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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과 목적을 기억하십시오 (고린도전서 11:17~26)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 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파당(19절) 사도행전에서는 사두개인과 바리새파 같은 유대인 당파를 가리키고, 갈라디아서에서는
‘육체의 일’ 중 하나로서 금지해야 할 행위로 소개된다(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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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고린도 교회에 파당이 있고 주의 만찬을 올바로 대하지 않자 바울이 이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떡은 주님의 몸이요 잔은 주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주님이 명하신 대로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을 기념하며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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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이 아닌 하나 됨의 공동체 고린도전서 11장 17~22절
17 이제 내가 지시하려는 일에 관해 나는 여러분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모임이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해롭기 때문입니다.
18 첫째는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 여러분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19 여러분 가운데 옳다 인정받는 사람들이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분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여러분이 분열돼 있으니 여러분이 함께 모인다 해도 그것은 주의 만찬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21 이는 먹을 때 사람마다 제각기 자기 음식을 먼저 먹어서 어떤 이는 배고프고 어떤 이는 술에 취하기 때문입니다.
22 여러분이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하찮게 여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일에 대해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 고린도 교회는 성찬 모임을 가졌지만 그 안에는 사랑보다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음식을 먹고 마시며 배부르게 지냈지만, 늦게 온 가난한 성도들은 굶주려야 했습니다. 성찬이 은혜와 연합의 자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분열의 자리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교회는 신분과 형편을 뛰어넘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함께 나타날 때 완성됩니다.
나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보다 내 만족을 먼저 구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의 말과 행동은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가, 아니면 분열하게 하나요?
삶을 노래하다 : 르완다에서 1년 동안 선교사님을 도우며 현지인들과 회의를 하거나 행사를 진행할 때, 인상 깊었던 문화가 하나 있었다. 모든 모임은 마지막 사람이 도착해야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았다. 적게는 1시간, 많게는 2시간씩 늦게 오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동안 답답함과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았지만, 사람들은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기보다 끝까지 상대를 기다려 주었다.
또한 행사가 끝날 무렵에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소감을 나누곤 했다. 예정 시간이 2시간인 행사도 대부분 그보다 훨씬 길어졌다. 효율만 생각하면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공동체를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복음화율이 80%에 가까운 르완다에서 이러한 문화가 형성된 배경에는,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기다려 주는 신앙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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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성만찬 고린도전서 11장 23~26절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빵을 들어
24 감사하시고 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니 이 예를 행해 나를 기념하라.”
25 이와 같이 식사 후에 또한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 예를 행해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26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가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바울은 성만찬의 본래 의미를 다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며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 떡은 우리를 위해 찢기신 주님의 몸을, 잔은 죄 사함을 위해 흘리신 주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성만찬은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의 핵심을 기억하는 자리이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죽으심을 선포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또한 성도들이 한 떡을 나누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십자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사랑하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얼마나 자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사람답게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고 있는가?
고린도전서 11장 17~26절은 성찬을 통해 드러난 고린도 교회의 문제와 성만찬의 참된 의미를 보여 줍니다. 성도들은 함께 모였지만 서로를 배려하지 않았고,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에 차별과 분열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이 주님의 만찬을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책망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만찬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떡과 잔은 우리를 위해 찢기신 주님의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성만찬은 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는 자리이며, 동시에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자리입니다. 교회는 자기 만족이 아닌 사랑과 섬김으로 세워질 때 복음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
성만찬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사랑 앞에서는 자랑할 것도, 비교할 것도, 차별할 이유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같은 은혜로 초대합니다. 그래서 성찬의 정신은 사랑과 연합입니다. 교회가 건강해지는 비결은 더 좋은 프로그램이나 더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서로를 품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성만찬의 의미를 살아내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2026년 6월 2일 오늘의 말씀 명언 고린도전서 11장 17~26절
그리스도인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부름받았다. - 디트리히 본회퍼
복음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도 화목하게 만든다. - 팀 켈러
성찬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현재 누리는 은혜의 수단이다. - 존 칼빈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크게 선포된 강단이다. - 찰스 스펄전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 나아갈 때마다 그분의 죽으심과 사랑을 새롭게 기억해야 한다. - 찰스 스펄전
교회의 일치는 같은 의견 때문이 아니라 같은 구주를 섬기기 때문에 가능하다. - 존 스토트
사랑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완전한 띠이다. - 어거스틴
우리가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납하셨기 때문이다. - 디트리히 본회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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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1:17-26절
본문은 성찬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당시 성찬은 애찬(식사)과 성찬이 함께 했습니다.
