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자본, 노동, 관심" <생산의 3요소>
"정보 넘쳐나는 시대, 가장 희귀한 자원은 '관심'이다"
"초현대식 비행기 조종실에는 컴퓨터와 스크린과 내비게이션 같은 최첨단 항공공학 전자 장치가 넘쳐나지요. 비행기 성능이 좋아져서 그런 장치가 늘어날수록, 기장은 그 사용법을 숙지하고 그 장치들을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첨단 과학의 비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기장이 창 밖을 안 보나요?"이 저명한 경영학의 구루(guru)는 인터뷰가 시작된 지 10분도 안 돼 기자의 '관심'을 잡아채기 시작했다. 과연 <관심의 경제학(Attention Economy)> 저자다웠다. 비유와 스토리를 적절히 버무리면서도 한순간도 간명(簡明)함을 잃지 않는 토머스 데이븐포트(Davenport) 교수의 화법에는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첨단 과학 장치들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창 밖을 쳐다보는 기장처럼 '데이터의 과학적 분석을 충분히 이용하면서도 인문학과 직관까지 조화시키는 경영자'가 진정으로 훌륭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는 이어 "나는 그중에서도, 인문학보다는 과학, 직관보다는 분석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사람"이라고 이 질문의 답을 맺었다. 그의 답변은 기승전결이 잘 정리된 명강의의 축소판 같았다.
피터 드러커(Drucker), 토머스 프리드먼(Friedman) 같은 쟁쟁한 거장(巨匠)과 더불어 '세계 3대 경영 전략 애널리스트'로 선정(2005년, Optimize Magazine)되기도 했던 데이븐포트 교수를 최근 미국 사라소타에서 만났다. 기자가 보낸 9번의 이메일에 답하지 않던 그는 10번째 이메일에 답장을 하고는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당신은 계속 '8번 이메일을 보냈던 바로 그 기자', '9번 이메일을 보냈던 바로 그 기자'라는 식으로 앞서 보낸 이메일들을 연상하게 함으로써 독특한 기억을 내 뇌리에 남겼고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며 웃었다.
현재 미국 뱁슨(Babson) 대학 특임교수(IT·경영 담당)로 재직 중인 그는 2003년 '세계 최고의 컨설턴트 25인'(Consulting Magazine)으로 꼽힌 바 있고, 그의 2003년 저서 '빅 아이디어'는 포천(Fortune)이 그해 봄에 고른 '최고의 책 3권'에 들기도 했다.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세계의 경영 거장을 꼽을 때는 선정위원으로 참여해 랭킹에서는 빠졌다. 이동현 가톨릭대 교수는 "예전에도 경영학 대가 사이의 상호 영향을 분석한 적이 있는 데이븐포트 교수는 '구루를 뽑는 구루'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논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 맥락이다.
①그가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하는 '관심(attention)' 이야기 ②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과 넘쳐나는 분석 기법 속에서 기업이 훌륭한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을 할 수 있는 방법 ③한국 기업에 주는 조언 등이다.
한국에서 그는 베스트셀러 '관심의 경제학'의 저자로 가장 유명하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뭔지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역시 스토리로 시작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할까요? '관심의 경제학'이 한국에서는 잘 팔렸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요. 왜냐? 미국에서는 9·11 테러 직전에 출간됐거든요.(웃음) 미국인들이 쏟을 모든 관심은 다 9·11로 갔으니 저로서는 나쁜 타이밍이었지요. 바로 관심의 경제학이 주려는 지혜, 즉 '관심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으니 아무리 좋은 관심거리라 하더라도 더 큰 관심거리가 있으면 밀려난다'는 걸 제 책의 희생으로 보여준 셈이지요. 제 책이 꼭 훌륭한 관심거리란 뜻은 아닙니다만….(웃음)"
―그때는 관심 시장의 쓰나미였지요.
"정확합니다. 빈 라덴은 관심 촉발에 대단한 성공을 거둔 셈이지요."
―빈 라덴이 그 책을 읽었나 봐요?
"(웃음) 재주도 좋아요. 출간되자마자 어떻게 그렇게 멀리서 구했죠?"
