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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삶
시 19:7-14
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1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13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7-14 / 여호와 주님의 법 온전하여라. 생기가 돋게 하신다. 여호와 주님의 명령 미쁘시어라. 사람살이 둔한 사람 깨우치신다. 8) 여호와 주님의 가르침 곧기도 하여라. 마음 기쁘게 하신다. 여호와 주님의 계명 깨끗하기도 하여라. 사람 눈뜨게 하신다. 9) 여호와 주님 모시고 사는 길 참으로 순결하여라. 그런 사람 영원히 살리라. 여호와 주님의 판결 참되어라. 하나같이 바르다. 10) 이 모는 것 금보다, 그 어떤 순금보다도 더 소중하다. 달디단 꿀보다, 꿀송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꿀보다도 더 달아라. 11) 그래요, 주님의 종 이것이 그 모든 것 다 깨달아 알고 있다 해도 그리하여 잘하였다 주님의 상을 듬뿍 받았다 해도 12) 자기 허물 누군들 다 알 수 있을까요? 알지 못하고 짓는 잘못 깨끗하게 해주셔요. 13) 알면서도 짓는 잘못 짓지 않게 해주셔요. 그런 잘못에 치여 살게 하지 마셔요. 그제서야 하고 많은 죄 아랑곳없이 온전하리이다. 깨끗하리이다. 14) 내 하는 말 내 생각이 주님의 마음속까지 흐뭇하게 하소서. 든든한 나의 바위, 나의 구원자, 여호와 우리 주님.
하나님의 율법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7-10) 시편 19편의 앞부분의 하나님(엘로힘)이 뒷 부분에서는 여호와로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여호와는 율법을 주신 언약의 하나님으로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즉, 이전까지는 자연계시로서의 하나님을 이야기하였다면, 본 단락부터는 특별계시로서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7절부터 9절까지 율법, 증거, 교훈, 계명,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법 등 여섯 가지 용어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은 성도의 삶을 회복시키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시어 기쁨에 이르게 합니다. 또한 그 누구도 알 수 있게 쉬우며, 변함이 없어 흔들리지 않고,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순금보다도 귀하고, 송이꿀 보다도 더 달아 이 세상의 어떠한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을 주는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구속자이신 여호와여(11-14) 구약시대의 율법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하는 안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안내서에 따라서 경고를 받으며 이 안내서를 지켜서 상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율법과 신명기 역사가 전해주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원을 받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상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완전하지 않기에 때때로, 의도하지 않아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늘 주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죄에 대하여서 민감하고, 또한 회개하여 죄에서 놓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죄는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시인은 여호와를 반석이요 구속자라고 고백합니다. 반석은 거대한 산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죄를 물리치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이것을 이겨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서 성도의 삶은 기도와 믿음의 행함으로, 입의 말, 마음의 묵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예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적 용 : 말씀 가운데 주님을 만나시나요? 기도 가운데 주님을 만나시나요? 예배 가운데 주님을 만나시나요? 삶에서 주님을 만나고 삶에서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숲에 버드나무와 참나무가 살고 있었는데, 참나무가 버드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버드나무야, 너는 조그만 바람에도 가지가 휘어지고 쓰러질 것 같은데 그런 몸을 가지고 어떻게 숲에서 살아갈 수 있겠니?" 그러자 버드나무가 대답했습니다. "힘이란 자랑하는 것이 아니야, 뽐내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우리 부모님은 항상 말씀하셨어." 마침 그때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버드나무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잘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버드나무를 비웃으며 보란 듯이 뻣뻣하게 몸을 세웠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와서 꼿꼿한 참나무를 두 동강 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버드나무는 모진 바람에도 바람 따라 순종하며 잘 참고 견디어 냈습니다.
