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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bnB_z6jPkWo?si=QdrPbiYRblqe8Jcc
(고전 11:1~16) 동등한 위치, 그러나 다른 역할
머리에 쓰는 것에 대한 권면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남자와 여자에 대해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1:1~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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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므로 머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고 남자를 위해 지음받았기에
권세 아래 있는 표로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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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가운데 드러나는 존중과 질서고린도전서 11장 1~10절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2 여러분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고 또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대로 전통을 굳게 지키므로 내가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3 이제 나는 여러분이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기 원합니다.
4 누구든지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5 또한 누구든지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은 자기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머리를 민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으십시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
7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됩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영광입니다.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됐습니다.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그 머리 위에 권위의 표를 둬야 합니다.
- 바울은 당시 고린도 사회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예배 가운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의 핵심은 특정한 복장이나 관습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공동체에 대한 존중입니다. 성도는 예배를 자신의 자유를 표현하는 자리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는 자리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자리입니다. 신앙의 자유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나는 예배를 드릴 때 나 자신의 만족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우선하고 있는가?
나의 행동과 태도가 공동체에 덕을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혼란을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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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 고린도전서 11장 11~16절
11 그러나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의 몸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13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14 여러분의 본성 그 자체가 가르쳐 주듯이 남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그에게 부끄러움이 되지만
15 여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그녀에게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이것은 긴 머리가 그녀에게 쓰는 것을 대신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16 이 문제에 대해 누가 논쟁하고 싶어 할지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는 것입니다.
-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설명하며 어느 한쪽의 우월함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서로 다르게 창조하셨지만, 그 가치는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교회는 경쟁하거나 비교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교회는 더욱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성도는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겸손하게 공동체의 덕과 질서를 세워 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받아들이고 있는가?
공동체 안에서 협력하기보다 내 생각과 방식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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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남녀가 함께 세워 가는 교회
예전에 옥스퍼드 의과 대학 교수가 남녀 중 누가 더 강한지를 주제로 강의한 것을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힘을 발휘하는 데는 남성이 훨씬 강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힘을 발휘하는 데는 여성이 더 강하답니다. 남녀의 상이한 세포 구조가 그런 현상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라톤이 42.195km가 아니고 420km라면, 여성이 이길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만약 약골 남자와 여자 유도 선수 중에서 소방대원 한 명을 뽑으라 하면 후자를 뽑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 유도 선수가 여자 유도 선수보다 힘을 단숨에 폭발시키는 데는 대체로 더 강합니다. 따라서 강한 힘의 순간적 폭발이 요구되는 일은 남성에게 맡기고 섬세한 힘이 요구되는 일은 여성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합니다. 교회도 남녀의 차이에 맞게 사역하고 세워 가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며 노예 해방과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했습니다. 또 약자를 보호하고, 만민의 인권을 증진시켜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평등 사상 확산, 여성 교육 등에 교회가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앞으로도 교회는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중시해,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의 지경이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 한 절 묵상
11장 11절 | 사람은 ‘함께하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 뜻을 발견합니다. 바울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속함을 통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공동체를 설명합니다. 사람은 함께할 때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다름’은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조화의 기반입니다. 누가 더 우월하냐는 판단은 하나님 안에서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체를 그분의 필요에 따라 세우십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 관계성은 때로 좁은 길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신앙 성숙을 향한 대로입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구별해 지으시고 둘이 하나 되는 신비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 섭리를 찬양합니다. 세상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하나님이 심어 주신 창조 질서를 지켜 나가게 하소서. 남녀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났음을 깨닫고 질서에 순복하며 서로 존중하게 하소서.
고린도전서 11장 1~16절은 공예배 가운데 성도가 가져야 할 태도와 공동체 안에서의 질서에 대해 가르칩니다. 바울은 당시 문화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중요한 것은 머리에 무엇을 썼느냐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공동체의 덕을 지키는 마음입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는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공동체를 세우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예배는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의 자리입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11장 1
바울은 자신을 따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성도들도 그 길을 따르기를 권면했습니다. 신앙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누군가를 세우기 위해 나를 내려놓고, 공동체를 위해 양보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행동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묻는 하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11:1)
이른 새벽 눈이 많이 내린 시골길을 걸어본 적이 있습니다. 길과 길 아닌 곳의 구분이 사라져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지도도 아니고 표지판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 흔적을 따라가니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그럴듯한 말들이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서만 믿음의 길을 가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도록 인도하십니다.
