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삶방의 터줏대감 격인 운선님이 어느 댓글에선가 이문열 산문에 관해 언급한 글을 읽었다.
댓글 몇 줄이지만 내용에 호기심이 생겨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이문열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어서 어떤 책에 나왔는지가 궁금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일도 해야지, 밥도 먹어야지, 더위도 견뎌야지, 올림픽 경기도 봐야지, 마누라 시중도 들어야지, 두루 바쁘지만 이틀 동안 자투리 시간을 총 동원해서 기어이 찾아냈다.
운선님이 댓글에서 언급한 내용이 담긴 책은 이문열의 산문집 <사색>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어제 저녁 늦게까지 사색을 읽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하고 관련 제목을 앞뒤로 절반쯤 읽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는데 제목 그대로 사색을 하도록 만드는 글이 많았다. 운선님 덕분에 또 공부를 했다. 이렇듯 세상 도처에는 내 스승이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배움을 주는 사람이 많기에 내 인생은 조금 더 살 만한 이유가 있다.
원래는 어제 저녁에 쓸려고 했으나 샤워하면서 생각났던 것이 있었는데 샤워 끝나고 PC 앞에 앉으니 싹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렇듯 독후감이든 일상의 기록이든 생각날 때 퍼뜩 써야 한다.
내 일찍이 젊은날의 초상과 사람의 아들을 읽고 이문열 문장에 감염이 되었지만 오래전에 나온 이 산문집을 뒤늦게 읽는 맛도 괜찮았다.
좋은 글은 유통기한도 길기 마련인가. 아래는 사색에 나온 이문열 산문 일부다.
새지 않는 밤 - 이문열
이것은 오래 전 내가 서울서 겪은 영락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 무렵 나는 이것저것 모든 것으로부터 쫓겨 작은 가방 하나 만을 들고 아스팔트 위를 헤매던 방랑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날이 저물어 올 때쯤에 나는 드디어 아무 데도 갈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원래 그 거리에는 친구들도 있고 인척도 더러 있었지만 그 때는 이미 그들이 모두 머리를 흔들 만큼 신세를 진 후였던 것입니다.
나는 별수없이 그 때만 해도 그 거리 어디에나 흔하던 무허가 여인숙을 찾아 들었습니다.
독방이 300원, 합숙이 200원. 그런데도 제 주머니에 남은 것은 고작 500원뿐이었습니다.
내가 가방 속에 든 일거리를 그 밤 안으로 끝낸다 하더라도, 그것을 돈과 바꾸기 위해서는 최대한 가진 돈을 아껴야 하는 것이 그 때의 내 사정이었습니다.
합숙은 그래서 내가 선택한 그 밤의 잠자리가 되었습니다. 아직 초저녁이어서 나와 합숙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우선은 혼자 차지하게 된 방 안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외국 수사물을 번역하는 것으로서, 당시의 어떤 대중 잡지에 근무하던 선배가 원고지 한 장에 50원씩 사 주어서 나는 종종 위기를 넘기곤 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쯤 일했을까요. 바깥이 약간 소란스럽더니 드디어 나와 합숙할 사람이 결정되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기에 번역을 멈추고 쳐다보니 한심하게도 이제 나이 열두셋이 될까말까 한 소년이었습니다.
이미 초가을인데도 반소매 셔츠와 짧은 바지 차림에, 밖으로 드러난 사지는 때와 먼지로 불결했습니다.
그가 방구석에 내려놓은 신문 뭉치는 아마도 못다 판 석간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따로 떨어져 자는 것이지만, 그런 녀석과 한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는 것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내 눈길을 개의치 않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손발이라도 씻을 작정인 것 같았습니다.
