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그 이름이 갖는 신령스런 빛이란 말답게 종교의 시원을 갖고 있는 고장이다.
백제에 불교를 전했다는 동진의 인도승 마라난타가 세운 백제 최초의 절인 불갑사가 있고,
한국 민족종교인 원불교의 발상지인 영산원이 있으며, 일본 주자학의 시조인 수은 강항
선생의 사당이 있는 곳이니 가히 그 이름에 걸맞은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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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슴푸레한 시간에 압구정을 떠난 버스가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남쪽으로 달리자 동
녘이 서서히 밝아 온다.
보기 드믄 맑은 날씨가 짜릿한 일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낮은 구릉으로 만들어진
공제선 끝에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며 올라오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행의 흥취가
더더욱 고조된다.
달리는 차창을 통해 보이는 일출을 찍기 위해 급히 카메라를 준비했지만 차창에 서린
성에를 제거하느라 좋은 장면을 놓친다.
버스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올라타기 위해 태양을 등지고 서쪽으로 향한다.
다시 남진하기까지 10여분의 시간이 초조함으로 길게 느껴진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를 지나면서 바라본 태양은 아직도 지평선에서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대교를 들어 올리고 있는 줄 사이로 보이는 태양에 조금만 더 일찍 출발했더라
면 서해대교위로 떠오르는 일출장면을 잡을 수 있었겠다 는 이미 깨진 바람 하나가 마
음속에서 마구 피어오른다.
산맥을 넘어 오는 햇살은 그 눈부심으로 산그리메를 만들고, 햇살에 덥혀진 대지가 내
뿜는 달뜬 숨결이 뫼와 뫼 사이를 흐르니 뒷산과 앞산은 또 그 앞산은 좋은 날 잡아 사
진기 앞에 모여 앉은 가족의 모습이다.
살다보면 전혀 기대하지 않은 작은 일들이 평범하게 흘러가는 삶에 기름칠 해 새로
운 힘을 샘솟게 한다. 예상치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기대하지
않던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늘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확인 차 한 두 번의 전화를 알람소리로 알고 끊었다는,
그래서 결국 중간지점에서 합류한 삶을 바라볼 줄 아는 부부의 이야기를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듣는 것은 단체관광만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다.
금강을 지나 좁은 땅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만경뜰을 지나 서울
을 떠난 지 세 시간 반 만에 영광 땅으로 접어든다.
영광에 들어서니 굴비의 고장답게 여기저기 굴비판매점이 눈에 띈다.
소읍답게 중심지는 작았지만 그 읍내에도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생활의 편리 때
문에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시골에 까지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풍경
은 그다지 좋아 보이질 않는다.
觀國之光 나라의 빛을 보는 것이 관광이라면 우리는 어떤 빛깔을 보기위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사람이 고장과 어울려 만들어 낸 고유한 빛에 온 몸과 마음을 새롭게 비춰 활력을 찾아
떠나기 위해 온 것은 아닐까?
눈앞에 보이는 고층아파트가 살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방인의 자기중심주의일까?
삶과 자연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풍경이 삶이 팍팍할 때 마다 끄집어내어 힘을 얻는 한
장의 부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스치듯 지나가는 객의 헛된 욕심일까?
불갑사
영광 읍내를 벗어나 10여분 달리니 불갑산으로 접어든다. 불갑산 입구에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산과 어울려 아름답다. 공원으로 꾸며진 주변에 소규모 풍력발전기가
가로등처럼 둘러 서있는데, 기둥 끝에 매달린 바람개비들은 그들에게 활력을 주고 떠난
바람을 그리며 저마다의 방향을 잡고 서있다.
불갑산 주차장은 최근 단장 공사를 했는지 널찍하고 깔끔하다. 새로 지은 식당이나 매
점들도 산뜻하다. 주차장 한편에 서있는 550년 된 두 그루의 거목이눈길을 끈다.
서로 기대어 자란 나무가 가지를 얽어 문을 만들었다.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니 하늘
향해 촉수를 드리운 가지가 빨아들인 코발트 청색에 마음은 순간 물들어 청정해진다.
