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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시판 도서/창작 deutschland (7)
dear0904 추천 0 조회 384 20.08.03 15:16 댓글 4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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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0.08.04 03:13

    화제를 좀 돌려보도록 하죠...

    예를 들어 유고슬라비아는 역사대로 개판이 되었을까 라던지..?

  • 20.08.04 03:14

    그게...이미 여긴 종료 확정이고.

    전 그전이 하차의사 밝혔으니...

    돌릴게 없네요...

    그나마.제 투표 상황정도?ㅎㅎ

  • 작성자 20.08.04 09:15

    종료 안건은 찬성 4. 반대 1로 가결 되었습니다.

  • 20.08.04 09:29

    재밌었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아쉽네요...

  • 20.08.04 10:36

    저도 슈나이더님처럼 2차 창작이나 해보겠습니다...

    <자유의 영웅>
    -슈피겔 특집기사,1991년 10월 7일

    10월 4일 사망한 하인리히 헬웨지 총리는 나치와 사회주의 양쪽으로부터 조국 독일을 수호하기 위해 1952년 2월 17일 자유독일연합을 창설한다는 결단을 내렸으며 FDU는 창설된후 현재까지 40년간 극우와 극좌의 위협으로부터 독일의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수호하고 있으며 소속된 다섯개 정당의 연립내각 구성이 FDU설립 후 실시됬던 모든 총선에서 전부 성공하며 헬웨지의 결단이 옳았다는것을 입증하고있다.

  • 20.08.04 10:37

    또한 헬웨지는 에르하르트와 함께 전후재건과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해 지금 독일이 누리는 번영에 큰 기여를 했으며 68폭동 당시엔 극우와 극좌의 테러의 공포에 떨던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헬웨지는 연방군이 전국에 투입하여 극우와 극좌들을 소탕했으며 테러조직들과 연관된 자유 독일당과 사회주의 연대는 해산되었고 그후부터 헬웨지 총리와 FDU는 지금까지 큰 정치적 혼란이 없이 안정적으로 독일을 이끌어왔다.

  • 20.08.04 10:37

    @로콘 이외에도 헬웨지 총리는 조국독일에 수많은 공헌을 했으며 자유의 영웅이자 독일의 영원한 총리인 헬웨지는 그의 영원한 정치적 스승인 아데나워처럼 쾰른 대성당에서 국장으로 장례가 치뤄지고 그의 고향에 안장될 예정이다.

  • 20.08.04 11:03

    인물백과 : 존 F. 케네디 (1917-1959)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1917년 메사추세츠 주 브루클라인 출생. 1952년부터 1959년까지 7년 동안 미합중국 메사추세츠 주의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2차 세계대전 중 해군에서 복무한 후 1946년에는 하원의원이 되었고, 1953년에는 메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이 되었다. 1958년에는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였고 그 후 민주당 경선에 참가하였으나, 유세 도중 암살당하고 말았다. 범인은 2020년 현재까지도 잡히지 않았으나 그의 죽음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민주당의 쇠퇴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였다."

  • 20.08.04 15:36

    뭔가 동생 로버트 케네디와 비슷한 죽음을 맞게 되었군요...

  • 20.08.06 22:47

    <지미 호파 판결>

    “제임스 리들 호파, 일명 지미 호파는 1913년 인디애나 출신의 노조 지도자이자 사회주의 계열 정치인이었다. 1950년대에서 60년대를 풍미하는 운송업 총노동조합의 위원장이었고, 마피아 조직과 결탁해 조합원들(그리고 위원장인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열중했다.

    그러나 그가 승승장구하던 1969년, 새로 들어선 사회당 노먼 토머스 행정부는 “뉴 아메리카”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범죄조직의 대청산, 일명 ‘범죄와의 전쟁(War against Crime)’ 카드를 꺼내들었다. 마피아 조직과 결탁하던 지미 호파의 심복들이 하나둘씩 구속되며 그는 절체절명의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1970년 4월 15일, 법원의 소환통보를 받아든 지미 호파는 일생일대의 도박에 나서게 된다. 그간 노조 간 협력으로 인맥을 형성해 왔던 소련으로 망명을 신청, 답장이 오기도 전에 밀항을 결정한 것이다. 마이애미에서 쿠바로, 쿠바에서 모로코로 몇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밀항한 호파는 결국 가명을 쓴 채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다.