소년이 방문을 나서자 나는 지금까지 품었던 것과 전혀 다른 생각, 전해 들은 도회지 불량 청소년들의 소행에 대한 불안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비록 더할 나위 없이 가난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녀석보다는 더 많이 가졌으리라는 기분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슨 값나가는 것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계며 겨울 외투 등은 이미 두어 달 전에 전당포로 간 후였고, 입고 있는 옷가지도 상품이 되기에는 너무 낡아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하숙비를 치르고 남은 300원과 어려움 속에서도 힘겹게 지켜 온 몇 권의 책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들마저 불안했습니다. 나는 남은 300원을 꼬깃꼬깃 접어 속셔츠 주머니 속에 감추고, 책 몇 권은 타월을 말아 베개 대신 베었습니다.
내가 그쯤 준비를 끝냈을 때, 세수를 마친 소년이 되돌아왔습니다. 씻고 나니까 조금 전보다는 훨씬 귀염성 있고 깨끗한 얼굴이었습니다.
녀석은 다시 일을 시작한 나에게 미안한 듯 조용한 동작으로 들어서더니 곧장 이불을 펴고 옷을 벗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나는 줄곧 소년의 동태에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옷을 벗은 후 곧장 이불 속으로 들어가질 않고 주머니에서 동전이랑 백 원짜리를 모두 요 위에 쏟아 놓았습니다.
곁눈으로 보아도 천 원은 넘을 돈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날 신문을 판 돈을 셈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일을 하면서도 이제 녀석이 그 돈을 어떻게 간수할까를 흥미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셈을 마친 녀석은 돈을 웃옷 주머니에 넣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그 옷을 차곡차곡 개어 머리맡에 놓고는 이불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녀석의 미련스러움이 한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원인 모를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도대체 자기의 전 재산임에 분명한 돈을 저렇게 함부로 간수하는 녀석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을 불렀습니다.
“이봐, 이봐”
소년은 대답 대신 의아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돈, 그렇게 간수해도 될까?”
나는 연장자답게, 그러나 약간은 나무라는 투로 녀석의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그러나 녀석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럼 엇다둬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나는 녀석의 순진함이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누가 가져가면 어떡할래?”
“이 방에 나와 아저씨 외에 누가 있기에요?”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여인숙은 주인도 믿을 것이 못된다, 동숙자라 해도 한 번 내빼면 찾을 길이 없다, 따위 얘기들을 해 줄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녀석의 반문을 듣고 나니 더욱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한 지 얼마나 되니?”
“삼 년요. 고아원에서 나온 후 줄곧이에요.”
삼 년이라! 나는 다시 말문이 막힐 뿐만 아니라 숨까지 가빠 오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삼 년의 거친 세파가 한 어리고 순진한 영혼을 얼마나 비뚤어지게 영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나는 더 이상 녀석에게 뭐라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나는 약간 머쓱한 기분으로 다시 내 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습니다. 다 아는 단어가 막히기도 하고 평범한 문장이 전혀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이 일을 멈추고 무엇 때문에 그런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 부끄러움 때문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나는 이미 소년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녀석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얘, 얘, 나는 말이다...”
내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떨리는 탓이었던지, 선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네가 의심스러워서 이 얼마 안 되는 돈을 감추고, 책은 이렇게 베개를 삼았단다...”
나는 감추었던 돈을 내보이고, 타월에 싼 책을 풀어 헤쳤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참회하는 기분이 돼서 물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겠니?”
녀석은 이내 내 말뜻을 알아들은 것 같았습니다. 곧 녀석의 얼굴에 지금까지 내가 본 꽃 중에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아저씨가 저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제가 아저씨를 의심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아아, 이 어린 놈.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의 자그마한 몸을 쓸어 안았습니다.
그 밤 나는 늦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몇 줄기 뜨거운 눈물을 쏟았던 걸 기억합니다.
그 어떤 육신의 영락보다는 내 정신의 처참한 영락을 슬퍼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이문열 산문집/ 사색/ 살림출판사/ 1991
# 산문집에 실린 원문은 훨씬 길지만 이 글은 누군가 요약을 해서 인터넷에 올린 모양이다. (원문은 경어체가 아니다)
촘촘한 원문이 지루할까 봐 일부 덜어내고 후반부를 살짝 바꾼 글임에도 이문열 선생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그대로 담겼다.
