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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기부 때도, 하늘 갈 때도 "알리지 말라"…
기부왕 손창근 별세
[단독]
권근영2024. 6. 17. 05:00
팔순부터 조용한 기부 이어가, 95세로 별세
지난 11일 별세한 손창근 씨는 조용한 기부자였다. 구순을 맞은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용비어천가 초간본을 비롯한 304점을 기증하고서야 비로소 사람들 앞에서 인사말을 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세한도'의 기부자 손창근 씨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95세. 지난 11일 별세했지만, '세한도'를 기증 받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알지 못했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박물관 측은 당혹해 했다. 담당자는 "'세한도' 기증하실 때도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20년 근무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차남 손성규 연세대 교수는 "아버지께서 특히 박물관ㆍ산림청에 알리지 말라 당부했다"며 "뜻에 따라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렀다"고만 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은 올 초 기증관을 재개관하면서 손씨가 기증한 국보 '세한도'를 특별전시했다. 뉴스1
손 씨는 1929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53년 서울대 섬유공학과 졸업 후 공군에서 예편했다. 1960년대 스위스 상사에서 여러 해 일한 뒤 부친과 사업을 이어갔다. 그는 '세한도'의 기증으로 2020년 문화훈장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을 시작한 이래 금관문화훈장 수훈은 그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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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에 기부 시작, 구순에 『용비어천가』 등 기증
사실 '세한도'는 그의 마지막 기증품이다. 팔순이 되던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 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2012년에는 경기도 용인의 산림 약 200만 평(서울 남산의 2배 면적)을 국가에 기증했다. 50년 동안 잣나무ㆍ낙엽송 200만 그루를 심어 가꿔오던 시가 1000억원 땅이었다. 2017년에는 연고가 없는 KAIST에 50억원 상당의 건물과 1억원을 기부했다.
손창근 씨가 부친인 개성 출신 실업가 석포 손세기(1903~83) 씨와 수집한 용비어천가 초간본. 손 씨는 이를 비롯한 304점을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2018년, 구순을 맞아 『용비어천가』 초간본(1447)부터 추사의 난초 걸작 '불이선란도'까지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박물관은 이를 기려 손세기ㆍ손창근 기념실을 마련했다. 추사 김정희를 중심으로 그와 교류했거나 영향을 받은 제자들의 작품까지 함께 모은 컬렉션이었다. 손창근 씨는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 앞에서 기증의 소회를 밝혔다.
" "한 점 한 점 정(情)도 있고, 애착이 가는 물건들입니다.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 고민 생각하다가 박물관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손 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주세요.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
인터뷰도 한사코 마다했다. 마지막까지 남겨둔 세한도'를 기증하기로 결단한 것은 그로부터 1년 2개월 뒤였다.
손세기ㆍ손창근 컬렉션에 포함된 보물 ‘북원수회도’. 겸재 정선(1676~1754)의 초기 서화첩 ‘북원수회첩’의 맨 앞에 실린 그림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대를 이은 기부였다. 개성에서 인삼재배와 무역을 하다 월남한 부친 손세기 씨는 칠순을 앞둔 1973년, 당시 박물관이 없던 서강대에 보물 '양사언 초서'를 비롯해 정선ㆍ심사정ㆍ김홍도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기증서에 이렇게 남겼다.
" "우리의 선조께서 물려주신 유품들을 영구보존 하여주시고 귀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 박물관을 통해 우리의 옛 문화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바라나이다.” "
2020년 1월 금관문화훈장 수훈 다음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손창근 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맞았다. 뉴스1
여러 차례 기부를 이어갔음에도 드러내기를 꺼렸다. 금관문화훈장 수훈 때도 자녀들만 대신 보냈다. 영상으로 전한 메시지에는 딱 한마디만 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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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기부, 조용한 마무리
‘세한도’ 기증에 감사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도 주변의 설득 끝에 참석했다. 용인 땅 기부 때는 더했다. 약속 없이 대리인만 보냈기에 산림청 직원들은 그의 얼굴도 몰랐다. “수도권 지역의 끈질긴 개발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며 신상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부를 알리는 것도 사회 기여라는 설득에 손 씨는 "자녀들도 내 뜻에 선뜻 동의했다는 것만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손세기ㆍ손창근 컬렉션에 포함된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 ‘불이선란도’. 2023년 보물로 지정됐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올 초 기증실을 개편하고 지난달까지 '세한도'를 특별전시했다. 손 씨는 이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끼던 유물들이 기증돼 있는 박물관이었지만 2020년 이후 발길도 하지 않았다.
