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
( 고린도전서 15 장 < 1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우리들 심령깊이 간직하고 남은 생애를 살게 하옵소서.
-- * --
누구든지 부르심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가 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이름도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부르심을
입은 성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지 않은 성도들도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성도와 부르심을 입지 않은 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아마 부르심을 입은
성도만 있는 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천국처럼 평안하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부르심을 입지 않은 사람들 때문일까요?
우리는 교회의 문제를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보기 쉽습니다.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가라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로만
존재하는 교회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에 그러한 교회는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죄의 속성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르심을 받은 성도와 부르심을 받지 않은 사람의 다름은 어떻게 드러날까요?
그것은 사도가 전한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듣고 마음으로 깨닫게 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만 듣고 깨닫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한데 성령은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신 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은 성도만이 복음을 듣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신자가
복음을 깨닫고 믿음이 있게 되면 점차 죄를 이기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만약 복음을 깨달음으로 죄를 이기게 된다면 복음을 안다고 하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보다는 죄가 작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사람에게 죄는 동일합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 전과 후의 사람들의 악함이 다르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홍수 심판에서 유일하게 생존했던 노아 가족으로 시작한 세상이었지만
그 세상 또한 악함으로 가득해졌음을 생각한다면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 죄를 소멸해가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1. 복음을 다시 알게하는 이유.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
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전서 15 : 1-2)
이 복음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것이고 그들이 받은
것입니다.기독교 복음은 시대마다 수정보완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이미 고정된 내용으로 사도들을 통해 세상에
주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복음의 터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복음의 목적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죄와 그 형벌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므로 구원이 필요하며, 또 그러므로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굳게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이란
진실하고 확고한 믿음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 : 3-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에 그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과 부활이 곧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구약성경에
예언되고 예표된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중요한 까닭은 모든
말씀들의 진실성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확증하기 때문입니다.
2. 부활의 증인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 : 5-8)
부활의 증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보여주십니다. 베드로와
열두제자 오백여 형제는 모두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변하여 새 사람되었습니다. 게바는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소심하고 두려워하여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공회 앞에서도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였습니다. 앉은뱅이 중풍병자 죽은 자를
살리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였습니다.
열두 제자는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모두가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승천할 때 예수님을
본 사람들입니다.그중에 태반은 바울이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로서 생전에 예수님에게 미쳤다고
한 자입니다.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후에 모든 사도에게 보이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실라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들이 본 부활의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과 함께 하셔서 일하십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5: 9-11)
.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를 죽이던 자입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은
수리아의 수도 다메섹으로 핍박하러 가는 바울을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그 마음 속에 모셔들였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그에게 성령을 충만히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혜는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에게 받은 은혜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때 그는 신약의 서신을 통하여 복음의 체계를 잡았습니다.
복음을 소아시아와 유럽과 로마에 전파하여 복음의 세계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복음 신앙을 알고 다른 먼저 된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거나 자기 의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은혜로웠습니다.
그는 사도라고 칭함을 받기에
감당할 수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자신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며 겸손했습니다.
오직 그와 함께 하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작두에 목이 잘려 순교하였습니다.
3.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린도전서 15 : 12-13)
예수님은 닫혀진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로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죽은 후에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죽은 후의 부활을 믿어야 이곳의 신앙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고 잘 죽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잘 죽는 사람이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입니다. 죽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에는 우리의 신앙이 다 담겨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 하였으리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으므로 죽은 자들도 부활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예수님에게만 국한시키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도 부활한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우리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예수 부활하셨네. 나도 부활하겠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내가 부활할 것에 대한 약속이요. 보증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나도 부활한다는 주관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고린도전서 15 : 14-16)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과 선교의
근거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요. 믿음의 마지막은 예수님과 같이 나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핵심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4. 가장 행복한 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린도전서 15: 17-19)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해서 죽은 예수님의 피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피로서 효력을 갖게 됩니다.
부활이 없으면 죄사함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부도가 나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의 피는 보통 사람이 죽은 그 피와 다름이 없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사함을 주었다면 예수님은 죽음을 이겨야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죄사함을 주셨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했는데
모든 것이 끝난다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행복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쁨으로 주님께 헌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상주심을
믿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면서도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5.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린도전서 15 : 20-21)
예수님의 부활이 왜 기쁜날입니까?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라고 합니다. 첫열매는 맨 처음 열리는 과일입니다.
초태생이 첫열매입니다.
첫열매가 열린 후에 그와 같은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이 첫열매로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그 다음 열매로 부활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살아갑니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죽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죄로 말미암아 아담이 죽어서 우리 모두가 죽게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습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에게서
다시 태어나면 됩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예수님에게서 다시 태어난 우리도 죽지 않는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는 한 사람 아담 때문에 죽었고 한 사람 예수님 때문에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6. 소속의 원리.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린도전서 15 : 22-26)
우리가 어디에
소속되었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남한과 북한 중에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사람은 풍요를 누리고
북한의 사람은 빈곤에 시달립니다.
남한의 사람은 자유를 누리고 북한의 사람들은 모든 자유에 제한을 받습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소속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면 도덕성이 높고 능력이 높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이 높지 않은 사람도 예수님께 속하였기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아담의
소속인 것은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소속은 자연적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속할 수 있습니까?
이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이 되는 것은 자동적이지만 의인이 되는 것은 선택적이고 주권적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해야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부활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도 미래에 부활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붙어있으면 우리도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팔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재림할 때 우리도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성도들의 부활은 예수님이
공중재림할 때 일어납니다.
그때 살아있는 성도와 죽은 성도는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올라갑니다.
예수님이 휴거한 성도들과 함께 다시 지상에 오십니다.
예수님은 성도들과 천년 왕국을 이루십니다. 천년 왕국이
끝날 때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도 다 부활합니다. 이들은 심판의 부활입니다.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고린도전서 15 :27-29)
하나님은 불신자를
부활시키시고 이들을 심판하신 후에
만유의 질서를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예수님의 발 아래 두십니다.
만물을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신 후에
예수님도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하게 하신
하나님께 복종합니다.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도 아버지와 아들의 질서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해와 같이 밝게 비추십니다.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 날에는 사망이나 질병이나 노화나 애통하는 것이 다 없어집니다.
세례는 자신의 믿음으로 받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를
알고 세례를 받았다면 세례를 받는 것은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헤 없이는 살 수 없는 참으로 무능하고
초라한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불러 주지 않으셨다면 오직
진노의 자식 멸망의 존재였을 뿐임을 고백합니다.
불러주시고 믿게 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주님곁에 붙어 있기만 하면 끝까지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날마다 문제 가운데서 흔들리며 살아가지만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놓치지 않도록 성령님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9. 14.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