돌아보면 저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말보다 삶으로 가르쳐 주었고, 어려운 순간마다 방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완벽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저 역시 질문하게 됩니다. “나의 발자국은 누구를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나의 자녀와 함께 신앙생활하는 이들이 제 삶을 통해 예수님이 생각나게 한 사람, 인생의 눈 덮인 들판과 같은 상황에서 바른 길을 걸어나갈 수 있도록 본이 되어 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큰 은혜일 것입니다.
2026년 6월 1일 오늘의 말씀 명언 고린도전서 11장 1~16절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다른 사람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 D. L. 무디
참된 위대함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데 있다. - 존 스토트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앤드류 머리
교회는 서로를 이기려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 주는 곳이다. - 디트리히 본회퍼
하나님은 재능보다 순종을, 능력보다 겸손을 통해 일하신다. - 허드슨 테일러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 갈라디아서 5장 13절
1
고린도전서11:1-16절
본문은 여자의 머리에 쓰는 수건의 문제로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남편에 대한 존경과 정절 그리고
가정의 질서안에 있다는 정숙함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으면 간음한 여인이나 창녀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여자들이 수건을 쓰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자유의 오용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지금까지 남편의 권위 아래 있었는데
관습을 타파하고자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교회의 질서에 문제가 생겼고
나아가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복음의 문을 막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여자의 머리에 쓰는 수건의 문제를 질서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먼저 바울은 곧 바로 여자의 수건 문제를 말하지 않고
3절에 권위와 질서를 말합니다 3절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란 말은
남자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할때 권위가 나온 다는 말입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란 말은 질서를 말하는 것으로 창조의 질서속에서
남자가 가정의 대표임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동등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사랑에 기초한 자발적 순종 , 질서를 말합니다
이어서 바울은 본격적으로 질서에 대해 말씀하는데
4절 이하에예배는 남녀모두 자신의 자유함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는 자리입을 말합니다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것
마찬가지로 여자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것
이 그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7-9절에 창조기사에 근거한 질서를 말합니다
7절만 보겠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이런 말입니다 예배당에서 남자의 영광이 여자 즉 여자의 영광은 가리워져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 역시 10절에천사들이 예배질서에 순종하듯이
교회안에 여성들도 예배의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성과 그리고 교회의 전통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14-15절입니다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를 가리는 것을 대신 주셨기 때문이니라"
한마디로예배의 질서는 개인의 취향을 앞세우거나 고집하는 게 아니라
교회의 전통과 질서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개인의 자유와 취향보다 교회 질서가 앞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교회가 그렇게 한다면
세상이 교회를 지탄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취향과 자유보다 하나님의 질서가 중요함을 기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10절 바울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지음 받은 본성과 질서를 따라 예배에 참여하라고 권면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구별된 모습으로 조화롭고 질서 있게 지음 받았습니다. 이런 질서와 조화는 특히 가정 안에서 구체화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러므로 각각 자기 본성을 따라 질서 있는 모양을 갖출 때, 질서의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 예배가 지나치게 자유를 주장하며, 자기만족에 빠진 예배가 되지 않았는지 살펴봅시다.