  • 20.08.07 00:01

    이 소식을 듣고, 토마스는 즉시 NSC를 소집했다. 사회당 정권으로서는 겨우 잠재웠다 생각한 매카시즘이 재발흥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미국 땅으로 데려와 심판해야 했던 것이다. 소련 당국 또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우 이룩한 데탕트 분위기가 고작 범죄혐의자 한명 때문에 어그러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소련은 현지 노조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모스크바 공항 터미널에 체류하던 지미 호파를 강제연행해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미국으로 송환했다. 본국으로 송환된 그를 구명해 줄 이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데탕트 분위기라지만 동료들을 내버려둔 채 본인만 살겠다고 적국으로 내뺀 배신자를 도와줄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닉슨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역임하고 이후 1980년대 공화당 정권을 이끈 로버트 케네디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로베스피에르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를 심판한다는 것은 미합중국의 평화와 미래를 재판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가 무죄면 평화가 유죄였다.”

    결국 호파에게 총 245년의 징역형이 내려졌고, 그는 1989년 테네시 주립교도소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 20.08.06 22:56

    @E.E.샤츠슈나이더 그래도 여기 호파는.어떻에 죽었는지 다들 알긴 하겠네요...

  • 20.08.06 23:59

    @931117 아이리시맨 줄거리도 바뀔듯... ㅋㅋㅋㅋ

  • 20.08.07 00:18

    <소련 민주주의의 간략한 역사>

    1959년: 신연방체제, 소위 “59년 체제”의 시작. 민주연합이 공식적 분당을 허가받음. 이외 군소정당들도 창당됨.

    1963년: 신헌법 하에서 치러진 첫 대통령 선거. 흐루쇼프가 리버만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됨. 1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의회 의석 또한 단독과반을 차지함.

    1965년: 민주연합 지도자 예브세이 리버만, 정계 은퇴. 경제학계로 돌아가 왕성한 활동을 펼침.

    1968년: 공산당의 흐루쇼프와 무소속 안드로포프의 대결. 민주연합은 독자후보를 내기보다는 안드로포프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힘. 접전 끝에 흐루쇼프가 재선됨.

    1970년 9월: 흐루쇼프, 건강을 이유로 사임. 동년에 있었던 노먼 토머스 미 대통령의 임기 중 사망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 이듬해 사망하기 전까지 회고록을 집필함.

    1970년 11월: 제3대 대통령 선거. 공산당의 체르넨코, 무소속의 안드로포프, 민주연합의 사하로프가 3파전을 벌인 끝에 안드로포프 당선. 이후 10년간 두 번의 임기를 지냄.

    1972년: 정당 설립이 신고제로 전환됨.

    1976년: KGB의 기능이 경찰, FSB, GRU 등으로

  • 20.08.07 00:33

    분할됨.

    1980년: 민주연합의 고르바초프, 대통령 당선. 민주연합 최초의 집권. 모스크바 올림픽이 성황리에 마무리됨.

    1983년: CAL(조선항공)007기가 소련 영공에서 경고사격을 받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불시착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는 소련과 조선 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뻔 했으나, 양국 정상 간 합의로 마무리됨.

    1986년: 프리피야트 방사능 누출사건. 발전소 운영 측의 허가받지 않은 가동실험으로 5단계 원자력 사고가 발생. 긴급대비절차를 실행했지만 원전 노동자 23명이 사망하고 107명이 피폭당하는 참사가 발생해 고르바초프 정부의 위기를 불러옴. 특히 민주연합 정권이 실행하던 “경영합리화”, 즉 일부 국영기업에 대한 민영화 정책이 부른 참사라는 여론이 불거짐.