1948년에 출생한 이문열 선생은 아버지가 월북을 하는 바람에 남은 가족은 빨갱이란 따가운 시선을 피해 전국 곳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런 탓에 선생이 어릴 때 잠시 고아원에 맡겨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글에 고아원 출신이 나오는 것도 작가의 경험 때문이다.
내가 문학적 비평을 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해 여기서 논할 일은 아니지만 예전에 이문열 선생이 쓴 글에서 읽은 한 문장이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보고 경험한 것만 쓴다"라는 당신의 명쾌한 말이 화살처럼 뇌리에 박혔다.
다양한 인물과 배경을 다뤄야 할 소설가가 어찌 오직 경험한 것만을 쓸 수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선생의 소설 <시인>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김삿갓과 같은 시대에 살지는 않았어도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김삿갓 연구에 몰두했는지를 문장에서 느낀다.
실제 이문열은 한학(漢學)에 엄청 조예가 깊은데 이 소설뿐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온전히 감지가 된다.
이후 나는 보고 경험한 것만 쓴다는 이 문구를 가슴에 불도장처럼 새겼다.
내가 감히 작가 흉내를 낼 정도의 재주는 없지만 이 문구 하나만은 실천하면서 살려고 한다. 나도 보고 경험한 것만 쓰겠다. 지금처럼 말이다.
첫댓글 현덕님~
안녕? ㅎ
글이라고는 공들여 쓴 날이
있었는가 자문하지만
헛튼 한 줄이나마
나의 경험 내에서
쓰고자 했던 것은
습관이었던 같습니다..
어떤..
글 잘 쓴다는
사람들의 글에서
뭔가 공허함을
느끼게 했던 것은
그로 인한
빈틈이었나
갑자기 생각이
이네요..
그래도
나에게는 스승님들이긴
하지만 말이예요..ㅎ
댓글은 못써도
자주 보니 반가워요~ㅎ
ㅎ 반가운 요석님시네요.
엄청 공들여 쓴 요석님 댓글입니다.
제가 보기엔 요석님의 내면엔 아침녘의 고요함과 한낮의 뜨거움과 저물녘의 겸손함까지 그동안 살면서 겪은 것들로 다져진 삶의 내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몇 줄에서뿐 아니라 접때 뵈었을 때 나눈 대화에서도 그것을 느꼈지요. 댓글로 자주 못 뵙는 것은 괜찮으니 요석님이 건강하셨으면 합니다.ㅎ
인생도처에 유상수라 했지요
유선생님은 기존작가에 결코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열혈한 펀이 되고 있습니다
며칠전 글에서 정비석의 산정무한 언급이 있으시던데, 저도 그 문장 외우고 있어요
천년사직이 남가일몽이요 하는 구절말입니다.
운선님도 이 카페의 유상수의 한분이고요
건필 응원합니다
댓글 앞부분은 조금 민망하지만 산문의 정수 산정무한을 기억하신다는 뒷부분이 저를 기분 좋게 합니다. 저는 시인이든 소설가든 모든 작가의 역량을 산문에서 가늠합니다.
시나 소설은 아무리 체험한 것이라 해도 문학적 완성도를 위해 색소나 첨가물을 넣을 수밖에 없지만 산문은 양념 없이 자기 본연의 글맛을 내야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정비석과 김훈의 산문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연 이문열 산문도 읽을 만하지만요. 진정성 가득한 장고님의 댓글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적토마는 유현덕의 스승이 될 수도 있고
유현덕은 적토마의 스승이 될 수도 있고...
고로 늘 겸손하게 지내면서 모르는 것은
나이나 경력 따위로 폼 재거나 열 받지말고
서슴없이 물어보는게 지혜로운 납량특집...ㅎ~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적토마 선배의 댓글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스승이 될 일은 없겠으나 제게 배움을 주는 사람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늘 새기며 살지요.
제가 조금만 파도 금방 바닥이 보이는 밑천 딸리는 사람이라 누구에게든 배울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부족한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옵소서.ㅎ
@유현덕
탁구부터 가르켜 드릴까 ? ㅋㅋ ~
와 ㅡ
옛날엔 나름대로 글를 읽어는데 그중에서도 이문열 작가의 글를 많이 좋아했는데
이젠 희미한 기억속으로 아무것도 생각이 없네요.
