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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론(中論)
1. 개요
이 논은 부처의 근본 교설인 연기설을 반야경의 사상에 입각해서 무자성(無自性)‧공(空) 등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귀류법(歸謬法) 등의 논법을 예리하게 구사하여 외도와 소승의 사견과 편견을 논파하는 용수(龍樹)의 중송(中頌)에 대한 청목((靑目, Pingalanetra)의 주석서이다.
2. 성립과 한역
청목(靑目)이 논의 제1품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부처는 각종 사견(邪見)을 끊고 불법(佛法)을 널리 알리고자 먼저 성문(聲聞)을 위한 가르침으로 12인연을 설하고, 나중에 대승을 위한 가르침으로 다시 불생(不生), 불멸(不滅), 불일(不一), 불이(不異) 등의 인연상(因緣相)을 설했는데, 불멸(佛滅) 후 500년이 되자 사람들이 대승에서 말하는 필경공(畢竟空)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과오를 일으키게 되었으므로, 용수가 그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해서 때문에 『중송』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요진(姚秦)시대 409년에 구마라집(鳩摩羅什, Kumarajiva)이 대사(大寺)에서 한역했으며, 별칭으로 『정관론(正觀論)』ㆍ『중관론(中觀論)』이라고도 한다.
별경명(別經名)은 『정관론(正觀論)』, 『중관론(中觀論)』이다.
3. 주석서와 이역본
청목의 『중론』 자체에 대한 주석서보다는 그 논의 모본(母本)이라 할 수 있는 용수의 『중송』의 주석서가 다수 있다. 용수 자신의 『근본중론무외소(根本中論無畏疏)』와 『십이문론』을 비롯해, 청목(靑目)의 『중론(中論)』, 무착(無着)의 『순중론의입대반야바라밀경초품법문(順中論義入大般若波羅密經初品法門)』, 안혜(安慧)의 『대승중관석론(大乘中觀釋論)』, 불호(佛護)의 『근본중소(根本中疏)』, 청변(淸辯)의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 길장(吉藏)의 『중관론소(中觀論疏)』, 담영(曇影)의 『중론의소(中論義疏)』 등이 있다.
4. 구성과 내용
이 논은 27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445개의 송과 장항석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송은 용수의 저술이고, 장항석은 청목(靑目)의 저술이다.
용수의 『중송』은 중도(中道)를 주장하여 공(空)과 가(假)를 파하고 다시 중도에 집착하는 견해도 파하여 팔부중도(八不中道), 즉 무소득(無所得)의 중도를 설한다. 귀경송의 8불게에서 보듯이, 반야경전에 입각한 대승공관(大乘空觀)의 입장에서 원시불교 이래의 연기설(緣起說)에 독자적인 해석을 부여하고 이에 의해 순차적으로 각 장에 걸쳐 부파불교뿐만 아니라 인도 철학사상의 일반까지도 원리적으로 비판했다.
청목은 중송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반론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중송에 주석을 가하고 있다. 편의를 위해 품명 뒤에 각 품에 들어 있는 송의 수를 적었다.
『중송』의 핵심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첫머리에 있는 귀경게이다. “불생(不生)과 불멸(不滅), 불상(不常)과 부단(不斷), 불일(不一)과 불이(不異), 불래(不來)와 불출(不出)의 인연을 능히 설하여 여러 희론(戱論)을 제거했으니, 여러 가르침 가운데 가장 뛰어난 가르침을 설하신 부처님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이 8가지의 부정은 곧 있음과 없음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되는데, 그 있음과 없음에 대한 부정은 다시 있음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있음의 의미를 알면 8가지의 부정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용수의 『중송』은 『반야경』에서 설해진 바와 같은 공관(空觀)이야말로 불법(佛法)의 진정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상사적 의의를 가진다. 또 대승 불교에 이론적 기초를 부여한 최초의 논서로서 대승 불교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는데, 중관 학파는 용수의 『중송』을 중심으로 하여 발생하여 유식 학파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학파를 형성하였다.
이 논과 더불어 『백론(百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이 한역됨으로써, 중국에서는 그 3가지 논을 소의로 하는 삼론종(三論宗)이 발생하게 되었다.
중론
중론(中論) 제1권
석승예서(釋僧睿序)
中論卷第一
釋僧睿序
『중론』에는 오백 개의 게송(偈頌)이 있으니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지은 것이다. 중(中)으로 이름을 삼은 것은 진실[實]을 비추고, 논(論)으로 부른 것은 말[言]을 다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이름[名]이 아니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중(中)에 붙여서 펼치고, 말은 해석이 아니라면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논(論)을 빌려서 밝힌다. 진실이 펼쳐지고 말이 분명해지면 보살의 행(行)과 도량(道場)의 비춤[照]에 대해 환하게 매듭이 풀린 듯이 알게 될 것이다.
中論有五百偈,龍樹菩薩之所造也。以中爲名者,照其實也;以論爲稱者,盡其言也。實非名不悟故,寄中以宣之;言非釋不盡故,假論以明之。其實旣宣,其言旣明,於菩薩之行,道場之照,朗然懸解矣。
중론유오백게,룡수보살지소조야。이중위명자,조기실야;이론위칭자,진기언야。실비명불오고,기중이선지;언비석불진고,가론이명지。기실기선,기언기명,어보살지행,도장지조,랑연현해의。
무릇 범부의 집착하는 미혹[滯惑]은 전도된 견해[倒見]에서 생기니 삼계(三界)는 그것 때문에 윤닉(淪溺)하고, 편벽된 깨달음[偏悟]은 생사를 싫어하는 지혜[厭智]에서 일어나니 2승(乘)의 굳건한 절개[耿介]는 그것 때문에 어그러짐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큰 깨달음[大覺]은 밝게 비추는 데에 있고 작은 지혜[小智]는 좁은 마음에 얽혀있는 줄 알 수 있다.
夫滯惑生於倒見,三界以之而淪溺;偏悟起於厭智,耿介以之而致乖。故知大覺在乎曠照,小智纏乎隘心。
부체혹생어도견,삼계이지이륜닉;편오기어염지,경개이지이치괴。고지대각재호광조,소지전호애심。
비춤이 밝지 않으면 유무(有無)를 평등하게 하여 도속(道俗)을 하나로 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앎이 다하지 않으면 중도(中途)를 건너 2제(二際)를 없앨 수 없다. 도속(道俗)이 평등해지지 않고 2제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보살의 걱정이다. 이 때문에 용수대사가 중도(中道)로써 분석하여 미혹에 빠져 있는[惑趣] 무리로 하여금 현묘한 뜻[玄指]을 바라보아 일변(一變)하게 하고, 즉화(卽化)로써 묶어 장주(莊周)의 무리로 하여금 대승의 이치에 대해 문답하는 일이 없게 하였다.
照之不曠,則不足以夷有無,一道俗;知之不盡,則未可以涉中途,泯二際。道俗之不夷,二際之不泯,菩薩之憂也。是以龍樹大士,析之以中道,使惑趣之徒,望玄指而一變;括之以卽化,令玄悟之賓,喪諮詢於朝徹。
조지불광,칙불족이이유무,일도속;지지불진,칙미가이섭중도,민이제。도속지불이,이제지불민,보살지우야。시이룡수대사,석지이중도,사혹취지도,망현지이일변;괄지이즉화,령현오지빈,상자순어조철。
넓고도 넓구나! 참으로 이로(夷路)를 충계(沖階)에서 평탄하게 하며, 현문(玄門)을 우주 내에서 열며, 혜풍(慧風)을 마른 나뭇가지[陳枚]에 부채질하며, 감로(甘露)를 마르고 시든 것[枯悴]에 흐르게 한다고 할 만하다.대개 백 개의 들보로 지은 집[百梁]이 완성되면 띠풀로 지은 집[茅茨]은 좁고 누추하여 더럽게 여기듯이 이 논이 크고 넓음을 보면 치우친 깨달음을 가진 이승의 사람[偏悟]들이 비루하고 이치에 어긋남을 알게 될 것이다.
蕩蕩焉,眞可謂坦夷路,於沖階,敞玄門;於宇內,扇慧風;於陳枚,流甘露於枯悴者矣。夫百梁之搆興,則鄙茅茨之仄陋;睹斯論之宏曠,則知偏悟之鄙倍。
탕탕언,진가위탄이로,어충계,창현문;어우내,선혜풍;어진매,류감로어고췌자의。부백량지구흥,칙비모자지측루;도사론지굉광,칙지편오지비배。
다행이구나! 이 중국[赤縣]의 땅에 홀연 영취산(靈鷲山)을 옮겨서 진산(鎭山)을 만드니 마음이 음흉한[險陂]한 변방의 사람들이 유광(流光)의 남은 은혜를 입게 되었다. 이제부터 도(道)를 담론하는 어진 사람들은 비로소 함께 진실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천축(天竺)의 여러 나라에 감히 학자의 무리에 들려면 이 논을 완미하지 않음이 없어 긴요한 것[喉衿]으로 여기고, 붓을 적셔서 해석을 편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幸哉!此區之赤縣,忽得移靈鷲,以作鎭,險陂之邊情,乃蒙流光之餘惠,而今而後,談道之賢,始可與論實矣。云天竺諸國敢預學者之流,無不翫味斯論,以爲喉衿,其染翰,申釋者,甚亦不少。
행재!차구지적현,홀득이령취,이작진,험피지변정,내몽류광지여혜,이금이후,담도지현,시가여론실의。운천축제국감예학자지류,무불완미사론,이위후금,기염한,신석자,심역불소。
지금 번역되어 나온 것은 천축 범지(梵志)로 빈가라(賓伽羅)라고 하고 진나라 말로는 청목(靑目)이라고 하는 사람이 해석한 것이다. 그 사람은 깊은 법을 믿고 이해했으나 말이 바르지 않고 맞지 않았다. 그 가운데 이치에 어긋나고 빠지고 번거롭게 중복된 것은 구마라집 법사(法師)가 모두 마름질하고 덧붙여 경전과 상통하게 하자 이치는 [남김없이] 다하게 되었지만 문장은 간혹 앞뒤로 다 좋게 고지치는 못했다.
今所出者,是天竺梵志名賓伽羅,秦言靑目之所釋也。其人雖信解深法,而辭不雅中,其中乖闕煩重者,法師皆裁而禆之,於經通之理,盡矣,文或左右未盡善也。
금소출자,시천축범지명빈가라,진언청목지소석야。기인수신해심법,이사불아중,기중괴궐번중자,법사개재이禆지,어경통지리,진의,문혹좌우미진선야。
『백론(百論)』은 밖을 다스려 삿됨을 막고 이 『중론』은 안을 깨끗이 하여 막힌 것을 흐르게 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의 해석은 깊고 넓으며, 『십이문론(十二門論)』의 관법은 정밀하고 깊은 이치에 도달했다. 이 네 가지 논을 살펴보면 참으로 해와 달이 품속에 든 것처럼 환하게 비추어 보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나는 그것을 완미하고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마침내 비루하고 졸렬함을 잊고 내가 깨달은 생각을 서문에 붙인다. 아울러 품목(品目)의 뜻도 앞에다 쓴다. 어찌 잘 해석하기를 바라겠는가? 대체로 서로 같음을 기뻐하는 마음뿐이다.
百論治外,以閑邪,斯文祛內,以流滯。大智釋論之淵博,十二門觀之精詣,尋斯四者,眞若日月入懷,無不朗然鑑徹矣。予翫之味之,不能釋手,遂復忘其鄙拙,託悟懷於一序,幷目品義題之於首。豈期能釋耶?蓋是欣自同之懷耳。
백론치외,이한사,사문거내,이류체。대지석론지연박,십이문관지정예,심사사자,진약일월입회,무불랑연감철의。여완지미지,불능석수,수부망기비졸,탁오회어일서,병목품의제지어수。기기능석야?개시흔자동지회이。
중론(中論) 제1권
용수보살(龍樹菩薩) 지음
범지(梵志) 청목(靑目)주석
요진삼장(姚秦三藏) 구마라집(鳩摩羅什)한역
박인성 번역
1.인과 연을 관찰하는 장[觀因緣品]16偈
中論觀因緣品第一 [十六偈] 중론관인연품제일 [십륙게]
龍樹菩薩造 룡수보살조
梵志靑目釋 범지청목석
姚秦三藏鳩摩羅什譯 요진삼장구마라십역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斷滅)하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네.
不生亦不滅,불생역불멸,
不常亦不斷,불상역불단,
不一亦不異,불일역불이,
不來亦不出。불래역불출。
이 연기 능히 말씀해 주시어
모든 희론(戱論)을 잘 소멸해 주시니
모든 설법자 가운데 으뜸이신 부처님께
나는 머리를 조아려 절을 드립니다.
能說是因緣,능설시인연,
善滅諸戲論,선멸제희론,
我稽首禮佛,아계수례불,
諸說中第一。제설중제일。
【문】 무엇 때문에 이 논서를 짓는가?
問曰:何故造此論?
문왈:하고조차론?
【답】 어떤 이는 모든 사물들이 대자재천(大自在天)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위뉴천(韋紐天)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화합(和合)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시간[時]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세성(世性)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변화(變化)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자연(自然)에서 생겨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미진(微塵)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無因] 한다거나, 그릇된 원인[邪因]을 둔다거나, 단멸하거나 상주한다고 하는 따위의 그릇된 봄(邪見)에 떨어져서 갖가지로 ‘나[我]’와 ‘나의 것[我所]’을 말하게 되어 바른 법(法)을 알지 못한다.
答曰:有人言萬物從大自在天生,有言從韋紐天生,有言從和合生,有言從時生,有言從世性生,有言從變生,有言從自然生,有言從微塵生。有如是等謬,故墯於無因、邪因、斷、常等邪見,種種說我、我所,不知正法。
답왈:유인언만물종대자재천생,유언종위뉴천생,유언종화합생,유언종시생,유언종세성생,유언종변생,유언종자연생,유언종미진생。유여시등류,고타어무인、사인、단、상등사견,종종설아、아소,불지정법。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모든 그릇된 봄을 끊고 부처님의 법[佛法]을 알게 해 주시고자 먼저 성문의 법에서는 12연기(因緣)를 말씀하셨고, 또 이미 마음을 닦아서 깊은 법을 감당할 수 있는 큰 마음이 있는 이를 위해서 대승의 법으로 인과 연들의 상(相)을 말씀하셨으니, 즉 “모든 법은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아, 완전히 공해서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하셨다. 『반야바라밀다경』에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살이 도량에 앉아 있을 때 12연기를 관찰하는 것이 허공과 같이 다함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고 말한 바와 같다.