문제는 고린도교회는 성찬을 함께 하지 않고 부유한 자와 가난한자 노예로 나누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성도의 집에서 모이는 가정교회 형태였습니다
주로 부유한 성도의 집에 모였습니다
보통 집은 9명 정도 귀빈을 모시는 식당인 트리클리니움이란 곳과
30-40명 정도 모일수 있는 바깔뜰인 아트리움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성찬때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성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이렇게 한 것은 세상에서 보여주는 계급문화가 교회안으로 그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나뉘어졌다고 볼수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은 20절에 주의 만찬이 아니라 자기의 만찬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교회에 22절에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했다고 책망했습니다
여기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했다는 말은 십자가에 피흘리신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행위라는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주의 만찬의 의미를 말합니다
24절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뗴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25절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의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성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먼저 십자가가 하나님과 인간의 화평을 말한다면 다시말해 수직적 화목을 이뤘다면
성찬은 인간과 인간의 화목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성찬의 의미를 무너뜨렸으니 책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말씀하고 있지만 교회는 한 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 몸임을 기억할때 교회는 세상이 줄수 없는 위로와 평화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당시 교회에서 주인과 노예가 한상에서 먹으면 세상은 교회를 보고 놀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몸임을 기억하며 세상이 줄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3-26절 성찬을 제정하시면서, ‘나를 기념(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그 의미를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선포)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주님의 죽음을 추도(追悼)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유월절 양이신 주님의 죽음으로 새 언약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분이 주관하시는 만찬에 우리를 새 언약 백성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함께하시는 식탁에서 형제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는 일은 주님의 희생을 기념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행동입니다.
30-32절 교회가 세상과 함께 심판에 이르지 않도록 판단하고 징계하십니다. 주님의 징계는 다양한 형태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징계받을 때에 속히 돌아서야 하고, 더 좋은 것은 스스로 판단하여 주님의 판단(징계)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7-22절 고린도 교회는 주의 만찬을 부자들의 사교 모임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부유한 이들이 준비한 만찬을 먼저 먹었기 때문에, 일을 하느라 늦게 참여한 가난한 지체들은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한 몸에 참여하는 거룩한 성찬이 도리어 신분과 소유의 격차를 뚜렷이 드러내어 차별을 강화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세속적인 모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배제시키고 부끄럽게 만드는 일을 하진 않았는지 돌아봅시다.
27-29,33,34절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의 성찬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만찬을 개인 만찬 정도로 여기고 가난한 사람을 소외시키는 일은, 주의 몸인 교회와 주님의 죽으심과 성찬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한 악한 행동입니다. 그들은 성찬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죄를 먹고 마실 따름입니다. ‘자기를 살피라’(28절)는 말씀은 이런 분별이 있는지, 그리고 그 분별을 따라 합당하게 성찬에 참여하는지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바른 지식이 없을 때, 우리의 예배, 성찬, 기도, 전도도 본뜻을 잃고 왜곡될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의 몸을 분별하고 저의 태도를 살펴, 합당하게 예배와 성찬에 참여하게 하소서.
3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파행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만찬에 대하여 새롭게
정립시켜 줍니다.
분쟁과 무질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모이기에 힘썼고 모일 때마다 애찬과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임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고 성찬을 나눔에 있어서도 파당과 분쟁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주의 만찬을 먹을 때도 가난한 자들이나 일하느라 늦게 온
사람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음식을 준비한 부자들이나 특정한 파당끼리 배부르게
먹고 마시는 잔치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이들은 성찬과 애찬을 혼동하여
무질서하게 진행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는 행위 때문에 부유한 성도들은
잔뜩 먹고 취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리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 교회의 모임을 칭찬하지 않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성만찬의 교훈
바울은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하신 만찬을 회상하며 가르칩니다.