마치 한권에 이문열 자각의 책을 읽은듯 감성을 느낌니다
오십대엔 육십에 한권의 에세이집을 만들겠다 나 자신과 약속되었는데
이런 ㅡㅡㅡ
나와의 약속은 간대 없고 눈도 귀도 부실해 젔네요
아우님 덕분에 일부이지만 이문열 작가의 글를 읽게. 되어 잠시 과거로 돌아가 었네요
감사 하고 더운날 건강 조심 하세요
마야 선배님이 이문열 선생의 글을 좋아하셨나 보군요. 이 분 글에는 훈장 선생님 같은 느낌이 들긴 해도 글에 깊이가 있어 자꾸 읽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실제 작가의 집안이 뼈대 있는 가문인데다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은 서사까지 있어서 작가의 삶 자체가 소설이기도 하지요.
모든 인생에 세월 따라 노화가 오는 것은 순리이지만 마야 선배님은 그래도 예전에 읽은 이문열 선생 글로 인해 노후가 건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비록 무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만 감성 만큼은 촉촉했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
세상 도처에 스승이 있다.
학무상사라고 논어에도 나오는 말입니다만
그렇습니다..스승은 도처에 있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글을 쓰는 시대..
수많은 책,수많은 글 중에서
그러나 공감이 가고 감동을 주는 글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경험 많지 않은 사람들은..
사유 깊지 않은 사람들은..
글재간으로 쓰는 경우 많아
그럴거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경험한 일만으로 글을 쓴다"라는
이 문구를 늘 기억한다는 말씀..ㅎ..좋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고 이문구 선생을 좋아합니다.
ㅎ 울림과 끌림이 동시에 생기는 가을님 댓글입니다. 때깔만 보고 맛 있는 줄 알고 먹었다가 실망한 음식이 있는 것처럼 글에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겠는지요.
그래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듯이 읽는 글도 호불호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제 글이 다소 거칠고 근본 없다는 소릴 듣는 것도 워낙 험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허나 어쩌겠어요. 앞으로도 보고 경험한 것만 쓰면서 계속 이렇게 살려고 합니다. 참 저도 이문구 선생 오랜 팬이랍니다. 이분 또한 한학에 능통하고 개성있는 글맛이 일품이지요.
예전에 유자소전을 읽으며 탄복하느라 무릎에 멍이 들 뻔했다는,,ㅎ
이문열 이름은 들어봤는데
그 분의 글은 처음 읽어봅니다.
그 소년은
건강하게 성장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듯~
아름다운 5060카페
회원이라면 더 좋을텐데...
이문열님의
선량한 시선과
심성이 아름답습니다.
피케티님, 이문열 몰라도 사는 데는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 마세요.ㅎ
글구 이제라도 알았으니 계속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지요. 세상 모든 것이 마음 먹은 대로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선량한 눈에는 가시도 꽃으로 여기며 사는 모양입니다.
모쪼록 막바지 여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아.. 어린 나이에 마주한 거친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빼앗기지 않은 그 소년의 맑음과 부드러운 강인함에,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한 신선한 충격과 함께 마음이 아파옵니다.
이문열 선생이 느끼셨을 그 심정이 고스란히 제 마음에도 울림으로 전해오네요.
人生到處 有上手, 상수 중의 상수인 그 소년에게서 큰 가르침을 얻고 갑니다.
이런 납량 특집 너무 좋잖아요!
쓰시는 글마다 묵직한 감동을 주시는 현덕님도 상수 중의 상수이십니다! ^^
늘 느끼지만 달항아리님 댓글에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흡인력 있는 문구가 울림을 줍니다. 저 고아원 출신 아이 못지 않게 이문열 선생 또한 참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온 분이지요.
그 냥반 정체성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인간 자체만으로 서사가 있는 삶과 그의 문학이 흥미진진해서 좋습니다.