국보 '세한도'는 15m 두루마리 대작이다. 추사가 1844년 그린 그림에 청나라 명사 16명이 쓴 감상문, 오세창ㆍ정인보 등 우리 문인들의 글이 붙어 길어졌다. 그림 오른쪽 아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의 '장무상망'인이 찍혀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 중에도 자신을 변함없이 대하는 제자에게 고마움을 담아 ‘세한도’를 그려 보냈다. 시린 겨울에도 여전한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ㆍ측백나무를 마른 붓으로 그렸다. 그림 오른쪽 아래엔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붉은 도장을 찍었다. 조용한 기부에 이은 조용한 죽음,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 할 귀한 가치를 세상에 남기고 손창근 씨는 떠났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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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개★ 걸작 “세한도”에 숨겨진 추사 김정희의 굴곡진 삶 - 유배 중 아내와 사별한 추사에게 끝까지 도움을 준 제자 이상적 | 다큐인사이트 “세한” (KBS 210415 방송)
KBS 다큐 조회수 16,979회 최초 공개: 2021. 4. 14. #세한도 #추사김정희 #안내상
다큐 인사이트 "세한" 본방송 ▶️ 2021.4.15 목요일 밤 10시 KBS 1TV
조선 후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추사 김정희의 걸작이며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국보 제180호 세한도. 1844년 김정희가 오랜 유배 생활 중에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의 신의를 담아 그린 그림이다. 세한도는 지난해 겨울, 소장자 손창근 씨의 기증으로 국민의 품에 돌아왔다. 그림은 길이만 15m에 달하며 두루마리 형태로 길게 펼쳐져있다. 178년의 세월 동안 나라의 굴곡진 역사를 함께 겪어낸 세한도. 작품에 담긴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오는 15일 방송되는 다큐 인사이트 "세한"은 한겨울 가장 추울 때 탄생하여 기증되기까지 세한도의 여정을 따라가본다.
▶ 명품배우 안내상의 깊은 보이스로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세한"
세한의 시간을 따라가는 이번 여정에 명품 배우 안내상이 함께한다. 깊이 있는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는 배우 안내상은 다큐 인사이트 "세한"의 내레이션과 함께 프리젠터로 나섰다. 실제로 안내상은 촬영 현장에서 특유의 깊이 있는 목소리로 세한도의 얽힌 사연을 묵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며 몰입도를 더했다. 그의 첫 여정은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그가 들려줄 세한도의 이야기와 메시지는 과연 시청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선사할까?
▶ 사라진 세한도, 추사 마니아로 다시 존재를 알리다.
세한도는 첫 번째 소장자 이상적이 세상을 떠나고 제자에게 이어지다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기록이 사라진다. 행방을 알 수 없던 세한도는 20여 년 후인 1930년대 조선 유일의 미술품 경매장이었던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에 등장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일본인 후지츠카 치카시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최초의 추사 연구가다. 후지츠카는 자신의 환갑을 맞아 세한도의 영인본, 즉 복사본 100부를 제작하여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아직도 수천만 원의 가치가 매겨질 정도로 높이 평가받는 세한도 영인본은 추사 김정희를 존경하는 마음과 세한도에 대한 감흥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그가 이토록 세한도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 시대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세한도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후지츠카 치카시는 세한도를 가지고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간다. 추사 김정희를 흠모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 손재형은 세한도를 양도받기 위해 후지츠카를 쫓아가 그를 설득했고 마침내 세한도를 받아서 고국에 돌아온다. 후지츠카가 그토록 아꼈던 세한도를 넘겨준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에겐 추사 김정희 연구자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손재형 선생과 나는 완당(김정희)을 사숙한 동문 아닙니까” 후지츠카가 세한도를 양도하며 손재형에게 한 말이다. 당시 일본에 공습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그는 세한도를 지킬 여력이 없었다. 실제로 손재형이 세한도를 찾아서 귀국하고 석 달 뒤 후지츠카의 서재는 미군의 폭격을 받고 잿더미가 된다.
기적같이 살아남게 된 세한도처럼 조선은 해방의 기적을 맞이했다. 손재형은 숨겨두었던 세한도를 가지고 독립운동가 이시영, 오세창, 정인보를 찾아갔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은 당시 그림을 보고서 이와 같은 발문을 적었다. “이 그림을 보니 수십 년 동안 고심에 찬 삶을 겪은 선열들이 떠올라 삼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말았다.” 나라를 잃었던 아픔과 독립운동을 했던 열사, 그리고 해방의 봄날까지. 세한도에는 시련이 담긴 여정이 켜켜이 쌓여 새겨져 있었다.
▶ 세한도의 마지막 여정
기쁨도 잠시, 세한도는 다시 한번 유랑을 떠나게 된다. 현해탄을 건너 세한도를 찾아왔던 손재형은 1971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큰 자금난을 겪게 되고 세한도는 결국 개성 출신의 사업가 손세기에게 넘어간다. 평소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고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던 손세기는 사업으로 여유자금이 생겨도 허튼 데 쓰지 않고 문화재 수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실제로 손세기가 수집했던 문화재를 기증하면서 서강대학교 박물관이 탄생하기도 했다. 아버지 손세기의 대를 이어 304점의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손창근은 드디어 2020년 2월, 마지막까지 품었던 세한도를 국가에 기증한다. 그리고 문화훈장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받는다. 세한도의 50여 년 세월을 함께한 손창근. 그는 국가의 품으로 돌아간 세한도를 다시 한번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돌고 돌아 세한도 긴 여정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KBS 다큐 인사이트 "세한"은 세한도의 탄생부터 국가의 품으로 기증되기까지 긴 여정을 다시 한번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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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근(83)옹 `얼굴없는 기부자` 1000억대 산림 기부-2012.4.5.조선 外 https://cafe.daum.net/bondong1920/8dIJ/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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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ttps://v.daum.net/v/20240617050036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