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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신 하나님(행10:1-9,17-20)
2012.11.4(김상수목사)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행10:1-9,17-20)
아이들이 갖고 노는 퍼즐이나 레고를 함께 맞추다 보면, 처음에는 이것저것 섞여 있어서 어지러운 것 같지만, 모양을 잘 찾아서 정확하게 맞추면 결국 멋진 그림이 나오기 마련이다. 애들이 노는 퍼즐조각도 이렇거든 하물며 우리 인생퍼즐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어떻겠는가? 인생의 복잡한 문제들이 퍼즐처럼 뒤섞여있다 할지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든 것들은 정확하게 제자리를 잡게 되고, 아름다운 인생의 그림들이 완성될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 인생의 퍼즐을 맞추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정확하신 하나님이시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확하신 하나님이신지 그 단적인 예를 기록하고 있다. 바로 백부장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와의 만남이다. 사도행전 10장의 이 이야기는 사실 고넬료보다는 사도 베드로로 하여금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열려있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는 통로로 쓰임받은 것이다. 더구나 이어지는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고넬료집에 임재한 성령충만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인정하는 장면이 나오고, 바로 이어서 안디옥교회가 설립되는 과정이 나온다.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유대인들 중에 몇 사람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안디옥교회가 탄생되었다. 그 안디옥교회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되고, 최초의 선교사도 파송하게 된다. 그 안디옥교회를 세운 몇 사람의 이름모를 성도들은 바로 고넬료의 집에 성령께서 임재한 사실을 듣고 생각이 변한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0장 1-2절을 보자. 고넬료는 이달리아대라는 군대의 백부장이다. 백부장은 그의 휘하에 100명의 군사가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로마제국 군대(점령군 군대)의 장교였고,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방인(異邦人)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 신자(信者)였다. 그것도 적당히 믿은 신자가 아니었다. 그가 어느 정도 수준의 신자인지, 오늘 본문 1-2절을 보라.
“1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1-2)
이 말씀을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다. 혼자 믿고 끝낸 것이 아니고 온 집안을 믿게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백성을 구제했는데, 그것도 “많이 구제”했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자기 지갑을 열어서 커피 좌판기의 커피 한잔을 빼주는 것도 눈치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일반적인데, 고넬료는 자기 지갑을 열어서 자신의 재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통로가 되게했다. 이것은 고넬료가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며, 또한 ‘나의 재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이 분명했던 것을 의미하고, 또 긍휼하신 주님의 성품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역(교회, 선교, 전도 등)을 위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
그것 뿐 아니라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항상”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항상”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기도가 곧 그의 생활이었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고 듣고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했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고넬료는 젠틀맨(신사)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젠틀맨이고, 신앙적으로 가정과 주변 사람들 특히 하나님에게까지 인정받은 영적인 젠틀맨이다. 우리 남자성도들이 이렇게 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고넬료의 변함없는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가 되었다(3-5절).
“3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4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행10:3-5)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욥바에 있는 사도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시면서, 사도 베드로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고 있고, 그 집은 해변에 있다고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지시해 주셨다. 그래서 고넬료는 하인들을 선별하여 천사의 지시대로 베드로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 이튿날 고넬료의 하인들이 욥바성에 가까이 갔을 때, 마침 그 시간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유대인의 지붕은 주로 평평한 형태). 그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특별한 환상을 보여주시고(여기서는 환상내용 설명은 생략), 환상이 끝나자마자 바로 고낼료가 보낸 종들이 그곳에 도착했고, 지붕 위에 있던 베드로는 그 환상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 두 사람을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다.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17-20절)
이 상황을 보면 하나님은 고넬료가 보낸 하인들이 문 앞에 도착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서 베드로를 기도시키시고, 환상을 보여주시고, 성령님께서는 말씀해 주셨다. 정말 자로 잰 듯이 정확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어쩌면 이렇게 정확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백부장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의 만남의 과정을 보면서 자동적으로 깨달아지는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은 너무너무 정확하신 하나님이시구나!라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서 최소한 두 가지의 놀라운 영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은 정확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지금도 응답은 오고 있는 도중이라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환상을 보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지시하셨고, 고넬료의 종들이 걸어오는 사이에 정확히 시간 맞춰서 베드로에게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베드로가 자신의 환상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할 때, 이미 그 전부터 하나님의 응답은 오고 있었다. 이것은 고넬료와 베드로의 경우 뿐만 아니라 성경 속에 주님께서 응답주시는 장면들이나 우리들의 기도응답의 과정을 살펴보다도 그렇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때에 이미 하나님은 양 한 마리를 모리아산 꼭대기로 몰아가셨고(여호와 이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던 나귀도 주님이 미리 다 준비하셨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들을 위해 응답을 보내시고 계시다. 기도함으로 그것을 알아보고 취해야 한다.
