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칠불암.
남산, 신선암.
어떤 말이 필요없는 걸작.
월성중학교 3학년 3반 김민욱
자원봉사를 끝내고 다시 옷을 갈아입은 후 남산으로 향한다. 아직 1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해지기 전에 내려오려면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더라도 볼 건 봐야 하므로 통일전 주차장에 내려 등산 입구까지 천천히 걷는다.
제일 먼저 서출지가 보인다. 소지 마립간과 관련된 전설로 유명한 서출지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이요당이 있어 연못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여름이 되면 연꽃이 펴서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이기도 하다. 만약 된다면 이요당에 앉아서 서출지를 내다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가 아니고 여기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인 양피 못을 전설에 나오는 서출지라 주장하기도 한다.
(서출지 이요당.)
원래 가면서 양피 못과 남산리 삼층석탑을 보려고 했는데 어찌 됐는지 길을 잘못 들어 지나쳐 버렸다. 그렇게 남산리 골목을 걷는데 여기는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큰 한옥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식당이나 사당인 줄 알았는데 문패가 달린 걸로 보아 분명 개인 집인데. (솔직히 부럽다.) 서출지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복원된 염불사지 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삼층석탑 앞 담벼락에는 여러 시가 걸려 있었다. 이 석탑은 원래 멀리 이거사지 석탑 부재와 함께 섞여 불국사역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석탑을 해체해 염불사지 삼층석탑으로 다시 복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거사지 석탑은 복원되지 못한 채 삼층석탑 옆에 그 부재가 놓여있다. 그리고 이거사지에는 밭 한가운데에 탑 기단과 석탑 부재가 놔 뒹굴고 있다. 어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주 염불사지 삼층석탑. 복원돼서 그런지 무척 깔끔해 보인다.)
이제 염불사지 옆으로 나 있는 등산길을 통해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등산로 초입에 지게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이게 뭘까 하고 올라가는데 중간에 한 분이 내려오는데 텐트 같은 걸 그 지게에 지고 오는 걸 보았다. 아마도 무거운 걸 옮길 때 쓰라고 갖다 놓은 것 같다. 계곡은 최근 들어 비가 안 와서 그런지 많이 말라있다. 칠불암 오를 때 항상 손을 씻던 계곡도 말라버렸다. 나중에 비 오면 괜찮겠지?
(지게는 나중에 알아보니 절에 쓸 물건이 있을 때 옮기기 위해 갖다놓은 것이라고 한다.)
(등산 초입에 보이는 지게.)
(많이 말라버린 계곡.)
(계곡 옆에 만들어진 돌탑떼.)
(칠불암 올라가는 길.)
처음에는 그래도 안 가파르지만, 막바지가 되니 점점 가팔라진다. 중간에 쉬어가던 중 계곡 옆 바위에 돌탑 두 개 무척 위태롭게 서 있어서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칠불암을 거의 다 올랐는데 이상하게도 원래 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바뀌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길을 돌아 약수터를 지나 대나무 굴을 빠져나와 칠불암으로 들어간다.
(위태롭게 서 있는 돌탑.)
(칠불암 가는 길에 있는 대나무 굴.)
대나무 굴을 지나면 칠불암 건물과 칠불암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근엄한 미소를 짓고 계신 삼존불과 그 앞에 있는 사면불. 불행인지 다행인지 풍화작용도 별로 되지 않아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남산에 있는 유일한 국보로 뛰어난 조각솜씨로 남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면 칠불암의 배치방식이다. 현재 칠불암은 삼존불 앞에 사면불이 있어 정면에서 바라보면 사면불이 삼존불을 가리는 형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불상을 이렇게 놓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이 사면불이 원래 이 자리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옮겨온 지 대해서 여러 말이 많다고 한다. 나는 다른 데서 옮겨온 것 같은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배치를 했을까? 칠불암 앞에는 여러 석탑 부재를 섞어 만든 석탑이 있는데 볼 때마다 원형이 궁금해지는 석탑이다. 칠불암은 내려와서 다시 보기로 하고 서둘러 신선암으로 올라간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역시 남산 최고의 걸작이라 불릴만하다.)
(정면에서 바라본 칠불암. 사면불이 삼존불을 가려버린다.)
(원형이 궁금한 칠불암 석탑.)
칠불암에서 신선암 가는 길에도 작은 대나무 숲이 있다. 대나무 숲으로 들어와서 대나무 숲으로 나가는 건가. 칠불암에서 신선암까지는 가파른 바위로 되어있어 조심해서 등산해야 한다. 가는 길에 동방동 일대와 코아루 등 경주의 들판이 보인다. 이런 경치를 보면 볼수록 더 기대되는 신선암이다.
(신선암 올라가는 길. 역시 대나무 숲이 문을 만들어 준다.)
(올라가는 길에 있는 왠지 마애불이 있을 것만 같은 바위.)
