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앗간 아가씨 이야기 1 - 2
"그건 그냥 그 계집애가 숲에다 뭘 흘려버렸다고 그래서 그런
거라구요! 그 계집앤 무섭다고 나 혼자 들어가라고 했고! 난
짜증냈고!"
난……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되는 변명을 해버렸다. 하
지만 사실이라구! 그 바보같은 계집애! 내가 지 생일선물로
줬던 반지를 끼고다니다가 잊어먹었댄다! 물론 제미니의 손가
락 둘레를 못맞춘 내게도 잘못이 있겠지만……잠깐, 이 상황,
어째 머리속에 익숙한데? 음. 물레방앗간 아가씨의 한쪽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 걸 어떻게 해석하면 될까?
웃고있어!
"뭘 흘려서? 그런데 너한테 살짝 찾아달라고 왔다는 것은…."
"그, 그거야 그런 작은일에 사람을 많이 부를 순 없잖아요!"
"아니지, 아니지. 친구들이 있을텐데. 부탁하면 얼마든지 도와
줄텐데. 즉, 그것은 너 아닌 타인에게 들키면 안되는 물건일
수도 있겠고…."
"무, 무, 무슨 상상을 하는거예요?"
"으응? 어, 흥분하는데? 즉, 그것은 비밀스러운 것이며 흘릴
정도로 작은 물건. 흠. 하지만 꼭 되찾아야 되는 물건. 그것
은…"
난 눈이 동그래졌고 그 다음엔 과거의 유쾌한 추억의 채무가
이런식으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해 유피넬에게 불만을 터트렸
다. 다행히 유피넬은 현신하시진 않으셨고 난 생각을 가다듬
을 수 있었다. 설마 저 아가씨가 보지도 못한 물건을 어떻게
정확하게 말하랴 하는 생각으로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앞에 둔 표정으로 말했다.
"반지지?"
난 기절할듯한 감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마 내 표정도
내 감정과 비슷할거같다.
"아, 어, 어떻게…?"
"사실 네가 전에 잡, 화, 상, 주, 인 지미 아저씨께 은반지를
사가는 걸 봤거든. 넌 반지를 누구에게 줬을까? 뭐, 이젠 귀찮
아. 그 반지의 현재 주인의 이름은…"
턱!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제발… 부탁이예요."
내 표정은…… 가관이겠지. 그녀는 그만 배를 잡고 웃어버렸
다. 흑… 놀림받아버렸어. 놀림받았다구! 젠장! 오거(Ogre)랑
동급이 되어버리다니! 게다가, 말싸움에서 내가 카알이나 아버
지, 타이번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지다니! 억울해! 우아악! 샌
슨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벌써 밖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각자 갈 길을 가고 아버지마
저 날 배신한채 집으로 돌아가버린 모양이다. 우, 배신감느껴.
뭐야? 대체.
“그래서, 그 반진 찾았냐?”
그녀는 골목 밖으로 나오면서 내게 다정하게 물어보았다. 역
시 옛날 자기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런지 회상에 젖어있는 듯
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 이렇게
보면 참 예쁘단 말야? 불쌍해, 불쌍해. 오호, 물레방앗간이 웬
수로다. 어쩌다 그런 오거를……
“찾았어요.” 제미니 그 계집애, 어떻게 하면 그 반지가 ‘우
연히’ 새둥지로 들어갈 수 있지?
“다행이다! 어딨었어?”
윽, 그건 말하고 싶지 않다. 난 말을 돌렸다.
“됐어요. 그보다, 어때요? 샌슨한텐 아직 소식 없어요?”
에엑! 그녀의 얼굴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진다. 허허허헉! 못할
질문을 던졌군. 없었을게 당연하잖아! 난 자그마치 근 일년동
안을 독수공방하며 님을 그려온 한 불행한 여인의 모습을 측
은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치 머리에 돌덩이라도 얹어놓은
듯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를 보며 조금은 울적한 마
음이 되었다. 젠장, 젠장, 젠장.
“괜찮아요, 괜찮아. 내가 그전에 한말, 다 농담이라구요.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샌슨은 당신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했었
어요. 걱정 말아요. 우, 쳇. 내가 가서 말좀 하든지 해야지, 원.
아아, 걱정 마요.”
난 애써 씩씩한 목소리를 내며 그녀를 위로했다. 웅, 난 이런
상황, 솔직히 싫은데. 어허, 이런 샌슨같은! 다시 샌슨 보면 정
말 가만 둬선 안돼겠어. 어떻게 이런 참한 아가씨를……. 그녀
는 손을 눈가로 가져가 무언가 촉촉한 것을 훔치더니 다시 밝
게 웃는 얼굴로 날 보았다. 쩝. 애써서 웃고 있다는 걸 모를리
없다. 난 그렇게 둔한 놈은 아냐.
그녀가 말했다.
