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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칼럼] 철없는 9.19합의 파기, 핵무장론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암 선고 받은 환자 처지의 미국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난달 7일 이후 최근까지 미국 언론의 논조를 보면 마치 암을 선고받은 환자와 같은 심정이 느껴진다. 뉴욕타임즈는 사설에서 미국 패권이 사라진 “다극시대가 도래했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은 3개의 전쟁을 치를 수 없다”고 탄식했다. 포린폴리시 11월 16일자 온라인판은 미 국무부 유라시아 담당 전 차관보 A. 웨스 미첼(A. Wess Mitchell)의 “미국은 패할 수도 있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에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미국은 대만해협과 같은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재정 부담과 무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미국의 방위산업 생산량은 10%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기고문은 미국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잘못 관리할 경우 전쟁 수행비용이 GDP의 200%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제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라는 건 옛말이다.
미국은 자신만의 확증편향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위험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첫 번째는 지난 30여 년의 자유주의 질서를 재구성한다며 무덤 속에 있던 지정학을 부활시킨 데서 발견된다.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떤 진정성도 없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를 정상화하여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견제하는 미국의 회랑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팔 전쟁이 벌어졌다. 이 두 개의 전쟁은 미국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당 지역의 질서를 무리하게 변경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는 미국이 특정 국가를 국제질서로부터 추방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각종 제재를 남용했다는 점이다. 북한, 이란과의 갈등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가혹한 경제제재를 남발하였고, 이제 그 제재의 칼날은 러시아에게로 확장되고 있다. 제재의 남용은 세계적 부를 감소시키고 시민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며 안보의 위기를 구조화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에 참석하고 있다. 2023.11.13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실력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간섭·제재·통제하려 해
최근에는 과거 대공산권수출통제제도(COCOM)를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칩과 과학법, 인플레감축법(IRA)으로 중국에 대해 기술을 통제하려 한다. 제재와 통제를 무기화한 미국이 막대한 부와 기회를 창출한 자유무역 체제에 도전하며 자국의 중산층만 보호하려 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제재와 통제는 복잡한 공급의 신경망을 모니터링하고 외과수술과 같은 정밀성을 요구하는 사안임에도 미국은 과거 냉전시대의 통제 제도를 답습한 법령만 내놓았다. 인위적인 공급망 재편이라는 건 마치 심장과 간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큼 위험한 수술이다. 이런 공급망 재편에 글로벌사우스(개발도상국)는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현실과 괴리된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와 기계적 세계관이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함락 직전인 7월 중순에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상원에서 “카불은 사이공이 아니다”라며 30만 정규군을 보유한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베트남전 당시보다 더 치욕적으로 미군이 아프간에서 패주하는 데는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에 마크 밀리는 상원에서 “키이우는 72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며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미국은 대응하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망하는 정부는 안 망한다고 하고 안 망하는 정부는 망한다는 미국의 군 서열 1위는 지금까지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기 6일 전에 “중동은 20년 만에 가장 평화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며, 곧 성사될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 이후 유럽에서 중동을 거쳐 아시아로 이어지는 번영의 회랑이 탄생한다고 예고했다. 미국이 천진난한 꿈에 젖어 있는 동안 중동은 50년 만에 가장 끔찍한 전쟁터로 변했다.
추락하고 고립되는 미국에 한국만 달라붙는 형국
지정학에 의한 현상 변경, 제재의 남용, 주관주의로 인한 정보와 위기대응의 실패는 미국에게 거대한 추락을 의미한다. 이 추락에 한국은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11월 15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는 미·중이 군사 핫라인을 회복하는 등 의미 있는 협력을 도모했다. 그러나 장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무역과 경제적 상호의존을 강화하려는 세계의 열망으로부터 미국은 서서히 고립되고 있다. 한국, 독일, 일본 등이 미국의 공급망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가 안보 논리에 종속되어 진영화·블록화되는 데 반대한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간의 전략 경쟁으로 인한 기술과 시장의 분할을 수용하지 않는다.
2022년 5월에 막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도 안보”라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13개국이 참여한 IPEF는 무역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으며, 디지털 협력을 위한 표준도 제정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전자정부 시스템 미비와 의사결정 과정의 부정부패로 인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조달, 공여조차 애로 사항이 많았다”며 협력의 어려움만 하소연하고 있다. ‘탈중국’을 외치며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미국에 편승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섣부른 공급망 재편이 재앙이 될 것이라는 냉혹한 결론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작년부터 윤석열 정부는 자유무역체제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선사하는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안보협력과 이념과 가치에 기반 한 외교, 경제의 안보화와 같은 위험한 정책을 남발해 왔다. 미국과 일본을 대리하여 중국에 대한 막말을 퍼붓고 안보 논리로 경제를 통제한 결과는 중국·러시아와의 외교단절 상황이었다. APEC 정상회의 기간인 11월 17일에 일본 기시다 총리와 시진핑 국가 주석은 양자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양국 사이엔 영유권 분쟁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 중국의 일본인 구속 문제 등 산적한 다양한 현안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은 호혜적 협력을 약속했다.
반중국 이데올로기에 갇혀 외톨이 자초한 윤 정부
반면 중국과 거리두기를 지속해 온 한국은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타진했지만 중국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 채로 시진핑 주석을 3분간 만나 몇 마디 덕담을 한 것이 전부다. 지난 8월부터 정부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추진한다고 말해왔고, 이번 APEC 회의에서도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모색한다고 했음에도 아무런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 한국 경제는 일본에 성장률을 추월당했고, 저성장과 침체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현안은 누가 뭐래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이 점을 인식하고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시기에 윤 대통령만 동떨어져 있다. 아직도 윤석열 정부가 실용이 아니라 반중국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철지난 이념과 동맹 외교가 지난 3년간 미국의 실패를 촉진하는 걸 지켜보고도 그 실패를 답습하는 한국의 처지를 이해해 줄 착한 나라는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세계가 불안하고 미국의 힘이 약화되며 지정학적 위험이 다가오는 시기에 윤석열 정부는 남북 간에 합의된 9·19 군사합의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11월 13일에 서울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신원식 국방장관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할 필요성을 설명했는가 보다. 언론에 보도된 바로도 미 측은 한국 정부 입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경청만 했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불안이 고조된 시기에 미국도 더 이상 동아시아에서 분쟁 요인을 만들지 않고 중국과 화해하려는 상황이다.
줄기찬 9·19 군사합의 무력화 시도로 미국의 짐 된 윤 정부
이런 때에 한국이 나서서 지정학적 위험을 고조시키고 한반도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정책에 미국이 동의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국방부는 올해 예정된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가 이루어지면 곧바로 합의를 무력화하고 전방에 감시정찰 드론을 대규모로 투입하거나 서북해역 북방한계선(NLL) 부근에 대형 함정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연쇄적으로 판문점 남북합의까지 무력화되어 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로 이어질 위험도 매우 크다고 보아야 한다.
거침없이 전쟁을 향해 돌진하는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게도 자산이 아니라 짐이다. 게다가 최근 보수우파를 중심으로 다시금 한국의 핵 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쯤 되면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게 화를 낼 것이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표방하고 “순방은 민생”이라며 거의 매달 해외를 나가는 대통령이 실은 외교에서 실패하고 고립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시점에 우리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을 뼈아프게 알게 될 것이다.
출처 : 미국마저도 등 돌리는 윤석열의 ‘가치외교’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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