그는 이어 "영어로 '관심을 쏟다(pay attention)'는 표현에 'pay'라는 동사를 쓰는 게 재미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관심은 예전부터 돈을 지불하듯 지불해야 하는 그 무엇이란 뜻이 함축돼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기본적으로 관심이란 이제 비즈니스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오늘날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실리는 정보는 15세기에 쓰인 모든 문서를 합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정보는 넘쳐납니다. 그러다 보니 이를 정작 소비하고 향유해줄 인간의 '관심'이란 자원은 갈수록 희소(稀少)한 자원이 된다는 것이지요.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당신 스스로 그 소중한 '관심' 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서 유익하게 사용할 것인가? 둘째, 다른 사람의 관심을 잡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모든 개인의 성공, 혹은 조직의 성공은 얼마나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어오느냐, 또 얼마나 자신의 관심을 잘 배분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은 '관심'을 비즈니스 맥락에서 분석한 첫 번째 책이었습니다."
데이븐포트 교수는 '관심'에 대해 "희소가치가 폭등하면서 이제 돈만큼이나, 때로는 돈 주고도 못살 만큼 귀중해진 자원"이라고 평가한다. 그가 인터뷰와 저서를 통해 제시하는 '관심 끄는 구체적 요령'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그래픽 참조〉
그는 인터뷰를 통해서 스스로 이 원칙들을 실천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사례와 해설을 변주(變奏)하면서 선명하고 독특한 메시지를 주었고, 대답을 이어가다가도 기자가 다른 질문을 할 듯하면 언제든지 말을 멈추고 '출입구'를 보여줬다.
화제가 그의 최신 저서인 〈분석 기법에 의한 경쟁(Competing on Analytics·국내 미출간)〉으로 옮겨갔다.
―'분석 기법에 의한 경쟁'이란 무엇입니까? 저서에서는 '승리를 위한 새로운 과학'이라는 부제를 달았던데요.
"우리는 왜 틀린 의사 결정, 나쁜 의사 결정을 내리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 위기에서 보듯이 금융 서비스는 물론이고 정부 정책도 틀리거나 나쁜 의사 결정이 종종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이제 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분석 기법도 엄청나게 많이 갖고 있는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의외로 과학적 분석 기법이나 행동경제학, 집단 지성 등의 지혜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합니다. 이제 경영과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화두는, 이런 분석 기법과 지혜를 어떻게 가동시켜 의사 결정 과정을 재설계하고 비즈니스를 최적화할 것인가에 집중될 겁니다. 평범한 것 같지만 매우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내가 아는 유명한 CEO는 농반진반으로 '세 종류의 직원은 반드시 해고해야 한다. 물건 훔치는 직원, 성희롱하는 직원, 그리고 엄격한 과학적 분석을 제대로 못 하는 직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만큼 21세기 경영에서 과학적 분석 기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지요."
―정보의 양이 너무 거대해져서 이제는 그걸 활용하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렇죠. 데이터의 '생성'과 '축적'에서 '활용'과 '분석'으로 그 축이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블링크〉나 〈생각이 직관에 묻다〉 같은 책들을 보면, 정보가 넘쳐나므로 너무 데이터에 함몰되지 말고 때로는 직관적 사고를 중시하라고 하지 않는가? 그에게 물었다.
―<블링크>류의 주장과 당신 이론은 배치(背馳) 되는 건가요?
"그렇지요. 좀 배치됩니다. 저도 말콤 글래드웰(Gladwell)의 〈블링크〉는 아주 잘 알아요. 그렇게 '직관'이 옳은 결정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하는 책들은, 매우 낭만적이고 재미있게 쓰여있는 책이지요. 사람들을 편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이런 유의 책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 오도(誤導)할 우려가 있어요. 예를 들어, <블링크>에서 존 가트먼이라는 심리 전문가는 부부가 식사하는 장면을 5분만 보고 있으면 그 부부가 장래에 잘 살지 이혼하게 될지 판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글래드웰은 이걸 '얇게 조각 내 관찰하기(Thin Slicing)', 결국 '직관'이라는 접근으로 풀어내는데…, 사실은 그 심리학 전문가가 (결혼 관련) 데이터의 분석을 20~30년 이상 해왔다는 사실은 무시한 겁니다. 결국 가트먼은 이혼과 관련된 여러 변수들을 오랜 기간 통계적으로 연구한 끝에 이혼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표정' 같은 것을 중요 변수로 골라내 일종의 '회귀 분석(regression)'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을 지낸 고미술품 전문가가 대리석상을 보는 순간 '이건 가짜'라는 느낌을 받아 결국 위작임을 알아내는 단초가 됐다는 이야기도 나오지요? 이것도 뇌 속에 오랜 기간의 데이터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결국 이런 이야기조차도, 데이터 분석 기법이 순수한 의미의 직관보다는 더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론 직관은 어떤 경우에는 중요한 수단이에요. 불을 끄는 소방관, 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관 같은 경우처럼 데이터를 따지기 힘들 경우에는 직관적 판단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데도 '직관이 더 정확하다'고 오판해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는 요컨대,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으며, 결국 '교과서 위주로 예습 복습 철저히 하고 수업 잘 들어야 한다'는 평범 속의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 듯했다.