佛欲斷如是等諸邪見,令知佛法故,先於聲聞法中說十二因緣。又爲已習行,有大心,堪受深法者,以大乘法說因緣相,所謂一切法不生不滅,不一不異等,畢竟空無所有。如『般若波羅蜜』中說:“佛告須菩提:‘菩薩坐道場時,觀十二因緣如虛空不可盡。’”
불욕단여시등제사견,령지불법고,선어성문법중설십이인연。우위이습행,유대심,감수심법자,이대승법설인연상,소위일절법불생불멸,불일불이등,필경공무소유。여『반약파라밀』중설:“불고수보제:‘보살좌도장시,관십이인연여허공불가진。’”
부처님께서 입적하신 후 5백 세가 지난 상법(像法)에는 사람의 근기가 둔해져서 모든 법들에 깊이 집착해서, 12연기(因緣)ㆍ5온(蘊)ㆍ12처(處)ㆍ18계(界) 등의 결정적인 상(相)을 구하기만 하여 부처님의 진의를 알지 못하고 단지 언설[文字]에 집착할 뿐이었다. 대승의 법에서 “모든 것이 완전히 공하다[畢竟空]”고 하는 말을 듣고도 무슨 이유로 공하다고 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이 공한데 어찌 죄와 복의 과보 따위가 있다고 분별하겠는가? 그러니 세제(世諦)도 제일의제(第一義諦)도 없다’는 의심을 내어 이러한 없음[空]의 상(相)을 취해서 탐착을 일으켜 완전히 공한 것에 대해서 갖가지 과실을 범한다. 용수 보살께서는 이 점들을 감안해서 이 『중론』을 지으신 것이다.
佛滅度後,後五百歲,像法中人,根轉鈍,深著諸法,求十二因緣、五陰、十二入、十八界等決定相,不知佛意,但著文字,聞大乘法中說畢竟空,不知何因緣故空,卽生疑見:若都畢竟空,云何分別有罪福報應等?如是則無世諦、第一義諦。取是空相而起貪著,於畢竟空中生種種過,龍樹菩薩爲是等故,造此『中論』。
불멸도후,후오백세,상법중인,근전둔,심저제법,구십이인연、오음、십이입、십팔계등결정상,불지불의,단저문자,문대승법중설필경공,불지하인연고공,즉생의견:약도필경공,운하분별유죄복보응등?여시칙무세체、제일의체。취시공상이기탐저,어필경공중생종종과,룡수보살위시등고,조차『중론』。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네.
不生亦不滅,불생역불멸,
不常亦不斷,불상역불단,
不一亦不異,불일역불이,
不來亦不出。불래역불출。
이 연기 능히 말씀해 주시어
모든 희론(戱論)을 잘 소멸해 주시니
모든 설법자 가운데 으뜸이신 부처님께
나는 머리를 조아려 절을 드립니다.
能說是因緣,능설시인연,
善滅諸戲論,선멸제희론,
我稽首禮佛,아계수례불,
諸說中第一。제설중제일。
이 두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했으니, 간략하게 제일의(第一義)를 말한 것이다.
以此二偈讚佛,則已略說第一義。
이차이게찬불,칙이략설제일의。
【문】 모든 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왜 단지 이 여덟 가지 일만을 들어 타파하는가?
問曰:諸法無量,何故但以此八事破?
문왈:제법무량,하고단이차팔사파?
【답】 법이 비록 헤아릴 수 없이 많긴 하나 간략하게 여덟 가지 일을 들어 모든 법을 통틀어서 타파한 것이다.
‘발생하지 않는다’란,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 논사들은 갖가지로 사물이 생겨나는 상(相)에 대해 말하니, 어떤 이는 원인과 결과가 같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원인과 결과가 다르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원인 속에 미리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자기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타자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그 둘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유(有)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무(無)로부터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렇듯이 사물이 생겨나는 상(相)에 대해 말하지만 모두 옳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후에 상세하게 말할 것이다. 사물이 생겨나는 상(相)이 확정되어 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이다.
‘소멸하지 않는다’란, 발생하지 않는데 어떻게 소멸할 수 있겠는가?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타의 여섯 가지 일도 없다.
答曰:法雖無量,略說八事,則爲摠破一切法。不生者,諸論師種種說生相:或謂因果一,或謂因果異,或謂因中先有果,或謂因中先無果,或謂自體生,或謂從他生,或謂共生,或謂有生,或謂無生。如是等,說生相皆不然,此事後當廣說。生相決定不可得故,不生。不滅者,若無生,何得有滅?以無生無滅故,餘六事亦無。
답왈:법수무량,략설팔사,칙위총파일절법。불생자,제론사종종설생상:혹위인과일,혹위인과이,혹위인중선유과,혹위인중선무과,혹위자체생,혹위종타생,혹위공생,혹위유생,혹위무생。여시등,설생상개불연,차사후당광설。생상결정불가득고,불생。불멸자,약무생,하득유멸?이무생무멸고,여륙사역무。
【문】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말로 모든 법들을 이미 다 타파했는데, 왜 다시 여섯 가지 일을 말하는가?
問曰:不生不滅已摠破一切法,何故復說六事?
문왈:불생불멸이총파일절법,하고부설륙사?
【답】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이치을 성립시키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는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진 않지만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는다는 것은 믿는다. 만약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깊이 궁구하면, 이것은 곧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왜 그런가? 만약 법이 실제로 있다면 없는 것이 아닌데, 전에는 있다가 지금 없다면 이것은 단멸하는 것이고, 먼저 자성(自性)이 있었다면 이것은 상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면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 않는다’는 이치에 들어간다.
어떤 이가 네 가지로 모든 법들을 논파하는 것을 듣고서도 여전히 네 가지 문(門)으로 모든 법들을 성립시킨다고 하는데, 이것도 옳지 않다. 같다면 연(緣)이 없을 것이고 다르다면 상속(相續)이 없을 것이니, 후에 여러 가지로 타파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答曰:爲成不生不滅義故,有人不受不生不滅,而信不常不斷。若深求不常不斷,卽是不生不滅。何以故?法若實有,則不應無;先有今無,是卽爲斷。若先有性,是則爲常。是故說不常不斷,卽入不生不滅義。有人雖聞四種破諸法,猶以四門成諸法,是亦不然。若一,則無緣;若異,則無相續。後當種種破,是故復說不一不異。
답왈:위성불생불멸의고,유인불수불생불멸,이신불상불단。약심구불상불단,즉시불생불멸。하이고?법약실유,칙불응무;선유금무,시즉위단。약선유성,시칙위상。시고설불상불단,즉입불생불멸의。유인수문사종파제법,유이사문성제법,시역불연。약일,칙무연;약이,칙무상속。후당종종파,시고부설불일불이。
어떤 이는 여섯 가지로 모든 법을 타파하는 것을 듣고서도 여전히 ‘온다’와 ‘간다’로 모든 법을 성립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온다란 모든 법이 대자재천(大自在天)ㆍ세성(世性)ㆍ극미(極微) 따위에서 오는 것을 말하며, 간다란 본래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또 모든 사물들은 발생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세간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눈으로 겁초의 곡식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본다. 왜 그러한가? 겁초의 곡식이 없으면 지금의 곡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겁초의 곡식이 없는데도 지금의 곡식이 있다면, 발생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발생하지 않는다.
有人雖聞六種破諸法,猶以來出成諸法。來者,言諸法從自在天世性微塵等來。出者,還去至本處。復次,萬物無生。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劫初穀不生。何以故?離劫初穀,今穀不可得。若離劫初穀,有今穀者,則應有生,而實不爾,是故不生。
有人雖聞六種破諸法,猶以來出成諸法。來者,言諸法從自在天世性微塵等來。出者,還去至本處。復次,萬物無生。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劫初穀不生。何以故?離劫初穀,今穀不可得。若離劫初穀,有今穀者,則應有生,而實不爾,是故不生。
【문】 만약 발생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소멸할 것이다.
問曰:若不生,則應滅。
문왈:약불생,칙응멸。
【답】 소멸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세간에서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눈으로 겁초의 곡식이 소멸하지 않는 것을 본다. 만약 소멸한다면 지금 곡식이 있지 않을 것이나 실제로는 곡식이 있다. 그러므로 소멸하지 않는다.
答曰:不滅。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劫初穀不滅。若滅,今不應有穀,而實有穀,是故不滅。
답왈:불멸。하이고?세한현견고,세한안견겁초곡불멸。약멸,금불응유곡,이실유곡,시고불멸。
【문】 만약 소멸하지 않는다면 상주할 것이다.
問曰:若不滅,則應常。
문왈:약불멸,칙응상。
【답】 상주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세간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눈으로 모든 사물이 상주하지 않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곡식의 싹이 틀 때 씨는 변해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주하지 않는다.
答曰:不常。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萬物不常。如穀芽時,種則變壞,是故不常。
답왈:불상。하이고?세한현견고,세한안견만물불상。여곡아시,종칙변괴,시고불상。
【문】 만약 상주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단멸할 것이다.
問曰:若不常,則應斷。
문왈:약불상,칙응단。
【답】 단멸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세간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눈으로 모든 사물이 단멸하지 않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곡식의 씨에서 싹이 튼다. 그러므로 단멸하지 않는다. 만약 단멸한다면 상속(相續)하지 않을 것이다.
答曰:不斷。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萬物不斷。如從穀有芽,是故不斷。若斷,不應相續。
답왈:불단。하이고?세한현견고,세한안견만물불단。여종곡유아,시고불단。약단,불응상속。
【문】 만약 그렇다면 모든 사물은 같을 것이다.
問曰:若爾者,萬物是一。
문왈:약이자,만물시일。
【답】 같지 않다. 왜 그러한가? 세간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눈으로 모든 사물이 같지 않은 것을 본다. 예를 들면 곡식의 씨가 싹을 내지 싹이 곡식의 씨를 내는 것은 아니다. 만약 곡식의 씨가 싹을 내고 싹이 곡식의 씨를 낸다면 같다고 해야 할 것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같지 않다.
答曰:不一。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萬物不一。如穀不作芽,芽不作穀。若穀作芽,芽作穀者,應是一,而實不爾,是故不一。
답왈:불일。하이고?세한현견고,세한안견만물불일。여곡불작아,아불작곡。약곡작아,아작곡자,응시일,이실불이,시고불일。
【문】 만약 같지 않다면 마땅히 다를 것이다.
問曰:若不一,則應異。
문왈:약불일,칙응이。
【답】 다르지 않다. 세간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눈으로 모든 사물이 다르지 않은 것을 본다. 만약 다르다면 왜 곡식의 싹ㆍ곡식의 줄기ㆍ곡식의 잎을 구별할 때 나무의 싹ㆍ나무의 줄기ㆍ나무의 잎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다르지 않다.
答曰:不異。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萬物不異。若異者,何故分別穀芽、穀莖、穀葉,不說樹芽、樹莖、樹葉?是故不異。
답왈:불이。하이고?세한현견고,세한안견만물불이。약이자,하고분별곡아、곡경、곡엽,불설수아、수경、수엽?시고불이。
【문】 만약 다르지 않다면, 마땅히 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
問曰:若不異,應有來。
문왈:약불이,응유래。
【답】 오는 것은 없다. 왜 그러한가? 세간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눈으로 모든 사물이 오지 않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곡식의 씨 속의 싹은 어디에서 오는 일이 없다. 만약 온다면, 마치 새가 와서 나무에 깃들 듯이 다른 곳에서 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오지 않는다.
答曰:無來。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萬物不來。如穀子中芽,無所從來。若來者,芽應從餘處來,如鳥來拪樹,而實不爾,是故不來。
답왈:무래。하이고?세한현견고,세한안견만물불래。여곡자중아,무소종래。약래자,아응종여처래,여조래천수,이실불이,시고불래。
【문】 만약 오지 않는다면, 마땅히 가는 것은 있을 것이다.
問曰:若不來,應有出。
문왈:약불래,응유출。
【답】 가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세간에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눈으로 모든 사물이 가지 않는 것을 본다. 만약 가는 것이 있다면, 마치 뱀이 구멍에서 빠져나가듯이 싹이 씨에서 나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가지 않는다.
答曰:不出。何以故?世閒現見故,世閒眼見萬物不出。若有出,應見芽從穀出,如蛇從穴出,而實不爾,是故不出。
답왈:불출。하이고?세한현견고,세한안견만물불출。약유출,응견아종곡출,여사종혈출,이실불이,시고불출。
【문】 그대가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의 이치를 풀이했는데, 나는 논을 지은 이의 말을 듣고 싶다.
問曰:汝雖釋不生不滅義,我欲聞造論者所說。
문왈:여수석불생불멸의,아욕문조론자소설。
【답】
모든 법(法)은 스스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오
타자로부터도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그 둘로부터도, 또는 원인이 없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네.
그러니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1)
答曰: 답왈:
諸法不自生, 제법불자생,
亦不從他生, 역불종타생,
不共不無因, 불공불무인,
是故知無生。 시고지무생。
‘스스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오’란, 모든 사물들은 자기로부터 발생하는 일이 없고 반드시 인(因)과 연(緣)에 의존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만일 자기로부터 발생한다면 하나의 법에 두 가지 자체(自體)가 있게 되니, 하나는 발생하는 것[生]이요 다른 하나는 발생시키는 것[生者]이다. 만일 여타의 인연들이 없이 자기로부터 발생한다면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을 것이다. 또 발생에는 다시 발생이 있게 되어 발생이 무한할 것이다. 자기가 없기 때문에 타자도 없다. 왜 그러한가? 자기가 있기 때문에 타자가 있는 것이고, 만일 자기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면 타자로부터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둘로부터 발생한다’고 한다면 두 과실이 있다. 자기로부터 발생하고 타자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일 원인이 없이 사물이 있다면 이것은 상주하는 것이리라. 이것은 옳지 않다. 만일 원인이 없다면 결과가 없다. 원인이 없는데도 결과가 있다면, 보시(布施)를 하고 지계(持戒)를 하는 이들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며, 10악(惡)을 하고 5역(逆)을 하는 이들이 천계(天界)에 태어날 것이다. 왜냐 하면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不自生者,萬物無有從自體生,必待衆因。復次,若從自體生,則一法有二體:一、謂生;二、謂生者。若離餘因,從自體生者,則無因無緣。又生更有生,生則無窮,自無故,他亦無。何以故?有自故有他。若不從自生,亦不從他生,共生則有二過,自生、他生故。若無因而有萬物者,是則爲常。是事不然,無因則無果。若無因有果者,布施、持戒等應墮地獄,十惡、五逆應當生天,以無因故。
불자생자,만물무유종자체생,필대중인。부차,약종자체생,칙일법유이체:일、위생;이、위생자。약리여인,종자체생자,칙무인무연。우생경유생,생칙무궁,자무고,타역무。하이고?유자고유타。약불종자생,역불종타생,공생칙유이과,자생、타생고。약무인이유만물자,시칙위상。시사불연,무인칙무과。약무인유과자,포시、지계등응타지옥,십악、오역응당생천,이무인고。
모든 법의 자성은
연(緣) 속에 있지 않네.
자성이 있지 않으니
타성도 있지 않네. (2)
復次, 부차,
如諸法自性, 여제법자성,
不在於緣中, 불재어연중,
以無自性故, 이무자성고,
他性亦復無。 타성역부무。
또 모든 법의 자성은 연 속에 있지 않다. 단지 연이 화합한 것이기에 이름[名字]을 얻을 따름이다. 자성이란 자체이다. 연 속에는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으니 자기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자성이 없으니 타성도 없다. 왜 그러한가? 자성이 있으므로 타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은 타성에 있어서는 또한 자성이다. 만일 자성이 타파된다면 타성도 타파된다. 그러므로 타성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 만일 자성과 타성이 타파된다면 양자가 타파되는 것이다. 원인이 없다면 큰 과실이 있다. 원인이 있다 해도 타파되는데 하물며 원인이 없다고 하는 것이랴? 4구(句) 중 어느 발생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발생하지 않는다.
