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子貢이 曰 夫子는 溫良恭儉讓以得之시니 夫子之求之也는 其諸異乎人之求之與인저 자공이 말하길, “선생님께서는 온화함, 선량함, 공손함, 검소함, 겸양함으로써 그것을 얻는다. 선생님께서 그것을 구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구하는 것과 다른 것이리라! ”라고 하였다. 溫, 和厚也. 良, 易直也. 恭, 莊敬也. 儉, 節制也. 讓, 謙遜也. 五者, 夫子之盛德光輝接於人者也. 온은 온화하고 중후함이다. 양은 평이하고 정직함이다. 공은 장중하고 공경함이다. 검은 절제함이다. 양은 겸손함이다. 이 다섯 가지는 선생님의 성대한 덕과 빛이 남들과 접촉하는 것들이다.
西山眞氏曰 和兼厚字方盡溫之義 和如春風和氣之和 厚如坤厚載物之厚 和不慘暴也 厚不刻薄也 서산진씨가 말하길, “화자와 후자를 겸해야만 바야흐로 온이라는 뜻을 다 표현하는 것이다. 화는 봄바람의 온화한 기운에서의 화와 같은 것이고, 후는 땅은 두터워 만물을 실어준다는 것에서의 후와 같은 것이니, 화는 참혹하거나 난폭하지 않음이고, 후는 각박하지 않음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記言 易直子諒之心 易 平易坦易 直如白直無險詖 子諒慈良也 주자가 말하길, “예기에 이르길, 평이하고 곧고 자애롭고 신실함의 마음이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易는 평이하게 쉽고 평탄하게 쉽다는 뜻이고, 直은 명쾌하게 곧음처럼 험하거나 치우침이 없다는 뜻이며. 子諒은 자애롭고 선량함이란 뜻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莊主容 敬主心 自中發外 故曰恭也 서산진씨가 말하길, “장은 용모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고, 경은 마음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니, 안에서 밖으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공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儉非止儉約 只是不放肆常收斂之意 주자가 말하길, “검이란 검약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방자하게 제멋대로 하지 않고 항상 심신을 다잡야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節者自然之界限 制者用力而裁制 서산진씨가 말하길, “절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한계이고, 제라고 하는 것은 힘을 써서 제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謙謂不矜己之善 遜謂推善以歸人 서산진씨가 말하길, “겸은 자기의 선을 자랑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손은 선을 미루어서 남에게 돌리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夫子之盛德無所不備 固不止此 此乃盛德之光輝發見於接人之際者 신안진씨가 말하길, “공자의 성덕에는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본래 이런 것들에 그치지는 않는다. 이런 것은 곧 성대한 덕이 환하고 아름답게 빛나서 사람을 접하는 즈음에 발현되는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林氏少穎曰 形容聖人之盛德 必推其著見者言之 堯曰欽明文思 舜曰濬哲文明溫恭允塞 湯曰齊聖廣淵 文王曰徽柔懿恭 夫子曰溫良恭儉讓 皆以其德之著者言之也 임씨소영이 말하길, “성인의 성대한 덕을 형용하려면, 반드시 그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을 미루어서 말해야 한다. 요임금은 공경하고 밝고 문채 나고 사려 깊음이라고 말하였고, 순임금은 깊고 지혜롭고 문채 나며 밝고, 온화하고 공손하며 미덥고 성실함이라 말했으며, 탕왕은 공경스럽고 성스러우며 넓고 깊음이라 말했고, 문왕은 아름답게 부드럽고 공손함이라 말했으며, 공자는 온화함, 선량함, 공손함, 검소함, 겸양함이라고 말했는데, 모두 그 덕의 두드러진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선생님께서 그것을 구하는 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구하는 것과 다른 것이리라!”라고 하였다. 其諸, 語辭也. 人, 他人也. 言夫子未嘗求之, 但其德容如是, 故時君敬信, 自以其政就而問之耳, 非若他人必求之而後得也. 聖人過化存神之妙, 未易窺測, 然卽此而觀, 則其德盛禮恭而不願乎外, 亦可見矣. 學者所當潛心而勉學也. 아마도, 어사다. 사람은 타인이다. 선생님께서 그것을 일찍 구한 적은 없으나, 단지 그 덕과 용모가 이와 같은지라, 고로 당시 임금들이 공경하고 미덥게 여겨 스스로 그 정치를 가지고 나아와 물었을 뿐으로서, 남들처럼 반드시 그것을 구한 연후에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성인의 지나가면 교화되고, 마음에 보존하면 일이 신묘하게 완성됨의 비밀은 쉽게 엿보거나 추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나아가 살펴보면, 곧 그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손하되 밖에서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역시 알아볼 수 있다. 이는 배우는 자가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배우기에 힘써야 할 바인 것이다.