―전통적인 방법과 훈련에 더 충실하고 엄격하라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의사 결정에서도 성실하고 엄격한 훈련이 중요합니다. 물론 훌륭한 결정이 오로지 데이터 분석 기법에서만 나온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까 말했듯, 훌륭한 결정은 과학과 인문학의 조화, 분석과 직관의 조화에서 나옵니다. 다만 직관은 처음부터 의지하는 근거가 아니라 나중에 비빌 언덕으로 활용해야지요. 어쨌든 요사이 가장 큰 문제는 많은 경영자들은 그런 조화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요사이 경영자들이 어느 분야에 특히 약하다고 보십니까?
"음…. 최근에는 과학적 분석 기법에서 필수적인 '가정(假定)'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 특히 약한 것 같아요. 바로 지금의 금융위기가 그렇게 촉발됐지요.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엄청나게 많은 과학적 모델들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금융기관 경영자들의 뇌리에 잘못된 가정들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부동산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틀린 가정, 불량 채권도 적당히 잘 묶으면 우량 채권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으면, 그 이후에 아무리 좋은 분석 기법을 적용시켜도 다 허사니까요. 우리는 앞으로 이런 가정이 옳았는가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가정이 옳은가를 판단할 때 바로 과학이나 엄격한 분석 못지않게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직관적이고 종합적 사고도 중요하겠지요.
- ▲ 토머스 데이븐포트 교수는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데이터의 과학적 분석 기법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앞으로 경영과 비즈니스의 가장 큰 화두”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에 대해“정보 통신의 세계적 실험실로서 유리한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제조업 이후의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 조선일보 DB사진
또 금융처럼 복잡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많은 임원들이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델을 마구 적용시켰지요. 이번 위기를 성공적으로 버텨낸 캐나다의 한 은행의 경우 CEO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인데요, 그는 임직원들에게 '만약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모델이라면,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원칙을 강조했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글로벌 위기의 여파를 벗어날 수 있었지요. 앞으로 금융 분야의 책임자를 비롯한 모든 경영 지도자들은 '이해할 수 없거나 가정(假定)이 납득되지 않으면, 뛰어들지 말라'는 원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나쁜 결정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로 위험한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들 수 있다"며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결정을 사례로 들었다.
"좋은 의사 결정은 늘 다양한 대안(代案)을 감안하면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부시는 이라크 침공의 결정을 내리면서 대안 검토 과정도 없었고, 자신과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는 참모들과만 의논을 했어요. 전형적으로 나쁜 의사 결정 프로세스입니다. 오바마는 좀 나은 것 같아요. 그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할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지요. 대안이 없으면 늘 틀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지요."
―지금의 재앙적 글로벌 위기는 왜 왔다고 봅니까?
"전 사회학자로 출발해 경영학을 공부했어요. 나는 사회학과 심리학과 경제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특히 이번 위기는 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흥분할 때, 앨런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 그런 상태가 겹치고 겹친 게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봅니다.
요사이 조금씩 행동경제학이 이 부분을 분석하고 있지만, 하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입니다. 아직은 '지적인 장난감'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정말 왜 이런 거품이 생기고 경제가 위기를 맞게 되는지를 근본적으로 분석해내기 위해 행동경제학과 같은 분야가 더 깊이 발전해야 합니다."
