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래된 일이지만 최인호의 '길없는 길(전5권?)'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경허와 같은 대선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여기서 '길'이라 함은 우리가 흔히 쓰는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라기 보다는
'사람이 지켜 나아갈 도리' 또는 '발전이나 활동의 방향'쯤이 되겠다.
그외에도 '도중'이나 '방법이나 수단', '여정, 행정','방면,분야'
'익숙해진 솜씨','사람 키의 한 길이 단위','물건 품질의 등급'
'두루마기나 저고리 따위의 섶과 무사이에 있어 그 옷의 주장이 되는 넓고 큰 폭',
'권수가 여럿으로 된 책의 한 벌' 등 여러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어제 해 질녁쯤 자전거를 타고 수영천 다리를 건너 민락동으로 나가 봤다.
아파트 샛길에는 벚꽃이 만발하여 분위기가 화사하게 느껴졌다.
쌍계사 십리 벚꽃길은 아니더라도 온천천 꽃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보고 싶다
자전거를 오랫만에 타니 아직 몸에 익숙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니는 길에서는
자동차처럼 요리조리 피해 가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도 자전거 전용차로가 있고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아 페달을 세게 제법 세게 밟아
속력을 내어 갈 수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 신나게 가다 보니 인도와 자전거길이 막혀 있었다. 길바닥에는 '길없음'이라고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하마터면 가드레일에 '쿵' 하고 받칠뻔 하였다. 이런 낭패가 어디 있나!
그렇다고 차가 쌩쌩 달리는 차도로 뛰어 들 수도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도로 아랫쪽으로 내려가는 철제계단이
눈에 띄었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어깨에 둘러메고 계단을 내려갔다.
당나귀를 둘러메고 가는 우화가 생각났다.
도로를 내면서 아무리 도로건설여건이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동차 전용도로도 아닌데 '인도'를 만들지 않은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사람이 우선이다'라고 하는 것은 어느 기업의 광고카피에 불과한 것일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가드레일로 차단해 둔 것과 '길없음'이라고 길바닥에 적어 놓은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보행자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고발생시 책임회피용은 아니지 모르겠다.
내가 영국 웨일즈의 카디프시에 살 때 골프장과 붙은 동네에 살았는데
내가 세들어 살았든 집은 막다른 골목길의 제일 안집에서 두번째였다.
사람들은 자기가 다니던 길이 아니면 길이 뚫여 있는지 막혀 있는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늘 자기가 다니는 익숙한 길을 다니기를 선호한다.
영국에서는 골목길이 막혀 있는 곳에는 골목길 입구에 '막혔음(CLOSE)'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내가 살던 동네이름이 가드니아여서 동네입구에는 '가드니아 클로스'라고 적혀있었다.
학교앞 건널목(횡단보도)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라도 병목처럼 만들어 차량이 서행으로
어느 한 쪽방향이 우선이라는 화살표시가 붙어있다. 우선권을 가진 차가 먼저 지나가고 난 다음 반대 방향의 차가
지나가도록 돼 있다. 선진국이라는 게 돈만 조금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모든 면에서 공정하고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제도화 돼 있어야 한다. 물론 시민의식도 그만큼 무르익어 있어야 한다.
자전거를 둘러메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또 언덕길을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도 힘들어 밀고 올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동네 안으로 들어가니 몇번 버스인지 종점이 나왔다. 종점옆에는 옥천탕이란
글자가 적힌 목욕탕 굴뚝이 보였다.
몸에 땀도 약간 배인터여서 목욕이나 해 볼까 하고 들어갔다.
요금은 대인 3천원 소인 2천원이라 적혀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한테 자전거를 안쪽에 세워두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그러라고 했다.
조금 오래된 시설이지만 동네 목욕탕치고는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었다. 비누와 수건도 제공해 주었다.
목욕하는 사람수를 세어보니 열명정도 였다.
전에 살던 대신동에서도 목욕요금이 5천이었고, 해운대 온천은 6천원이다.
민락동에는 인근에 목욕탕이 여럿 있어서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 요금이 싸다고 한다.
어찌됐건간에 시장원리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는 법이다.
주인은 3천원 받아도 현상 유지가 되니까 유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5천원이나 6천원을 받는 곳은 떼돈을 버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식 아파트에 목욕탕이 있지만 재래식 욕탕 떳떳한 물 속에 몸을 푹 담궈 있는 자미는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