諸法自性不在衆緣中,但衆緣和合,故得名字。自性卽是自體,衆緣中無自性,自性無故,不自生;自性無故,他性亦無。何以故?因自性有他性,他性於他亦是自性。若破自性,卽破他性,是故不應從他性生。若破自性、他性,卽破共義。無因則有大過,有因尚可破,何況無因。於四句中,生不可得,是故不生。
제법자성불재중연중,단중연화합,고득명자。자성즉시자체,중연중무자성,자성무고,불자생;자성무고,타성역무。하이고?인자성유타성,타성어타역시자성。약파자성,즉파타성,시고불응종타성생。약파자성、타성,즉파공의。무인칙유대과,유인상가파,하황무인。어사구중,생불가득,시고불생。
【문】 아비달마학파의 사람은 “법들이 4연(緣)에서 발생한다”고 말하는데, 왜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4연이란 무엇인가?
問曰:阿毘曇人言諸法從四緣生,云何言不生?何謂四緣?
문왈:아비담인언제법종사연생,운하언불생?하위사연?
인연ㆍ등무간연[次等緣]ㆍ
소연연[緣緣]ㆍ증상연,
이 4연(緣)에서 법들이 발생하네.
다시 제5의 연은 없네.(3)
因緣次第緣,인연차제연,
緣緣增上緣,연연증상연,
四緣生諸法,사연생제법,
更無第五緣。경무제오연。
모든 연들은 다 사연에 포함된다. 이 사연에 의지해서 모든 사물들이 발생한다. 인연(因緣)이란 모든 유위법을 말한다. 등무간연이란 과거세와 현재세의 아라한 최후의 심법(心法)과 심소법(心所法)을 제외한 그 밖의 과거세와 현재세의 심법과 심소법이다. 소연연과 증상연은 모든 법이다.
一切所有緣,皆攝在四緣,以是四緣,萬物得生。因緣,名一切有爲法;次第緣,除過去、現在阿羅漢最後心、心數法,餘過去、現在心心數法,緣緣、增上緣,一切法。
일절소유연,개섭재사연,이시사연,만물득생。인연,명일절유위법;차제연,제과거、현재아라한최후심、심수법,여과거、현재심심수법,연연、증상연,일절법。
【답】
결과가 연(緣)에서 발생하는가,
연 아닌 것에서 발생하는가?
이 연이 결과를 갖는 것인가,
이 연이 결과를 갖지 않는 것인가? (4)
答曰: 답왈:
果爲從緣生? 과위종연생?
爲從非緣生? 위종비연생?
是緣爲有果? 시연위유과?
是緣爲無果? 시연위무과?
만일 결과가 있다면 이 결과는 연(緣)에서 발생하는가, 연 아닌 것에서 발생하는가? 만일 연이 있다면 이 연은 결과를 갖는 것인가, 결과를 갖지 않는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若謂有果,是果爲從緣生?爲從非緣生?若謂有緣,是緣爲有果?爲無果?二俱不然。何以故?
약위유과,시과위종연생?위종비연생?약위유연,시연위유과?위무과?이구불연。하이고?
이 법에 의존해서 결과가 발생하기에
이 법을 연(緣)이라 하네.
만일 이 결과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찌 연 아닌 것이라 하지 않겠는가? (5)
因是法生果, 인시법생과,
是法名爲緣。 시법명위연。
若是果未生, 약시과미생,
何不名非緣? 하불명비연?
모든 연은 확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만일 결과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때를 연이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연에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을 때에 한해서 이를 연이라 하는 것이다. 연이 성립하는 것은 결과에 연유한다. 결과가 후이고 연이 전이기 때문이다. 만일 결과가 아직 있지 않다면 어찌 연이라 이름할 수 있겠는가? 물단지의 예를 보자. 물과 흙 등이 화합해서 물단지가 발생한다. 물단지를 보고 나서야 이에 의해서 물과 흙 등이 물단지의 연들이라는 것을 안다. 물단지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 어찌 물과 흙 등을 연 아닌 것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결과는 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연에서 발생하지 않는데 하물며 연 아닌 것에서랴?
諸緣無決定。何以故?若果未生,是時不名爲緣。但眼見從緣生果故,名之爲緣。緣成由於果,以果後緣先故。若未有果,何得名爲緣?如甁,以水土和合故,有甁生。見甁故,知水土等是甁緣;若甁未生時,何以不名水土等爲非緣?是故果不從緣生,緣尚不生,何況非緣。
제연무결정。하이고?약과미생,시시불명위연。단안견종연생과고,명지위연。연성유어과,이과후연선고。약미유과,하득명위연?여병,이수토화합고,유병생。견병고,지수토등시병연;약병미생시,하이불명수토등위비연?시고과불종연생,연상불생,하황비연。
결과가 미리 연(緣) 속에 있다는 것도
있지 않다는 것도 모두 있을 수 없네.
미리 없다면 무엇을 위해 연이 되며,
미리 있다면 어디에 연을 쓰겠는가? (6)
復次, 부차,
果先於緣中, 과선어연중,
有無俱不可。 유무구불가。
先無爲誰緣? 선무위수연?
先有何用緣? 선유하용연?
또 연(緣) 속에 결과가 미리 있는 것도 아니고 결과가 미리 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만약 결과가 미리 있다면 연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가 미리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결과가 미리 있지 않다면 또한 연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사물을 발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緣中先非有果,非無果。若先有果,不名爲緣,果先有故;若先無果,亦不名爲緣,不生餘物故。
연중선비유과,비무과。약선유과,불명위연,과선유고;약선무과,역불명위연,불생여물고。
【문】 이제까지 모든 연들을 한데 묶어서 타파했다. 이제 연들을 하나하나 논파하는 것을 듣고 싶다.
問曰:已摠破一切因緣,今欲聞一一破諸緣。
문왈:이총파일절인연,금욕문일일파제연。
【답】
결과는 있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없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네.
있으면서 없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네.
어떻게 인연(因緣)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7)
答曰: 답왈:
若果非有生, 약과비유생,
亦復非無生, 역부비무생,
亦非有無生, 역비유무생,
何得言有緣? 하득언유연?
만일 인연에서 결과가 발생한다면,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이거나 있으면서 없는 것 이 세 종류일 것이다. 앞의 게송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만일 ‘연 속에 결과가 미리 있다’면 발생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리 있기 때문이다. 만일 ‘결과가 미리 있지 않다’면 발생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리 있지 않기 때문이며, 또 연이 아닌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있으면서 없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란, 있으면서 없다는 것은 반은 있고 반은 없는 것을 말한다. 둘 모두에 과실이 있다. 또 있는 것은 없는 것과 모순되고 없는 것은 있는 것과 모순되는데, 어떻게 한 법에 두 상(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세 종류로 결과가 발생하는 모습을 구해 보아도 얻을 수 없으니, 어떻게 인연(因緣)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若緣能生果,應有三種:若有、若無、若有無。如先偈中說,緣中若先有果,不應言生,以先有故;若先無果,不應言生,以先無故,亦應與非緣同故。有無亦不生者,有無名爲半有半無,二俱有過。又有與無相違,無與有相違,何得一法有二相?如是三種,求果生相不可得故,云何言有因緣?
약연능생과,응유삼종:약유、약무、약유무。여선게중설,연중약선유과,불응언생,이선유고;약선무과,불응언생,이선무고,역응여비연동고。유무역불생자,유무명위반유반무,이구유과。우유여무상위,무여유상위,하득일법유이상?여시삼종,구과생상불가득고,운하언유인연?
등무간연(等無間緣)을 타파한다.
결과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을 때라면
소멸하는 일이 있을 수 없네.
소멸한 법이 어떻게 연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등무간연은 있지 않네.
次第緣者, 차제연자,
果若未生時, 과약미생시,
則不應有滅。 칙불응유멸。
滅法何能緣? 멸법하능연?
故無次第緣。 고무차제연。
심법과 심소법은 삼세(三世)에 틈이 없이 발생한다. 현재세의 심법(心法)과 심소법(心所法)의 소멸함은 미래세의 심법과 심소법에 대해 등무간연이 된다. 만일 미래세의 법이 이미 있어서 발생한다면 등무간연을 어디에 쓰겠는가? 현재세의 심법과 심소법은 머물거나 또는 머물지 않거나이다. 만일 머물지 않는다면 어떻게 등무간연이 될 수 있겠는가? 만일 머문다면 유위법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모든 유위법(有爲法)에는 항상 소멸의 상(相)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소멸했다면 미래세의 법에 대해 등무간연이 될 수 없다. 만일 소멸하는 법이 여전히 있다면 이 법은 상주하는 것이다. 만일 상주하는 것이라면 죄와 복 등이 없다. 만일 소멸하고 있을 때 미래세의 법에 대해 등무간연이 된다고 한다면, 소멸하고 있는 법이란, 반은 이미 소멸한 법이고 반은 아직 소멸하지 않은 법이어서 다시 제3의 법이 없는 것을 소멸하고 있는 법이라 한다.
諸心、心數法於三世中次第生,現在心、心數法滅,與未來心作次第緣。未來法未生,與誰作次第緣?若未來法已有,卽是生,何用次第緣?現在心、心數法無有住時。若不住,何能爲次第緣?若有住,則非有爲法。何以故?一切有爲法,常有滅相故。若滅已,則不能與作次第緣。若言滅法猶有,則是常;若常,則無罪福等。若謂滅時能與作次第緣,滅時半滅半未滅,更無第三法名爲滅時。
제심、심수법어삼세중차제생,현재심、심수법멸,여미래심작차제연。미래법미생,여수작차제연?약미래법이유,즉시생,하용차제연?현재심、심수법무유주시。약불주,하능위차제연?약유주,칙비유위법。하이고?일절유위법,상유멸상고。약멸이,칙불능여작차제연。약언멸법유유,칙시상;약상,칙무죄복등。약위멸시능여작차제연,멸시반멸반미멸,경무제삼법명위멸시。
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유위법(有爲法)들은 찰나찰나 소멸하기에 한 찰나도 머물 때가 없는데 어떻게 현재세의 법에 소멸하려는 것[欲滅]과 소멸하지 않으려 하는 것[未欲滅]이 있다고 말하는가?”
만일 그대가 한 찰나에 이 소멸하려는 법과 소멸하지 않으려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대 자신의 법을 깨뜨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대의 아비달마학파는 “소멸한 법[滅法]이 있고 소멸하지 않은 법[不滅法]이 있으며, 소멸하려는 법이 있고 소멸하지 않으려는 법이 있다. 소멸하려는 법이란 현재세의 장차 소멸하려는 법이다. 소멸하지 않으려는 법이란, 현재세의 장차 소멸하려는 법을 제외한 그 밖의 현재세의 법ㆍ과거세의 법ㆍ미래세의 법ㆍ무위법(無爲法)을 소멸하지 않으려는 법이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등무간연이 있지 않다.
又佛說一切有爲法念念滅,無一念時住,云何言現在法有欲滅、未欲滅?汝謂一念中無是欲滅、未欲滅,則破自法。汝阿毘曇說有滅法,有不滅法,有欲滅法,有不欲滅法。欲滅法者,現在法將欲滅。未欲滅法者,除現在將欲滅法,餘現在法及過去、未來無爲法,是名不欲滅法,是故無次第緣。
우불설일절유위법념념멸,무일념시주,운하언현재법유욕멸、미욕멸?여위일념중무시욕멸、미욕멸,칙파자법。여아비담설유멸법,유불멸법,유욕멸법,유불욕멸법。욕멸법자,현재법장욕멸。미욕멸법자,제현재장욕멸법,여현재법급과거、미래무위법,시명불욕멸법,시고무차제연。
소연연(所緣緣)을 타파한다.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진실하고 미묘한 법
연(緣)이 없는 이 법에
어떻게 소연연이 있겠는가? (9)
緣緣者, 연연자,
如諸佛所說, 여제불소설,
眞實微妙法, 진실미묘법,
於此無緣法, 어차무연법,
云何有緣緣? 운하유연연?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승의 법들은, 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무형(無形)ㆍ유형(有形)ㆍ유루(有漏)ㆍ무루(無漏)ㆍ유위(有爲)ㆍ무위(無爲) 등의 모든 법상(法相)들은 법성(法性)으로 들어간다. 모든 것은 다 공하며 상(相)이 없고 연(緣)이 없다. 비유하면 뭇 강물이 바다로 들어가 다같이 한 맛이 되는 것과 같다.”
진실한 법을 믿어야 하고, 방편의 말을 진실한 법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소연연이 있지 않다.
佛說大乘諸法,若有色、無色、有形、無形、有漏、無漏、有爲、無爲等諸法相,入於法性,一切皆空,無相無緣。譬如衆流入海,同爲一味,實法可信。隨宜所說,不可爲實,是故無緣緣。
불설대승제법,약유색、무색、유형、무형、유루、무루、유위、무위등제법상,입어법성,일절개공,무상무연。비여중류입해,동위일미,실법가신。수의소설,불가위실,시고무연연。
증상연을 타파한다.
모든 법은 자성이 없으므로
있음[有相]이 없네.
이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고
하는 말은 옳지 않네. (10)
增上緣者, 증상연자,
諸法無自性, 제법무자성,
故無有有相。 고무유유상。
說有是事故, 설유시사고,
是事有不然。 시사유불연。
경전에서 12연기(緣起)를 말할 때 “이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모든 법은 여러 연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자체에 확정된 자성[定性]이 없다. 자체에 확정된 자성이 없으므로 있음[有相]이 없다. 있음이 없는데 어떻게 이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증상연이 있지 않다. 부처님께서는 범부를 따라서 있다 또는 없다고 분별해서 말씀하실 따름이다.
經說十二因緣,是事有故,是事有,此則不然。何以故?諸法從衆緣生故,自無定性;自無定性故,無有有相;有相無故,何得言是事有故,是事有?是故無增上緣。佛隨凡夫分別有無故說。
경설십이인연,시사유고,시사유,차칙불연。하이고?제법종중연생고,자무정성;자무정성고,무유유상;유상무고,하득언시사유고,시사유?시고무증상연。불수범부분별유무고설。
연 일반 속에서도,각각의 연 속에서도
결과를 구할 수 없네.
연(緣)에 없는데
어떻게 연에서 나오겠는가? (11)
復次, 부차,
略廣因緣中, 략광인연중,
求果不可得。 구과불가득。
因緣中若無, 인연중약무,
云何從緣出? 운하종연출?
또 ‘연 일반 속에서…’란 구별하지 않은 연 일반 속에 결과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각각의 연 속에서도…’란 하나하나의 연 속에도 결과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연 일반 속에도 각각의 연 속에도 결과가 없는데 어떻게 결과가 연에서 나온다 하겠는가?
略者,於和合因緣中無果;廣者,於一一緣中亦無果。若略、廣因緣中無果,云何言果從因緣出?
략자,어화합인연중무과;광자,어일일연중역무과。약략、광인연중무과,운하언과종인연출?
연(緣)에 결과가 없는데도
연에서 나온다 한다면
이 결과가 어떻게
연 아닌 것에선 나오지 않겠는가? (12)
復次, 부차,
若謂緣無果, 약위연무과,
而從緣中出, 이종연중출,
是果何不從, 시과하불종,
非緣中而出? 비연중이출?
