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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산촌 언덕에 진달래가 피었네. 저도 언니 본받아 오래참고 지리니
진 달 래 眞達來. 유영모 _ 1995.01.03. 김준호 선생
1.전원산촌 언덕에 진달래가 피었네. 저도 언니 본받아 오래참고 지리니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소서.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소서
말이 없이 죽어간 어린 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양과 같이 지면서 참말하게 합소서. 참말하게 합소서.
2. 호수 위에 피었네. 여기 연꽃 피었네. 소리 없이 고요히 소복하니 피었네.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보게 합소서. 손을 대지 말고서 멀리 보게 합소서
3.푸른 물결 거스려 오른 잉어와 같이 언을 이룬님 앞에 순종하고 따라가
거센 파도 이기고 올라가게 합소서 거센 파도 이기고 올라가게 합소서
4.좁은길을 갑니다. 가만가만 갑니다. 꽃과 나비 비웃고 별과 달이 웃어도
언니 따라 가만히 따라가게 합소서. 언니 따라 가만히 따라가게 합소서.
지금 부르신 노래는 이 겨울 정월에 유영모 선생님이 오셔서 하신말씀을 가사를 적어가지고 불렀던 것입니다. 후렴에 그런 말이 나오지요. ‘말이 없이 죽어간 어린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양과 같이 지면서. 참말하게 합소서.’그렇게 적은 말이 있습니다. 그 사연은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했기 때문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그렇게 선언하신 분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런데 유영모 선생님도 인제 예수님을 양이라고 늘 명사하기 때문에 설명하실 때 해방이 된 후에 전라남도는 아니에요. 이북지대니까 일본사람들이 키우던 양이 수백 마리 해방과 더불어 그 양을 한국 학교 측에서 인제 자연히 인계를 받았답니다. 그러니까 한철 키웠어요. 여름 가을 그런데 그때는 해방 후니까 그 당 번이 없고 그 학교를 지키는 지금 같으면 심부름꾼이지요. 그분이 여름당번을 하기는 했는데 학생들이 있을 때는 날마다 당번했지만 혼자 수백 마리를 관리하다보니까 울타리가 자빠져버렸어. 양들이 수백 마리가 흩어져 마을로 내려가서 모든 곡식을 먹어버리니까 소란이 일어났단 말이에요.
학교 당국에서 어쩔 수없이 키울 수 없고 기술도 없고 그러니까, 이젠 전부 도살하자. 그렇게 결의를 해가지고 백정을 불러왔다 그래요. 지방 백정을, 그러니까 수백 마리인데 아침부터 와서 열 마리 스무 마리 잡았겠지요. 그런데 한 정오가 못되어서 학교 운동장에서 잡고 있는데 그 식칼 이지요. 그 식칼을 마당에다 확 던지고 통곡을 했다 그래요. 그 백정이 그래 무슨 영문인지 모르니까 선생님이 쫒아 나와서 보니까 내가 일평생 돼지잡고 소 잡고 닭 잡고 내가 백정을 해먹은 놈이라고. 그런데 모든 동물이라는 것이 잡으면 소리를 지르는데 안 죽으려고 반항하니까 경쟁,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기어이 이기기위해서 잡는데 아침부터 양을 칼을 목에다 대면 반항이 없다는 거예요. 눈을 쪽 감고 죽는걸 보면 내 친자식을 죽이는 것 같다는 거예요. 가슴이 떨리고 나는 천벌 받겠다고 이렇게 순한 생명을 내가 죽이면 내 자손이 어떻게 사느냐? 내 앞길이 서럽다 이거에요.