원래 신선암 가는 길은 무슨 이유인지 위험하다고 폐쇄되었다. 하지만 그 길로 가야 신선암이 더 극적으로 보이는데. 난간도 있었고 왜 그 좋은 길을 폐쇄한 지 이유를 모르겠다. 결국, 다른 길을 통해 돌아간다. 문화재 선간판과 작은 촛불을 키는 제단을 지나자 드디어 아름다운 신선암 보살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칠불암만큼이나 국보지정이 절실한 불상 중 하나가 이 신선암 마애반가사유상이다. 조각 솜씨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특이한 점은 다른 보살상과 달리 한쪽 다리를 걸치고 있는 형태인 반가사유상이란 점이다. 그리고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연꽃받침이 아닌 구름으로 된 받침에 앉아 계셔서 절벽에 있는 느낌을 더 극대화 시킨다. 위치부터 조각까지 이런 조각이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 그렇게 보살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분께서 폐쇄된 길을 통해 나오셔서 보살상 앞에 있는 작은 잔에 물을 부으시고는 기도를 드리고 가셨다. 불상에 있는 촛불이나 물 같은 정수는 저런 분들이 돌보는 것 같다. 보살상에는 건물을 세웠던 흔적이 있어 원래는 전각 안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상하면 더 멋있다. 절벽 끝에 금강산 보덕암처럼 세워져 있는 작은 암자 안에 촛불 빛으로 물든 보살상이 있으신 황홀한 전경이란! 그리고 뒤를 돌아서 창호지로 된 문을 열면 남산 능선과 칠불암이 밑으로 보일 것이다. 원형을 알 수 없기에 내 맘대로 상상해 그 환상 속의 절집을 그려본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사유상. 칠불암 못지않은 최고의 걸작이다.)
(한 분께서 물을 채우고 계신다.)
(정면에서 바라본 보살상. 어떻게 이런 극적인 장소에 이런 걸작을 만들어 냈을까?)
(위에서 내려다본 칠불암.)
신선암 근처에는 한 분께서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시며 계속 감탄을 하시며 되새기고 계셨다. 그래서 귤을 드리며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김천에서 오셨다고 하신다. 예전에 불교방송에서 남산에 대해 설명하는 방송을 보고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여기 왔다고 하셨다. 내일도 남산에 오르실 거라 하셔서 저번 주 답사 처였던 천룡사지와 열암골, 용장사지, 탑골 등을 알려주시자 남산에는 저런 보물이 참 많다면서 어디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시며 내려가셨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경주에 살면서 남산을 가까이 두고 오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고 기쁘다.
(신선암 근처에서 바라본 풍경. 그날따라 밑은 먼지가 좀 꼈는지 약간 뿌옇다.)
이제 다시 칠불암으로 내려간다. 어느새 해가 많이 기울어서 칠불암에 비치던 햇빛도 사라졌다. 천천히 다시 경내를 둘러보다가 칠불암 건물은 불상이 없고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에 들어가 본다. 혹시 여기서 보면 무척 멋있을 것 같았는데 기대가 컸던 건지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칠불암 뒤 바위에는 흐릿하지만, 뭐가 적혀있다. 혹시 시주자 명단인가? 칠불암 앞 사람들이 걸터앉아 쉬는 바위에는 예전 보물이던 시절 비석부터 각종 석조 유구들이 널려있다. 잘 찾아보면 석등 받침부터 사천왕상 일부로 보이는 파편도 보인다. 그리고 칠불암에는 체코에서 오신 외국인 스님께서 기거하고 계신다. 어렸을 때도 뵌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걸 보아 여기 계속 계시는 스님인 것 같다.
(다시 찾은 칠불암.)
(칠불암 뒤 바위에 있는 정체 모를 흔적.)
(칠불암 법당. 여느 법당과 달리 유리로 되어있어 칠불암을 향해 기도를 드린다.)
(법당 안에서 본 칠불암.)
(특이한 모양의 석재. 왼쪽 것은 사천왕상 밑 악귀가 아닌가 싶다.)
이제 칠불암을 떠나 다시 밑으로 내려간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통일전 주차장으로부터 무척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여기는 올라갈 때는 짧게 느껴지고 내려올 때는 길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여기 갈 때마다 친구나 아버지랑 얘기하면서 올라가서 그런 것 같다.
내려가는 길에 못 보고 지나쳤던 남산리 삼층석탑을 찾아가 본다. 노을빛을 받아 노란빛을 석탑이 물든 게 무척 아름답다. 여기는 현재 양피사지로 추측되는 곳으로 특이하게 한 쪽 탑은 모전석탑이고 다른 한쪽 석탑은 기단에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다. 멀리서 보면 둘 다 같은 것 같지만, 이렇게 조각에서 차별을 둔 것이다. 복원된 염불사지 삼층석탑에서는 느껴지지 못한 고풍스러운 느낌이 난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져 버리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서출지를 바라본다. 내년에 연꽃 필 때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칠불암 식당에서 칼국수도 먹어야지.
(남산리 삼층석탑. 앞엣것은 팔부신중이 뒤엣것은 기단이 모전석탑 형태로 되어있다.)
(다시 본 서출지.)
통일전 주차장으로 돌아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기와벽돌집이라 정류장이 무척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연탄배달에 연속으로 등산해서 그런지 오른쪽 손목이 많이 뻐근하다. (이상하게도 지금도 그렇다. 문제가 있는 건가?)
언제와도 이 칠불암과 신선암은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인다. 절터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천룡사지와 용장사지로 꼽았다면 가장 마음에 드는 남산 등산길을 꼽으라면 통일전 주차장에서 여기 칠불암, 신선암 가는 길을 꼽을 것이다. 언제나 이 모습 변치 않기를.
내년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여정- (2013. 11. 23. 土)
통일전 주차장→ 서출지→ 무량사→→ 염불사지 삼층석탑→→ 계곡과 돌탑떼→→ 칠불암 앞 약수터→ 칠불암→→ 신선암→→ 칠불암→→ 계곡과 돌탑떼→→ 염불사지 삼층석탑→ 남산리 삼층석탑→ 서출지→ 통일전 주차장
새롭게 펼쳐라!
羅新
첫댓글 자원봉사도 하고 남산 칠불암까지 답사를 했으니 바쁜 하루였구나.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