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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 비치는 엘에이(LA) 북쪽 150마일 거리에 있는 태평양 연안의 해변이다. 17마일(27km)의 광활한 백사장에 조개가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반세기 전 이민 초기에, 초등생 아이 둘을 데리고 피스모 비치로 주말 휴가를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흰 모래사장이 푸른 바다와 동무하며 내달리고, 투명한 푸른 하늘은 마음의 둑을 툭 터지게 했다.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에 움츠러든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텐트를 설비하고 자리를 깔고 비치파라솔을 꽂는데, 해변에 나갔던 두 아이가 조개를 하나씩 들고 와서 내밀었다. ‘가던 날이 바로 대박 장날’이었다. 어디랄 것도 없이 바로 선 자리에서 한 발로 발뒤꿈치를 비틀어 젖은 모래를 파면 주먹만 한 탐스러운 조개가 나왔다.
보물찾기하듯 신나게 조개를 줍다가 눈여겨보니 사람들이 삽을 들고 있었다. 인근 마켓에서 조개의 크기를 재는 잣대가 붙어있는 삽을 판다고 했다. 조개의 크기가 4.5 인치를 넘어야 채집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모든 놀이가 무색해졌던 기억이 난다.
난데없이 횡재를 만났던 경험은 두고두고 즐거운 얘깃거리가 되었다. 수년 후 언니네가 이민을 왔다. 내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던 언니가 여름이 되자 조카 가족과 함께 피스모 비치를 찾아갔다. 그리고 내게 전화했다. “우리가 지금 피스모 비치 해변에 왔는데 네가 말하던 곳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는 조개가 하나도 없어!”
자세히 물어서 확인했는데 분명히 피스모 비치였다. 어찌된 일일까? 조개가 하나도 없다는 언니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 넓은 벌에 가득했던 조개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조개의 부활 소식을 듣고 라이센스(일인당 $34), 5갤런 버킷과 꽃삽을 마련하고 나섰다. 그러나 조개는 간조 시간 앞뒤로 한 시간 동안이 제일 잡기 좋은 때라 한다. 물이 발목을 적시는 지점에서 꽃삽을 찔러보면 조개가 밑에서 받치는 느낌이 든다. 조개는 지천으로 많지만, 대부분이 잡을 수 있는 크기에는 미달이다. 많이 캐내다 보니 조개도 맵시가 다 다르다. 물론 껍질의 무늬와 색도 각양각색이지만, 부피가 두꺼운 뚱뚱이도 있고 홀쭉이에 키다리도 있다. 캐다가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져서 이놈은 틀림없이 합격이라 확신하고 재보면 아쉽게도 사분의 일 인치, 혹은 팔분의 일 인치가 모자랐다.
가져올 합격품은 바닷물이 담긴 양동이에 담고 불합격 품은 도로 모래 속에 묻어주어야 한다. 처음엔 이걸 바다 쪽 물속에 그냥 던지면 되지, 왜 묻어주기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다.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미처 묻지 못했는데 파도가 밀려오면 조개가 밀물과 함께 해안가로 밀려와 물이 빠지면서 모래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었다. 이 상태에서 조개는 스스로 몸을 기울일 수가 없다.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가 숨지도 못한다. 그렇게 조개는 결국 생명을 다할 수밖에 없다.
조개를 묻을 때 해안선과 직각으로 맞추어 심었다. 그래야 들어오는 물살의 저항을 덜 받아 밀려 나가지 않는다. 조개의 인대를 위로 반쯤만 수직으로 모래 속에 찔러 넣고 발로 지그시 눌러 놓는다. 나란히 심어 놓고 잠시 후에 돌아보니 조개들은 혀를 내밀어 모래를 파고, 거품을 뽀글뽀글 내면서 쑥쑥 들어가 잘도 숨었다.
피스모 조개는 수명이 꽤 길다고 한다. 보통 20~30년을 살고, 우리가 채취하는 4.5인치가 되려면 대략 7~8년 정도가 걸린다. 맨눈으로도 조개껍질의 원형 무늬를 보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먹이 상태와 계절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서 이런 무늬를 만든다고 한다.
양동이에 바닷물을 담고 바다가 허락한 선물을 담가서 싣고 왔다. 바다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 품고, 또 모든 것을 지속적으로 아낌없이 내어준다. 클램 차우더, 조개 파스타도 만들고 미역국, 조개 칼국수도 끓이고, 넓은 바다가 내어준 선물, 낙원의 풍미로 한동안은 몸과 마음이 즐거울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