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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IP8fMHnlxzk?si=zjn1swy57p-JjfCw
사람을 얻기 위한 양보와 훈련 (고린도전서 9:19~27)
종이 된 자유인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상을 받기 위한 열심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19~27, 개역개정)
* 내 몸을 쳐(27절) 문자적으로 ‘내 몸을 멍들게 하다’를 뜻한다. 경건의 연습이 육체에 미친 영향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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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자유인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바울은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는 사람처럼 행하라고 권합니다.
그가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은 복음을 전파한 후에 오히려 버림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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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혼을 살리기 위해 낮아지는 삶 고린도전서 9장 19~23절
19 내가 모든 사람에 대해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됐습니다. 이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유대 사람처럼 된 것은 유대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나 자신이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1 내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지만 율법 없는 사람들에게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된 것은 그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22 연약한 사람들에게 내가 연약한 사람처럼 된 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어떻게든지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23 내가 복음을 위해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이 주는 복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 바울은 자유인이었지만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스스로 종의 자리에 섰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상대방의 상황과 연약함을 이해하며 다가갔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행동하며 그들의 마음에 복음이 들어갈 길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비위를 맞춘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헌신이었습니다. 복음의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자존심만 주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섬기며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길을 선택합니다.
나는 내 기준과 방식만 고집하며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한 영혼을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태도나 습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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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달려가는 믿음의 경주 고린도전서 9장 24~27절
24 경기장에서 경주자들이 모두 힘껏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인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기 위해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얻으려고 절제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절제합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고 허공을 치듯이 싸우지 않습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시키는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도리어 나 자신은 버림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바울은 신앙생활을 경주와 격투 경기에 비유합니다. 경기에서 승리하려는 사람은 목표를 분명히 하고 철저히 절제합니다. 바울 역시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킨다고 말합니다. 이는 육체를 학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욕심과 게으름에 끌려가지 않도록 자신을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길은 순간의 열심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인내와 절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보다 다시 일어나 끝까지 달려가는 사람을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나는 영적인 목표를 분명히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요?
하나님 앞에서 절제하고 다스려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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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증인으로 살아가는 습관
바울이 방문했다는 빌립보 지역의 유적지를 찾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위용을 자랑했던 거대한 도시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년에 참수형을 당해 죽은 바울은 지금까지도 헌신적인 복음 전파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온전히 바쳤기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볼로니아의 바위 언덕 앞에 섰을 때는 제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태형을 당해 상처투성이의 몸이 된 바울이 빌립보에서 약 107km 떨어진 아볼로니아까지 왔을 길이 생각나서였습니다. 루스드라에서도 돌팔매질을 당했던 바울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이튿날 더베로 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근 엿새 길을 걸어 더베에 도착하자마자, 바울은 그곳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떤 상황 속에서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바울에게 습관처럼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 살기 위해 안일함과 나태함 속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날마다 쳐서 복종시켰을 것입니다. 그는 욕망을 좇아 살려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듯 날마다 반복된 훈련의 결과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습관으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 한 절 묵상
9장 23절 | 복음 전파는 하나님 자녀의 삶의 목적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전달자’가 아닌 ‘참여자’로 살았습니다. 복음은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가 아닌, 삶으로 경험하는 현실입니다.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심과 자랑을 내려놓고 복음의 유익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공보다 다른 이의 구원을 더 기뻐합니다. 내가 복음에 참여하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복음에 참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도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세상을 좇아가던 몸부림을 멈추고 진정으로 복음을 위한 인생을 살게 하소서. 영혼 구원에 힘쓰기 위해 절제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데 더욱 집중하게 하소서.
고린도전서 9장 19~27절은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절제하며 살아간 바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었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연약한 자에게는 연약한 자처럼 다가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그는 신앙생활을 경주에 비유하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절제와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영원한 상을 위해 더욱 자신을 다스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도 나의 편안함보다 영혼 구원을 우선하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고린도전서 9장 22절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익숙함과 권리까지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그들의 자리로 다가갔습니다. 진짜 사랑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때로 내 기준과 편안함만 지키려 하면서 영혼을 향한 마음은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복음은 높은 곳에서 외치는 명령이 아니라, 함께 울고 함께 걸어가는 사랑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누군가의 곁으로 다가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낮아지고 섬기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린도전서 9:22)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합니다. 체면을 세우고 싶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으며, 손해 보지 않는 관계를 원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고 낮아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음속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먼저 연락하고 먼저 품어주는 일에는 자존심이 먼저 앞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유로운 사람이었음에도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살아갔습니다. 자신의 방식과 자존심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가”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우리에게 그렇게 오셨습니다. 가장 높은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복음은 결국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준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기다리기보다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또한 바울은 신앙을 운동선수의 절제에 비유합니다. 세상에서도 목표를 위해 많은 것을 절제하는데, 하물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는 얼마나 더 삶을 다스려야 하할까요? 진짜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 귀한 것을 위해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힘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삶에 적용하는 방법
사람들과 관계할 때 자신의 욕심이나 고집을 내려놓고, 상대를 이해하며 사랑으로 다가가는 태도를 실천하십시오./ 신앙 공동체와 복음 전파에 헌신하고, 자신만의 영적 목표를 세워 꾸준히 노력하며 성장하는 삶을 추구하십시오./ 일상에서 자기 절제를 실천하고, 육체적·정신적 욕구보다 영적 목표에 집중하며 인내심을 키우는 훈련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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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삶은 복음 사역자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됨
바울은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율법없는 자같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같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이지만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출신이나 학식, 시민권까지 가져서 누구보다 '갑'이 될 조건을
갖추었지만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을'이 되었습니다.