그리고 그 칼을 운동장에 던지면서 통곡하는 걸 봤노라고 이 선생이 목격했단 말 아니에요. 소식을 들었다고 우리가 이스라엘 민족을 사는 풍습은 모르지만 거기서 양 잡았다는 그 백정의 서러움을 들어볼 때 과연 양은 칼을 목에 대고 잡을 때에도 반항하지 않는다. 그걸 추리해서 알수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가 누구냐? 예수가 그런 분이에요. 그러면 성경말씀에 나와 있어요. 여기 몇 절이란 말 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한 번 열지 않고 참았다 그 사연이지요. 이 목에다 칼을 대면 소리를 지르고 안 죽으려 하는데 입을 딱 다물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죽어갈 때 그 얼마나 백정이 떨었겠냐? 선에 대한 악한사람의 감화지요.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그래 이 양을 두고 한 소리지요. 예수다 말이지요. 예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또 털을 깎을 때에도 가만히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말씀이지요. 참 사랑은 말이 없다. 유 선생님이 그렇게 설명하셨어요. 사랑이 거짓될 때 소리 내는 것이지, 자랑도하고, 참사랑은 말이 없다. 이 말이여. 아주 강조 하셨어요. 정월달에 오셔서 아주 예수사랑지극하다. 말이 없다. 자기 피를 주고 생명을 주고 자기 사랑을 주는 참 사랑은 말이 없다. 그러니까 말이 없이 죽은 어린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짐을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그해, 언니는 예수다. 이렇게 해설해. 언니라면 어질다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말이 많지만 그렇게 많은 단어가운데 제일 좋은 말이 언니다. 지금은 여자들끼리 나이어린동생이 나이 많은 언니보고 언니라 하지만 이조시대만 해도 70년 전만 해도 아직 남녀를 모를 때 어린 시절은 남자끼리도 똑같이 썼다 그래요. 한번 말씀드 지금 살아계신 어느 대학교수도 자기 아들딸이 ‘오빠’그러면 절대 못 하게해요. 우리양반은 절대 오빠 없다. 언니다. 그러니까 여자동생이 남자오빠더러 언니 그렇게 부르라고 주장해요.
고대 언어 아시는 분은 내 위에사람은 어질다. 사랑이 많다. 어질다는 사랑이다. 사랑 사랑의 본체시다. 죽은 우리말은 언니란 말은 어질단 말이고, 한문이 양반 말이 되고 우리말이 쌍말이 되었기 때문에 절대 어질다는 말 우리말을 못 썼단 말이야. 인자라 중국말 써버렸기 때문에 우리말 쓴지가 수백 년, 우리말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속된말에는 써버려요. 아이구, 언치 않다. 그 어질지 않은 사람이다. 속된말이니까 하대할 때 언치 않단 말만 쓰지, 어질단 말 못썼다. 인자, 아 그분은 덕가이고 인자다. 그랬지, 어질단 말 안 쓰기 때문에 없어졌다. 우리 예수님이야말로 언니다. 진실로 천하에 어진 분은 예수 한 분뿐이다. 파스칼도 그 말했어요. 참 사랑을 가진 분은 인류역사가운데 한분 예수가 가졌다. 그분밖에는 참사랑을 가진 사람이 없다. 그분도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파스칼 팡세를 보십시오. 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할 때는 거짓말 한 거다. 사랑이 없다는 거예요. 가슴속에, 그러면 언제 사랑 있느냐? 받아서한다. 요새 쭉 말씀했어요.
옛사람은 죽어야하고 새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자기가 아니고 예수의 분신이다. 예수의 심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중생한 다음에 사랑할 수 있지. 부모가 낳아준 몸 안에는 사랑이 없다. 이해타산이 있지. 이해타산, 이로움은 사랑하고 해로움은 미워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 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북에서 해방 후에 양 잡던 이야기를 했어요. 그럼 우리가 거기서 들어봐도 양은 말이 없다. 자기 생명이 죽어갈 때 말이 없는 성품은 곧 예수성품과 흡사하다. 그렇게 해서, 참 사랑은 말이 없단 말이지요. 아무 말이 없다. 그 우리가 그걸 본받자. 그렇게 해서 우리가 노래를 지어서 불렀던 것입니다. 말이 없이 죽어간 어린양을 본받아 예수를 본받아 지금 저는 지금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짐은 십자가지요. 져준다. 희생을 한다. 예수님의 짐을 우리도 집니다. 양과 같이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진다 는 뜻이에요. 진다. 내가 진다. 내가 희생한다.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왔다. 섬긴다. 양과 같이 지면서 참말하게 합소서. 참말은 말이 없다. 그래서 이 말을 우리가 여기다 노래를 부른 것이지요. 참말하게 합소서. 참사랑은 말이 없다. 그러면 여기하나 더 부르는데 1절만 다시 부릅시다.