11,12절 바울이 권면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라는 원리를 전제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상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상호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독립적 존재도 아니고 서로 지배하는 관계도 아닙니다. 가정이든 공동체이든 남자와 여자가 서로 경쟁하지 말고 상대방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며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13-16절 자유를 빌미로 세상 풍습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유가 세상의 비난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남자는 긴 머리가 부끄러움이 되었고, 여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으면 손가락질 받았습니다. 아마도 머리를 푼 여자는 창기나 점치는 자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많이 인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시하는 사회적 관습도 많습니다. 무엇이 덕을 세우는 것인지, 무엇이 부끄러운 행동인지 우리 본성이 가르쳐주기에,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질서 있고 덕이 되는 모습으로 예배에 참여하여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3
바울은 예배 문제를 거론하면서 예배 시 여자들의 복장 문제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상식과 합리성 원칙
유대인 남자들은 지금도 키파라는 작은 모자를 씁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그런 종교적 복장을 착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복음 안에서
평등하다고 가르치면서 왜 여자들은 너울을 쓰도록 하느냐고 여자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것이 남녀의 차별이 아니라 머리를 단정하게 하기 위한
도구이며 교회 안에서 질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가 너울을 쓰는 것이 불평등
이라고 한다면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깎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처럼
되지 않아도 이미 영광스러운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영광이지만, 여자는 그 남자의 영광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는 말은
남자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 중의 영광으로서 더 귀하다는 뜻입니다.
창조의 원리와 질서
바울은 공예배 때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문제를 설명하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남자와 여자의 영적 질서를 설명했습니다.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은 영적질서의
본질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담고 표현하는 형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당시 관습을 존중해서 여자들이
너울을 쓰도록 권면한 전통에 따라 카톨릭 교회에서는 지금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그런 형식보다는 본질인 말씀 자체를 강조하면서 형식은 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피아노나 드럼이 들어올 때도 그런 논란이 많았지만
예배와 찬양이라는 본질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교회에 서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가정과 교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복하므로써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 영광의 통로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삶입니까?
➲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해 충실해야 합니다(2~6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기억하고 그가 전해 준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을 칭찬합니다. 그 전통은 공적 예배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여자는 머리에 너울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단정하지 못하거나 부끄러운 모습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려면 머리를 깎아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면 머리를 가려야 합니다...’(6절,새번역)...
아울러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3절)... 얼핏 남녀 차별과 같은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이 세상의 기본적인 질서를 세우신 것임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기본 질서를 인정하고 충실해야 합니다.
아무리 내 자신이 편하다 할지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결코 유익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구원받은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매우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딱히 ‘이것이다...’라고 하는 법은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복장이며, 신앙의 스타일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다른 사람이 불편을 느낄 만큼의 언행은 삼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기본질서에 대해 충실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에 대해 순복해야 합니다(7~12절).
여자만 머리에 무엇을 쓰는 관습에 대하여 반발했던 자들을 향해 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를 설명합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8~9절)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남녀의 우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창조 원리에 근거한 질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남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서도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12절)고 선언합니다. 서로의 우월함을 주장하면서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관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가부장 문화가 많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등을 통해 들려오는 남녀 차별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음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녀 간의 질서를 성차별적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 측면에서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질서를 기초로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에 순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분쟁과 다툼과 경쟁이 아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창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세상 속에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스림과 복종의 관계가 아닌 상호 의존성과 상호 존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에 대해 순복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이 세우신 관습에 대해 인정해야 합니다(13~16절).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여 보십시오. 여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습니까?’(13절,새번역)...바울은 마땅하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논쟁을 하려는 자들을 향해 남자의 긴 머리는 부끄러움이 되고, 여자의 긴 머리는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것이 본성임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나, 그런 풍습은 우리에게도 없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16절,새번역)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은 차원에서 시대에 따른 인식의 변화와 삶의 변화 그리고 교회마다 있는 관습들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움만 추구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관습을 거스르며 권리를 주장하고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오히려 교회와 성도 모두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며 더 큰 갈등과 혼란만 가져오게 됩니다. 서로가 좀 더 양보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는 논쟁에 빠지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갈등과 논쟁이 있을 때, 하나님이 본래 세우신 뜻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면서 아름다운 조화와 화합을 이루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관습에 대해 인정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로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기본질서에 대하여 충실하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고, 이해하여 행복을 나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갈 수 있기를(고전 11:2~16절)...
