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9. 12.
“홀어머니 모시고 쭉 전세 살았습니다. 임대차 3법 이후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는데 전세도 너무 올라 이 기회에 전세 만기 3개월 남은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민변에서 임대차보호법 해설을 낸 이후 새로 산 집의 세입자가 ‘계약 갱신권 청구가 가능한 것으로 보이니 나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대출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되고 전 재산 쏟아부었는데 갈 곳이 없어 노숙해야 할 판입니다.”(경기도 50대 가장)
▶ 세입자의 ‘2+2년’ 거주 권리를 보장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한 달 넘도록 혼란을 거듭하면서 엉뚱한 피해자를 낳고 있다. 개정된 법에서도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자기 집에 들어가 산다고 하면 세입자가 계약 갱신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전세 만기가 몇 달 안 남은 집을 사서 곧 입주하려던 사람들은 이런 실거주 권리를 인정받지 못할 처지다. 기존 세입자의 갱신권을 우선하는 법 해석 때문이다. 민변과 참여연대가 그런 해석을 내놨고 정부도 비슷한 입장인데 조만간 2차 해설서를 내놓겠다고 한다.
▶ "나도 세입자였는데 이젠 내 집 사고 입주도 못 하게 됐다" “정부가 갭투자 하지 말라면서, 실거주 막고 억지로 갭투자 만드는 이상한 나라” “만기 때 나가겠다던 세입자가 법 시행 이후 계약 갱신권을 주장하며 이사비를 1000만원이나 요구한다” “임대인과 임차인을 갈라놓아 싸움 부추기는 게 정부 목적이냐”…. 하소연할 곳도 없는 피해자들은 온라인 모임방을 만들어 억울함을 쏟아내고 있다.
▶ 법을 졸속으로 만들고 계엄령 내리듯 밀어붙이니 예상치 못한 피해 사례가 속출하는 것이다. 취‧등록세, 양도세, 복비 등 집을 사고파는 비용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각 개인의 다양한 사정으로 내 집은 전세 주고 남의 집에 세 사는 경우가 꽤 있다. 전세 살면서 다른 전세 낀 집을 미리 사두었다가 나중에 입주하는 식으로 내 집 마련의 주거 사다리도 작동했다. 이런 복잡한 시장에 정부가 막무가내로 개입해 임대차법을 강행한 결과가 전셋값 급등, 전세 매물 급감에 이어 황당한 피해까지 만들어내는 것이다.
▶ 정작 정부는 어떻게 피해를 구제할지 언급조차 없다. 어제도 국토부 장관은 “지금도 2년까지 세 끼고 집 사고판다. 이제는 임차인이 살 수 있는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었다는 걸 전제로 매매 거래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 집인데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면전에서 그 소리 한번 해보기 바란다. 네티즌들은 “내가 들어가 살 수도 없는 내 집이니 정부도 취득세를 4년 후에 받으라”고 한다. 틀리는 말인가.
강경희 논설위원 khkang@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