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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베드로후서2장10~22절
제목 : 탐욕에 연단된 사람들
거짓 선생들은 영적 권위자들을 멸시하면서 음란과 탐욕의 행실을 계속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사도는 그들이 바로 멸망의 종들이라고 말합니다.
1. 권위자들을 멸시함(10~12절)
1)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합니다(10절)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 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 '육체를 따라'는 '육체가 갖는 속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신령한 속성을 따르지 않고 윤리적 죄악을 행하는 것을 나타
냅니다(Lenski, Blum).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주관하는이'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십니다.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
한편 '영광있는 자'는 하늘의 천사들이라고 주장합니다(Spitta, Kuhl, Alford, Blum, Green).
거짓 교사들은 당돌하고 교만하여서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하늘의 천사들마저도 무시하고 업신여겼습니다.
2) 거짓 선생들의 행위와 천사들의 행위를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11절).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본문은 더 큰 힘과 능력을 소유하였으나 송사하지 않은 천사들과 힘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적하고 비방하는 거짓 교사들을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을 강하게 드러냅니다(유 1:9;계 12:9,).
한편 본문의 '천사들'은 '미가엘'을 가리킵니다(Cranfield, Bauckham).
이들은 다른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보다 강합니다(계 12:9).
이렇게 강한 미가엘조차도 자신이 직접 비방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모든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립니다(유 1:9).
3)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다(12절).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필연적인 멸망을,
잡혀서 도살(屠殺)당할 짐승에 비유합니다(계12:11-13).
거짓 선생들의 무례하고 거역하는 행위는 천사의 행동에 비하면(유 1:10)
아무런 생각이 없는 동물과 같은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을 비롯한 죄인들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영적 진리를 잊은 채 다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롬1:24,25).
*롬1:24,25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25]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그 알지 못한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거짓교사들의 행동은 동물과 같이 근본적으로 이성 없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사도 바울도 믿기 전에 행한 자신의 행동을 무지의 탓이라고 밝혔습니다(딤전1:13).
*딤전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이렇게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불법을 행하며,
대적하여 멸망이라는 엄청난결과를초래합니다(딤전 1:7, Clarke).
*딤전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멸망 안에서 그들은 파괴될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는 문자 그대로 그들의 멸망을 의미하여 멸망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봅니다(Plumptre, Lenski).
따라서 본문은 거짓 교사들은 무지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결과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2. 방탕과 탐욕에 연단된 자들(13~16절)
1)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13절).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남들에게 불의하게 행한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들도 속임을 당하고 보응을 받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예는 불의하게 예언하려다 멸망한 발람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민24:11).
*민24:10,11 “[10]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11]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 '낮에'에 대해서 혹자는 '날마다'(Meyer, Alford, Auther)로 이해하고,
혹자는 '매일'(Oecumenius)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나'낮 시간에'(Zahn, Bigg, Strachan, Blum)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한편 '연락'은 사치스럽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눅7:25).
*눅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취하고 방탕한 생활은 일반적으로 밤에 이루어지나 거짓 교사들은 이들보다 더 악한 자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
'점과 흠'은 어떤 모양을 손상시키는 오점을 말하는 것으로(엡5:27;벧전 1:19) 거짓 선생들의 불의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또한 '간사'는 '어리석음' 혹은 '속임'을 뜻합니다.
본절은 거짓교사들이 낮에도 밤처럼 향락(享樂)에 빠진 생활을 즐길 뿐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모임에서도 역시 자신들의 술 취하고 음행하는 방탕한 행위로써 불의를 드러냄을 시사합니다.
2)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14절)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베드로는 거짓교사들의 마음속에 있는 음란한 생각을 시각적으로 묘사합니다.
'음심'는 문자적으로 '음녀' 혹은 '간음하는 여인'을 의미합니다(마12:39;16:4;
롬7:3;약4:4).
*마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롬7: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본문은 음탕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거짓 교사들의 방탕한 생활은 전혀 만족이 없으며 그들은 지칠 줄 모르는 육적인 정욕의 노예가 되어 죄악 된 삶에 빠져 지내게 됩니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 '굳세지 못한 영혼들'은 본서의 수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3:16) 베드로 자신의 연약했던 과거를 암시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네가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눅 22:32)는 명령을 들었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의 미혹 가운데 있는 수신자들과 자신을 비교했음이 틀림없습니다(Green, Gibson).
'유혹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꾀다', '미끼를 달다')에서 유래된 말로 (18절, 약 1:4) 거짓 교사들의 전형적인 속성을 시사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 꾀어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동참하게 합니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 '연단된'은 '체육으로 몸을 단련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탐욕적인 생활이 이미 습성화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한편 '저주의 자식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히브리식 표현으로 '하나님의 저주
가 그들 위에 있도다'라는 의미입니다(눅10:6;엡2:8;5:8;살후2:3;벧전1:14).
*눅10: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살후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벧전1: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이것은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3)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 도다(15절).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탐욕을 '발람'의 예를 들어 책망합니다.
