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용 요셉 신부
2024년 나해 연중 제8주간 월요일
마르코 10,17-27
가슴으로 사는 법: 믿음, 희망, 사랑만 생각하라
나는 모처럼 휴가를 내고 온 여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리는 비가 싫었고,
자기 좋은 곳만 가려고 하는 남편도 싫었다. 그렇게 금쪽같았던 내 여행이 망쳐지고 있을 때,
나는 거리에서 한 꼬마를 발견했다.
“아저씨…. 한 푼만 주세요…. 아줌마…. 한 푼만 주세요….”
소년은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달라붙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소년을 귀찮다는 듯이 지나쳤지만
몇몇 사람들은 소년이 안쓰러웠는지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쥐여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밝게 웃으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소년은 주머니에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작은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 보더니 음식을 파는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자신도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에도 여동생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은 동생이 먹는 모습을 마냥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그동안 잊고 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언제부터였던가. 오로지 나만 생각하기
시작했던 때가. 나는 행복한 날들보다는 짜증 내는 날들이 많았고 나누는 날보다,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날들이 많았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나는 잊고 있던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엉망으로 끝나는 것 같던 여행이 어쩌면 내 생애 가장 가치 있는 여행이 되어버렸다.
[출처: ‘구걸하던 소년이 보여준 감동적인 장면’, 로뎀 나무, 유튜브]
‘마더 데레사 효과’가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선행하는 모습만 보아도 몸에서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며 좋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나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왜 사람 대부분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거부할까요? 끝까지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머리가 아닌 마음의 행복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가난하면서도 부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 머리가 나라고 여기면 가난해질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콘클레턴이라는 백작이 아침 일찍 부엌문 앞을 지나다가 ‘5파운드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요리사의 한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그녀에게 5파운드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그녀를 살짝 엿보았더니
‘아이고, 10파운드라고 할걸. 10파운드라고 할걸…. ’하며 끊임없이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각도 사실 육체만큼이나 자아의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머리가 나라고 생각하면
어둠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돈과 하느님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나요?” 제가 이렇게 물었을 때 어떤 분이 손을 들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크게 대답하셨습니다. 하지만 돈을 좋아하며 동시에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부자가 주님 앞에 와서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율법 내용은 모두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들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런 계명들은 다 지켜왔다고 말합니다. 참 대견해하시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부자는 돈이 많아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결국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줄 모르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부족하다는 말씀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효과를 보면 모든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할 때 행복함을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마음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자꾸 육체의 행복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국 나 자신이 ‘마음’ 차원임을 알지 못하면 육체로 살아가게 됩니다. 내가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나인지, 육체나 생각이 나인지.
오늘 독서는 온전히 희망과 믿음과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이는 마음의 차원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하늘을 희망하고 하느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주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육체나 생각보다는 마음으로 여기고 온전히 사랑을 희망하고 믿기로 합시다.
그러면 오늘 복음의 부자처럼 우울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육체나 생각보다는 마음으로 여기고 온전히 사랑을 희망하고 믿기로 합시다.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