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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H3JgPfajRmo?si=bCOhiZ-bEcABwjB3
복음을 위해 권리를 포기하는 믿음 (고린도전서 9:1~12)
사도 됨의 증거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마땅한 대가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9:1~10, 개역개정)
* 누가…않겠느냐(7절) 이 수사 의문문에는 ‘하물며 사도이겠느냐’라는 질문이 함축되어 있다.
* 곡식을 밟아…씌우지 말라(9절) 신명기 25:4에 있는 명령이다. 소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보면 일하는 소를
굶기지 말라는 뜻이다. 약자의 보호와 사회 정의에 관한 신명기 24~25장
전체 문맥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 명령은 사역자에 대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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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바울이 진정 사도라는 것은 고린도 교회가 인 친 일입니다. 따라서 바울도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니거나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포도를 심은 자가 그 열매를 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에 장애가 없도록 이런 권리를 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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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위해 권리를 내려놓은 사람 고린도전서 9장 1~6절
1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까? 주 안에서 행한 내 일의 열매가 여러분이 아닙니까?
2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내 사도직을 보증하는 표이기 때문입니다.
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라고 다른 사도들이나 주의 형제들이나 게바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습니까?
6 또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습니까?
-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의심하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자신의 사명을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고 복음을 전했으며,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의 사역의 열매였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충분히 지원받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복음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그 권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편안함보다 복음이 전해지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참된 헌신은 권리를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데 있습니다.
나는 인정과 보상을 기대하며 섬기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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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세워 가는 복음의 공동체 고린도전서 9장 7~10
7 누가 자기의 돈을 들여 군인으로 복무하겠습니까?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습니까? 누가 양 떼를 치면서 그 젖을 먹지 않겠습니까?
8 내가 단지 세상의 관습을 따라 말하는 것입니까?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9 모세의 율법에 기록되기를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입니까?
10 아니면 다 우리를 위해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참으로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일하고 곡식을 타작하는 사람은 자기 몫을 얻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 바울은 군인과 농부, 목자의 비유를 통해 수고하는 자가 열매를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합니다. 복음 사역자 역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기에 공동체의 돌봄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일하게 하지 않으시고 서로 섬기며 함께 세워 가는 공동체를 원하십니다. 누군가는 복음을 전하고, 누군가는 기도로 돕고, 또 누군가는 물질과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갑니다.
나는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격려하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동역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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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복음, 권리 이상의 것
군인이 나라를 위해 싸우면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 군인으로 싸우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생활에 필요한 일체를 보급받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군사라고 할 수 있는 전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전도입니다. 그보다 중한 사역은 없습니다. 전도자의 생업은 전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다른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천막 제작자로 일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헬라 문화권도 과거 우리나라의 유교 문화권과 비슷하게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꺼이 땀을 흘려 일을 했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자기 권리보다 복음이 우선임을 보였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사람들이 ‘권리’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담고 수시로 주장합니다. 노동자의 권리, 여성의 권리, 어린이의 권리, 노인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등 다양한 권리가 거론됩니다. 사실 이러한 권리들은 복음이 전해진 곳에서 신장되어 왔습니다. 복음은 권리 이상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세상에서, 권리를 누릴 수도 있고 내려놓을 수도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 이동원 목사의 고린도전서 강해설교」(이동원, 압바엄마)
♧ 한 절 묵상
9장 10절 | 성도의 신앙적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땀 흘려 수고한 자에게 열매를 주십니다. 밭 가는 자의 땀과 곡식 떠는 자의 손길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거룩한 노동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밭을 간다.”라는 말은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믿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섬김의 자리에서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뿌리는 눈물의 씨앗은 기쁨의 단으로 돌아옵니다. 모든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의 열매를 주십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복음을 위해 권리를 철저히 내려놓았던 사도 바울의 모습이 제게 울림을 줍니다. 은근히 저의 노고와 희생을 내세우고 권리와 대가를 챙기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복음을 위해 마땅히 수고하는 성도, 함께하는 일꾼들을 기꺼이 섬기는 교회 되게 하소서.