'바른 길'은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유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리의 도'(2절)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발람의 길'이란 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거짓 예언을 하고(민 22:5-24:25) 부도덕한 것을 교훈한 역사적 사실(민 31:16;계 2:14)을 가리킵니다.
본절에서 베드로가 거짓 교사들의 탐욕과 불의에 대해 발람의 교훈을 예로 언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을 함과 동시에 거짓 교사들에게 멸망의 경고를 하기 위함입니다(Blum, Reicke).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 '불의의 행위로 말미암는 삯을 사랑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민22:22-24)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도록 미혹하였던 구약의 발람의 예를 통해서(민 31:16;유 1:11) 불의한 삯으로 거짓된 모든 욕망을 소유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모습을 지적합니다(Calvin, Reicke, Green, Lenski).
4)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습니다(16절).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 발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불법'은 발락이 주는 불의의 삯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거짓으로 저주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어긴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발람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 거짓으로 책망한 위선자였음을 나타내어 발람이 표리부동한 거짓 교훈을 전하는 죄를 범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민25:1-3;31:16;신23:4;수24:9;느13:1,2;계 2:14).
거짓 교사들의 죄는 이처럼 발람이 책망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본문은 발람이 책망 받는 사건을 나타냅니다.
본래 선지자의 직무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해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이 자신의 소욕(所欲)으로 인해 거짓예언을 함으로 선지자의 직무를 외면하였고 그 결과 짐승 곧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나귀에게 책망 받는 발람의 예를 거짓 교사의 경우와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훈과 행위가 짐승에게 책망 받을 만큼 사악한 행위이며 '미친자의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강조합니다(Gibson, Clark)
3. 무익한 유혹(17~19절)
1)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17절)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 '물 없는 샘'은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무익함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는 물 없는 샘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 없는 샘'(창 37:24;렘 14:3)은 물이 갈한 자들에게 실망만 가져다 줄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생들의 교훈이 샘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만족을 줄 수 없는 물 없는 샘에 불과합니다(마 12:43;눅 11:24;요 4:13,14).
*요4:13,14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한편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사상적 교훈을 '안개'로 표현합니다.
'안개'는 마치 세상을 소유한 것처럼 세상을 자욱하게 덮고 있지만 광풍이 불면 한 순간에 걷힙니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영적인 생명력을 주지 못하고(Bauckham) 일시 적이며 견고치 못합니다(막 4:37;눅 8:23;유 1:12).
*막4:37“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 '캄캄한 어두움'는
'지옥'이나(Blum) 사악한 자들의 종말적 운명을 나타냅니다.
한편 '예비되어있나니'는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영원한 심판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계획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 ''예비되어있나니''는 그리스도인들의 기업이 하늘에 예비되었음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습니다(마22:13;벧전 1:7,Gibson, Robertson).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2) 허탄한 자랑의 말로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합니다(18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개역 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의 이유임을 시사합니다.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 '허탄한 자랑의 말'이란 허풍으로 부풀린 헛된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엡 4:17) 거짓 교사들의 사상적 속임수의 속성을 잘 나타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유혹하여 범죄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이란 거짓 교사들은 물론 그들에 의해 미혹당한 이교도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이성 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입니다(12절).
한편 '겨우 피한 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서 겨우 벗어난 자들로서 초보 단계의 신앙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거짓 교사들의 계략은 집요하여서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아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을 여지없이유혹하여 넘어지게 합니다(Calvin, Reicke).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 '음란으로써'는 수단을 나타내는 복수 여격으로 '음란한 행위들로'를 의미합니다.
이는 곧 '음란'이 이방인과 거짓 교사들의 대표적 속성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수단임을 뜻합니다.
또한 '아셀게이아이스'가 복수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 단순한 음란의 범위를 벗어나 육체를 이용한 온갖 종류의 음탕한 행위가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한편 '정욕 중에서' 전치사 '엔'('안에')은 '습성'이나 '환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Gibson)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유혹에 빠져 있는 이방인들의 삶이 정욕의 노예가 된 상태임을 시사합니다(2절, 고전 6:12-20,Reicke).
3)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됩니다(19절).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나 이들에게 미혹당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광의 자유(롬 8:21) 혹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고전 8:9;10:23;고후 3:17)를 오해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갈 5:1;요 8:32),
자신들이 허탄한 가운데서 행하는 방종을 혼돈합니다(3:15,16).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하면 온갖 율법과 육체에서 해방되어 윤리 생활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며 신앙이 깊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였습니다(18절).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 '종들이니'는 분사 구문으로 거짓 교사들이나 배교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처음부터 오해하여 멸망의 종의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비록 거짓 교사들이 입으로 자유를 준다고 떠벌려 미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 하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말미암아멸망 당 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진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됨이니라 - 본문은 당시 흔히 있었던 상황을 묘사하여 거짓 교사들의 종말을 암시합니다.
당시 전쟁에서 패한 국가의 백성들은 무조건 승리한 국가의 종으로 끌려 갔었습니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죄의 정복을 당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요 8:34).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이 됨이니라'함은 '종이 되어온 자'를 의미합니다(롬 6:16;8:21).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자유'를 준다고 말하기 이전부터 범죄로 인해 죄의 종이 된 상태였음을 시사합니다.