朱子曰 子貢謂夫子之求之 此承子禽之言借其求字而反言之 以明夫子未嘗求 如孟子言伊尹以堯舜之道要湯也 주자가 말하길, “자공이 공자께서 그것을 구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였는데, 이는 자금의 말을 이어받아 그 중 구하는 것을 빌려다가 돌이켜 말함으로써, 예컨대 이윤이 요순의 도를 가지고 탕임금에게 관직을 요구했다고 맹자가 말했던 것처럼, 공자께서는 일찍이 그렇게 구한 적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君子所過者化所存者神 出孟子 謂聖人身所經歷處 則人皆化 心所存主處 皆神妙無不通也 德言盛 禮言恭 出易繫辭 不願乎其外 出中庸 신안진씨가 말하길, “군자가 지나간 곳은 교화되고, 마음에 보존된 것은 신묘하게 통한다는 말은 맹자에서 나온 것이니, 성인께서 몸소 거치신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교화되고, 마음에 보존되어 주안점을 둔 곳은 모두 신묘하게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덕은 성대하다고 말하고, 예는 공손하다고 말한 것은 주역 계사에 나온 것이고, 그 밖에서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중용에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此五者 皆謹厚謙退 不自聖賢底意 故人皆親信樂告之 最要看此五字是如何 氣象體之於我 則見得聖人有不求人而人自來問底意 今人却無非是求 學者且去理會不求底道理方好 주자가 말하길, “이 다섯 가지는 모두 공자님이 삼가고 후중함하고 겸손하고 물러나므로 스스로 성현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친밀하고 신뢰하여 그에게 즐겨 알려주었던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다섯 글자가 어떠한지를 보는 것인데, 기상이 나에게 체화된다면, 성인께서 남에게 구하지 않아도 남들이 스스로 와서 물어보았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도리어 이렇게 구하는 것이 아님이 없으니, 배우는 자는 또한 가서 구하지 않는 이치를 이해해야만 비로소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謝氏曰: “學者觀於聖人威儀之間, 亦可以進德矣. 若子貢亦可謂善觀聖人矣, 亦可謂善言德行矣. 今去聖人千五百年, 以此五者想見其形容, 尙能使人興起, 而況於親炙之者乎?” 사씨가 말하길, “배우는 자가 성인의 위엄과 의례 사이를 관찰하면, 또한 이로써 덕을 증진할 수 있다. 자공 같은 사람은 역시 성인을 잘 관찰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한 덕행을 잘 형용하여 말한 사람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지금은 성인으로부터 거리가 1,500년인데, 이 다섯 가지로써 그 모습을 (상상해) 보고자 생각한다면, 아직도 능히 사람들을 흥기시킬 수 있는데, 하물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에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朱子曰 此子貢擧夫子可親之一節耳 若論全體 須如子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 주자가 말하길, “이 말은 자공이 공자님과 가까이할 수 있던 절 하나를 거론한 것일 뿐이다. 만약 전체를 논한다면, 모름지기 ‘공자님께서는 온화하면서 엄숙하셨고, 위엄이 있으시되 사납지 않았으며, 공손하시되 편안하셨다.’라는 말처럼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溫而厲 威而不猛 恭而安 此夫子中和氣象也 子貢言溫而不言厲 言恭而不言安 言良儉讓 則見不猛而不見所謂威 皆未足以盡盛德之形容 不過以其得聞國政 姑以其光輝接物者言爾 必如子貢異時綏來動和等語 乃足以見夫子過化存神之妙焉 按饒氏謂 此則聖人中和氣象 又謂集註過化存神未易窺測之語 與謝說三亦字 皆微寓抑揚之意 夫苟是中和氣象 則謝不當三亦字 以謝氏爲微寓抑揚之意 則其不足以盡中和之氣象 明矣 饒氏前後二說自相反 不可不辨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온화하면서도 엄숙하고, 위엄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며, 공손하면서도 편안하다는 이것은 공자님의 中和의 기상이다. 