오늘의 말씀해설
예배 때 여자들의 복장(11:1~10)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문제 중 하나는 전통과 관련된 것으로, 예배 중에 기도나 예언을 하는 사람들의
복장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복장이 다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남자는 예배 중에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지만, 여자는 머리를 무언가로 가려야 합니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 여인들은 남자들이 머리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들도 머리에 쓰는 것을 거부한 듯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을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로 이어지는 질서를 내세워 설명합니다. 즉, 여자는 남자와 다르므로
머리에 뭔가를 쓰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 내립니다. 머리를 가리는 것은 여자가 권세 아래 있다는
표를 머리에 두는 것입니다. 결국 남자는 머리를 가리지 않음으로써,
여자는 머리를 가림으로써 하나님 아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남녀평등이란 어떤 것일까요?
- 적용 질문: 주 안에서 자유를 누리려는 내 행위나 습관이 방종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회의 질서를 위해(11:11~16)
남자와 여자는 다 주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모두 하나님에게서 났고, 남자는 여자에게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둘은 동등한 관계지만 각자의 본성이 머리에 대해 인식을 달리합니다. 즉,
남자의 긴 머리는 부끄럽지만 여자의 긴 머리는 영광이 됩니다. 따라서 함께 드리는 예배에서만큼은, 관례에 따라 복장 지침을 지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남녀의 수직적 관계나
어느 한쪽의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교회 질서를 위해 복장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유보해 달라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교회의 질서를 위해 내가 양보하거나 절제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교회의 규칙은 꼭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도우셔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주시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게 하소서.
진리만 아니라, 전통도 있습니다 진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말씀이고, 전통은 진리를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문화적 본성(고전11:14)의 겉옷입니다 즉, 진리에 문화적 옷을 입혀 진리를 더욱 빛나게 히는 것이 전통인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은 반드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본 받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전11:1~2)
그래서 어떤 교회는 부활절에 흰 옷을 입는 전통도 있고, 성탄절에 촛불을 켜는 전통도 있고,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전통이며, 결혼식과 장례식과 다른 예식에 각각의 전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은 헬라어로는 "παράδοσιζ"(파라도시스), 히브어로는 "מסרת"(마소렡)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줄로 매다"입니다 "내가 너희를 언약의 줄로 매려니와"(겔20:37)
즉, 전통은 언제나 진리의 줄로 우리를 진리에 매는 문화적 끈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공예배 때에 남성은 머리에 모자를 벗을 것과 여성은 머리에 수건을 쓸 전통과 남성을 머리를 길게 기르지 말 것과 여성은 머리를 길게 길러 수건을 대신할 것(고전11:13~16)을 진리에 근거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1:3~10)
그러나 전통이 진리보다 돋보이거나, 전통이 진리를 초라하게 하게 하면, 폐기되거나 수정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7:13) 그래서 지금은 여성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전통을 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에 와서는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명예를 뜻하지도 겸양을 뜻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성의 장발을 금하는 전통도 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에 와서는 남성의 장발이 수치를 의미하지도 않고 오히려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남자나 여자나 어느 한 쪽이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고 오직 동등함으로 여기는 것이 전통입니다
왜냐하면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전11:11~12) 오직 우리가 영원히 지킬 전통은 오직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5:12)
2026년 6월 1일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며 무엇이 진리이고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헤맬 때가 많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걷듯 방향을 잃기 쉬운 세상 속에서 저를 말씀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와 우리 가정에 믿음의 본이 되는 영적인 스승들을 보내어 주옵소서.
먼 곳에서 존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나누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좋은 스승들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도 주옵소서.
또한 저 역시 누군가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말로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제 발자국이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흔적이 되게 하옵소서.
악한 세력의 거짓과 유혹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고,
성령께서 늘 저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가정이 세대를 이어 믿음의 계보를 세워가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다음 세대에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 삶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제 자유와 권리를 앞세우기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먼저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배의 자리에서 언제나 경건함과 존중의 마음을 갖게 하시고,
교회 안에서 서로를 비교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사랑으로 섬기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를 귀하게 여기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히 행하게 하시고,
제 삶을 통해 예수님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