    1989년: 고르바초프, 완전한 레임덕 현상에 빠짐. 민주연합 내 유력 정치인인 보리스 옐친이 연일 정부를 공격하며 당 쇄신을 외침.

    1990년: 전임자와의 차별성을 강조한 옐친이 공산당의 주가노프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됨.

    1992년: 베오그라드 쿠데타 발생. 소련군 및 그 동맹군이 재빠르게 투입되어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계 반란군을 제압함. 옐친의 지지율이 폭등

  • 20.08.07 00:38

    @E.E.샤츠슈나이더 차이라면 이 시간대 아이리시맨은 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을수 있다겠군요.

  • 20.08.07 00:51

    1993년: 민영화된 프라우다 지에서 옐친의 사생활을 폭로함. “그는 심각한 술주정뱅이에 음흉한 호색한이며, 무식한 인간이다!” 정권의 도덕성에 큰 타격이 가기 시작함.

    1994년 10월: 모스크바 증권거래소 대폭락. 원인은 무분별한 민영화 작업과 탈규제로 인한 모럴 해저드, 그리고 무엇보다 “닷컴 버블”으로 불리는 신종 IT기업들의 거품 폭발이 꼽힘. 옐친의 평가가 급전직하함. 의회에서는 탄핵안까지 논의됨.

    1994년 12월: 거국중립내각 선포.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내각총리로 임명되어 국정을 수습하는 초유의 사태 발생. 부도 위기에 빠진 주요 기업들을 다시 국유화하고, 금융규제 재건작업에 나서는 한편 금융위기의 여파로 타격을 받은 우방국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개혁을 펼침. 이 조치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이때 쌓인 국가부채는 두고두고 소련의 고민거리로 남게 됨.

    1995년: 제8대 대통령선거.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됨.

    1999년: 체첸 문제가 발목을 잡으며 주가노프의 지지율이 하락함. 내각총리로 임명된 블라디미르 푸틴이 주도해 과격파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양 세력 간 협상을 성사시킴.

  • 20.08.07 01:12

    @E.E.샤츠슈나이더 2000년: 푸틴이 당권을 장악함. 주가노프의 차기 출마 포기선언. 9대 대선에서 푸틴이 가볍게 승리함.

    2001년: “9.11 테러” 발생.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An-225 민항기가 자살테러를 감행함. 이 사건으로 레닌의 유해가 전소되고 ‘굼’ 백화점이 붕괴해 천 단위의 사상자를 냄.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밝혀져, 푸틴 대통령은 즉시 응징을 명령.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전쟁 자체는 소련군의 엄청난 화력과 첨단무기들을 전시하며 빠르게 끝났지만, 전후 주둔 과정에서 각종 게릴라전에 시달림.

    2005년: 수많은 논란과 갑론을박을 불러올 “테러행위 방지 및 전 인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법안”, 즉 테러방지법이 제정되어 통과됨. 인민에 대한 도청 및 감청을 합법화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안전보장을 위해 필수적이었다는 옹호론이 제기되기도 함.

    2010년: 푸틴 정부의 내각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에 당선됨. 그러나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 과반 달성에 실패함.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힘입어 테러방지법 개정안이 통과됨.

    2016년: 영국, 유럽연합 탈퇴.

  • 20.08.07 01:28

    @E.E.샤츠슈나이더 2019년: 코로나-19 사태 발발. 선진적 의료체계로 피해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브라질 등 신흥공업국들과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서 재창궐하며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줌.

    2020년: 11대 대선을 앞두고 소셜 미디어 상에서의 인기와 대중성, 기발한 정책 등을 내세운 “미래를 향해 전진!” 당과 파벨 그루지닌 후보가 인기를 얻어 전통적 양당체제를 점차 타파하는 중. 국회의원 임기 제한, 생태주의, 기본소득제 전면 도입, 비등록 난민 추방 등 좌우파를 포괄하는 대중주의적 정책을 내세워 기존의 정치적 구도에서 벗어난다는 평가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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