또 연에서 결과를 구할 수 없는데 (연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왜 연 아닌 것에선 나오지 않는가? 예를 들어 진흙에 물단지가 없는데 (진흙에서 물단지가 나온다고 한다면), 왜 우유에선 나오지 않는가?
若因緣中求果不可得,何故不從非緣出?如泥中無甁,何故不從乳中出?
약인연중구과불가득,하고불종비연출?여니중무병,하고불종유중출?
만일 결과가 연(緣)에서 발생한다면
이 연은 자성이 없는 것이네.
자성이 없는 것에서 발생하는데
어떻게 연에서 발생할 수 있겠는가? (13)
復次, 부차,
若果從緣生, 약과종연생,
是緣無自性, 시연무자성,
從無自性生, 종무자성생,
何得從緣生? 하득종연생?
결과는 연(緣)에서 발생하지도 않으며
연 아닌 것에서 발생하지도 않네.
결과가 있지 않으니
연과 연 아닌 것 또한 있지 않네. (14)
果不從緣生,과불종연생,
不從非緣生,불종비연생,
以果無有故,이과무유고,
緣非緣亦無。연비연역무。
또 결과가 연에서 발생한다면 이 연은 자성이 없는 것이다. 만일 자성이 없다면 없는 것[無法]인데, 없는 것이 무엇을 발생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연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연 아닌 것에서 발생하지도 않는다’란, 연이 부정되었기 때문에 연 아닌 것이라 말한다. 연 아닌 법은 실제로는 없다. 그러므로 연 아닌 것에서 발생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그 둘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결과가 없는 것이다. 결과가 없으니 연도 연 아닌 것도 없다.
果從衆緣生,是緣無自性;若無自性,則無法。無法何能生?是故果不從緣生,不從非緣生者,破緣故,說非緣,實無非緣法,是故不從非緣生。若不從二生,是則無果;無果故,緣非緣亦無。
과종중연생,시연무자성;약무자성,칙무법。무법하능생?시고과불종연생,불종비연생자,파연고,설비연,실무비연법,시고불종비연생。약불종이생,시칙무과;무과고,연비연역무。
2. 감과 옴을 관찰하는 장[觀去來品]25偈
中論觀去來品第二[二十五偈]
【문】 세간에서는 눈으로 이미 간 것[已去]ㆍ아직 가지 않은 것[未去]ㆍ지금 가고 있는 것[去時]의 3시(時)의 지음[作]이 있음을 본다. 지음이 있으니 법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問曰:世閒眼見三時有作:已去、未去、去時。以有作故,當知有諸法。
문왈:세한안견삼시유작:이거、미거、거시。이유작고,당지유제법。
【답】
이미 간 것에 감이 없네.
아직 가지 않은 것에도 감이 없네.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 없이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없네. (1)
答曰: 답왈:
已去無有去,이거무유거,
未去亦無去,미거역무거,
離已去未去,리이거미거,
去時亦無去。거시역무거。
이미 간 것에는 감이 없다. 이미 갔기 때문이다. 만일 감[去]이 없이 감[去業]이 있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아직 가지 않은 것에도 감이 없다. 아직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가고 있는 것이란 반은 이미 간 것이고 반은 아직 가지 않은 것이다.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已去無有去,已去故。若離去,有去業,是事不然。未去亦無去,未有去法故。去時名半去半未去,不離已去未去故。
이거무유거,이거고。약리거,유거업,시사불연。미거역무거,미유거법고。거시명반거반미거,불리이거미거고。
【문】
동작이 있는 곳에 감이 있네.
이것에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있네.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에는 없네.
그러므로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네. (2)
問曰: 문왈:
動處則有去,동처칙유거,
此中有去時。차중유거시。
非已去未去,비이거미거,
是故去時去。시고거시거。
거동[作業]이 있는 곳마다 감이 있다.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거동이 있음을 눈으로 본다. 이미 간 것에는 거동이 이미 사라져 없고, 아직 가지 않은 것에는 거동이 아직 없다. 그러므로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隨有作業處,是中應有去。眼見去時中有作業,已去中作業已滅,未去中未有作業,是故當知去時有去。
수유작업처,시중응유거。안견거시중유작업,이거중작업이멸,미거중미유작업,시고당지거시유거。
【답】
지금 가고 있는 것에
어떻게 감이 있겠는가?
감이 없이
지금 가고 있는 것을 얻을 수 없는데. (3)
答曰: 답왈:
云何於去時, 운하어거시,
而當有去法? 이당유거법?
若離於去法, 약리어거법,
去時不可得。 거시불가득。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감이 없이 지금 가고 있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감이 없이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마치 그릇 속에 과일이 담겨 있는 것처럼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는 것이 될 것이다.
去時有去法,是事不然。何以故?離去法,去時不可得。若離去法,有去時者,應去時中有去,如器中有果。
거시유거법,시사불연。하이고?리거법,거시불가득。약리거법,유거시자,응거시중유거,여기중유과。
만일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에게는 감이 없이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있다는 과실이 있네.
지금 가고 있는 것만에 감이 있기 때문이네. (4)
復次, 부차,
若言去時去, 약언거시거,
是人則有咎。 시인칙유구。
離去有去時, 리거유거시,
去時獨去故。 거시독거고。
또 만일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에는 감이 없고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실재한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에게는 과실이 있다. 만일 감이 없이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서로 의존하지[因待] 않는 것이 된다. 왜 그러한가? 만일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둘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감이 없이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若謂已去、未去中無去,去時實有去者,是人則有咎。若離去法,有去時,則不相因待。何以故?若說去時有去,是則爲二,而實不爾,是故不得言離去有去時。
약위이거、미거중무거,거시실유거자,시인칙유구。약리거법,유거시,칙불상인대。하이고?약설거시유거,시칙위이,이실불이,시고불득언리거유거시。
만일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다면
두 가지의 감이 있게 되네.
하나는 지금 가고 있는 것을 있게 하는 감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가고 있는 것의 감이네. (5)
復次, 부차,
若去時有去,약거시유거,
則有二種去,칙유이종거,
一謂爲去時,일위위거시,
二謂去時去。이위거시거。
또 만일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에게는 두 가지 감이 있다라는 과실이 있게 된다. 두 가지 감이란 하나는 지금 가고 있는 것을 있게 하는 감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가고 있는 것의 감이다.
若謂去時有去,是則有過。所謂有二去:一者、因去有去時;二者、去時中有去。
약위거시유거,시칙유과。소위유이거:일자、인거유거시;이자、거시중유거。
【문】 만일 두 가지 감이 있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有二去,有何咎?
문왈:약유이거,유하구?
【답】
만일 두 가지 감이 있다면
두 가는 이가 있게 되네.
가는 이 없이
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네. (6)
答曰: 답왈:
若有二去法, 약유이거법,
則有二去者。 칙유이거자。
以離於去者, 이리어거자,
去法不可得。 거법불가득。
만일 두 가지 감이 있다면 두 가는 이가 있게 된다. 왜 그러한가? 감이 있어야 가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두 감이 있고 그래서 두 가는 이가 있게 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 가고 있는 것에도 감이 없다.
若有二去法,則有二去者。何以故?因去法,有去者故。一人有二去、二去者,此則不然,是故去時亦無去。
약유이거법,칙유이거자。하이고?인거법,유거자고。일인유이거、이거자,차칙불연,시고거시역무거。
【문】 가는 이 없이 감이 있지 않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이제 3시(時)에 가는 이가 확정되어 존재한다.
問曰:離去者,無去法可爾,今三時中定有去者。
문왈:리거자,무거법가이,금삼시중정유거자。
【답】
가는 이 없이
감이 있다는 것을 얻을 수 없다면
감이 있지 않은데
어떻게 가는 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7)
答曰: 답왈:
若離於去者, 약리어거자,
去法不可得。 거법불가득。
以無去法故, 이무거법고,
何得有去者? 하득유거자?
가는 이가 없다면 감을 얻을 수 없다. 이제 감이 없는데 어떻게 3시(時)에 가는 이가 확정되어 존재한다고 말하는가?
若離於去者,則去法不可得。今云何於無去法中,言三時定有去者?
약리어거자,칙거법불가득。금운하어무거법중,언삼시정유거자?
가는 이는 가지 않네.
가지 않은 이도 가지 않네.
가는 이와 가지 않는 이 이외의
제3의 가는 자는 있지 않네. (8)
復次, 부차,
去者則不去, 거자칙불거,
不去者不去, 불거자불거,
離去不去者, 리거불거자,
無第三去者。 무제삼거자。
또 가는 이는 있지 않다. 왜 그러한가? 만일 가는 이가 있다면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는 이 또는 가지 않는 이이다. 이 둘 이외의 제3의 가는 자는 있지 않다.
無有去者。何以故?若有去者,則有二種:若去者、若不去者。若離是二,無第三去者。
무유거자。하이고?약유거자,칙유이종:약거자、약불거자。약리시이,무제삼거자。
【문】 만일 가는 이가 간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去者去,有何咎?
문왈:약거자거,유하구?
【답】
가는 이가 간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있는가?
감이 없이
가는 이는 얻을 수 없는데. (9)
答曰: 답왈:
若言去者去, 약언거자거,
云何有此義? 운하유차의?
若離於去法, 약리어거법,
去者不可得。 거자불가득。
만일 가는 이가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어서 이 가는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감이 없이는 가는 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는 이가 없는데 감이 확실하게 존재한다면 가는 이가 따로 있어서 가는 작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若謂定有去者用去法,是事不然。何以故?離去法,去者不可得故。若離去者,定有去法,則去者能用去法,而實不爾。
약위정유거자용거법,시사불연。하이고?리거법,거자불가득고。약리거자,정유거법,칙거자능용거법,이실불이。
만일 가는 이에게 감이 있다면
두 가지의 감이 있을 것이니
하나는 가는 이의 감이고
다른 하나는 감의 감이네. (10)
復次, 부차,
若去者有去, 약거자유거,
則有二種去, 칙유이종거,
一謂去者去, 일위거자거,
二謂去法去。 이위거법거。
또 만일 가는 이가 가는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면 두 가지의 과실이 있다. 가는 이는 하나인데 두 가지 감이 있게 된다. 하나는 가는 이에게 성립하고 있는 감이고, 다른 하나는 감에 성립하고 있는 가는 이이다. 가는 이가 성립하고 난 후에 가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앞의 “3시(時)에 가는 이가 확실하게 존재하고, 이 가는 이가 가는 작용을 한다는 것” 이것은 옳지 않다.
若言去者用去法,則有二過。於一去者中而有二去:一、以去法成去者;二、以去者成去法。去者成已,然後用去法,是事不然。是故先三時中,謂定有去者用去法,是事不然。
약언거자용거법,칙유이과。어일거자중이유이거:일、이거법성거자;이、이거자성거법。거자성이,연후용거법,시사불연。시고선삼시중,위정유거자용거법,시사불연。
만일 가는 이가 간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에게는 감이 없이 가는 이가 있다는
과실이 있네.
가는 이에게 감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네. (11)
復次, 부차,
若謂去者去, 약위거자거,
是人則有咎。 시인칙유구。
離去有去者, 리거유거자,
說去者有去。 설거자유거。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가는 이가 가는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에게는 감이 없이 가는 이가 있다는 과실이 있다. 왜 그러한가? 가는 이가 가는 작용을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먼저 가는 이가 있고 후에 감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옳지 않다. 그러므로 3시(時)에 가는 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만일 확실하게 결정되어 감이 존재하고 가는 이가 존재한다면 최초의 시작[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3시에서 시작을 구한다 해도 얻을 수 없다. 왜 그러한가?
若人說去者能用去法,是人則有咎。離去法,有去者。何以故?說去者用去法,是爲先有去者,後有去法,是事不然,是故三時中無有去者。
復次,若決定有去、有去者,應有初發,而於三時中求發不可得。何以故?
약인설거자능용거법,시인칙유구。리거법,유거자。하이고?설거자용거법,시위선유거자,후유거법,시사불연,시고삼시중무유거자。
부차,약결정유거、유거자,응유초발,이어삼시중구발불가득。하이고?
이미 간 것에는 시작이 없네.
아직 가지 않은 것에는 시작이 없네.
지금 가고 있는 것에는 시작이 없네.
어느 곳에서 시작이 있겠는가? (12)
已去中無發,이거중무발,
未去中無發,미거중무발,
去時中無發,거시중무발,
何處當有發?하처당유발?
왜 그러한가? 3시에 시작이 없기 때문이다.
何以故?三時中無發?
하이고?삼시중무발?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때는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없고 이미 간 것도 없네.
이 둘에 시작이 있을 것이니,
아직 가지 않은 것에 어찌 시작이 있겠는가? (13)
未發無去時,미발무거시,
亦無有已去,역무유이거,
是二應有發,시이응유발,
未去何有發?미거하유발?
이미 간 것이 없고, 아직 가지 않은 것이 없고,
지금 가고 있는 것도 없네.
모든 것에 시작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분별하는가? (14)
無去無未去,무거무미거,
亦復無去時,역부무거시,
一切無有發,일절무유발,
何故而分別?하고이분별?
만일 어떤 사람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가고 있는 것이 없으며 이미 간 것도 없다. 만일 지금 가고 있는 것이나 이미 간 것 두 곳에 시작이 있다고 한다면, 둘 모두 옳지 않다. 아직 가지 않았을 때는 아직 시작이 있지 않는데, 아직 가지 않은 것에 어찌 시작이 있겠는가? 시작이 없으니 감이 없고 감이 없으니 가는 이가 없는데 어찌 이미 간 것ㆍ아직 가지 않은 것ㆍ지금 가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若人未發,則無去時,亦無已去;若有發,當在二處,去時、已去中。二俱不然,未去時未有發故,未去中何有發?發無故,無去;無去故,無去者。何得有已去、未去、去時?
약인미발,칙무거시,역무이거;약유발,당재이처,거시、이거중。이구불연,미거시미유발고,미거중하유발?발무고,무거;무거고,무거자。하득유이거、미거、거시?
【문】 만약 감이 있지 않고 가는 이가 있지 않을지라도 마땅히 머묾과 머무는 이는 있을 것이다.
問曰:若無去、無去者,應有住、住者。
문왈:약무거、무거자,응유주、주자。
【답】
가는 이는 머물지 않네.
가지 않는 이도 머물지 않네.
가는 이와 가지 않는 이 이외에
어찌 제3자가 머무는 일이 있겠는가? (15)
答曰: 답왈:
去者則不住, 거자칙불주,
不去者不住, 불거자불주,
離去不去者, 리거불거자,
何有第三住? 하유제삼주?
만일 머묾이 있고 머무는 이가 있다면, 가는 이가 머물거나 가지 않는 이가 머무는 것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다면 마땅히 제3자가 머무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 가고 있는 이는 머물지 않는다. 감이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감의 특징[去相]과 모순되는 것을 머묾이라 이름한다. 가지 않는 이도 머물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감이 소멸했을 때 머묾이 있는 것인데 감이 있지 않다면 아예 머묾이 있지 않다. 가는 이와 가지 않는 이 이외의 제3의 머무는 이는 있을 수 없다. 만일 제3의 머무는 이가 있다면 가는 이나 가지 않는 이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는 이가 머문다고 말할 수 없다.