4. 배교에 대한 경고(20~22절)
1)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면 형편이 그전 보다 더 심하니라(20절)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만일 그들이 - '그들'은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게 미혹된 배교자들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언급하는 것은(1:1-3,8)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의 원천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Lenski). 한편 '피한'는 이미 완전히 피하였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이것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정한 지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방인 시절에 즐겨했던 죄악에서 돌아섰음을 시사합니다.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다시...얽매이고'는 또다시 더러움에 속박되어 죄에 정복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14,18,Gibson, Robertson, Lenski).
이방인이었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이 거짓 교사의 미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도를 버리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이방인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악하여집니다(마 12:45;눅 11:26;히 10:26)
*마12: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히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21절)
'의의 도'는 '진리의 도'(2절) 혹은 '바른 길'과 같은 개념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의미하며(마 21:32), '거룩한 명령'은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윤리적 규범입니다(2절;막 5:1-7:29).
한편 '저버리는 것'는 '되돌아 오다'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도를 받아들인 자가 그 도에서 돌이켜 배도한 것을 시사하며 '알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도를 접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배교자가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내세워 더욱 패역(悖逆)해지며 고집스러워져 다시금 회개할 소망조차 잃어버리게 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2:20;3:18;히3:12-14;4:6;10:26,38,39).
3)
=====2:22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 베드로는 거짓 교사와 배교자에 대한 경고를 하나의 속담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참 속담'은 '진실한 속담'이란 뜻으로 속담의 내용이 저들에게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 이는 잠 26:11의 인용입니다.
또한 사56:10에도 유사한 비유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잠26: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사56: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본절은 개가 자신이 토하여 놓은 것을 조금 후에 다시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이 다시금 원래의 본성대로 즉 죄악의 길로 되돌아 감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음을 가리킵니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 거짓 교사를 돼지에 비유하는 두번째 비유는 헬라의 유대인들의 속담집 '아히칼'(Ahikar)에 나오는 격언으로(Bauckham) '개'의 격언에서와 같이 과거로 되돌아 간 배교자들을 강조합니다.
돼지가 씻어서 깨끗하여졌으나 곧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가서 뒹굴어서 더러워지는 것과 같이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한번 옛 생활을 잠시 떠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잊지 못하여 결국은 죄악의 쾌락으로 빠지게 됨을 시사합니다.
한편 '개와 돼지'는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고,
주님도 진리의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을 비유할 때 사용하셨습니다(마 7:6).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베드로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가 배교하는 자들이 얼마나 죄악에 탐닉하기 쉬운가를 드러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경계토록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부여하신 권위를 멸시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10~12절).
거짓 선생들은 영적 권위자들을 멸시하며 천사들도 못한 일을 서슴지 않을 만큼 거만하고 교만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에 도전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말씀의 원위를 멸시하거나 말씀 전달자들을 무시하는 교만함이 교회 안에 뿌리내리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죄짓는 것도 훈련됩니다(10,12~16절).
육체의 정욕대로 사는 이들은 대낮에도 흥청대며 음란한 눈으 욕망의 대상을 찾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사랑하여 악한 길로 걷는 저들은 짐승과 다르지 않습니다.
죄짓기가 반복되면 죄에 단련됩니다.
음란이 습관이 되고 탐심을 채우는 일이 재능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탐욕”이 아니라 “자족과 감사”에 연단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훈련된 악인을 이길 만큼 꾸준하고 반복적으로 경건을 훈련하고 있습니까?
2) 유혹은 굳게 서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14,17~19절).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만 죄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믿음의 길에 이제 막 들어선 사람들, 영적 침체기에 있는 성도들을 미혹하여 동일한 죄를 짓게 만듭니다.
이것이 사도가 그토록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귿게 하라”(1:10)고 권고한 이유입니다.
굳게 설뿐 아니라,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들을 붙잡아 줍시다.
3) 믿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제자리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20~22절).
나갔던 귀신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오면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됩니다(마12:45).
복음에 대한 지식으로 복음을 대적하고, 한때 경험한 진리로 진리를 비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던 때가 차라리 나은 지경에 이릅니다.
토한 것에 돌아가는 개나 깨끗해진 몸으로 다시 구덩이에 눕는 돼지처럼, 회개하고 돌이킨 그 행실을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벧후2:10~22절
타락한 거짓 선생들은
영적권위자를 멸시며,
육체를 따라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고,
천사들도 못한 일을 서슴지 않을 만큼
거만하고 교만하므로,
그들의 삶은 동물과 같다.
그들은 방탕과 탐욕으로 연단된 자들로,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며,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것은 마치 미친 자의 행위와 같으며.
이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다.
그들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음란의 길로 유혹한다.
결국 그들은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는 훈련된 거짓 선생들을 이기기 위해,
반복적인 경건 훈련과 믿음위에 굳게 서야한다(벧후1:10).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오늘도 주안에 살며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