수입한 커다란 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 자태를 살려 기둥으로 쓴 우람한 일주문을 바라
보니 만든 사람의 공력이 엿보이지만 영광읍내에서 마주친 고층 아파트가 떠오른다.
속도와 규모의 경쟁에 지친 영혼들이 위무를 받기 위해 찾은 절에서 마주치는 규모의
경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건물의 규모만큼 기도발도, 또한 마음의 위안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 대다수 신자들이라면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받아들이는 종교적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
주는 것도 없이 애 닳는 마음씀도 없이 그저 보이는 풍경에 무임승차해 위안을 받겠다
고 찾아온 중생이야 공연히 남의 행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자 다짐하며 불갑사
경내로 들어선다.
따스한 햇볕과 싫지 않은 바람을 맞으며 걷는 발걸음은 상쾌하다. 주위에 둘러싼 불갑
산은 예전 이름인 모악산(母岳山)에 걸맞게 봉우리가 부드럽다. 봉긋한 젖가슴을 닮아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니 불갑사가 이곳에 자리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라난
타가 백제에 도착해 최초로 세운 사찰이라는 불갑사. 부처를 모르고 산 백성들에게 부
처님의 법은 새 생명의 시작이었을 터이니 관세음을 닮은 저 산은 그들을 품어 키우기
엔 둘도 없는 곳이었겠다.
다리 난간위에 서있는 사자(?)인지 삽살개인지 이빨을 훤히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인상
적이다. 불교적 상징이라기 보단 아이들 만화 피카츄에 나오는 캐릭터 같다. 다리가 몸
통에 비해 짧아 5등신인 아이를 보는 것 같다. 완벽에서 벗어난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
을 포용하는 넉넉함을 갖추고 있다. 낮출수록 높아지고 비울수록 채울 수 있다는 가르
침이 조그만 석상에서 느껴진다. 최근에 만든 석상이지만 백제인의 여유와 해학이 끊어
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석상의 웃음에 동화되어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양지뜸에 햇살을 받고 있는
부도들을 만난다. 종형의 왜소한 부도들 몇 기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투박한 꽃문양
을 돋을 새김한 부도가 그중에서 눈에 띈다. 새겨진 문양 덕에 한 송이 연꽃으로 다시
태어난 부도를 보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부처님이 연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미소로 답
한 그 마음을 느껴 보라는 뜻인가? 아니면 생사가 둘이 아니며, 현실과 극락이 둘이 아
님을 알라는 뜻인가? 부도에 떨어지는 햇살만이 그 답을 알겠지.
부도전을 지나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잘 짜여진 석축위에 천왕문이 나타난다. 천
왕문 안에는 1870년 설두 유형스님이 모악산 불갑사를 중창할 때 흥덕 연기사-화엄사
효대에서 무릎 꿇고 어머니를 공양하고 계신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에서 모
셔온 사천왕상이 자리하고 있다. 나무로 조성된 사천왕상은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알
려져 있는데 국내에서 목조사천왕상으로는 가장 크다.
사천왕문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만세루가 나온다. 어느 정도 공간을 예상한 입장에서 갑
자기 맞닥뜨린 만세루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불갑사란 현판과 그 밑에 3분합의 띠살무늬 바라지창이 위엄 있게 다가서는데 만세루란
이름과 달리 누하진입을 허용치 않고 건물을 돌아서 대웅전영역으로 진입하게 되어 있다.
만세루를 빙 둘러 대웅전 영역으로 돌아서자 날렵하게 들어 올린 추녀의 화려한 단청과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당당함을 솟을 꽃살문으로 치장한 대웅전이 눈부심으로 다가선다.
대웅전 뜨락에 있는 괘불대와 일광당(一光堂)
대웅전용마루보주(스투파)이다. 지붕 용마루 중앙에 이런 보주형 장식을 얹은 것은 네
팔, 동남 불교권, 남중국 등에 나타나며 한국에선 불갑사 대웅전이 유일하다.
대웅전 창살
고주를 이용해 화려한 닫집을 만들어 부처님을 장엄하고 있다. 기둥에는 서수를 조각하
여 붙여 놓았다. 백호로 보이는 서수는 부처님의 법문을 한자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
를 쫑긋 세우고 고개까지 돌려 부처님을 바라보고 있다,
대웅전 내벽에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가 그려져 있다.