若有住,有住者,應去者住。若不去者住,若離此二,應有第三住。是事不然,去者不住,去未息故。與去相違,名爲住。不去者亦不住。何以故?因去法滅,故有住,無去則無住。離去者、不去者,更無第三住者。若有第三住者,卽在去者、不去者中。以是故,不得言去者住。
약유주,유주자,응거자주。약불거자주,약리차이,응유제삼주。시사불연,거자불주,거미식고。여거상위,명위주。불거자역불주。하이고?인거법멸,고유주,무거칙무주。리거자、불거자,경무제삼주자。약유제삼주자,즉재거자、불거자중。이시고,불득언거자주。
가는 이가 머문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있는가?
감이 없이는
가는 이를 얻을 수 없는데. (16)
復次, 부차,
去者若當住, 거자약당주,
云何有此義? 운하유차의?
若當離於去, 약당리어거,
去者不可得。 거자불가득。
그대가 가는 이가 머문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왜 그러한가? 감이 없이는 가는 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는 이에게 감의 특징이 있는데 어찌 머묾이 있겠는가? 감과 머묾은 모순되기 때문이다.
汝謂去者住,是事不然。何以故?離去法,去者不可得。若去者在去相,云何當有住?去住相違故。
여위거자주,시사불연。하이고?리거법,거자불가득。약거자재거상,운하당유주?거주상위고。
이미 간 것이나 아직 가지 않은 것에는 머묾이 있지 않네.
지금 가고 있는 것에도 머묾이 있지 않네.
행(行)과 지(止)의 법도
모두 감의 이치와 동일하네. (17)
復次, 부차,
去未去無住, 거미거무주,
去時亦無住, 거시역무주,
所有行止法, 소유행지법,
皆同於去義。 개동어거의。
또 만일 가는 이가 머문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지금 가고 있는 것이거나 이미 간 것이거나 아직 가지 않은 것에 있으면서 머무는 것이리라. 세 곳 모두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가는 이가 머문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감과 머묾이 타파되었듯이 행(行)과 지(止)도 타파될 것이다. 행(行)이란 이를테면 곡식의 씨로부터 상속(相續)해서 싹ㆍ줄기ㆍ잎 따위에 이르는 것과 같으며, 지(止)란 곡식의 씨가 소멸해서 싹ㆍ줄기ㆍ잎 따위가 소멸하는 것과 같다. 상속되기에 행(行)이라 이름하고 단절되기에 지(止)라 이름한다. 또 이를테면 무명을 연(緣)해서 모든 행(行)이 있고 나아가 발생을 연해서 노사(老死)가 있는 것을 행(行)이라 하고, 무명이 멸하기에 모든 행(行)이 멸하고 하는 따위를 지(止)라고 하는 것과 같다.
若謂去者住,是人應在去時、已去、未去中住,三處皆無住,是故汝言去者有住,是則不然。如破去法、住法,行、止亦如是。行者,如從穀子相續,至芽、莖、葉等;止者,穀子滅故,芽、莖、葉滅。相續故名行,斷故名止。又如無明緣諸行乃至老死,是名行。無明滅故,諸行等滅,是名止。
약위거자주,시인응재거시、이거、미거중주,삼처개무주,시고여언거자유주,시칙불연。여파거법、주법,행、지역여시。행자,여종곡자상속,지아、경、엽등;지자,곡자멸고,아、경、엽멸。상속고명행,단고명지。우여무명연제행내지로사,시명행。무명멸고,제행등멸,시명지。
【문】 그대가 갖가지 문(門)을 세워서 감과 가는 이, 머묾과 머무는 이를 타파하긴 했지만 감과 머묾의 있음이 눈에 보인다.
問曰:汝雖種種門破去、去者、住、住者,而眼見有去住。
문왈:여수종종문파거、거자、주、주자,이안견유거주。
【답】 눈에 보이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만일 감과 가는 이가 실재한다면 하나의 법(法)으로 성립하는가, 두 가지 법(法)으로 성립하는가?
둘 모두 과실이 있다. 왜 그러한가?
答曰:肉眼所見不可信,若實有去、去者,爲以一法成?爲以二法成?二俱有過。何以故?
답왈:육안소견불가신,약실유거、거자,위이일법성?위이이법성?이구유과。하이고?
감이 곧 가는 이라면
이것은 옳지 않네.
감이 가는 이와 다르다면
이것도 옳지 않네. (18)
去法卽去者,거법즉거자,
是事則不然 시사칙불연
去法異去者,거법이거자,
是事亦不然。시사역불연。
만일 감이 가는 이와 같다고 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다르다고 해도 옳지 않다.
若去法、去者一,是則不然,異亦不然。
약거법、거자일,시칙불연,이역불연。
【문】 같다고 하거나 다르다고 하는 것에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一異有何過?
문왈:일이유하과?
【답】
감이
곧 가는 이라고 한다면
행위자와 행위
이것들이 하나가 될 것이네. (19)
答曰: 답왈:
若謂於去法, 약위어거법,
卽爲是去者, 즉위시거자,
作者及作業, 작자급작업,
是事則爲一。 시사칙위일。
감이
가는 이와 다르다고 한다면
가는 이 없이 감이 있고
감이 없이 가는 이가 있는 것이네. (20)
若謂於去法,약위어거법,
有異於去者,유이어거자,
離去者有去,리거자유거,
離去有去者。리거유거자。
이와 같은 두 가지는 모두 과실이 있다. 왜 그러한가? 만일 감이 곧 가는 이라면, 이것은 착란(錯亂)된 것이니 인(因)과 연(緣)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된다. 감에 의존해서 가는 이가 있고, 가는 이를 의존해서 감이 있다. 또 감을 법(法)이라 이름하고 가는 이를 인(人)이라 한다. 인(人)은 상주하는 것이고 법(法)은 무상한 것이다. 만일 같다면, 두 가지 모두가 상주하는 것이 되거나 두 가지 모두가 무상한 것이 된다. 같다고 하는 것에는 이와 같은 과실이 있다. 만일 다르다면, 서로 배척하는 것이 된다. 감이 아직 있지 않아도 가는 이가 있을 것이고, 가는 이가 아직 있지 않아도 감이 있을 것이다. 서로 의존하지[因待] 않으니 하나의 법이 멸하더라도 하나의 법은 남아 있을 것이다. 다르다고 하는 것에는 이와 같은 과실이 있다.
如是二俱有過。何以故?若去法卽是去者,是則錯亂,破於因緣。因去有去者,因去者有去,又去名爲法,去者名爲人,人常法無常。若一者,則二俱應常,二俱無常。一中有如是等過,若異者,則相違。未有去法,應有去者;未有去者,應有去法,不相因待。一法滅,應一法在,異中有如是等過。
여시이구유과。하이고?약거법즉시거자,시칙착란,파어인연。인거유거자,인거자유거,우거명위법,거자명위인,인상법무상。약일자,칙이구응상,이구무상。일중유여시등과,약이자,칙상위。미유거법,응유거자;미유거자,응유거법,불상인대。일법멸,응일법재,이중유여시등과。
감과 가는 이 이 둘이
만일 같은 법으로 성립한다거나 다른 법으로 성립한다고 한다면
두 문(門)이 모두 성립하지 않는데
어떻게 성립하는 일이 있겠는가? (21)
復次, 부차,
去去者是二, 거거자시이,
若一異法成, 약일이법성,
二門俱不成, 이문구불성,
云何當有成? 운하당유성?
또 만일 가는 이와 감이 같은 법으로나 다른 법으로 성립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두 가지 모두 얻을 수 없다. 앞에서 이미 제3의 법이 성립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만일 성립하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면, 감과 가는 이가 없는 인연을 말하는 셈이 된다.
이제 다시 말한다.
若去者、去法有,若以一法成,若以異法成,二俱不可得。先已說無第三法成。若謂有成,應說因緣無去。無去者,今當更說:
약거자、거법유,약이일법성,약이이법성,이구불가득。선이설무제삼법성。약위유성,응설인연무거。무거자,금당경설:
감에 의해서 가는 이가 알려질 때
(이 가는 이는) 이 가는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네.
이전에 감이 있는 것이 아니니
가는 이와 감이 있지 않네. (22)
因去知去者,인거지거자,
不能用是去。불능용시거。
先無有去法,선무유거법,
故無去者去。고무거자거。
감에 의해서 가는 이가 알려질 때 이 가는 이는 이 가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이 감이 아직 있지 않을 때는 가는 이가 없으며, 또한 지금 가고 있는 것ㆍ이미 간 것ㆍ아직 가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과 성읍(城邑)이 먼저 있고 그리고 나서 사람이 성읍으로 가는 것처럼 그렇게 감과 가는 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는 이는 감에 의존해서 성립하고 감은 가는 이에 의존해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隨以何去法知去者,是去者不能用是去法。何以故?是去法未有時,無有去者,亦無去時、已去、未去。如先有人有城邑,得有所起,去法、去者則不然。去者,因去法成:去法,因去者成故。
수이하거법지거자,시거자불능용시거법。하이고?시거법미유시,무유거자,역무거시、이거、미거。여선유인유성읍,득유소기,거법、거자칙불연。거자,인거법성:거법,인거자성고。
감에 의해서 가는 이가 알려질 때
(이 가는 이는 이와) 다른 감을 쓰지 않네.
나의 가는 이에게서
두 가지 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네. (23)
復次, 부차,
因去知去者, 인거지거자,
不能用異去, 불능용이거,
於一去者中, 어일거자중,
不得二去故。 불득이거고。
또 감에 의해서 가는 이가 알려질 때, 이 가는 이는 (이와) 다른 감을 쓰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나의 가는 이에게서 두 가지 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隨以何去法知去者,是去者不能用異去法。何以故?一去者中,二去法不可得故。
수이하거법지거자,시거자불능용이거법。하이고?일거자중,이거법불가득고。
실재하는 가는 이는
세 가지의 가는 작용을 하지 않네.
실재하지 않는 가는 이도
세 가지의 가는 작용을 하지 않네. (24)
復次, 부차,
決定有去者, 결정유거자,
不能用三去 불능용삼거
不決定去者, 불결정거자,
亦不用三去。 역불용삼거。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가는 이는 세 가지의 가는 작용을 하지 않네.
그러니 감이나 가는 이,
갈 곳이 모두 없네. (25)
去法定不定,거법정불정,
去者不用三,거자불용삼,
是故去去者,시고거거자,
所去處皆無。소거처개무。
‘실재하는 가는 이’에서, ‘실재하는[決定有]’이란 실제로 존재한다는[本實有]것으로 감에 의존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감’이란 몸의 움직임[身動]이다. ‘세 가지의 감’이란 아직 가지 않은 것과 이미 간 것과 지금 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가는 이가 실재한다면, 감이 없이 가는 이가 존재할 것이고 머묾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실재하지 않는 가는 이는 세 가지의 가는 작용을 하지 않네라고 말한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가는 이’에서 ‘실재하지 않는[不決定有]’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本實無]것을 의미한다. 감에 의존할 때 가는 이라 할 수 있는데, 감이 없으니 세 가지 가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감에 의존해서 가는 이가 있는 것인데, 이전에 감이 없으니 가는 이가 없다. 어떻게 실재하지 않는 가는 이가 세 가지 가는 작용을 하겠는가?
決定者,名本實有,不因去法生。去法名身動,三種名:未去、已去、去時。若決定有去者,離去法,應有去者,不應有住,是故說決定有去者,不能用三去。若去者不決定,不決定名本實無。以因去法得名去者,以無去法故,不能用三去。因去法故,有去者;若先無去法,則無去者。云何言不決定去者用三去?
결정자,명본실유,불인거법생。거법명신동,삼종명:미거、이거、거시。약결정유거자,리거법,응유거자,불응유주,시고설결정유거자,불능용삼거。약거자불결정,불결정명본실무。이인거법득명거자,이무거법고,불능용삼거。인거법고,유거자;약선무거법,칙무거자。운하언불결정거자용삼거?
감도 가는 이의 경우와 같다. 만일 이전에 가는 이 없이 감이 실재한다면, 가는 이에 의존하지 않고 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는 이는 세 가지의 가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감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가는 이를 어디에 쓰겠는가?
이렇게 사유(思惟)하고 관찰(觀察)해 보건대 감ㆍ가는 이ㆍ갈 곳 이 법들은 모두 서로 의존한다. 감에 의존해서 가는 이가 있고 가는 이에 의존해서 감이 있다. 이 두 법에 의존해서 갈 곳이 있는 것이니, 실재한다고 말해서 안 되고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세 가지 법(法)은 허망(虛妄)하고 공(空)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가명(假名)이 있을 뿐이어서 환영과 같고 변화(變化)와 같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如去者、去法亦如是,若先離去者,決定有去法,則不因去者有去法。是故去者不能用三去法,若決定無去法,去者何所用?如是思惟觀察,去法、去者、所去處,是法皆相因待。因去法,有去者;因去者,有去法;因是二法,則有可去處。不得言定有,不得言定無,是故決定知三法虛妄,空無所有,但有假名,如幻如化。
여거자、거법역여시,약선리거자,결정유거법,칙불인거자유거법。시고거자불능용삼거법,약결정무거법,거자하소용?여시사유관찰,거법、거자、소거처,시법개상인대。인거법,유거자;인거자,유거법;인시이법,칙유가거처。불득언정유,불득언정무,시고결정지삼법허망,공무소유,단유가명,여환여화。
3. 6근(根)을 관찰하는 장[觀六情品]8偈
中論觀六情品第三[八偈]
【문】 경전에서는 여섯 근(根)이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다음과 같다.
눈[眼]ㆍ귀[耳]ㆍ코[鼻]ㆍ혀[舌]ㆍ
몸[身]ㆍ뜻[意] 등의 6정(情:根)이네.
이 눈 등 여섯 근은
색(色) 등 여섯 경계에 작용하네. (1)
問曰:經中說有六情,所謂: 문왈:경중설유륙정,소위:
眼耳及鼻舌, 안이급비설,
身意等六情。 신의등륙정。
此眼等六情, 차안등륙정,
行色等六塵。 행색등륙진。
이 중에서 눈[眼]이 안[內]의 근(根)이 되고 색(色)이 바깥의 경계가 되어 눈이 색을 보고, 나아가 뜻[意]이 안의 근이 되고 법(法)이 바깥의 경계가 되어 뜻[意]이 법(法)을 능히 인식한다.
此中眼爲內情,色爲外塵,眼能見色,乃至意爲內情,法爲外塵,意能知法。
차중안위내정,색위외진,안능견색,내지의위내정,법위외진,의능지법。
【답】 그렇지 않다. 왜 그러한가?
答曰:無也。何以故?
답왈:무야。하이고?
이 눈은
자기를 볼 수 없네.
자기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것을 보겠는가? (2)
是眼則不能,시안칙불능,
自見其己體。자견기기체。
若不能自見,약불능자견,
云何見餘物?운하견여물?