자공은 온화함을 말하면서도 엄숙함은 말하지 않았고, 공손함을 말하면서도 편안함은 말하지 않았으며, 양검양을 말한 것은 사납지 않음은 보이지만, 소위 위엄이 있음은 보이지 않았으니, 모두 성대한 덕을 다 형용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다. 다만 공자님이 국정을 들을 수 있었던 일로써, 잠시 공자님의 광휘가 외물에 접하는 것들로써 말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반드시 자공이 다른 때에 한 기쁘게 해주면 오고, 고무시키면 화합한다 등의 말들과 같이 해야만, 마침내 공자님의 過化存神의 묘미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요씨는 이것이 바로 성인의 기상이라고 말하였으면서도, 또다시 집주의 ‘過化存神은 쉽게 엿보아 알 수 없다’는 말은 사씨의 ‘세 개의 亦자’에 관한 학설과 더불어 모두 미묘하게 抑揚의 뜻을 깃들여놓았다고 말하였다. 무릇 만약 이것이 中和의 기상이라면, 사씨는 세 개의 亦자를 (말하지) 않았어야 마땅하고, 사씨가 抑揚의 뜻을 미묘하게 깃들여놓았다고 여겼다면, 그것은 중화의 기상을 다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명백한 것이다. 요씨의 앞뒤 두 말이 스스로 상반되므로, 구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張敬夫曰: “夫子至是邦必聞其政, 而未有能委國而授之以政者. 蓋見聖人之儀刑而樂告之者, 秉彝好德之良心也, 而私欲害之, 是以終不能用耳.” 장경부가 말하되, “선생님께서 이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정치를 들었는데, 나라를 맡겨서 정치를 하라고 내어주는 사람이 미처 없었다. 대개 성인의 의용을 보고 즐겨 알려주는 것은 떳떳함을 잡고 태어난 덕을 좋아하는 양심이지만, 사사로운 욕심이 그것을 해치니, 이런 까닭으로 종래 등용되지 못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好德之心 固有而易發 私欲之害蔽深而難除 此所以夫子之是邦必聞其政 而未有能委國而授之以政者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덕을 좋아하는 마음은 본래 가지고 있어서 발현되기 쉬우나, 사욕이 해치고 가림이 깊으면 제거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께서 이 나라에 가면 반드시 그 정치를 들었지만, 능히 나라를 맡겨서 정치를 내어주는 사람이 아직 없었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 『仲尼弟子列傳』曰: “子貢一出, 存魯亂齊, 破吳, 彊晉而霸越. 子貢一使, 使勢相破, 十年之中, 五國各有變.” 중니제자열전에 이르길, “자공이 한 번 나서자, 노나라는 보존되고 제나라는 어지러워졌으며, 오나라는 깨뜨려졌고, 진나라는 강성해지고 월나라는 패자가 되었다. 자공이 한번 사신으로 가자, 세력이 서로 깨지게 하여, 10년 안에 다섯 나라가 각자 변화가 생겼다.”고 하였다.
○ 『貨殖列傳』曰: “子贛旣學於仲尼, 退而仕於衛, 廢著鬻財於曹ㆍ魯之閒, 七十子之徒, 賜最爲饒益. 原憲不厭糟穅, 匿於窮巷. 子貢結駟連騎, 束帛之幣以聘享諸侯, 所至, 國君無不分庭與之抗禮.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此所謂得藝而益彰者乎.” 화식열전에 이르길, “자공은 이미 중니에게서 배웠고, 물러나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 물건을 저장해놓고 조나라와 위나라 사이에서 재물을 팔았다. 70 제자 무리에서 자공(사)이 제일 부유하였다. 원헌은 조강도 마다하지 않고 궁벽한 골목에서 숨어 살았다. 자공이 마차를 몰고 호위병을 거느리고 비단 묶음 폐백으로서 제후와 교제하였다. 가는 곳마다 그 나라의 임금이 조정을 나누어 그와 더불어 답례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무릇 공자로 하여금 천하에 이름을 날리게 한 것은 자공이 공자님을 앞뒤에서 모신 까닭이다. 이것이 이른바 심어 가꿈을 얻으면 더욱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