< 설 교 >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
오늘의 시편을 쓰신 다윗은 새벽 여명의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1-6절의 말씀은 자연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 7-11절에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하심, 12-14에는 일상생활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시를 통하여 우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있어서, 깊이에 있어서, 그 포용력에 있어 너무 뛰어나서 이 시는 가장 위대한 시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시편 주경가인 아놀드 B. 로즈 (Arnold B. Rhods)박사는 본래 두 개의 독립된 시를 하나로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첫 번째 시는 1-6절까지인데, 우주 만물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의 시는 7-14의 말씀으로 율법을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계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즈 박사는 두 편의 시를 하나로 만들게 된 것은 1-6의 말씀만 가지고는 유대인의 신앙을 충분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연을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완전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1-6절의 말씀 속에 시인은 태양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환한 대낮에 우주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라고 보면 가장 화려한 솔로를 맡아 노래하는 것은 태양이었습니다.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어쩌면 그 옛날에 이런 시를 쓸 수 있었는지 유대인들을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인은 아침 일찍 해뜨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동쪽 이 끝에서 태양이 두둥실 떠올라서 하루 종일 대지를 뜨겁게 달구더니 저녁이 되니 저 끝으로 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어주신 만물 중에 태양은 정말 아름다운 별입니다.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 질 때까지 태양은 신랑 신부의 신혼부부 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기뻐하고 자신의 힘과 참을성을 보이면서 인내심으로 달리는 장사처럼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하심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오묘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구는 이 온 우주 안에서 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온실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태양 빛은 참으로 골고루 비추고 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데, 태양에서 조금만 멀어진다면 지구는 얼음덩어리가 되고,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진다면 이 지구는 불바다가 될 것입니다. 지구의 크기가 10%만 커진다고 하여도, 이 지구상에는 생물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됩니다. 달이 지구를 돌아가는데 좀 가까워지고 싶다고 다가오면 바닷물이 이 지구를 뒤덮고 말 것입니다. 지구의 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는데, 이 기울기가 없이 그대로 태양이 적도 위에 머물러 있다면 4계절의 변화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환경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진 것을 보면서도 창조설을 부인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만나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속하시고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중점적으로 7-14의 말씀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1-6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칭은 엘(El)이란 하나님인데, 7-1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칭은 여호와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은 엘이었고,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구속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셨으니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실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씀으로 다가오셨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함께 존재하시는 하나님, 인간에게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이시므로 아들과 함께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극치가 바로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우리에게 오신 말씀이십니다.
여기서 율법이라는 말을 여러 다른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율법, 증거, 8절에도 교훈과 계명, 9절에서 도와 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 시편119편에서는 수없이 다른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 증거, 주의 도, 법도, 명령, 율례, 계명, 판단, 말씀, 규례, 교훈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라고 하면 너무나 무겁고 거부감이 있는 구약적인 용어이니 신구약 성경을 망라할 수 있고,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말씀"으로 통일하려고 합니다.
10절로 먼저 넘어가보면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순금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사상, 곧 배금사상에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꿀과 송이꿀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데 이것을 쾌락주의라고 봅니다.
인생을 살아보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물질과 정신과의 싸움은 하루도 그칠 날이 없습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느냐? 아니면 정신이 물질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돈이라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인데, 우리 생활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데, 이것이 많아도 탈이 나고, 적어도 참으로 불편합니다. 세상에 다 잘 살던지, 다 못 살던지 하면 상관이 없는데,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가난하다는데, 여기서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질이 정신세계를 지배해버리면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고 그 물질은 양심을 마비시키고, 정신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과 신앙으로 물질을 지배하고 물질이 주는 피해를 극복한다고 하지만, 인간은 결코 물질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물질이란 결코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이 존재하는 한에 있어 물질과 함께 가야 합니다.
제가 목회자가 되고 보니 돈과 돈의 흐름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감리교회를 이루신 존 웨슬레 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세 가지를 강조하였습니다. 1) 돈은 벌 수 있는 대로 벌어라. 2) 돈은 절약할 수 있는 대로 절약하라. 3) 돈은 쓸 수 있는 대로 쓰라고 했습니다. 명심해야할 원칙이라고 봅니다.
돈이 돌아다닐 때에는 1만이 1만원의 가치만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1만원이 아니라, 10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쓰여질 수 있도록 값지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어떤 교우님들을 보면 정성스럽게 벌어 정말 정성스럽게 사용하시는 분을 봅니다.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보아서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황금만능주의와 쾌락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골든 에이지- Golden Age"라고 하여 사회의 진보가 최고조에 이르러 행복과 평화가 가득한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황금, 은, 청동, 철을 가지고 인간 삶의 질과 시대를 구분하려고 하였습니다. 황금만능주의가 아니라, 골든 에이지 곧 황금시대, 행복과 평화의 시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의 쾌락주의는 탁류문화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찰나에 만족하려는 이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찰나라는 말은 우리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불교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손가락 한번 튀기는 시간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쾌락을 추구하는데 이것을 찰나주의라고도 합니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현재의 쾌락만을 추구하려는 사고방식입니다. 꿀을 찾는 나비와 벌과 같습니다. 오늘 기분이 좋고 즐거웠으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 육신의 정욕만을 위하여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성경을 읽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있어야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이 66권이나 되는데, 좀 짧게 쓰셨으면 읽어보기 좋은데 66권이나 되니 하루에 몇 장씩 읽어도 일년이 걸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길게 써놓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복을 주신다고 하는 말씀인데, 그렇게 여러 번 다시 강조하시고 다시 예를 들면서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가령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한두 권의 책으로 쓰셨다고 하는 것보다 무려 66권이라는 책에다 사랑하고 있다고 하시니 얼마나 귀한 사랑입니까?