이 눈은 자기를 볼 수 없다. 왜 그러한가? 마치 등불이 자기를 비추고 또 다른 것을 비출 수 있듯이 그렇게 눈이 봄[見相]을 갖는 것이라면, 자기도 비추고 다른 것도 비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게송에서 ‘자기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것을 보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是眼不能見自體。何以故?如燈能自照,亦能照他。眼若是見相,亦應自見,亦應見他,而實不爾。是故偈中說:“若眼不自見,何能見餘物?“
시안불능견자체。하이고?여등능자조,역능조타。안약시견상,역응자견,역응견타,이실불이。시고게중설:“약안불자견,하능견여물?“
【문】 눈은 자기를 볼 수 없긴 하나 다른 것을 볼 수는 있다. 마치 불이 다른 것을 태울 수는 있으나 자기를 태우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問曰:眼雖不能自見,而能見他,如火能燒他,不能自燒。
문왈:안수불능자견,이능견타,여화능소타,불능자소。
【답】
불의 비유는
눈의 봄을 성립시키지 못하네.
이미 간 것과 아직 가지 않은 것과 지금 가고 있는 것에서
이미 다 이것에 답했네. (3)
答曰: 답왈:
火喩則不能, 화유칙불능,
成於眼見法。 성어안견법。
去未去去時, 거미거거시,
已摠答是事。 이총답시사。
그대가 불의 비유를 제시하긴 했지만 눈의 봄[見法]을 성립시키진 못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감과 옴을 관찰하는 장[觀去來品]」에서 이미 답했다. 이미 간 것에 감이 없고 아직 가지 않은 것에 감이 없고 지금 가고 있는 것에 감이 없듯이, 이미 탄 것과 아직 타지 않은 것과 지금 타고 있는 것 모두에 태움(燒)이 없다. 이렇듯이 이미 본 것과 아직 보지 않은 것과 지금 보고 있는 것 모두에 봄[見相]이 없다.
汝雖作火喩,不能成眼見法,是事「去來品」中已答。如已去中無去,未去中無去,去時中無去。如已燒、未燒、燒時,俱無有燒。如是已見、未見、見時,俱無見相。
여수작화유,불능성안견법,시사「거래품」중이답。여이거중무거,미거중무거,거시중무거。여이소、미소、소시,구무유소。여시이견、미견、견시,구무견상。
봄이 아직 보지 않았을 때라면
봄이라 하지 않네.
그런데 봄이 본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네. (4)
復次, 부차,
見若未見時, 견약미견시,
則不名爲見。 칙불명위견。
而言見能見, 이언견능견,
是事則不然。 시사칙불연。
또 눈이 아직 색을 대하지 않았을 때는 보지 못하니, 그 때를 봄이라 할 수 없다. 색을 대함으로 인하여 봄이라 한다. 그래서 게송에서 ‘아직 보지 않았을 때라면 봄이라 하지 않네’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 봄이 볼 수 있겠는가?
또 두 경우 모두 봄이 없다. 왜 그러한가?
眼未對色,則不能見,爾時不名爲見。因對色,名爲見。是故偈中說:“未見時無見,云何以見能見?”復次,二處俱無見法。何以故?
안미대색,칙불능견,이시불명위견。인대색,명위견。시고게중설:“미견시무견,운하이견능견?”부차,이처구무견법。하이고?
봄은 보지 않네.
보지 않음도 보지 않네.
봄이 타파되었다면
보는 이도 타파된 것이네. (5)
見不能有見,견불능유견,
非見亦不見。비견역불견。
若已破於見,약이파어견,
則爲破見者。칙위파견자。
봄은 보지 않는다. 앞에서 이미 과실을 말했기 때문이다. 보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봄[見相]이 없기 때문이다. 봄[見相]이 없는데 어떻게 보겠는가? 봄[見法]이 없으니 보는 이도 없다. 왜 그러한가? 만약 봄[見]을 떠나서 보는 이가 있다면 눈이 없는 이가 다른 감관[根]으로 보는 것이리라. 만약 봄이 본다면 봄에 봄[見相]이 있는 것이니 보는 이에게는 봄[見相]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게송에서 “봄이 타파되었다면 보는 이도 타파된 것이네”라고 말한 것이다.
見不能見,先已說過故。非見亦不見,無見相故。若無見相,云何能見?見法無故,見者亦無。何以故?若離見,有見者,無眼者亦應以餘情見。若以見見,則見中有見相,見者無見相,是故偈中說:“若已破於見,則爲破見者。”
견불능견,선이설과고。비견역불견,무견상고。약무견상,운하능견?견법무고,견자역무。하이고?약리견,유견자,무안자역응이여정견。약이견견,칙견중유견상,견자무견상,시고게중설:“약이파어견,칙위파견자。”
봄이 없어도 봄이 없지 않아도
보는 이를 얻을 수 없네.
보이는 이가 있지 않은데
어떻게 봄과 봄의 대상이 있겠는가? (6)
復次, 부차,
離見不離見, 리견불리견,
見者不可得。 견자불가득。
以無見者故, 이무견자고,
何有見可見? 하유견가견?
또 봄이 있다 해도 보는 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봄이 있지 않다 해도 보는 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보는 이가 있지 않은데 어떻게 봄과 봄의 대상[可見]이 있겠는가? 보는 이가 있지 않은데 누가 봄에 의해서 바깥의 색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게송에서 ‘보는 이가 있지 않은데 어떻게 봄과 봄의 대상이 있겠는가?’ 하고 말한 것이다.
若有見,見者則不成;若無見,見者亦不成。見者無故,云何有見可見?若無見者,誰能用見法分別外色?是故偈中說:“以無見者故,何有見可見?”
약유견,견자칙불성;약무견,견자역불성。견자무고,운하유견가견?약무견자,수능용견법분별외색?시고게중설:“이무견자고,하유견가견?”
봄과 봄의 대상이 있지 않으니
식(識) 등 네 법(法)이 있지 않네.
4취(取) 등의 연(緣)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7)
復次, 부차,
見可見無故, 견가견무고,
識等四法無。 식등사법무。
四取等諸緣, 사취등제연,
云何當得有? 운하당득유?
또 봄과 봄의 대상이 있지 않으니 식(識)ㆍ촉(觸)ㆍ수(受)ㆍ애(愛)의 네 법이 모두 있지 않다. 애(愛) 등이 있지 않으니 4취(取) 등 12연기의 분지(分枝)도 있지 않다.
見、可見法無故,識、觸、受、愛四法皆無,以無愛等故,四取等十二因緣分亦無。
견、가견법무고,식、촉、수、애사법개무,이무애등고,사취등십이인연분역무。
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
성(聲), 듣는 이[聞者] 등도
이와 같은 이치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모두 위에서 말한 바와 같네.(8)
復次, 부차,
耳鼻舌身意, 이비설신의,
聲及聞者等, 성급문자등,
當知如是義, 당지여시의,
皆同於上說。 개동어상설。
또 봄과 봄의 대상[可見]이 뭇 연(緣)에 귀속되기 때문에 확정된 자성[定性]이 없어 공(空)하듯이, 그 밖의 이(耳) 등의 다섯 근(根)이나 성(聲) 등의 다섯 경계[塵]도 봄이나 봄의 대상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치가 같기 때문에 별도로 설명하지 않겠다.
如見、可見法空,屬衆緣故,無決定,餘耳等五情,聲等五塵,當知亦同見、可見法。義同故,不別說。
여견、가견법공,속중연고,무결정,여이등오정,성등오진,당지역동견、가견법。의동고,불별설。
4. 오온(五蘊)을 관찰하는 장[觀五陰品]9偈
中論觀五陰品第四[九偈]
【문】 경전에서는 5온(蘊)이 있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問曰:經說有五陰,是事云何?
문왈:경설유오음,시사운하?
【답】
색(色)의 원인 없이
색을 얻을 수가 없네.
색 없이
색의 원인을 얻을 수가 없네. (1)
答曰: 답왈:
若離於色因, 약리어색인,
色則不可得 색칙불가득
若當離於色, 약당리어색,
色因不可得。 색인불가득。
‘색(色)의 원인’이란 베[布]의 원인인 실과 같은 것이다. 실을 없애면 베가 없고 베를 없애면 실이 없다. 베는 색과 같고 실은 색의 원인과 같다.
色因者,如布因縷,除縷則無布,除布則無縷。布如色,縷如因。
색인자,여포인루,제루칙무포,제포칙무루。포여색,루여인。
【문】 색의 원인 없이 색이 있다고 한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離色因有色,有何過?
문왈:약리색인유색,유하과?
【답】
색의 원인 없이 색이 있다면
이 색은 원인이 없는 것이네.
원인이 없이 법(法)이 있다면
이것은 옳지 않네. (2)
答曰: 답왈:
離色因有色, 리색인유색,
是色則無因。 시색칙무인。
無因而有法, 무인이유법,
是事則不然。 시사칙불연。
예를 들어 실 없이 베가 있다면 이 베는 원인이 없는 것이다. 원인이 없이 법(法)이 있는 일은 세간에 없다.
如離縷有布,布則無因。無因而有法,世閒所無有。
여리루유포,포칙무인。무인이유법,세한소무유。
【문】 불교의 법(法), 외도의 법, 세간의 법에 모두 원인이 없는 법이 있다. 불교의 법에는 세 무위(無爲)가 있다. 무위는 상주하는 것이므로 원인이 없는 것이다. 외도의 법에는 허공ㆍ시간ㆍ장소ㆍ신(神)ㆍ미진(微塵)ㆍ열반 따위가 있다. 세간의 법에는 허공ㆍ시간ㆍ장소 따위가 있다. 이 세 법(法)은 없는 곳이 없기 때문에 상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주하는 것이기에 원인이 없다. 그런데 그대는 무슨 까닭에 원인이 없는 법이 세간에 없다고 하는가?
問曰:佛法、外道法、世閒法中,皆有無因法。佛法有三無爲,無爲常故,無因。外道法中,虛空、時、方、神、微塵、涅槃等,世閒法,虛空、時、方等,是三法無處不有,故名爲常。常故無因,汝何以說無因法世閒所無?
문왈:불법、외도법、세한법중,개유무인법。불법유삼무위,무위상고,무인。외도법중,허공、시、방、신、미진、열반등,세한법,허공、시、방등,시삼법무처불유,고명위상。상고무인,여하이설무인법세한소무?
【답】 이 원인이 없는 법은 그저 언설(言說)이 있을 따름이다. 사유(思惟)해서 분별(分別)한 것은 모두 있지 않은 것이다. 만일 법이 인연에 의존해서 있는 것이라면 원인이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인연이 없다면 내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答曰:此無因法但有言說,思惟分別則皆無。若法從因緣有,不應言無因,若無因緣,則如我說。
답왈:차무인법단유언설,사유분별칙개무。약법종인연유,불응언무인,약무인연,칙여아설。
【문】 두 종류의 원인이 있다. 하나는 발생의 원인[作因]이고 다른 하나는 언설의 원인[言說因]이다. 이 원인이 없는 법은 발생의 원인이 없고 단지 언설의 원인이 있을 따름이다. 사람들이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問曰:有二種因:一者、作因;二者、言說因。是無因法無作因,但有言說因,令人知故。
문왈:유이종인:일자、작인;이자、언설인。시무인법무작인,단유언설인,령인지고。
【답】 언설의 원인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 허공은 「6계(界)를 관찰하는 장」에서 타파하는 바와 같다. 그 밖의 것들은 후에 논파할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분명한 것도 모두 타파되는데 하물며 극미[微塵] 따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랴? 그러므로 원인이 없는 법은 세간에 없다.
答曰:雖有言說因,是事不然。虛空,如六種中破;餘事後當破。復次,現事尚皆可破,何況微塵等不可見法。是故說無因法世閒所無。
답왈:수유언설인,시사불연。허공,여륙종중파;여사후당파。부차,현사상개가파,하황미진등불가견법。시고설무인법세한소무。
【문】 색 없이 색의 원인이 있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離色,有色因,有何過?
문왈:약리색,유색인,유하과?
【답】
만일 색 없이 원인이 있다면
이것은 결과가 없는 원인이리라.
만일 결과가 없는 원인을 말한다면
옳은 점이 없네. (3)
答曰: 답왈:
若離色有因, 약리색유인,
則是無果因。 칙시무과인。
若言無果因, 약언무과인,
則無有是處。 칙무유시처。
색이라는 결과가 없이 오직 색의 원인만이 있다면 이것은 결과가 없는 원인이다.
若除色果,但有色因者,卽是無果因。
약제색과,단유색인자,즉시무과인。
【문】 결과가 없이 원인이 있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無果有因,有何咎?
문왈:약무과유인,유하구?
【답】 결과가 없이 원인이 있는 일은 세간에 없다. 왜 그러한가? 결과가 있기에 원인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만일 결과가 없다면 어떻게 원인이라 이름할 수 있겠는가? 또 만일 원인 속에 결과가 없다면 사물이 어떻게 원인 아닌 것에서 발생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인과 연을 타파하는 장[破因緣品]에서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결과가 없이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答曰:無果有因,世閒所無。何以故?以果故,名爲因。若無果,云何名因?復次,若因中無果者,物何以不從非因生?是事如「破因緣品」中說,是故無有無果因。
답왈:무과유인,세한소무。하이고?이과고,명위인。약무과,운하명인?부차,약인중무과자,물하이불종비인생?시사여「파인연품」중설,시고무유무과인。
만일 이미 색이 있다면
색의 원인을 쓰지 않네.
만일 색이 있지 않다면
색의 원인을 쓰지 않네. (4)
復次, 부차,
若已有色者, 약이유색자,
則不用色因 칙불용색인
若無有色者, 약무유색자,
亦不用色因。 역불용색인。
또 두 경우에 색의 원인이 있을 터인데 이것은 옳지 않다. 만약 미리 있는 원인 속에 색이 있다면 색의 원인이라 하지 않는다. 만약 미리 있는 원인 속에 색이 있지 않다면 또한 색의 원인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二處有色因,是則不然。若先因中有色,不名爲色因;若先因中無色,亦不名爲色因。
이처유색인,시칙불연。약선인중유색,불명위색인;약선인중무색,역불명위색인。
【문】 두 경우라면 모두 옳지 않다. 단지 원인이 없이 색이 있을 따름이다.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二處俱不然,但有無因,色有何咎?
문왈:약이처구불연,단유무인,색유하구?
【답】
원인이 없이 색이 있다면
이것은 결코 옳지 않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색을 분별하지 않네. (5)
答曰: 답왈:
無因而有色, 무인이유색,
是事終不然。 시사종불연。
是故有智者, 시고유지자,
不應分別色。 불응분별색。
원인 속에 (색이라는) 결과가 있다는 것이나 원인 속에 (색이라는) 결과가 있지 않다는 것을 얻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원인이 없이 색이 있다는 것을 얻겠는가? 그러므로 원인이 없이 색이 있다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색을 분별하지 않는다. 분별하는 이를 범부라 이름한다. 무명과 탐욕[愛染]으로써 색을 탐착(貪著)하고 그런 후에 그릇된 봄[邪見]으로써 분별과 희론을 일으켜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거나 (원인 속에) 결과가 없다고 하는 따위를 말한다. 이제 이 중에서 색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라면 분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若因中有果,因中無果,此事尚不可得,何況無因有色。是故言:“無因而有色,是事終不然。是故有智者,不應分別色。”分別名凡夫,以無明愛染貪著色,然後以邪見生分別戲論,說因中有果、無果等。今此中求色不可得,是故智者不應分別。
약인중유과,인중무과,차사상불가득,하황무인유색。시고언:“무인이유색,시사종불연。시고유지자,불응분별색。”분별명범부,이무명애염탐저색,연후이사견생분별희론,설인중유과、무과등。금차중구색불가득,시고지자불응분별。
만일 결과가 원인과 유사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옳지 않네.
