이르는 감정 및 반응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키스펩틴은 뇌에서 발견되는 호르몬으로, 남성들이 성관계에 훨씬 더 관심을 갖게 한다.
영국 남성 10명 중 1명은 성(性)적 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부부관계ㆍ스트레스ㆍ불안 등으로 인한 성욕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또한 난임(難姙) 문제가 있다. 딜로 교수는 “불임 치료의 대부분은 부부의 자연임신을 힘들게 하는 생물학적 요인에 초점을 맞췄으나, 뇌와 감정적 작용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은 국가의 초콜릿 소비량이 노벨상 수상자 수와 비례한다는 연구결과를 2012년에 게재한 바 있다. 스위스가 1인당 초콜릿 소비량과 인구 1000만 명당 노벨상 수상자 수에서 단연 1위였다. 노벨 수상자들이 초콜릿을 즐긴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초콜릿 재료인 코코아에는 항산화(抗酸化) 물질인 플라바놀(flavanol)이 많이 들어있다. 우리나라도 초콜릿 섭취를 통해 저출산(低出産)문제 해결과 노벨상 수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아시아記者協會 The AsiaN 논설위원) <청송건강칼럼(622). 2018.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