전원 산촌
전원산촌 언덕에 진달래가 피었네. 저도 언니 본받아 오래참고 지리니
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진달래가 되어서 언을 얻게 합 소서
말이 없이 죽어간 어린양을 본받아 저는 지금 집니다. 언니 짐을 집니다.
양과 같이 지면서 참말하게 합 소서. 참말하게 합 소서.
지금 이 책이름은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생’이라는 책을 다석 어록이란 책이 나왔어요. 일반서점에는 없어요. 주문해야겠는데 그럼 유 선생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속기한 것이니까 속기록을 김 흥호 선생님이 박 영호 선생님한테 넘기면서 내대신 이 책을 펴시오. 그렇게 말씀했다고 요리 말씀하셨어요. 그 책에 나와 있는데, 그럼 우리가 옛날 듣던 말씀입니다. 참 책방에는 없지만 주문하실 분들은 여기 주소록이 있기는 있습디다요. 그럼 유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노래로 불렀는데 친히 하시던 말씀을 한 대목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참 신비이다. 이제 지금이 이제이다. 지금 이제 여기를 두고 이야기해요. 이제 이건 참 신비다. 신비란 것은 성모님이 남자 없이 예수를 잉태한 것이오. 신비지요. 예수님은 신비가 많지요. 그런데 이제 이건 참 신비다. 우주가 열리고 오늘 이시간이 있고 이 환경이 있고 이 모임과 이 식구가 모인 것이 이것이 신비란 겁니다. 이제는 참 신비이다. 우리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신비가 이제이다. 알 것 같기도 해요. 그 이제에 목숨을 태우는 우리 인생은 역시 이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신비이다. 이제를 알면서 모르는 거예요. 왜 이제가 있는지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이때를 떳떳이 알 때면 예가 곳곳마치 여길 때이며’그런 시도 있지요? 이 시간이 하늘땅을 여시고 인류를 이만큼 번성케 하시고 한국을 주시고 남성을 이만큼 아껴 놓으시고 여기 이 동산을 만들어 놓으시고 이 식구가 이만큼 현재 살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아주 뜻 깊은 대접이다. 우리한테 주신 선물이지요. 그러니까 이제 이 시간을 ‘곳곳마치여길’때에요. 어제 그제 옛날같이 생각해서는 안 돼. 한번만 있는 천재일우의 가장 절대선물을 받고 있는 순간이야. 둘도 없는 이 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순간인가? 우리 일생에 있어서 그러니까 이제 숨 쉬는 한숨이 들어가면 살고 뱉으면 죽는다. 한 숨 한숨 생명을 엮어가는 것이지요. 숨이 들어갈 때는 일초, 일초 살지만 다시 숨이 안 들어가면 죽지요. 영원히 숨을 뱉거나 그치면 죽는다. 이 찰나에 90생사가 있다는 인도 사상은 분명히 신비사상일 것이다. 이 찰나 ‘똑딱’이 찰나에 90생사가 있다. 90번 죽고 사는 비밀이 있다. 한번 숨 쉬는 것이 아니 여. 90번도 더 죽고 사는 그 신비한 사랑이 있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특은이 있다. 특별한 섭리가 있다. 이제라고, 이제라고 할 때 이를 먼저 하지요? 제일 말하기 전에 이 할 때 이제는 잃은 것이다. 이 할 때 실상은 이미 과거가 된다. 지금 그럼 지금은 벌써 지금이 아니 여. 옛날이 여. 이 그럼 이미 이가 없어져 버렸어요. 옛날이 되어버렸단 말이여. 시간이라는 것은 이 이제라고, 이 할 때 이제는 잃은 것이다. 이 할 때 실상은 이미 과거가 된다.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이제이다. 대답 할 수 없는 것이 이제이다. 이제는 뭐요? 물어보면 영원히 설명이 안 돼.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체인데 죽어있는 것이 아닌데, 이제를 파고 가는 목숨이다. 이 의 계속이 영원이다. 이 가 영원히 계속하는 것이 하늘나라지요. 영원한 하늘나라지요. 이 가 끊어 버리면 이제 끝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신 말씀을 여기 적었습니다.