고린도전서 9장 1~10절은 복음을 위한 헌신과 권리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의심받고 공격받았지만, 사람들의 언행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고 복음을 전했으며, 고린도 교회 자체가 그의 사도 됨의 증거였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물질적 지원과 여러 권리를 누릴 수 있었지만, 복음을 위해 그것들을 내려놓았습니다. 또한 복음 사역자는 마땅히 수고의 열매를 나눌 자격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단지 사역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함께 세워 가는 공동체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고린도전서 9장 11절
복음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바울은 수많은 오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권리보다 영혼을 더 사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섬김 속에서 믿음 안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받기만 하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누군가를 세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때로는 인정받지 못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기억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흘리는 작은 눈물과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쁨으로 섬기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고전 9:10 )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애쓴 만큼 알아주길 바라고, 섬긴 만큼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름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 했는데 잘 몰라주거나,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에 쉽게 지치곤 합니다.
저 역시 “이 정도 했으면…인정해줄만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바울도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당연히 인정받고 도움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위해 그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권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계산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려지지 않는 것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인정에 묶이면 늘 비교하게 됩니다. 누가 더 인정받는지, 왜 나는 몰라주는지 계산하며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준이 하나님께 있는 사람은 상황에 덜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눈물과 조용한 헌신까지 기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결과를 보지만, 하나님은 과정속에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충성을 보십니다.
복음은 내 권리를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기꺼이 내려놓을 줄 아는 삶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의 평가를 넘어서는 자유와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만족을 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2026년 5월 26일 오늘의 말씀 명언 고린도전서 9장 1~10절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깨뜨려지기를 준비해야 한다. - A. W. 토저
주님은 성공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충성을 요구하신다. - 마더 테레사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다. - 허드슨 테일러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 찰스 스펄전
사랑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하며, 참된 사랑은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합니다. - 에이미 카마이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흘린 눈물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 죠지 뮬러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지 않고 희생을 통해 증명된다. - 데이비드 리빙스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편안함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다. - 존 스토트
1
고린도전서9:1-10절
바울은 8장에서 약한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9잘에 들어와 이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합니다
권리포기와 헌신입니다
그전에 바울 자신이 사도임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에 대한 공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로 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았고
스스로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이런 바울이 진짜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1절에 자유인이며, 사도이며 예수님을 만난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고린도교회가 증인임을 말했습니다
이말은 고린도교회가 복음 사역의 열매라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자신에게 가진 오해를 해결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았는데
이유는 순전히 복음을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받아야 할 권리에 대해 말합니다
4절에 먹고 마실 권리
5절에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
6절 생계를 지원 받을 권리입니다
바울은 7절에 군사, 농사, 목자 예를 들면서
이들 모두가 수고한 권리들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예 즉 9절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놀라운 사실은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 동물을 보호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밭에서 수고하는 사역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밭에서 수고하는 사역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은
바울이 권리를 포기한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
결론적으로 교회를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정리하면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찾을수 있고 말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오히려 천막을 만드는 수고를 한 것은
전적으로 교회를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자유에 대해 말해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바울이 보여준 것 처럼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교회를 위해 수고한 이유는
가장 큰 소망이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나입니다
내가 세워지는 것이 소망입니다
2
오늘의 말씀해설
바울의 권리(9:1~7)
바울은 지식에 근거한 믿음에 따른 것이라면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기 위해
자신을 예로 듭니다. 당시 교회에는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본 사도임을 분명히 하며, 특히 자신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고린도 성도들이 바로 자신의 사도 됨을 확증하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비판자들의 주장과 달리 바울은 사도로서 마땅히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대가를 받을 수도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자유를 스스로 제한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형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엄청난 권리를 포기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위해 자기 권리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자신에게 사도로서의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게 어떤 권리가 있으며, 이를 사용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복음 전파를 위해 범사에 참음(9:8~12)
그리스도인은 자기 권리보다 복음 전파를 앞세워야 합니다. 바울은 율법(신 25:4)을 인용해 자신이 사도로서
일한 대가를 교회로부터 받는 것이 마땅함을 밝힙니다. 일꾼이 일한 것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받아 누리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당연한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자기 권리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참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 묵상 질문: 왜 바울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범사에 참았나요?
- 적용 질문: 복음을 위해 어떤 권리를 쓰지 않고 참아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풍요해도 사치하지 않고 빈곤해도 상황이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며, 제가 처한 곳에서 열심과 성실로 섬겨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고 있음을 알리게 하소서.