■ 극작가 나연숙 씨가 있는데, 남편은 의사였습니다. 이 분이 주위의 권고로 연예인 교회의 성경공부반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목사님이 물어봅니다. 여기서 성경을 한 번 읽으신 분 손들어보세요. 두 번 읽은 분, 세 번, 다섯 번, 열 번, 여러 연예인들이 성경을 읽었는데, 여러 번씩 읽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예수 믿게 된 나연숙 씨는 극작가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베스트 셀러인 성경을 한번도 읽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분 자신이 소위 작가라고 하면서 어떻게 성경을 한번도 읽지 못하였는지, 창피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사실은 오기로 읽었습니다. 그들 가정은 완전히 믿게 되었고, 남편이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꾸준한 습관만 들이면 됩니다. 어느 날 한꺼번에 몽땅 읽겠다고 하시면 절대 성경을 읽을 수 없습니다. 하루 3장씩 읽고, 주일은 5장을 읽는다고 하면 일년에 일독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효용가치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억압하고 속박하고 부자연스럽게 하려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려줍니다.
7-9절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이로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소성되어야 하고, 인생을 우둔하게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울한 것보다 진정 기쁨에 넘치고, 인생을 더럽게 살지 않고 순결하여 우리의 눈이 어두워지지 않고 밝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삶을 살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이 필요 없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딤후3:16-17)
성경 말씀을 오랫동안 읽고 적용하다 보면 삶에 지혜가 생깁니다. 시119:98-100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정직하고 순결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녀 삼아주시고 나를 감찰하고 계신다고 하는 확신이 없으면 그렇게 정직과 순결과 진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소성함을 입고, 지혜롭게 살고, 정직하고 또 순결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는 상이 주어집니다.
10-11입니다.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이것을 지킴으로 상급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람의 입에는 쓴 것보다는 단 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달면서도 사람의 몸에 유익한 것은 꿀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꿀은 영양제였고, 치료제였습니다. 꿀은 10년이 지나도 그 속에 함유된 성분, 특별히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벌은 꿀 1Kg을 만들기 위하여 560만개의 꽃을 찾아다녀야 된다고 합니다. 꽃의 꿀만 따는 것이 아니라, 물, 흙, 나뭇가지, 온갖 풀과 벌레들 수천 종류의 생물과 접촉하여 좋은 꿀을 만든다고 합니다. 음식 맛이 좋을 때 우리가 꿀맛 같다고 합니다.
세상의 허탄한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사모하여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상급이 있습니다. 그 상이 적은 상이 아니라, 큰 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으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의 오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을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잠3:13-17)입니다. 인생을 말씀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아름다운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읽어지네"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의 부인인 이애신 씨가 성경을 단순화시키셔 연대별로 성경을 정리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단순화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성경이 읽어지네" 세미나를 열어보아야겠습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을 때 끝까지 다 읽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링겔을 맞는다고 하면 마지막 한 방울 떨어질 때까지 다 맞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것 하나도 빼놓지 말고 읽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면 성경을 그냥 눈으로 대충 읽지 말고 정직하게 한 단어 한 문장 지나치지 말고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줄거리를 파악하고 문단을 나누던 것처럼 성경은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죄악을 이기게 합니다.
12-14절입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악한 영과 싸울 수 있는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뿐이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씀이라는 무기를 지니지 않으면 악한 사탄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하나님을 모르고 말씀을 외면하는 시대를 향하여 쉐이킹 그라운즈(Shaking grounds) "흔들리는 터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기초가 없는 인격, 기초를 세워두지 않는 세대는 흔들거리고 움직이는 터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견고하고 영원하여 참된 빛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이요, 영원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으실 때는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는 변화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받아들이면서 우주 만물과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들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말씀드리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지 아니하고 청종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제는 나를 말씀에 맡기므로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며,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언제나 말씀을 읽고 마치고 정리할 때에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면서 마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지고 드려지는 생애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