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李廣)은 조상 대대로 특유의 궁술을 익혀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장군이다.
한나라 문제 14년에 그는 흉노가 대거 소관(蕭關)으로 침입하자 양가(良家)의 자제로서 출전하였다.
그는 이때 말을 탄 채로 활을 쏘아 수많은 적을 죽였으며,
포로를 많이 생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낭중(郎中)의 벼슬을 얻었다.
명궁으로 소문난 이광은 문제가 사냥을 나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갔다가 맨주먹으로 맹수를 때려잡은 적이 있었다.
“그대는 장사다. 그러나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 애석한 일이다.
만일 그대가 고제(高帝) 시대에만 태어났더라도 많은 전과를 올려 만호후(萬戶侯)는 되었을 것이다.”
당시 이광은 녹봉(祿俸) 8백석에 지나지 않았다.
오(吳)나라 왕 유비를 비롯한 7개 나라가 난을 일으켰을 때,
이광은 효기도위(驍驥都尉)가 되어 태위 주아부를 따라 출전하였다.
그때 그는 적의 기를 빼앗는 등 창읍(昌邑)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양(梁)나라 왕에게 장군의 인(印)을 몰래 받은 것이 탄로나,
개선한 뒤 큰 공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지 못하였다.
더구나 이광은 상곡군(上谷郡) 태수 등 변방으로 좌천되어 흉노들과 잦은 접전을 벌였다.
전과를 올리고도 상을 받지 못한 채 좌천된 것이 분하여,
그는 매일 흉노들에게 싸움을 거는 등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하는 짓을 되풀이 하였다.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간하였다.
“이광의 재기는 천하에 둘도 없을 정도로 용맹무쌍합니다.
그는 지금 스스로 그 재능을 믿고 흉노들과 자주 접전하여 승리를 거두곤 합니다.
그러나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아까운 인재를 잃을까 염려됩니다.
폐하께선 그런 인재를 버려두실 작정이십니까?”
그 말을 듣고 황제는 이광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상군(上郡)의 태수로 삼았다.
그 후 그는 농서(隴西)· 북지(北地)· 안문(安門)· 대군(代郡)· 운중(雲中) 등지의
태수로 돌아다니며 흉노들을 쳐서, 가는 곳마다 그 이름을 크게 떨쳤다.
이광이 상군 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흉노가 대대적으로 침입하자 황제는
궁중에서 총애하던 환관(宦官)을 파견하여 이광의 군사들과 함께 흉노를 토벌 하도록 하였다.
어느 날 환관은 제멋대로 수십 기의 군사를 거느리고 사냥을 나갔다가 세 명의 흉노 병사에게 포위되었다.
그런데 세 명의 흉노들은 활의 명수로, 환관과 그의 일행을 가운데 둔 채 빙빙 돌면서 화살을 날렸다.
갑작스런 사태로 포위된 수십 명의 한나라 군사들은 연속적으로 빗발치는 화살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환관은 몸에 상처를 입은 채 간신히 살아남아서 한나라 진영으로 돌아왔다.
“우리 군사들이 흉노에게 완전히 당하고 말았소. 적은 세 명이었는데,
활솜씨가 어찌나 뛰어난지 우리 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였소.”
환관의 말을 들은 이광이 말하였다.
“그들은 분명 독수리를 쏘아 맞히는 명사수들일 것입니다.”
이광은 즉시 기병 1백여 명을 뽑아 흉노들을 뒤쫓았다.
마침 활을 잘 쏘는 흉노 병사 세 명은 말을 잃어버려 수십 리를 걸어서 가고 있었다.
“좌우로 벌려서 추격하라!”
이광은 기병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 자신은 가운데에 앞장서서 흉노들을 추격하였다.
세 명의 흉노 병사들은 곧 발견되었다. 이광은 말을 달리며 그들을 향해 세 개의 화살을 날렸다.
그들 중 두 명은 화살에 맞아 죽고, 한 명은 상처를 입고 쓰러진 것을 생포하였다.
“너는 무엇을 하는 놈이냐?”
이광이 생포된 흉노 병사에게 물었다.
“저는 한나라 군사들이 독수리로 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독수리만 골라 쏘아 맞히는 궁사입니다.”
“그런데 너는 왜 하늘을 향해 독수리를 쏘지 않고 우리 기병들을 쏘았느냐?”
이렇게 말하며 이광이 포로병을 묶었다.
그리고 나서 문득 들판을 보니 수천 명의 흉노 병사들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1백여 기에 불과한 한나라 군사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때 이광이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대군과 수십 리나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1백여 기로 달아난다면,
저들 수천의 흉노군이 추격하여 우리 모두 몰살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태연을 가장하여 여기 머물고 있으면, 저들은 대군이 바로 뒤에 있으면서
적을 유인하기 위한 술책으로 우리가 유인병 임무를 맡고 나와 있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이광은 군사들로 하여금 더 앞으로 나가게 하여 흉노 군대에서 2리가량 떨어진 곳에 일단 머물게 한 뒤,
모두 말안장을 풀어놓고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과연 이광의 말대로 수천에 달하는 흉노 병사들은 불과 1백여 기 밖에 안 되는
한나라 군사들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였다. 그 대신 이쪽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흉노의 장수 하나가 백마를 타고 수십 기의 병사를 거느린 채 가까이 와서 자주 기웃거렸다.
“열 명만 나를 따르라!”
이광은 풀어놓았던 말안장을 다시 얹은 다음 활을 들고 말위로 올랐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가
백마를 탄 적의 장수와 수십 명의 흉노병들을 시살하고 다시 돌아와 태연하게 말안장을 풀었다.
말안장을 푼 채 남아있던 한나라 군사들은 장군 이광의 용기에 모두 감탄하였다.
백마를 탄 장수와 수십 기의 병사들을 잃었는데도 흉노의 수천에 달하는 부대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이쪽의 동태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이광과 그의 부하들이 말안장을 풀어놓고
면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고 반드시 그 바로 뒤에 복병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굳혔던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자 군대를 거두어 물러가 버렸다.
흉노들이 물러가자 이광도 군사들을 이끌고 안전하게 본진으로 돌아왔다.
-《인물로 읽는 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