3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일부 성도들의 문제 제기에 권리를 절제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사도가 갖는 권리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고린도 성도들이 자기의
사도됨의 증거라고 합니다. 당시 사역자들은 자기를 파송한 단체의 후원, 자기가
활동하는 도시의 부유한 가정에 머물며 도움, 구걸, 자비량 등 네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하나님이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셨듯이 사도는 전도하고 양육하는 대가로 후원을 받아 사역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겠느냐 하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권리 행사의 절제
바울은 스스로 돈을 버는 자비량으로 사역했는데 그것을 보고 사도의 자격이 부족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여러 면에서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청구하지 않고
자비량으로 하는 것은 복음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리 사용을 절제하는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가 생활비를 받는 것을 보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복음 사역자가 자기들의 생계를 위해 사역한다고 오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도권을 의심받기도
했지만,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만 자기의 기쁨이었고 목표였기
때문에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된다면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포기하셨으므로 우리도 믿음의 지체들을 위해 작은
권리 정도는 포기할 줄 알아야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당연한 권리도 포기했던 바울의 열정은 모든 사역자에게 귀감이 됩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포기했듯이 우리도 복음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4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8-10,14절 복음을 위해 수고한 이들에게 복음의 열매를 누리게 하십니다. 그 열매는 신령한 열매인 회심한 이들을 가리키지만, 또한 전도자들을 위한 양식을 포함합니다. 주님은 사역자들을 섬길 몫까지 이미 우리에게 넘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절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강력하게 변호합니다. 사도적 권위에 대한 불신이 복음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목격한 증인임을 주장하고, 이어서 성도 존재 자체가 그의 사도직을 증명하는 인증서라고 주장합니다. 바울의 전도로 구원에 이른 성도가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사역자는 그가 한 사역의 열매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3-10절 바울은 사역자도 먹고 마실 권리, 아내를 취할 권리, 생계를 위해 따로 일하지 않고 공동체로부터 그 비용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상식일 뿐 아니라, 율법의 규정(신 25:4)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역자에게 헌신과 희생만 강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5
고린도교회에는 거짓 사도들과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 여러 가지 거짓 선동으로 사람들을 꾀어 바울의 사도 됨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거짓 선동은 주로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는 것과 바울 스스로도 자기가 사도가 아닌 줄 알았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사역비를 받지 않았던 것이고 사도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식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이 반박했습니다 "내가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9:1~2)
다만 바울이 사역비를 받지 않은 것은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고전9:3~10)
지금도 마귀는 사람들을 거짓으로 선동하여 주의 말씀 사역자들을 의심하게 하고 비방하게 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오래된 간계입니다 마귀가 이스라엘을 거짓으로 선동하여 주의 말씀 사역자 모세를 대적하게 하여 얼마나 많은 영혼이 멸망했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알고 속지 않기 원합니다 "이는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2:11)
그렇다면 왜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성경은 그렇게도 안 믿으면서 거짓 선동은 그렇게도 잘 믿은 걸까요? 죄는 죄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악도 함께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1)
그 악은 바로 죄입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20)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어떻게 다스릴까요? 십자가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어떤 교회든지 모든 음행과 분쟁과 거짓과 사욕의 문제들은 다 십자가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잊어버린 순간 죄가 파도처럼 밀려오며 악이 태풍처럼 불어닥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가 사는 길은 자기를 끊임없이 부인하며 날마다 죽는 십자가의 도뿐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그렇게, 죄를 이기신 주만 따를 때 우리도 죄를 이길 수 있고, 승리하신 주만 따를 때 우리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2026년 5월 26일 기도문
하나님, 바울처럼 사람의 인정과 보상을 바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제 안에 있는 교만과 계산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복음을 위해 기쁨으로 섬기길 원합니다.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함께 세워 가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삶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작은 통로가 되게 하시고,
사랑과 헌신으로 영혼을 살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인정과 평가에 쉽게 흔들렸던 제 마음을 돌아봅니다.
섬김 속에서도 계산하고 비교하며,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제 삶의 기준이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게 하시고,
복음을 위해 기꺼이 제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수고와 눈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시고,
결과보다 충성을 더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옵소서.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복음을 선택하게 하시고,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과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시고,
어떤 자리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생명의 삶 5월 26일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