선비의 기상을 나타낸 사군자가 많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과 남종화의 고장인 지역적 특
성이 함께 어우러져 나타나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
둥치가 튼실한 고목에서 뻗어나간 가지에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
백제 최초로 전해진 불교의 역사가 저 튼실하고 힘찬 고목의 둥치라면
가지에 만개한 화사한 꽃들은 불교가 민중 속으로 들어가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은 아닐까?
후불벽화 뒷벽에 중생의 번뇌와 고통을 씻어줄 감로수가 들어있는 정병과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이 그려져 있다.
양류관음은 유마거사의 활동무대였던 바이샬리에서 역병이 유행했을 당시 병을 제거해
달라는 사람들의 소망에 응해서 관음이 나타나 정병과 버들가지를 들고 병을 없애는 주문을 가르쳤다.(청관음경)-다음 블로그 구름아래비에서 재인용
배롱나무 줄기 사이로 추녀에 걸린 풍경하나.
산은 모남을 깍아 그 안에 대웅전 용마루와 내림마루의 선을 포용하고 있다.
자연의 선은 곡선이고 곡선은 모남이 없어 어느 것이든 받아들여 함께 어울린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최대한 직선을 억제해 이러한 자연의 성질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대웅전 측면:건물로는 측면이지만 부처의 좌상이 향하는 곳이니 정면이라 할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미타 부처가 동향을 하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곳 대웅전 석가
모니 부처도 동향을 하고 있다. 아미타 부처가 서방세계불로서 동향에서 오는 중생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은 설명이 되나 석가모니불이 동향을 하고 있는
이유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불교가 서쪽에서 온 까닭에 찾아 나서고 낮은 곳으로
다가서는 모습으로 부처를 보라는 의미는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대웅전을 벗어나 뒷산으로 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이 있다.
상록활엽수인 참식나무가 자생적으로 군락을 이룬 북방한계선이란 점 때문에 천연기념
물 112호로 지정되었다. 인도 공주와 유학승간에 이루지 못한 사랑이 만들었다는 전설
처럼 언젠가는 이곳도 한 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는 전적으로 남겠구나 하는 안타
까운 마음이 일어난다. 지구 온난화로 북방한계선은 점점 위로 올라갈 테니 말이다.
침식나무 군락을 지나면 조그만 저수지가 나온다. 한겨울이라지만 천연기념물의 장래를
걱정할 만큼의 날씨는 조그만 저수지의 물도 반밖에 얼리질 못했다.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얼은 저수지를 보고 돌을 던지고픈 마음인가 보다.
살짝 얼은 얼음위로 아이들은 열심히 물수제비 뜬다.
돌은 얼음에 부딪쳐 튕겨나가고 돌이 만든 진동에 얼음판은 공명을 일으켜 가릉빈가의
음악인가 포로로롱 신비로운 소리를 튕겨낸다.
모악산을 넘어온 햇살은 물결에 칠보로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영롱한 빛의 향연을 만들
어낸다.
천상의 화음과 영롱한 빛의 향연 이 둘이 장엄하는 세상이 바로 불국토가 아니겠는가
대웅전 부처님이 돌아앉은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저수지를 뒤로 하고 배수로 공사가 한창인 개울을 따라 불갑사를 벗어난다.
지난여름 물난리가 났었는지 크게 넓히는 배수로 중간에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배수
로는 넓히지만 그 안에 있던 나무에게도 자리를 남겨 놓았다.
나무가 받은 그 넉넉한 마음을 갖고 불갑사를 떠난다.
첫댓글 사진은 사진대로 글은 글대로 사람맘을 온통 뺏아 놓네요. 청한님께 감사, 선과님께 감사아....^^* ()()()
읽고 보고 하면서 그저 아~~~~~~~~~~~소리만 관세음보살...........()
선과님, 원행을 하셨네요. 불갑사 말은 많이 들었지만 편하게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초등학교 6년내내 소풍을 갔던곳 내고향~ 불갑사~~ 여기서 다시 자세히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