정말 그렇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좋으신 아버지일 뿐 아니라, 너무 너무 정확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마음에 품고 기도를 시작한다면, 내가 기도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응답을 예비하시고 보내고 계시다. 다만 내 기도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분량에 도달했을 때, 정확하게 하나님이 보내신 응답을 만나게 하시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우리들도 정확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할 때면 온몸에 전율을 느낄 정도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할 때면, 감사와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역사들을 정확하게 이루어 가실 뿐만 아니라, 각 개인에게 레마의 말씀으로 주신 약속들도 정확하게 이루어 가고 계신다. 어떤 때는 맞춰지지 않은 퍼즐 조각들처럼 어지러운 것 같아도, 하나님은 지금도 맞추고 계시다. 맞추고 계시다는 말이 곧 응답이 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가지 않아서 감사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 청년들이 내년 1월 중순에 해외단기선교를 준비하고 있다. 단기선교나 교회봉사 그리고 우리들 삶의 모든 작은 재정문제들까지도 정확하신 하나님의 손아래 있다. 몇 년 전에 중국 서북쪽에 있는 위구르족 자치구인 신장성(新疆維吾爾自治區) 우루무치(Urumqi,烏魯木齊)라는 곳을 선교목적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중국은 전도가 어려운 땅이지만, 최소한 하나님이 정말 나를 통하여 구원시키시기 원하시는 생명이 있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꼭 예비된 심령을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박물관을 보고 나오다가 길가에서 김치를 파는 여자를 발견했다. 김치를 팔고 있다는 것은 조선족일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지나가면서 흘리듯이 말했다. “김치 팔아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 말을 알아듣고 대뜸하는 말이 “남조선에서 왔습네까?”라고 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 분이 “그러면 혹시 주석이 달린 성경책이 있으면 저에게 한 권만 줄 수 있습네까?”라고 재차 질문했다. 그래서 그 분과 대화하다 보니 그분은 한씨(韓氏) 성을 가진 조선족으로 가족과 함께 만주 연변에서 베이징을 거쳐 우르무치까지 무려 1주일 동안 기차를 타고 왔고, 연변에 있을 때에는 어머니를 따라 신앙생활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낡은 노트에 일일이 손으로 적은 복음성가들(실로암 등)과 성경귀절들을 보여주면서, 주석이 달린 성경책이 있으면 꼭 갖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가족들은 아직 신앙이 없는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이틀 후에 다시 그 가족들을 만났고, 그 가족들이 감격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함께 예배했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기도한대로 되었다.
돌이켜 볼 때 정말 정확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정확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찌 이런 경험들뿐이겠는가? 오늘 분문에 나오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이나, 말씀을 증거하는 저나, 우리 모두에게도 이와 유사한 체험들은 너무도 많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시다. 그래서 잠언 16장 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정확하신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고 계신 중이신 것을 신뢰하자.
마지막으로 사도 베드로와 고넬료가 이처럼 정확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될 때에는 그 두 사람에게 공통적인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로 기도다. 고낼료도 항상 기도했고, 베드로도 기도했다. 만약 어느 한 편이라도 기도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체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도는 마치 영적인 안테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위성에서 전파를 쏘면 자동차에 부착된 네비게이션의 안테나가 그것을 감지하듯이,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인도하시고, 응답을 보내시고 계실 때, 우리는 기도의 안테나가 작동되고 있어야 한다. 파워가 꺼진 안테나는 어떤 전파도 잡아내지 못한다.
만약 오늘 본문에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베드로의 기도의 안테나가 꺼져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베드로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의심하며, 믿을 만한 사람들인지 확인절차를 거쳐야 했을 것이다. 그 만큼 시간이 지체된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들의 기도의 파워가 꺼져있다면, 응답이 도착했어도 도착했는지 조차 모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만큼 기도에 깨어있는 것은 중요하다는 말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0장 4절 말씀에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했다. 우리들이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하면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 될 때까지다. 한 마디로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의 안테나를 끄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적당히 기도하다가 중단해 버리는가?
그래서 R. A 토레이는 그의 저서 [기도와 영력]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시기 직전에 기도를 포기함으로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응답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R.A 토레이)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의 응답은 내 것이 될 것이다. 이 시간 다 같이 두 손을 모으자.
(기도멘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확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응답은 이미 오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지금 문 앞에 도착해 있는 분도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리신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지금 이 순간에도 퍼즐을 맞추어가고 계십니다. 때로 내가 실수로 하나님이 맞추고자 하시는 퍼즐을 흩트려 버린 다해도 사랑의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것이 포기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님을 향해 영적인 기도의 안테나를 끄지 맙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고넬료의 기도처럼 하나님 앞에서 상달하여 기억하신바되게 합시다. 이 시간에 기도의 파워를 올리고, 기도할 때에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그 두 사람을 따라가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 음성을 들읍시다. 정확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며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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