이런 납량특집이 좋으시다니 긴 글임에도 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올리고 나서 공연한 일 했나 싶어 잠시 후회했거든요.
보름달처럼 풍성한 감성과 공감 능력을 가진 달항님 평화로운 주말 되시길요.ㅎ
ㅎ 아고 제 기억이 뒤죽박죽 워낙 오래 되어 헛갈린 대목이 많았군요 이렇게 수고스럽게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제가 잘못 안 것도 있고 저는 주인공 내면의 갈등과 자괴감에 꼿혔나봅니다
이제 제대로 알아서 속이 시원합니다
저도 오래전 일을 뒤죽박죽 기억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도 운선님이 글의 핵심을 정확하게 기억하셨기에 제가 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운선님은 저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은 분입니다. 제가 모르는 것 있으면 그냥 못 지나가는 성격이긴 해도 이틀 만에 해결해서 다행이구요.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에다 쓸데없는 끈질김을 보인다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덕분에 이런 궁금증을 풀었으니 제가 더 시원하네요.
공부할 기회를 주신 운선님 감사합니다.ㅎ
소개된 이문열의 글에서 (공자도 어린애에게서 배울 게 있다는 교훈 외에도)
그 시대의 한 단면이 읽혀집니다.
소년이 3년을 그런 생활을 했으니,
약 1천여일 동안 수백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합숙을 했을 텐데, 그 동안에 소년은 한 번도 돈을 도난당하지 않았다는 걸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직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 글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유추는 그 시대의 도덕성에 대한 우리의 상식과는 배치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글이 경험에 의한 사실만으로만 기술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긴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여름날님처럼 이렇게 착하게 해석을 해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고아원 아이들을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태를 꼬집기 위해 쓴 글일 겁니다.
님의 말씀처럼 만약 이 소년이 도난 당하는 일이 없었다면 겉만 보고 돈이 없을 거라는 선입견 때문 아니었을까요.
대부분 외모와 입성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긴 글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ㅎ
ㅎㅎㅎ
베개를 풀어헤치는 주인공의 심리적
상황과
풀어헤칠 것 없는 소년의
자유함과 당당함
역시
이문열입니다
막간을 이용해 잘 읽었습니다
ㅎ 봉숭아 씨방 터지듯이 톡톡 튀는 윤슬님의 글발이 대단합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이런 재능에 그냥 지나치려다 살짝 뒤돌아보게 만드는 사람처럼 맛깔난 문향까지 보태니 역시 윤슬님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여, 오늘 납량특집으로 인해 윤슬님의 여름나기는 훨씬 수월할 거네요.ㅎ
@유현덕
정약용선생의
메모하기를 즐겨하라!
어린 시절 읽은 후
이 걸 잘 지키고 있어요
독서량이야 접시물 만큼이지만요
내 휴대폰 끼고 다니는
이태백 시일까요
김삿갓 일까요 ㅎㅎ
가물가물
@윤슬하여 이 건
오늘 메모한 시입니다
황동규에
ㅡ미소 알맞게 짓고 있는 해골 하나 만들기 위해ㅡ 전문 중 일부인데
자랑하고 싶어서요
저녁 안 먹었어요
이 걸 자시느라고 ㅎㅎ
@윤슬하여
ㅎ 맞습니다. 시성 이태백의 월하독작입니다.
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舉杯邀明月 對影成三人
月既不解飮 影徒隨我身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나이가 들수록 기억은 휘발성으로 변합니다. 나이테는 늘어도 다른 것은 가벼워지라는 뜻으로 민들레 홑씨처럼 기억은 자꾸 날아가나 봅니다. 그래서 메모의 중요성이 절대적이지요.