그는 Weekly BIZ가 여러 차례 다루었던 행동경제학에 대해 "정부와 기업의 올바른 의사 결정을 위해, 또 틀린 의사 결정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분야"라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요사이 '왜 플로리다 부동산에 특히 거품이 많이 생겼는가'를 분석하는 논문을 읽어보면 결국 '플로리다에 부동산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식의, 무의미한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들이 왜 흥분하고 비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그게 모여서 어떻게 거품이 되는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과 사회학 등을 모두 동원해서 말이죠. 매우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계 경제는 이제 바닥을 찍고 좋아지는 건가요?
"물론 아직 잠재하고 있는 문제가 있고, 이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리겠지만, 전반적으로 많은 국가의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예, 바닥은 찍고 올라오고 있지요."
데이븐포트 교수는 또 다른 저서 <핵심 인재 경영법>에서 "지식 근로자는 T.S 엘리엇의 시(詩)처럼 '집안에 들어오라고 하면, 오히려 나가고 싶어하는 심술궂은 고양이'처럼 관리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다루기 힘든 지식근로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방치해야 하나요?
"그럴 수는 없죠. 다만 20세기 식으로 관리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뿐입니다. 그래서 지식 근로자의 관리자는 감독만 하는 게 아니라 업무도 함께 수행하는, 그러니까 코치 겸 선수 식의 관리자가 필요합니다. 또 위계질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채용과 해고가 아니라 인재 스카우트와 보유로, 관료주의를 없애고 지식 친화적 문화로 바꾸는 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관리 혁명'에 해당합니다."
2년 반 전 Weekly BIZ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롤 모델로 주저 없이 고(故) 피터 드러커(Drucker)를 꼽은 바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을까?
"오랫동안 저의 롤 모델은 피터 드러커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엄격한 이론을 제시하면서도 현실성도 잃지 않는 그런 거장이지요. 마이클 포터(Porter)나 마이클 해머(Hammer)도 비슷합니다. 특히 마이클 해머는 또 경영자들이 도저히 관심을 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연설가'이기도 합니다."
― 드라마틱한 연설이란 뭔가요?
"하하, 경영자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면서 때로는 '당신들은 미쳤어' 하고 외치는 식의 연설 말입니다. 마이클 해머의 특기인데, 저는 그런 면에서는 해머보다 보수적이고 아카데믹하지요.(웃음) 저는 아카데믹과 저널리즘의 조화를 추구하고 싶어요."
그는 늘 '조화(harmony)'를 강조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기자에게 "야구를 좋아하느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을 아느냐"고 물었다. 오클랜드는 과학적 통계 분석을 통해 '연봉 대비 최고 성적'을 일구면서 메이저 리그에 새로운 분석 야구의 장을 연 팀이다. 기자가 "야구도 알고, 오클랜드팀도 안다"고 답하자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분석은 있지만 돈이 없는 팀입니다. 문제는 뉴욕 양키스이지요. 돈은 많지만 분석이 없는 팀 아닙니까? 보스턴 레드삭스는 돈도 있고 분석도 있는, 돈과 분석이 조화를 이룬 팀이지요. 야구팀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융성하려면 회계도 건강해야 하지만, 제가 강조하는 21세기 식의 지혜로운 데이터 분석 기법이 필수적입니다."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신가요?
"물론이죠. 하하."
그와의 마지막 문답이었다.
한국에 대한 '무료 컨설팅'
정보통신 실험실 한국, 휴대전화 소비 데이터만 분석해도‥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인 토머스 데이븐포트 교수는 이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관한 다양한 무료 컨설팅도 쏟아놓았다.
―한국은 세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나요?
"전 그렇다고 봅니다. 한국이 수출국으로 이름을 떨치면서는 물론이지만, 특히 IT 강국으로 드라마틱하게 등극하면서 관심을 확 끌었지요.
전 '관심의 경제학'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인터넷과 정보기술과 휴대전화와 데이터 활용 등에서 매우 공격적이지요. 그래서 한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누구보다도 '관심'을 갈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보가 넘쳐나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희소 자원이 되니까 그렇다는 것이지요?
"예, 바로 그렇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매우 독특한(unique) 포지션을 갖고 있습니다. 제조업 강국이란 면에서도 그렇지만,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률이나 휴대전화의 가장 적극적이고 다양한 활용이란 면에서…. 그런데 말이죠!"