바울은 주님의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 깨닫게 해주셨으므로
그날 주님의 말씀과 떡과 잔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찬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주님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전하고,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자세가 성찬에 오롯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주님의 몸을 함께 먹고
주님의 피를 함께 마심으로 하나되어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자리여야 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죽으심을 세상
끝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성만찬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으므로 자신의
구원을 기억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기억하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새 언약의 증표이자 주님의 몸을 함께 먹고,
주님의 피를 함께 마심으로 하나되어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성도들이 진정한 연합과 코이노니아를 회복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세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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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만찬에 참여하기 전에 살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공동체의 하나 됨을 점검해야 합니다(17~22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모인 그들의 모임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모일 때 분열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주의 만찬은 식사와 함께 이루어졌는데, 부유한 성도들은 집주인과 자신들만을 위한 방에서 좋은 음식을 먼저 갖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성도들은 늦게 참여하여 먹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기에 이 만찬은 부유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라고 책망합니다. 이들의 행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기에 칭찬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십자가의 참된 뜻을 기억해야 합니다(23~26절).
바울은 주의 만찬의 본래 목적과 의미를 고린도 교회에 가르칩니다. 주의 만찬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도 아닌 그 기원이 예수님께 있음을 선언합니다. 한 마디로 주의 만찬의 의의와 목적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나를 기념하라...’(24,25절). 이것이 예수님이 명령입니다. 주의 만찬의 또 다른 목적은 주의 죽으심을 재림 때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부활의 주님을 알려야 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고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 될 때,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라도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내 자신만을 위한, 내 자신만의 유익을 위한 십자가가 결코 아닙니다. 모두를 위한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의 사랑이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실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삶과 주님을 따르는 삶이 분리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주님의 만찬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뜻과 목적을 분별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의 삶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할지라도 십자가와 복음만큼은 놓치지 않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요 목적임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복음이 약해지면 내 자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바른 의미는 십자가의 참 뜻을 이해하고, 기억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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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다른 전통에 대해서는 칭찬하면서도 주의 만찬의 전통은 징찬할 수 없었습니다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전11:17)
본래 주의 만찬은 주께서 우리를 죄의 심판에서 건지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사 부활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제단에 어린양의 속죄제물로 자신을 바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주의 그 십자가의 피와 찢기신 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항상 기억하고,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자기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만 따르다가 부활에 참여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 주의 만찬인 것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3~26)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주의 만찬에 참여할 자로 서기 원합니다 자기를 시인하고 자랑하여 형제를 업신여기는 육체의 죄 가운데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를 부인하여 자기는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장사 되었음과 주 안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음을 믿는 십자가의 도로 행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참으로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의 에수님을 주로 시인하니, 오직 주 안에서 행하기를 항상 십자가의 교훈을 따라서 경건함과 거룩함에 깨어 행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합당한 복된 주의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오늘의 말씀해설
분쟁거리가 된 주의 만찬(11:17~22)
고린도 교회의 갈등은 주님을 기념해 만찬을 나누는 일에서도 발생합니다. 성도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었는데, 이때 늦게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거나 각자 가져온 것을 나누지 않고 먼저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와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은
대개 늦게까지 노동해야 하는 신분이 낮은 자들이었기에, 이는 교회에 여러 당파를 만들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주의 만찬을 나누는 목적은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인데,
도리어 교회를 갈라지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는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고 나무랍니다.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이 정당할 리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주의 만찬을 나누면서도 문제가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적용 질문: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처리할 때, 꼭 지켜야 할 원칙들은 무엇인가요?
주의 만찬의 의미(11:23~26)
바울은 주의 만찬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시 강조합니다. 주의 만찬은 예수님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드러낼 뿐 아니라, 동시에 예수님의 피와 몸을 함께
나눈 성도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지체임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교회에서 나누는
만찬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우리가 주 안에서 하나임을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만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갈라진다는 것은 주님의 몸이 갈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몸을 나눈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분파로 나뉘어 상대편을 용납하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은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 적용 질문: 공동체가 나뉘지 않고 하나 되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거나 양보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세상에서 부와 명예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교회에서도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은 높고 낮음이 없이 평등한 관계로 저희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2026년 6월 2일 기도문
하나님, 저를 위해 몸을 찢으시고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제 안에 있는 이기심과 교만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사랑으로 섬기게 하시며,
사람을 차별하거나 판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교회가 주님의 몸 된 공동체임을 기억하며 하나 됨을 이루게 하시고,
용서와 배려를 실천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십자가를 기억하며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제 삶 전체가 주님께 드려지는 감사의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찬의 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찬을 통하여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저의 죄를 사하여주시고 구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제 안에 남아 있는 우상들과 교만과 차별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지 않게 하옵소서!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게 하옵소서.
성찬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게 하옵소서.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믿음을 지키며 바른길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장차 오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