“그래. 고마워. 그나저나 후치? 너 아직 젬이랑 아무 일도 없
었니?”
허억.
“도, 도,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아니, 이제 너희들도 성인인데, 공인 커플인 니들 사이에서
아무일도 없었다는게 이상해서.”
“제발 부탁인데 다른사람의 가치관이 자신과 같을거라는 자
기중심적 사고는 이제 버릴때도 되지 않았어요?”
그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장난스럽게 미소지었다. 압박감이
내 몸을 감싼다. 저 심연의 구렁텅이 속으로 날 떨어뜨리는
듯한 저 눈빛. 으으으, 정말, 뭐랄까…
“흠, 그러는거 보니까 정말 무슨 일 있었던거 아냐?”
헉.
반전된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모종의 언변이 요구되는 시점에
서 내가 취할수 있는 단어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난
기대감에 가득찬 그녀의 얼굴을 보았고 더더욱 뭔가의 행동을
생각해내야만 하였다. 정말 아무일 없었다니까요! 그러나 그
녀의 눈길은 아샤스의 섬광보다도 더욱 곧게 날 향해있었다.
미치겠구나.
구원의 손길은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이봐, 거기? 눈꼴셔서 못봐주겠다. 아가씨? 그런 젖비린내나
는 꼬맹이는 버려두고 우리랑 같이 놀러 안갈래?”
언젠가도 말한적이 있지만 경험이란, 무서운 거다. 그래서 난
가까스로 입 밖으로 <만세!>란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있었다.
뒤를 돌아다보니 서넛의 불량스럽게 생긴 놈들이 나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르타트가 떠나가고 몬스터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으며 이
번 2월에 완공된 휴다인 다리 등 등의 복잡무쌍한 이유 덕분
에 이 한적했던 헬턴트 영지에는 삼월인가 부터 조금씩 외부
인들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랄까…… 아무르타트란 바
윗돌이 사라지자 급격히 물줄기가 흘러들어오는 헬턴트라는
샘이랄까? 뭐, 그런것 때문에 이런 위험한(아직은 위험하다.)
곳에도 멋모르는 건달패나 뜨네기들이 흘러들어왔다. 이들도
그런 뜨네기들중 한무리인 모양이었다.
“뭘 그렇게 재수없게 보고있냐? 꺼져!”
그들 중에서도 특히 더 재수없게 생긴 놈 하나가 내게 손가락
을 들이대며 큰소리로 침을 튀겨가며 외쳤다. 말을 참을만 하
지만 침은…… 저놈 구강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한 번
보고싶은걸?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도 보통의 시비가 아니라
후치 네드발에게 걸려온 시비란걸 알았는지 몇몇이 주위로 몰
려들기 시작했다. 난 슬쩍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안쓰럽
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난 그걸 보고, 저 재수없는
자식의 구강 구조를 마음껏 확인해줄수 있다는 데에 벅차오르
는 기쁨을 느꼈다.
“우아아아악!”
“비명소리가 영롱한데? 심금을 울리는구나. 이런 날에는 노
래나 한곡 불러제껴야지.”
그 재수없는 놈 뒤에 있던 건달들은 아랫니와 윗니가 얼마나
벌어질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며 자신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는 표현했다. 불쌍한 녀석들. 부디 날 원망하지 말고 양초 200
개를, 내가 OPG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게 떠맡겨 이
하나뿐인 아들을 짐수레 대용으로 쓴 내 아버지를 원망해다
오. 난 사실 OPG를 항상 끼고다니진 않는다. 뭐… 힘이 필요
한 때만 쓰곤 하지. 후후후. 내게 복부를 맞아서인지 기괴한
비명을 토해내고있는 재수없게 생긴 놈을 한 번 흘끗 보고서
난 호흡을 다가듬었다. 노래, 노래.
“성밖 물레방앗간에는 방아소리 요란한… 으헉! 왜, 왜때려
요!”
“몰라서 묻냐!”
“……쳇.”
난 샌슨의 그녀에게 얻어맞은 뒤통수의 통증이 내 온몸을 돌
아 다니는 걸 무력감에 빠져 느껴야만 했다. 우웅, 너무해. 그
냥 장난이었는데. 흐흑.
“이렇게 된 이상…….”
그 건달패들은 그제서야 일이, 아니 내가 심상찮음을 알았는
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어이, 이봐? 이 재수없는 놈은 안
데려갈꺼야? 재수없는 녀석들 같으니. 흐흐흐. 흐흐흐흐. 내
입에서 나조차도 놀랄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허… 나
도 참 쌓인게 많았나보군.
“너희들을 모두 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재물로 삼아야겠다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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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각날때마다 올릴겁니다요오.
:)
으음. 이런 여유를 느껴보고 싶었어요.
비축분이란건 이래서 좋군요.
(정작 비축분 이상으로 쓰진 않지만.)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