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냉면 평양냉면
최민자
연애 시절엔 할 말이 참 많았다. 몇 시간씩 마주 보다 돌아서 와도 말들은 새순처럼 자꾸 돋았다. 다음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말들은 계속 새끼를 쳤다. 사랑을 하면 무슨 호르몬인가가 활성화되어 미분화된 말들을 부화시켜내는가. 한 번도 연습해 본 적 없는 낯간지러운 말들까지 뜬금없이 튕겨져 나오곤 했다. 숨은 말들이 만남을 충동질했다. 뜨겁게 엉겨 붙으려 안달하는 짝 말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결혼이라는 모험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한집에 살고부터 말들이 차츰 심드렁해졌다. 화사하고 컬러풀한 추상어들은 숨고 덤덤한 모노톤의 일상어들만 오갔다. 당도도 접착력도 떨어진 말들이 냉탕 온탕을 들락거리다 타시락타시락하는 날도 있었다. 허리를 굽힐 줄도 고개를 숙일 줄도 몰랐던 숙맥 부부는 몸속 가장 낮은 곳에 웅크린 미안하다는 말을 끄잡아 올리지 못해 툰드라의 냉기 속을 서성이기도 하였다. 과단성이 독단, 과묵이 무뚝뚝함의 다른 얼굴이었음을 실감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자 말들이 다시 화창해졌다. 말갛고 순한 유기농 말들이 첫물 딸기처럼 상큼하고 달았다. 바깥세상 원심력에 휘청거리는 가장을 일찍 일찍 안으로 불러들이고 데면데면한 고부 사이를 진득하게 밀착시키기도 했다. 조촐하고 따뜻한 밥상머리에서 말들은 더 신명이 났다. 오색 빛가루로 흩뿌려지며 쿵작쿵작 왈츠를 추거나 경쾌한 리듬으로 핑퐁핑퐁,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오거리 함흥냉면집 새큼달큼한 회냉면처럼 찰지고 쫄깃한 이야기들이 진진하게 이어지던, 돌아보니 그때가 호시절이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붙이는 말. 말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다. 이 무슨 터무니없고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냐고, 코웃음을 쳐도 물러서지 않겠다. 두 딸과 두 손자를 키워낸 여자가 경험으로 체득한 ‘알쓸신잡’이니. 탈무드에 의하면 신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 자궁으로 천사를 내려 보내 알아야 할 모든 지혜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리고는 출산 직전, 신성한 비밀을 모두 잊으라는 의미로 윗입술 가운데에 손가락을 얹고 쉿! 하며 세로로 골을 긋는데 그것이 인중(人中)이라는 것이다.
밥알 속 탄수화물이 천사의 손가락을 밀쳐낼 힘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밥알이 말 알인 건가. 아이들이 말 구슬을 꿰기 시작하는 건 밥알을 삼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모유나 우유만 먹을 때는 의미 없는 옹알이밖에 발성해내지 못한다. 이가 나고 밥알을 떠 넣어야 말에도 머리와 꼬리가 생기고 마디와 외골격이 갖추어진다. 원시 무기물이 유기체적 활력을 얻어 미세하게 움직거리듯 알에서 깨어난 말의 유충들이 젖은 날개를 펴고 궁싯궁싯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밥알의 진기(津氣)가 생각을 이어 붙이고 정보를 저장하게도 하는 것인지 제아무리 머리가 좋은 천재도 젖만 먹던 시절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기억의 화소(畵素)는 언어일 것이어서 언어로 치환되지 못한 시간은 복원되지도 번역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일생 밥을 먹고 말을 주워섬기다가 돌아갈 날이 가까우면 곡기부터 끊는다. 곡기가 끊어지면 입도 닫힌다.
세상의 주인은 애초부터 말 아니었을까. 발도 날개도 없는 말이 인간의 몸 안에 똬리를 틀고 숙주를 장악하고 이리저리 내몰면서 분열과 화합을 획책하는 것 아닐까. 연애도 정치도, 화해도 협상도, 알고 보면 말의 조화 속이다. 말이 통하면 ‘로켓맨’과 ‘늙다리 망령’도 친구가 되고 말이 막히면 한 침상에서 일어난 부부도 남남이나 진배없어진다.
세상이 갈수록 시끄러워지는 것도 온라인 오프라인 종횡무진 오가며 힘겨루기와 판 가르기를 일삼는 말들의 불온한 지배욕 때문이다. 거칠고 탁하고 온기 없는 말들, 도발적이고 전투적인 말들이 기 싸움 샅바싸움으로 내 편 네 편을 가르며 평화를 잠식하고 불안을 유포한다.
은밀하게 서식하며 호시탐탐 바깥을 넘보는 숨은 말 떼들을 조련하고 다스려내는 일이야말로 말을 품고 말을 버리며 살아내는 인간들에게 부과된 책무, 아니 소명 아닐까. 내장된 말들이 투명한 날벌레로 다 날아올라야 방전된 배터리처럼 이윽고 고요해지는, 그것이 우리네 육신일지 모른다.
아이들이 다 자라 출가를 하고나니 다시 덩그러니 둘만 남았다. 말들도 딸들을 따라 나갔는지 둘만 남은 집이 적막하고 쓸쓸하다. 버터를 바를 줄도, MSG를 칠 줄도 모르고 본새 없이 늙어 버린 부부의 식탁도 밍밍하기 그지없다. 시계추처럼 뚝딱뚝딱, 무심하게 오가는 숟가락질이 민망해 애써 말을 지어 건네기도 한다. 찰기 없고 무미한 평양냉면처럼 말 가닥이 툭툭 끊어져 내린다.
한때 그리도 성하던 말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전쟁이 평화를 위한 것이듯 말의 궁극도 침묵인 건가. 끊어진 면발 같은 진눈깨비가 창밖으로 성글게 빗금을 긋는 오후, 재잘거리는 초록빛 혀를 다 떨쳐낸 겨울나무들이 시린 바람 속에서 묵언 정진을 하고 있다. (뉴욕신문 게재)
첫댓글 "오거리 함흥냉면집 새큼달큼한 회냉면처럼 찰지고
쫄깃한 이야기들이 진진하게 이어지던, 돌아보니 그때가 호시절이었다."
"찰기 없고 무미한 평양냉면처럼 말 가닥이 툭툭 끊어져 내린다."
수필을 일상과 철학 사이, 정관의 의자에 앉히고 싶어하는 작가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