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앞두고
서천 막동리 내 고향
어머니 아버지 품에 찾아들었더니
네 왔으니 네 좋아하는
팥죽을
앞당겨 해주신다고
지난번에 눈이 많이 내렸다 하셨었는데
그 흔적들이 하나도 없네요 여쭈니
내리자마자 바로 녹더라
올겨울은 그리 춥지않을라나벼 하신다.
단지 살쪄가는 초저녁 달만이
고즈넉히 늘 한결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집앞길 비추는 가로등과 어울려
시골의 겨울밤을 고요히 아름답게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밤 깊어가는 시간
아버지 화장실에 자주 들르시니
옆에 주무시던 어머니도
한번 깨인 잠 다시 쉽게 잠못드시고
이리뒤척 저리뒤척 피곤도 하셨을텐데...
겨울비 내리며
물안개 짙게 올라있는 이른 아침
어머니께선 마당에 걸어둔 솥을 씻고 계시다.
나는 당연히 가스불 위에서
팥죽 만들거라고만 생각하고는
무심히 지나치고,
아무리 냉방이라도 방은 방이라
그대로는 쉴까봐
웃방에 빚어지고 있는 술단지
힘있는 내 있을 때 옮겨놓을 생각에
용수를 걸어두고
젖내기 술을 퍼담고 있었다.
한모금 훔치듯 꿀꺽꿀꺽 맛을 보는데
참 기통차게 익고 잘 되었구나~~~
어머니, 정말 술이 잘 되었어요.
올해는 못하실 걸로만 생각했는데.
언제 또 이렇게 준비해 익히셨는지...
이제 관건은
냉장 숙성인데...
혹여나 지금 이 좋은 맛이 쉴까봐
이예 이대로 퍼담아가서 자랑 좀 해야겠구나
했었고.
어머니를 조르고 보채듯 설득해서
두어병 담아서 가져가는 것으로...
그리 아침을 먹고
설겆이를 끝내고 나오니
엇저녁 담가 불려놓은 찹쌀을
손수 도통에 찧고 계시다.
떡방앗간에 제가 다녀오마도 했었는데.
어머니 그새를 못기다리시고
힘들게 그걸 찧고 계시냐고
아들 왔을 땐
힘좋은 아들 부려잡숴야지.
하면서도 도통자루를 빨리 빼앗기보다
사진부터 찰칵 찍어둔 나였네.
아녀.
이리 앉아서는 할만혀.
이런 것도 못하면 어떻게 살겄니?
떡방앗간 갔다 올 사이
팥죽 다 만든다.
그래 내가 도통자루를 받고
어머니는 채로 빻은 쌀가루를 쳐고르신다.
힘으로 팡팡 불린 쌀을 찧는데
좀체 어머니가 찧을 때보다 못한듯.
어머니가 찧을 땐
표나게 팍팍 잘 빻아지는 것 같았는데
내가 찧을 땐
힘은 좋아도 좀체 팍팍 빻아지는 느낌이 없다.
하여간 비오는 아침
마당 한켠 강녕에 비피해서
도통질하고 채질하여
쌀을 빻아가는디.
요게 요즘 잘 나가는
티브이프로 삼시새끼 그 풍경이라
어머니 오늘 팥죽 만드는 건
삼시세끼 서천 막동리편 되겠네요.
헌데 어머닌 삼시세끼 모르시죠?
이리 한 40여분 걸려서
찹쌀을 빻아선 부엌으로
그사이 비가 그쳐있다.
어젯밤 푹 삶아서
믹서에 갈아 걸러놓은 팥물과
방금 전 도통에 찧어온 찹쌀가루.
마지막번째
도통에서 긁어온 거친 쌀가루는
따로 빼놓고.
이따 끓을 때
국물에 직접 넣고 끓일 것으로
팥죽을 걸죽하게 하는데 쓸거라 하시고
최종 채로 걸러진 쌀가루만으로
소금간수와 뜨거운 물을 적셔가며
익반죽을 시작하신다.
익반죽이라고요?
이 말은 또 오늘 처음 듣네요, 어머니!^^
그리고 새알을 만들고
나는 받쳐둔 용수에 고인
술을 마져 퍼내고 있었고
어머니는 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있으셨는데...
가스불보다 화력이 더 좋을 줄이야
바로 물이 끓어
새알을 넣고
서로 엉겨 붙거나 바닥에 눌지않도록
긴 나무주걱으로
살살 잘 저어주고 있다.
물이 다시 보글보글 끓고
이젠 팥삶아갈아둔 팥물을 붓고
어머니는 불을 때시고
나는 계속 살살 저어주고
또 다시 가운데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
따로 빼놓았던 거친 쌀가루를 뿌리듯
골고루 어머니는 한줌씩 넣어주었고.
마무리로 살짝 소금간도 하시고.
나는 계속 저어주었다.
불은 더 때지않아도 남은 화력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타는 장작을 꺼놓기도.
이리 팥죽을 완성하여
퍼담으니
구름 갠 하늘
햇빛좋고 공기 좋고
그 안에 먹는
배추동치미에 팥죽의 맛이란~~~
먹고 또 먹고 하실 정도로
이 자랑거릴 짊어지고 오자니
어찌 자랑질 않을쏘냐?
만휴 아란도님을 꼬셔선
이 맛을 귀히 공감해줄 님들께
선착순 줄세워 불러보다.
오는 길 천안인삼휴게소에서
달 아래
어머니 아버지 떠올리며
다시 감사하고
그 기다리고 맞아주시는 사랑을 생각하다.
곁에 함께 있어야할 것 같은데...
- 2015. 12. 21. 동지이브 팥죽 소회 산울림 dream -
첫댓글 막동리 삼시세끼편~~~~
덕분에 서울에서도 삼시세끼 찍음~~~ㅋ
이리 나누어 먹으니 참~~~좋은데....
ㅎㅎ...잘 먹었고 감사해요~~~^^
갑작스러웠을진데도
그 인원 다
배불르게 치러주심에
저도 감사했지요^^.
아. 이렇게. 만들어졌내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팥죽. 고맙습니다 어머니. 고마워 산울림.
이렇게 만든 과정을 보고나니
더 맛있고 황홀했죠? ㅋㅋ
어머니 팥죽 지구상에 맛의 으뜸일듯합니다.
행복은 이런데서 ㅡㅡㅡ
으뜸 맞습니다~~~
♥.,~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팥죽에 모리미까지 잘먹고갑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