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 올라가는 길
갈 때마다 길이 가파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1월 정모를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었지만
김종영미술관 전시만 혼자 빨리 보고
몇몇 우미갈들과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토탈미술관
전시가 없는 기간에는 미술관 문이 닫혀있습니다.
토탈미술관 정원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멀리서 사진 찍고.
이 추위
이 햇살
이 바람
이 기분
기억 속에 온전히 저장됩니다.


김종영미술관
전윤조 展
머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
~ 2015. 2/8


제목 : unburden
제목의 의미를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burden vs. unburden


무채색의 가는 실로 만들어진 수많은 사람들
실 하나에 의지해서
위태로워 보이지만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무리지어 매달려 있습니다.
각자 혼자이지만
함께 모여서 작품을 이루고 있는.



흰 실이 붕대로 느껴지면서
나의 상처를 감싸주고
쓰라린 아픔이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전시 팜플렛을 읽은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 나의 작업은 마음에 남겨진 상처들을 돌이켜보며
동시에 스스로 그 상처를 조금씩 치료해 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
소통의 한계로 인해 느껴지는 고립감,
우리 마음 속에 숨어있는 비정상과 상처에 대한 어렴풋한 인지,
그로 인해 뭇사람 사이에서 가끔 내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묘사이다. "
- 작가 노트 中



작가는 오래 전에 청력을 잃어 보청기에 의존해야 했고,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야만 하는 힘든 언어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느다란 실을 일일이 손으로 감고 풀기를 반복하면서 보냈을 외로운 시간들
그 긴 시간 동안 작가가 느꼈던 다양한 색깔의 감정들이
무채색의 인형들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형 중 유난히 작은 인형을 발견했습니다.
두꺼운 다리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가르쳤던 보청기를 끼고 있는 어린 학생이 떠올랐습니다.
기계를 통한 소리는 듣지 못하고
사람 목소리를 들을 때도 보청기가 필요한 학생이었습니다.
제 입술 모양을 보고 영어 발음을 따라 배웠었는데
잘 듣지를 못하니 당연히 말도 어눌했습니다.
그 학생은 모든 것이 힘들 때 보청기를 귀에서 빼버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보청기를 빼면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 학생 나름의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방법' 이었지요.
누구에게나 동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굴이
어떤 장소이든지
어떤 시간이든지
어떤 방법이든지
나만의 방법으로
나를 쉬게 하면서
힘을 모은 후..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동굴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저의 동굴 역시 소리들과의 단절이 필요합니다.
다만, 제 동굴은 귀에 이어폰을 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사람들이 길을 물어보지도 않고
대부분 말을 걸지도 않습니다.
미술관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 조용히 전시 관람하는 것이
지금 현재 저의 동굴입니다.
우미갈 여러분은
현재 어떤 동굴에서 쉬고 계십니까?






첫댓글 http://durl.me/8zw3in
작가 인터뷰
PLAY
오늘 정모때 보았는데 아니타님의 후기를 보니 또 달라보이네요. 붕대로 감싼다는 의미보다는 , 저는 소통의 부재로 무기력해진 자신이 비참해보여서 그걸 감추기 위해 몸을 털실로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새롭습니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소통의 부재..
저도 유라님과 같은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이룬 실을 아무리 길게 늘어뜨려도 아무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고 실 끝에 자신만 매달려있는..
혼자는 외로워서 SNS를 시작했는데 결국 더 외로워지는 현대인들.
누구에게나 필요한 동굴 중 이어폰이 있을줄이야... 음... 제게는 뭐가 있을까요?
예전엔 제 차안 이었는데 지금은 마땅히 생각나는게 없네요. 아마 걷거나 버스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동굴로 들어가는 듯 ^^
군중 속의 고독. 멋진 동굴입니다. ^^
저는 끄적이는 낙서네요^^
사각사각 연필 소리 들으면서~ 좋지요.
아니타님~토욜에 우린 비슷한 위치에 있었군요! 시간이 촉박해서 이이남 전시만 가나에서보고 정릉 한스 갤러리로 가는 바람에 김종영미술관 못 들려서 안타까웠거든요. 당신의 리뷰로 인해 행복합니당~♥ 캄사!
정릉 한스 갤러리. 놀이터 지도에 추가할게요. 감사해요. ^^
아니타님과 눈인사라도 하려고 찾았는데..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요. 담에 봬요!
오늘 평창동 그길을 걸어 그곳에 닿고 싶게하는 전시네요.
언제쯤 훠이훠이갈 수 있을런지
햇살 좋은 오후 조용한 평창동 휘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