본 받고 싶은 메모광에다 이백의 월하독작을 핸드폰 케이스에 끼고 다니는 윤슬님 참 대단합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배움의 동기를 주는 사람이 진정한 글벗입니다. 이런 것은 백 번도 더 자랑할 만합니다. 윤슬님 덕에 저도 간만에 한시 한 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ㅎ
@유현덕
하ㅡ 맞다
월하독작
진짜 큰일입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감사합니다
@윤슬하여
댓글 오타 수정하는 사이 어느새 답글이,,ㅎ
저도 돌아서면 잊어버려서 난감할 때 있답니다. 얼마전에는 우리 집 주소가 생각이 안나 집에 전화해서 물은 적도 있답니다. 힘 내세요 윤슬님,,ㅎ
@유현덕
하하하
아이고
농장에서
택시를 타고 목포 아파트집으로
가는 도중
아파트 이름 생각이 안나서
한참 지난 후에야
광신프로그레스? 하고
소리쳤습니다 ㅎ
에효
애재라 !
참 뜨거운 열정입니다
민생고 해결도 하시고
사모님 시중도 드시고
올림픽응원 하며 애국도 하시는 와중에 이문열선생 탐구도 하시고...
한동안 뜸~하시기에 허전했는데 불현듯 오셔서 5060 팔월을 달구어 주시니 감사한일 입니다
이젠 뜸~하지 마시고 일년 열두달 보입시다~^
삶방의 한 축인 함박산님의 필력도 범상치 않음을 압니다. 제가 뜨거운 열정까지는 아니어도 끈질긴 열정은 될 걸로 봅니다.
모르면 끝까지 파야 직성이 풀리니 이 성격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랍니다.
제가 비록 민생고가 먼저이긴 해도 자주 들러 공감하는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반겨주는 함박산님 감사합니다.ㅎ
모처럼 심도있는 글들을 읽으니
시원해서 좋습니다
그런가요. 가끔 이런 글을 읽어 마음 정화를 시키면 좀더 시원한 여름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쪽빛하늘이란 닉이 문학적이고 정감 있어서 좋습니다.ㅎ
글이 술술 읽혀지는 걸로 보아
현덕님은 대단한 글쟁이신 것같습니다.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글쟁이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책 읽는 것을 좋아는 합니다. 다소 긴 글인데도 술술 읽혀진다니 다행이네요.
올리브북님 연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지만 며칠 후 말복만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는 조금씩 서늘해질 겁니다. 평화로운 밤 되세요.
삶의 이야기 방이 있어서
이런 멋진 글들도
대할수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아하~ 리야라는 닉을 보면 왠지 다정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모범생처럼 자기 분수를 지키며 욕심 없이 사는 리야님의 일상을 본 받고 싶기도 하지요.
리야님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한 이틀 바빠서 못 읽은 글들이 넘칩니다.
유현덕님 이렇게 부지런하고 박식한 분이신줄은...
잠시잠깐 뵈었지만 이미지 매칭이 잘 안됩니다.
굉장히 쾌활하고 사교성있는 분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제가 하고있는 요즘 독서목록의 절반은 유현덕님의 멘토링덕분이란거 아실려나.
또 주문해야겠어요.ㅡ사색ㅡ가을을 앞두고 제목이 맘에듭니다.
제가 책을 안 읽을 사람처럼 생기긴 했지요.^^ 저도 커쇼님을 처음 봤을 때 무척 활동적인 분으로 생각했답니다.
저도 모르는 것 많고 게으른 면도 있습니다. 아는 거라고 해야 대부분 깊이가 없는 얕은 지식이지요.
얼마전에 커쇼님의 도서주문 목록을 보고 책 고르는 눈에 감탄을 했답니다. 이문열 사색은 절판이 되어 시중 서점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무더위는 꺾일 기세가 없긴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사색할 수 있는 가을은 꼭 옵니다. 언제나 좋은 시간 되시길요. ㅎ
참,, 사색 책 표지는 이렇게 생겼답니다.
@유현덕 아니에요.
잠시뵈었던 이미지를 말씀드린거구요.
책 읽으실 분으로 봤었어도 글까지 이렇게 잘 쓰시니 감탄이지요.
그리고 저는 책에대한 욕심만 있었지 솔직히 제대로 읽은적 없어요.
주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주문합니다.
가을에 사색에 잠겨서 부산쪽 헌책방을 헤매고 다릴수도.ㅎㅎ
책 표지 저장 해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