만일 결과가 원인과 유사하지 않다고 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네. (6)
復次, 부차,
若果似於因, 약과사어인,
是事則不然 시사칙불연
果若不似因, 과약불사인,
是事亦不然。 시사역불연。
또 만일 결과와 원인이 서로 유사하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 원인은 미세하고 결과는 거칠고 크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색은 힘 등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베가 실과 유사하다면 베라 이름할 수 없다. 실은 다(多)이고 베는 일(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유사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원인과 결과가 서로 유사하지 않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예를 들어 삼[麻]의 실은 명주를 이루지 않듯이 거친 실은 미세한 베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유사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두 주장 모두 이치에 맞지 않으니 색도 없고 색의 원인도 없는 것이다.
若果與因相似,是事不然。因細果麤故,因、果、色、力等各異。如布似縷,則不名布,縷多布一故,不得言因果相似。若因果不相似,是亦不然。如麻縷不成絹。麤縷無出細布,是故不得言因果不相似。二義不然,故無色、無色因。
약과여인상사,시사불연。인세과추고,인、과、색、력등각이。여포사루,칙불명포,루다포일고,불득언인과상사。약인과불상사,시역불연。여마루불성견。추루무출세포,시고불득언인과불상사。이의불연,고무색、무색인。
수온[受蔭]ㆍ상온[想蔭]ㆍ
행온[行蔭]ㆍ식온[識蔭] 등
여타의 모든 법은
다 색온[色蔭]과 동일하네. (7)
受陰及想陰,수음급상음,
行陰識陰等,행음식음등,
其餘一切法,기여일절법,
皆同於色陰。개동어색음。
(나머지) 네 온(蔭)과 모든 법도 이와 같이 사유해서 논파해야 한다.
또 이제 논을 짓는 이는 공성의 이치를 찬미하고자 게송을 읊는다.
四陰及一切法,亦應如是思惟破。又今造論者欲讚美空義故,而說偈:
사음급일절법,역응여시사유파。우금조론자욕찬미공의고,이설게:
만일 어떤 자에게 묻는 자가 있을 때
(어떤 자가) 공성(空性)이 없이 답한다면
이것은 답이 되지 못하네.
모두 그가 의심하는 것과 같게 되네. (8)
若人有問者,약인유문자,
離空而欲答,리공이욕답,
是則不成答,시칙불성답,
俱同於彼疑。구동어피의。
만일 어떤 자가 논박하고자 할 때
공성(空性)이 없이 그 과실을 말한다면
이것은 논박이 되지 못하네.
모두 그가 의심하는 것과 같게 되네. (9)
若人有難問,약인유난문,
離空說其過,리공설기과,
是不成難問,시불성난문,
俱同於彼疑。구동어피의。
사람들이 논쟁을 벌일 때는 제각기 주장하는 바가 있다. 공성(空性)의 이치가 없이 묻고 답한다면, 물음은 물음이 되지 못하고 답은 답이 되지 못해서 모두 (그들이) 의심하는 것이 되고 만다. 가령 어떤 자가 “물단지는 무상하다”고 말했을 때 묻는 자가 “무엇에 근거해서 무상하다고 하는가?” 했다고 하자. 이 물음에 “무상한 원인에서 생겼기 때문이다”고 답한다면 이것은 답이라 할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원인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되어 그것이 상주하는 것인지 무상한 것이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그가 의심하는 것과 같게 된다.
若人論議時,各有所執,離於空義而有問答者,皆不成問答,俱亦同疑。如人言甁是無常,問者言:“何以故無常?”答言:“從無常因生故。”此不名答。何以故?因緣中亦疑,不知爲常,爲無常,是爲同彼所疑。
약인론의시,각유소집,리어공의이유문답자,개불성문답,구역동의。여인언병시무상,문자언:“하이고무상?”답언:“종무상인생고。”차불명답。하이고?인연중역의,불지위상,위무상,시위동피소의。
만일 묻는 자가 그 과실을 말하고자 할 때 공성에 의지해서 “모든 법은 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논박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대가 무상함에 의거해서 나의 상주함을 논파한다면, 나도 상주함에 의거해서 그대의 무상함을 다음과 같이 논파한다.
“상주함이 없다면 업보가 없을 것이다. 눈[眼]ㆍ귀[耳] 등 법(法)들이 찰나찰나 소멸하기에 분별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과실이 있기 때문에 모두 논박이 되지 못하고 그가 의심하는 것과 같게 된다.
만일 공성(空性)에 의거해서 상주함을 논파한다면 과실이 없다. 왜 그러한가? 이 사람은 공성의 상(相)에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묻고 답하고자 한다면 공성[空法]에 의거해야 하는데 하물며 고(苦)가 없는 적멸[寂滅相]을 구하고자 하는 자에게 있어서이겠는가?
問者若欲說其過,不依於空而說諸法無常,則不名問難。何以故?汝因無常破我常,我亦因常破汝無常。若實無常,則無業報,眼、耳等諸法念念滅,亦無有分別。有如是等過,皆不成問難,同彼所疑。若依空破常者,則無有過。何以故?此人不取空相故,是故若欲問答,尚應依於空法,何況欲求離苦寂滅相者。
문자약욕설기과,불의어공이설제법무상,칙불명문난。하이고?여인무상파아상,아역인상파여무상。약실무상,칙무업보,안、이등제법념념멸,역무유분별。유여시등과,개불성문난,동피소의。약의공파상자,칙무유과。하이고?차인불취공상고,시고약욕문답,상응의어공법,하황욕구리고적멸상자。
5. 6계(界)를 관찰하는 장[觀六種品]8偈
中論觀六種品第五[八偈]
【문】 6계(界)에는 각각 확정된 상(相)이 있다. 확정된 상이 있기 때문에 6계가 있다.
問曰:六種各有定相,有定相故,則有六種。
문왈:륙종각유정상,유정상고,칙유륙종。
【답】
허공의 상(相)이 아직 있지 않을 때
허공은 없네.
만약 미리 허공이 있다면
상(相)이 없는 것이 되네. (1)
答曰: 답왈:
空相未有時, 공상미유시,
則無虛空法。 칙무허공법。
若先有虛空, 약선유허공,
卽爲是無相。 즉위시무상。
만약 아직 허공의 상(相)이 있지 않은데 미리 허공이 있다면 허공은 상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왜 그러한가? 색(色)이 없는 공간[處]이 허공의 상이기 때문이다. 색은 지어진 것[作法]이기에 무상하다. 만약 색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면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니 소멸하지 않을 것이며 그때에는 허공의 상이 없을 것이다. 색에 의존해서 색이 없는 공간이 있다. 색이 없는 공간을 허공의 상(相)이라 한다.
若未有虛空相,先有虛空法者,虛空則無相。何以故?無色處名虛空相,色是作法無常。若色未生,未生則無滅,爾時無虛空相。因色故,有無色處,無色處名虛空相。
약미유허공상,선유허공법자,허공칙무상。하이고?무색처명허공상,색시작법무상。약색미생,미생칙무멸,이시무허공상。인색고,유무색처,무색처명허공상。
【문】 만약 상(相)이 없이 허공이 있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無相有虛空,有何咎?
문왈:약무상유허공,유하구?
【답】
이 상(相)이 없는 법은
어떤 곳에도 있지 않네.
상이 없는 법에 있어서
상은 상을 띠는 일[所相]이 없네. (2)
答曰: 답왈:
是無相之法, 시무상지법,
一切處無有。 일절처무유。
於無相法中, 어무상법중,
相則無所相。 상칙무소상。
만약 상주하는 법(法)과 무상한 법 중에서 상(相)이 없는 법을 구한다면 얻을 수 없다. 논자가 말하는 바와 같은 이 유위와 무위가 어떻게 각각 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답한다.) 그러므로 발생과 머묾과 소멸은 유위(有爲)의 상이고, 발생과 머묾과 소멸의 없음은 무위(無爲)의 상이다. 만약 허공이 상이 없는 것이라면 허공은 있지 않다.
만약 전에는 상이 없다가 후에 상이 와서 상이 된다고 말한다면 이것도 옳지 않다. 전에 상이 없다면 상을 띠게 하는 법[可相]이 없다. 왜 그러한가?
若於常、無常法中,求無相法不可得。如論者言:是有、是無云何知?各有相故。生、住、滅是有爲相,無生、住、滅是無爲相。虛空若無相,則無虛空。若謂先無相,後相來相者,是亦不然。若先無相,則無法可相。何以故?
약어상、무상법중,구무상법불가득。여론자언:시유、시무운하지?각유상고。생、주、멸시유위상,무생、주、멸시무위상。허공약무상,칙무허공。약위선무상,후상래상자,시역불연。약선무상,칙무법가상。하이고?
상(相)을 갖는 것에도 상을 갖지 않는 것에도
상은 거주하지 않네.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난
다른 곳에도 거주하지 않네. (3)
有相無相中,유상무상중,
相則無所住。상칙무소주。
離有相無相,리유상무상,
餘處亦不住。여처역불주。
등이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것, 뿔이 있는 것, 꼬리 끝에 털이 나 있는 것, 목덜미가 축 늘어져 있는 것, 이것들이 소의 상(相)이다. 이 상들을 떠나서 소는 있지 않다. 만약 소가 있지 않다면 이 상들이 거주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상을 갖지 않는 법에서 상은 상을 띠는 일이 없다. 상을 갖는 법에도 상은 거주하지 않는다. 미리 상이 있기 때문이다. 물[水相]에 불의 상은 거주하지 않는다. 미리 자기의 상(相)이 있기 때문이다. 또 상을 갖지 않는 법에 상이 거주한다고 한다면 원인이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원인이 없는 것을 무[無法]라 한다. 상을 갖는 것[有相]과 상(相)과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은 항상 서로 의존[因待]하기 때문이다.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나 다시 제3의 장소에서 상을 띠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게송에서 “상을 갖는 것과 상을 갖지 않는 것을 떠난 다른 곳에도 거주하지 않네” 하고 말한 것이다.
如有峯有角,尾端有毛,頸下垂%(古*頁),是名牛相。若離是相,則無牛;若無牛,是諸相無所住。是故說於無相法中,相則無所相。有相中相亦不住,先有相故。如水相中,火相不住,先有自相故。復次,若無相中相住者,則爲無因。無因名爲無法而有相,相、可相,常相因待故。離有相、無相法,更無第三處可相。是故偈中說:“離有相無相,餘處亦不住。”
여유봉유각,미단유모,경하수%(고*혈),시명우상。약리시상,칙무우;약무우,시제상무소주。시고설어무상법중,상칙무소상。유상중상역불주,선유상고。여수상중,화상불주,선유자상고。부차,약무상중상주자,칙위무인。무인명위무법이유상,상、가상,상상인대고。리유상、무상법,경무제삼처가상。시고게중설:“리유상무상,여처역불주。”
상[相法]이 있지 않으니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法]도 있지 않네.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있지 않으니
상도 있지 않네. (4)
復次, 부차,
相法無有故, 상법무유고,
可相法亦無 가상법역무
可相法無故, 가상법무고,
相法亦復無。 상법역부무。
또 상이 거주하는 곳이 없기 때문에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法]이 없다.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도 없다. 왜 그러한가? 상에 의존해서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이 있고 상을 띠게 하는 것에 의존해서 상이 있다. 서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相無所住故,則無可相法;可相法無故,相法亦無。何以故?因相有可相,因可相有相,共相因待故。
상무소주고,칙무가상법;가상법무고,상법역무。하이고?인상유가상,인가상유상,공상인대고。
그러니 이제 상이 있지 않고
상을 띠게 하는 것도 있지 않네.
상과 상을 띠게 하는 것을 떠나
다시 사물[物]이 있지 않네. (5)
是故今無相,시고금무상,
亦無有可相,역무유가상,
離相可相已,리상가상이,
更亦無有物。경역무유물。
인과 연들 속에서 처음에서 끝까지 구해 보아도 상과 상을 띠게 하는 것의 확정을 얻을 수 없다. 이 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법들은 다 있지 않다. 모든 법들은 다 상과 상을 띠게 하는 두 법에 포함된다. 어떤 때는 상(相)이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이 되고 어떤 때는 상을 띠게 하는 것이 상이 된다. 예를 들어 연기가 불의 상이 되고 다시 불이 연기의 상이 되는 경우와 같다.
於因緣中,本末推求,相、可相決定不可得。是二不可得故,一切法皆無。一切法皆攝在相、可相二法中。或相爲可相,或可相爲相。如火以煙爲相,煙亦復以火爲相。
어인연중,본말추구,상、가상결정불가득。시이불가득고,일절법개무。일절법개섭재상、가상이법중。혹상위가상,혹가상위상。여화이연위상,연역부이화위상。
【문】 유(有)가 있지 않다면 무(無)는 있을 것이다.
問曰:若無有有,應當有無。
문왈:약무유유,응당유무。
【답】
유(有)가 없다면
어떻게 무(無)가 있겠는가?
유와 무가 이미 없으니
유와 무를 아는 자는 누구인가? (6)
答曰: 답왈:
若使無有有, 약사무유유,
云何當有無? 운하당유무?
有無旣已無, 유무기이무,
知有無者誰? 지유무자수?
무릇 사물[物]이 스스로 괴멸했거나 다른 것에 의해 괴멸했다면 이를 무(無)라 한다. 무는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유(有)에 의지해서 있다. 그러므로 유가 없다면 어떻게 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사물의 무이겠는가?
凡物若自壞,若爲他壞,名爲無。無不自有,從有而有。是故言:“若使無有有,云何當有無?”眼見耳聞尚不可得,何況無物。
범물약자괴,약위타괴,명위무。무불자유,종유이유。시고언:“약사무유유,운하당유무?”안견이문상불가득,하황무물。
【문】 유가 있지 않기에 무도 있지 않다. (그러나) 유와 무를 아는 자는 있을 것이다.
問曰:以無有有故無亦無,應當有知有無者。
문왈:이무유유고무역무,응당유지유무자。
【답】 만약 (유와 무를) 아는 자가 있다면 유에 있거나 무에 있을 것이다. 유와 무가 이미 타파되었으므로 (유와 무를) 아는 자도 같이 타파된다.
答曰:若有知者,應在有中,應在無中。有無旣破,知者亦同破。
답왈:약유지자,응재유중,응재무중。유무기파,지자역동파。
그러므로 허공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며
상(相)도 아니고 상을 띠게 하는 것[可相]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그 밖의 다섯도 허공과 같네. (7)
是故知虛空,시고지허공,
非有亦非無,비유역비무,
非相非可相,비상비가상,
餘五同虛空。여오동허공。
허공에서 갖가지 상(相)을 구해 보아도 얻을 수 없듯이, 그 밖의 다섯 가지도 이와 같다.
如虛空,種種求相不可得;餘五種亦如是。
여허공,종종구상불가득;여오종역여시。
【문】 허공은 최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최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왜 먼저 타파하는가?