그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의 볼륨을 확 높이더니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기자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한국은 아직까지 스스로를 충분히, 성공적으로 연구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한국의 유리한 환경이나 능력을 최대한 이용해 제품과 서비스를 창조해내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한국은 이 '정보의 시대'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세계 최고 수준의 '실험실'을 갖고 있는 셈이지요. 수학과 과학 교육 수준이 높은 소비자들이 질과 양에서 모두 엄청난 수준으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하지 않습니까? 그 어마어마한 사용 데이터를 잘 분석하면 수요자들의 행태, 이용하는 콘텐츠 등에 대해 아주 좋은 연구 자료를 얻을 수 있지요. 그런데 세계적으로 희귀한 이 실험실을 한국은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의 컨설턴트들과 학자들과 기업들을 좀 비판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노키아 소속의 인류학자를 만났는데, 그는 한국에서 매우 오래 머물면서 한국인의 휴대전화 사용에 대해 분석했더군요. 설마 노키아가 한국 휴대전화 소비자의 전문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겠지요? (웃음)"
―이 실험실에서 어떤 실험을 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영화 산업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제작되는 영화 100편 중 6편 정도만 돈을 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영화의 어떤 변수가 어떤 수요자와 연결돼 어떻게 돈으로 연결되는가 하는 분석 기법을 활용하는 제작사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이 이런 영화 제작 산업에서 세계 최초로 분석 기법을 잘 활용하면 어떨까요?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고 다양하게 사용되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말이죠. 거기서 쌓인 데이터를 잘 소화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영화 흥행에 분석 기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은 이런 데이터와 분석과 예측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같은 한국 대기업은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삼성으로부터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뤄낸 마케팅 성과는 놀랍습니다. LG도 그렇고요. 한국 기업들은 몇 년 전만 해도 '제품 만들기'에만 치중하던 이미지였지만, 이제는 '수요자를 배려하는' 이미지로 많이 바뀌었어요. 현대자동차도 경제성만 강조하던 자동차에서 이제는 고급 이미지도 만들어내고 있어요. 한국은 환상적으로 제조업을 잘해왔지요. 문제는 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이익은 극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대기업의 CEO에게 지금 시점에서 조언을 준다면?
"위기가 이어지면서도 조금씩 회복되는 지금이 바로 전통 제조업에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의 새로운 장점을 접목시킬 때입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업체라면, 바로 이 시점에서 과연 애플이나 블랙베리와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것이죠. 좋은 품질의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서비스와 콘텐츠 면에서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말입니다."
―한국 대통령을 만난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습니까?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게 분명한 사실은 이제 대부분의 제조업에 과잉 설비가 있다는 겁니다. 또 한국이 지금까지 잘해온 '저임금으로 열심히 제조업 하기'는 이제 중국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거고요. 따라서 한국은 이제 제조업을 하더라도 '기술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에서 벗어나 '수요자가 그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고민하는, 그래서 수요자에 대한 성숙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제조업을 해야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공급자 관점에서 수요자 관점으로 더 확실히 바꾸라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앞서 강조했듯이, 한국은 이런 수요자 이해에는 유리한 내수 시장을 갖고 있으니까 좋은 조건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제 한국은 탈(脫)제조업 시대의 비즈니스를 생각할 때입니다. 한국이 탈제조업 시대에 과연 어디에 집중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좀 전에 얘기한 영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한국이 잘할만한 분야이고, 또 게임·소프트웨어·생명과학 등도 좋은 후보겠지요. 금융 서비스의 혁신도 중요할 것이고요.
―한국의 약점은 무엇인가요?
"이제 수요자 관점을 더 중시하면서 글로벌 마케팅과 글로벌 서비스로 나가야 하는데,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영어입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영어에 강하지 못하지요? 세계로부터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더 끌어내려면, 영어를 더 해야 합니다. 영어를 잘하도록 만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는 한국의 영어 고민에 대해 조예가 깊은 듯했다. "시험과 대학 입학에만 치중한 교육 때문에 한국인들이 영어를 오래 배우고도 말하기와 쓰기에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한국 경제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영어 실력의 획기적 향상이 꼭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