성도는 바울처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절제함
바울은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음질할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운동경기에
우승하기 위해 선수들이 많은 것을 절제하며 노력하는 것같이 복음을 위해 진력하는
사람들도 모든 것에 절제해야 됨을 교훈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선수들은 그것을 위해 많은 고통을 참고 훈련하며 모든 생활에서 절제를 실천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모든 것은 주님이 책임져주십니다.
최선을 다하는 노력
바울은 남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도리어 자신이 버림을 당할까 염려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장되어 있음을 잘 아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약한 인간이 교만해질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자기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물하셨듯이, 바울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자기의 권리를 포기했듯이, 우리는 복음 증거자로서 주님과 이웃을 충실히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편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놓는 삶입니다(19~23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19절)... 바울은 더 많은 사람들을 얻고자 즉 더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끌고자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빌 2:7~8)처럼 말입니다.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22절)...
바울은 복음의 본질에서는 조금의 타협도 없었지만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융통성과 상황 적응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는 곧 무뢰한 접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한 세심한 배려입니다.
오늘 내 자신의 삶의 가치는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마시느냐, 무엇을 입느냐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을까...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 가운데로 파송되었다라고 하는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안락한 삶만을 추구하여서는 안 됩니다.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해야만 합니다.
매주 광장에서 버스킹 예배를 드리는 것 또한 한 영혼이라도 찬양의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영혼이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꼭....
우리 교회가 아니더라도 좋은 교회 만나 그곳에서 예수 안에서 그 영혼이 거듭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진정으로 복음을 위하는 삶이란 그래서 내가 편할 수 있는 자리를 한 영혼을 위해 내어놓는 삶입니다.
➲ 영적인 절제와 훈련의 삶이어야 합니다(24~27절).
바울은 고린도에서 2년마다 올림픽 경기에 버금가는 이스트미안 경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경기장에서 달리는 선수들은 많지만 상을 받는 선수는 오직 한 사람인 것처럼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상을 받도록 달려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을 상을 얻기 위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입니다. 바울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헛되게 싸우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다 보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절제하며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켰습니다. 힘든 훈련과 절제가 있을 때 복음을 통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복음의 열매를 얻기 위해 경주에서 전력 질주를 하듯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열정을 갖되 목표와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삶을 조정하고, 스스로 훈련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지면 힘든 줄 모르고 몰두한 것처럼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 사역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깨닫는다면 기쁨으로 그 사역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모든 사역 하나하나가 주님 안에서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을 때, 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세상 사람들은 저리도 열심히 살아가는데, 하물며 영원히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살아가는 나의 삶이 너무나 안일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돌아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절제하며, 끊임없는 영적 훈련을 통해 승리의 면류관을 향해 전심전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복음이 좋은 줄을 알고 복음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라면,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복음이신 예수님만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주께서 자유의 왕이시나 당신의 하늘의 권리를 다 내려놓고 종의 자리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그러므로 우리도 자유인임을 부인하고 종의 자리로 낮아져야 하는 것입니다(고전9:19)
그래서 주께서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막10:44) 그래서 바울도 자기의 자기 됨이 아니라, 오직 종 된 것을 전파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왜냐하면 이 도가 십자가의 도이며, 십자가의 도에 참여하는 것이 복음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임을 자랑하는 자 중에 누가 유대인이 아닌 척 하겠습니까? 율법을 자랑하는 자 중에 누가 율법 없는 자인 척 하겠습니까?
강함을 자랑하는 자 중에 누가 연약한 자인 척 하겠습니까? 그러나 십자가는 자기의 모든 자랑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율법 없는 자 같이 되고, 약한 자 같이 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이 되고, 아무것도 못하는 자 같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복음에 참여하는 길이고,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며, 그 길에서만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9:20~23)
이러한 복음을 이루신 주님이 끝내는 하늘과 땅과 만물 가운데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그러므로 이 복음에 참여하는 우리도 영광 중에 나타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1~4)
2026년 5월 28일 기도문
하나님, 복음을 위해 자유를 내려놓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던 바울의 마음을 본받길 원합니다.
제 편안함과 자존심보다 한 영혼의 구원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사람들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고 품는 마음을 주옵소서.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갈 수 있도록 절제와 인내를 허락하옵소서.
흔들리고 지칠 때에도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날마다 제 자신을 말씀 앞에 복종시키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 안에 있는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사랑하기보다 계산했던 모습을 돌아봅니다.
먼저 다가가기보다 기다렸고, 섬기기보다 인정받고 싶어 했던 연약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낮아질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누군가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먼저 손 내밀고 먼저 이웃이 되어주는 사랑을 배우게 하옵소서.
제 자유를 제 욕심을 위해 사용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절제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작은 습관과 생각까지도 성령께서 다스려 주셔서 거룩함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삶을 통해 복음의 향기가 전해지게 하시고,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썩어질 세상의 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바울 사도처럼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사랑과 헌신으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영적 경주자처럼 인내와 절제의 삶을 살아가며,
주님 앞에서 온전하게 서도록 성령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복음의 열매를 맺는 성실한 종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끝까지 힘쓰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