問曰:虛空不在初,不在後,何以先破?
문왈:허공불재초,불재후,하이선파?
【답】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은 연들이 화합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타파된다. 식(識)은 고(苦)와 낙(樂)의 원인이기 때문에, 무상하게 변이하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쉽게 논파된다. 허공은 이와 같은 상(相)이 없고 단지 범부가 있다고 희망하는 것일 따름이다. 그래서 먼저 타파한다. 또 허공은 4대(大)를 지닌다. 4대를 인연으로 해서 식(識)이 있다. 그러므로 먼저 근본이 되는 것을 타파하면 그 밖의 것은 저절로 타파된다.
答曰:地、水、火、風,衆緣和合故易破;識以苦樂因故,知無常變異故易破;虛空無如是相,但凡夫悕望爲有,是故先破。復次,虛空能持四大,四大因緣有識,是故先破根本,餘者自破。
답왈:지、수、화、풍,중연화합고역파;식이고악인고,지무상변이고역파;허공무여시상,단범부희망위유,시고선파。부차,허공능지사대,사대인연유식,시고선파근본,여자자파。
【문】 세간의 사람들은 모든 법의 있음[有]이나 없음[無]을 본다. 그대는 왜 홀로 세상과 상반되게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問曰:世閒人盡見諸法是有是無,汝何以獨與世閒相違,言無所見?
문왈:세한인진견제법시유시무,여하이독여세한상위,언무소견?
【답】
지혜가 얕은 사람은 모든 법의
있음[有]이나 없음[無]를 보네.
그러니 봄[見]이 멸한 안은(安隱)한 법을
보지 못하네. (8)
答曰: 답왈:
淺智見諸法, 천지견제법,
若有若無相, 약유약무상,
是則不能見, 시칙불능견,
滅見安隱法。 멸견안은법。
만약 어떤 사람이 아직 도(道)를 얻지 못했다면 법들의 실상(實相)을 보지 못한다. 봄[見]을 사랑하기 때문에 갖가지 희론이 생긴다. 법(法)이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이를 있다[有]고 여겨서 상(相)을 취해 “있다”라고 말한다. 법이 소멸하는 것을 볼 때 이를 단멸한다[斷]고 여겨서 상을 취해서 “없다”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이[智者]는 모든 법이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없다고 보는 것[無見]을 멸하고, 모든 법이 소멸하는 것을 볼 때 있다고 보는 것[有見]을 멸한다. 그러므로 비록 모든 법들을 보는 것[所見]이 있다 할지라도 모두 환영과 같고 꿈과 같다. 나아가 무루도(無漏道)를 보는 것[見]도 멸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보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봄[見]이 멸한 안은(安隱)한 법을 보지 못한다면 있음[有]를 보거나 없음[無]을 보게 된다.
若人未得道,不見諸法實相,愛見因緣故,種種戲論。見法生時,謂之爲有,取相言有;見法滅時,謂之爲斷,取相言無。智者見諸法生,卽滅無見;見諸法滅,卽滅有見。是故於一切法雖有所見,皆如幻如夢。乃至無漏道見尚滅,何況餘見。是故若不見滅,見安隱法者,則見有見無。
약인미득도,불견제법실상,애견인연고,종종희론。견법생시,위지위유,취상언유;견법멸시,위지위단,취상언무。지자견제법생,즉멸무견;견제법멸,즉멸유견。시고어일절법수유소견,개여환여몽。내지무루도견상멸,하황여견。시고약불견멸,견안은법자,칙견유견무。
6.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를 관찰하는 장[觀染染者品]10偈
中論觀染染者品第六[十偈]
중론관염염자품제륙[십게]
【문】 경전에서 탐욕ㆍ증오[瞋恚]ㆍ무지[愚癡]는 세간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탐욕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애(愛)라고도 하고 착(著)이라고도 하고 염(染)이라고도 하고 음욕(婬欲)이라고도 하고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이름들이 있다. 이것은 결사(結使)로서 중생에 의지한다. 중생을 물든 자[染者]라 하고 탐욕을 물듦[染法]이라 한다. 물듦과 물든 자가 있기 때문에 탐욕이 있다. 그 밖의 둘도 이와 같다. 증오[瞋]가 있기에 증오하는 자[瞋者]가 있고 무지[癡]가 있기에 무지한 자[癡者]가 있다. 이 3독(毒)이 인연이 되어서 3업(業)이 일어난다. 3업이 인연이 되어서 3계(界)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법들이 있다.
問曰:經說貪欲、瞋恚、愚癡是世閒根本。貪欲有種種名,初名愛,次名著。次名染,次名婬欲,次名貪欲,有如是等名字,此是結使,依止衆生。衆生名染者,貪欲名染法。有染法、染者故,則有貪欲,餘二亦如是。有瞋則有瞋者,有癡則有癡者,以此三毒因緣起三業,三業因緣起三界,是故有一切法。
문왈:경설탐욕、진에、우치시세한근본。탐욕유종종명,초명애,차명저。차명염,차명음욕,차명탐욕,유여시등명자,차시결사,의지중생。중생명염자,탐욕명염법。유염법、염자고,칙유탐욕,여이역여시。유진칙유진자,유치칙유치자,이차삼독인연기삼업,삼업인연기삼계,시고유일절법。
【답】 경전에서는 비록 3독의 이름이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체를 구할 수 없다. 왜 그러한가?
答曰:經雖說有三毒名字,求實不可得。何以故?
답왈:경수설유삼독명자,구실불가득。하이고?
만약 탐욕[染法]을 떠나
먼저 스스로 탐욕을 내는 이[染者]가 있다면
이 탐욕을 내는 이[染欲者]에 의존해서
탐욕이 생길 것이네. (1)
若離於染法,약리어염법,
先自有染者,선자유염자,
因是染欲者,인시염욕자,
應生於染法。응생어염법。
만약 탐욕을 내는 이가 없다면
어떻게 탐욕이 있겠는가?
탐욕이 있을 때든 탐욕이 없을 때든
탐욕을 내는 이도 이와 같네. (2)
若無有染者,약무유염자,
云何當有染?운하당유염?
若有若無染,약유약무염,
染者亦如是。염자역여시。
만약 먼저 탐욕을 내는 이가 확정되어 존재한다면 다시 탐욕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탐욕을 내는 이가 이미 탐욕을 냈기 때문이다. 만약 먼저 탐욕을 내는 이가 없다면 또한 다시 탐욕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탐욕을 내는 이가 있고 나서야 탐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만약 먼저 탐욕을 내는 이가 없다면 탐욕의 대상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탐욕[染法]도 이와 마찬가지다. 만약 먼저 사람이 없이 탐욕이 있다면, 이것은 원인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마치 장작이 없이 불이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먼저 탐욕이 없다면 탐욕을 내는 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게송에서 ‘탐욕이 있을 때든 탐욕이 없을 때든 탐욕을 내는 이도 이와 같네.’라고 말한 것이다.
若先定有染者,則不更須染,染者先已染故。若先定無染者,亦復不應起染,要當先有染者,然後起染。若先無染者,則無受染者,染法亦如是。若先離人,定有染法,此則無因,云何得起?似如無薪火。若先定無染法,則無有染者,是故偈中說:“若有若無染,染者亦如是。”
약선정유염자,칙불경수염,염자선이염고。약선정무염자,역부불응기염,요당선유염자,연후기염。약선무염자,칙무수염자,염법역여시。약선리인,정유염법,차칙무인,운하득기?사여무신화。약선정무염법,칙무유염자,시고게중설:“약유약무염,염자역여시。”
【문】 만약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전후로 서로 의존해서 발생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리라.) 만약 동시에 발생한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問曰:若染法、染者先後相待生,是事不可得者,若一時生,有何咎?
문왈:약염법、염자선후상대생,시사불가득자,약일시생,유하구?
【답】
탐욕을 내는 이와 탐욕이
동시에 성립한다는 것은 옳지 않네.
탐욕을 내는 이와 탐욕이 동시라면
서로 의존하는 일이 없을 것이네. (3)
答曰: 답왈:
染者及染法, 염자급염법,
俱成則不然。 구성칙불연。
染者染法俱, 염자염법구,
則無有相待。 칙무유상대。
만약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동시에 성립한다면 서로 의존하지 않을 것이다. 탐욕을 내는 이에 의존하지 않고 탐욕이 있거나 탐욕에 의존하지 않고 탐욕을 내는 이가 있다면, 이 둘은 상주하는 것이리라. 원인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상주한다고 한다면 과실이 많아 해탈하지 못할 것이다.
또 이제 같음과 다름으로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를 타파해야 하겠다. 왜 그러한가?
若染法、染者一時成,則不相待。不因染者有染法,不因染法有染者,是二應常已,無因成故。若常,則多過,無有解脫法。復次,今當以一異法破染法、染者。何以故?
약염법、염자일시성,칙불상대。불인염자유염법,불인염법유염자,시이응상이,무인성고。약상,칙다과,무유해탈법。부차,금당이일이법파염법、염자。하이고?
탐욕을 내는 이와 탐욕이 같다면
같은 법이 어떻게 합하겠는가?
탐욕을 내는 이와 탐욕이 다르다면
다른 법이 어떻게 합하겠는가?
染者染法一,염자염법일,
一法云何合?일법운하합?
染者染法異,염자염법이,
異法云何合?이법운하합?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는 같은 법으로 합하거나 다른 법으로 합한다. 만약 같다면 합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러한가? 같은 법이 어떻게 자기와 합하겠는가? 마치 손가락 끝이 자기를 감촉할 수 없듯이. 만약 다른 법으로 합한다면 이것도 얻을 수 없다. 왜 그러한가? 다른 법으로 성립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각각 성립해 있기에 끝내 다시 합할 필요가 없다면, 설령 합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다르다.
또 같음과 다름을 모두 얻을 수 없다. 왜 그러한가?
染法、染者,若以一法合,若以異法合,若一則無合。何以故?一法云何自合?如指端不能自觸。若以異法合,是亦不可。何以故?以異成故。若各成竟,不須復合,雖合猶異。復次,一異俱不可。何以故?
염법、염자,약이일법합,약이이법합,약일칙무합。하이고?일법운하자합?여지단불능자촉。약이이법합,시역불가。하이고?이이성고。약각성경,불수부합,수합유이。부차,일이구불가。하이고?
같아야 합한다고 한다면
짝이 없이 합할 것이네.
달라야 합한다고 한다면
짝이 없이 합할 것이네. (5)
若一有合者,약일유합자,
離伴應有合 리반응유합
若異有合者,약이유합자,
離伴亦應合。리반역응합。
만약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같기에 합한다고 억지로 그래 본다면, 여타의 인연이 없이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있을 것이다. 또 만약 같다면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 두 이름이 있지 않을 것이다. 탐욕은 법(法)이고 탐욕을 내는 이는 사람이다. 만약 사람과 법이 같다면, 큰 혼란이 있을 것이다.
만약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다르기에 합한다고 말한다면 여타의 인연을 기다리지 않고 합할 것이다. 만약 다른데도 합한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합할 것이다.
若染、染者一,强名爲合者,應離餘因緣,而有染、染者。復次,若一,亦不應有染、染者二名。染是法,染者是人。若人、法爲一,是則大亂。若染、染者各異,而言合者,則不須餘因緣而有合。若異而合者,雖遠亦應合。
약염、염자일,강명위합자,응리여인연,이유염、염자。부차,약일,역불응유염、염자이명。염시법,염자시인。약인、법위일,시칙대란。약염、염자각이,이언합자,칙불수여인연이유합。약이이합자,수원역응합。
【문】 같은 것이 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다 치자. 눈이 다른 것을 볼 때 함께 합하는 것이다.
問曰:一不合可爾,眼見異法共合。
문왈:일불합가이,안견이법공합。
【답】
만약 다르기에 합한다고 한다면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는 무엇인가?
이 두 상(相)은 먼저 다르기에
연후에 합한다고 말하는 것이네. (6)
答曰: 답왈:
若異而有合, 약이이유합,
染染者何事? 염염자하사?
是二相先異, 시이상선이,
然後說合相。 연후설합상。
만약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먼저 다름이 있기에 이후에 합한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합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가? 이 두 상(相)은 먼저 이미 다르고 이후에 합한다고 억지로 말하는 것이다.
若染、染者先有決定異相,而後合者,是則不合。何以故?是二相先已異,而後强說合。
약염、염자선유결정이상,이후합자,시칙불합。하이고?시이상선이이,이후강설합。
만약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먼저 각각 다름이 성립한다면
이미 다름이 성립해 있는데
왜 합한다고 말하는가? (7)
復次, 부차,
若染及染者, 약염급염자,
先各成異相, 선각성이상,
旣已成異相, 기이성이상,
云何而言合? 운하이언합?
또 만약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가 먼저 각각 다름이 성립한다면 그대는 지금 왜 굳이 합함을 말하는가?
若染、染者先各成別相,汝今何以强說合相?
약염、염자선각성별상,여금하이강설합상?
다름이 성립하지 않기에
그대는 합하고자 하네.
합함이 끝내 성립하지 않기에
다시 다름을 말하네. (8)
復次, 부차,
異相無有成, 이상무유성,
是故汝欲合, 시고여욕합,
合相竟無成, 합상경무성,
而復說異相。 이부설이상。
또 그대는 이미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의 다름이 성립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합함[合相]을 말한다. 그러나 합함에는 과실이 있다.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는 성립하지 않았는데 그대는 합함을 성립하게 하기 위해 다시 다름[異相]을 말한다. 그대 스스로 확정해 놓고서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셈이다.
汝已染、染者異相不成故,復說合相。合相中有過,染、染者不成,汝爲成合相故,復說異相。汝自已爲定,而所說不定。何以故?
여이염、염자이상불성고,부설합상。합상중유과,염、염자불성,여위성합상고,부설이상。여자이위정,이소설불정。하이고?
다름이 성립하지 않으니
합함이 성립하지 않네
어떤 다름 속에서
합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9)
異相不成故,이상불성고,
合相則不成。합상칙불성。
於何異相中,어하이상중,
而欲說合相?이욕설합상?
이 중에서는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의 다름이 성립하지 않기에 합함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대는 어떤 다름 속에서 합함을 말하고자 하는가?
以此中染、染者異相不成故,合相亦不成。汝於何異相中而欲說合相?
이차중염、염자이상불성고,합상역불성。여어하이상중이욕설합상?
이와 같이 탐욕과 탐욕을 내는 이는
합함도 합하지 않음도 성립하지 않네.
모든 법들 또한 이와 같이
합함도 합하지 않음도 성립하지 않네. (10)
復次, 부차,
如是染染者, 여시염염자,
非合不合成。 비합불합성。
諸法亦如是, 제법역여시,
非合不合成。 비합불합성。
또 증오[恚]와 무지[癡]도 탐욕[染]과 같다. 모든 번뇌와 모든 법도 3독과 같다. 전도 아니고 후도 아니며, 합해지는 것도 아니고 흩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 같이 인과 연들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如染,恚、癡亦如是。如三毒、一切煩惱、一切法亦如是。非先非後,非合非散等,因緣所成。
中論卷第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여염,에、치역여시。여삼독、일절번뇌、일절법역여시。비선비후,비합비산등,인연소성。
중론권제일
계묘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