그런게 영생은 무엇이냐? 이 의 계속이다. 이제가 계속하면 천년, 만년 영원히 되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했어요. 영생이 무엇이냐? 이 이제를 영원히 주관하신 하나님 이 이제를 바로 쓰신 예수님, 순간, 순간을 바로사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원이다. 영생이다. 영생은 유일이다. 오직 하나이다. 생명은 유일이다. 가사 여기 장로님 몇 분계신데 각각 생명은 유아독존입니다. 영원히 홀로 하나만 있는 것이고 둘이 없지요. 가장 귀한 것이지요. 우리 생명 한분, 한분이 다 가장귀한 존재이지 이등이 아니에요. 모두 일등이지 생명은 유일이다. 아버지도 아들도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여기서 그의 보내신 이 예수보다 그이 보내주신 예수가 더 그 보내주신 분은 하나님이시지요. 보내줘서 오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런 말 우리가 설명하기 어려운 말들이고 유 선생님을 추모하면서 말씀을 보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요새 이 책을 뒤적이다가 아침에 장로님 조금 설명하셨어요. 어느 때든지 꼭 두 손을 마주치면 소리가 나듯이 유 선생님이 계신 곳은 현 동완 선생님이 계셨을 때 말이 되었어요. 말이, 서울 계시나 광주오시나 두 분이 꼭 오셨지요. 처음에 오실 때, 그러니까 뼈와 살 같으셔. 두 분이 남기신 말씀, 땅을 지나가시면서 남기신 말씀이 있어요. 그럼 아침에 그 시가 있더라. 장로님이 조금 말씀하셨는데 그 본문이지요. 본시, 그 시 읽어드리겠습니다.
변 창 산 옆 고요한 사원에 저녁 종소리 그윽이 울리도다. 여기는 배경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알프스산에는 수도원도 있는데 대개 봉쇄 수도원입니다. 백년이가도 천년이가도 만년이가도 풀한 포기 나지 않고 꽃 한 포기 피지 않는 곳이에요. 백년 설 천년만년 눈과 얼음이 덮여있는 산속에서 수도원이 있는데 그 수도사들이 다 살고 있는데 거기는 참회하는 중들이지요. 일평생 죄를 회개하고 자기 죄가 없으면 우리 인류의 죄 짐을 지고 대신 회개하는 사람들 이니까. 그런 곳을 찾아갔다. 그 말이지요. 거기서 인도하는 종소리지요. 하루에 세 때 치는 종소리, 저녁 종소리 그윽이 울린다. 때는 석양이란 말이지요. 종일 그 높은 산을 찾아올라가서는 몇 년 전부터 준비하고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며칠 걸어서, 걸어서 올라갔어요. 종소리가 들릴 만큼 왔으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겠어요? 아 이제는 수도원 다 찾아왔다. 저기 찾아가면 오늘 하루 밤을 재워 주리라. 생각하고 동구 밖에서 걸쳐 가는 순례자의 행복을 위하여 제단에 촛불을 헤이는 한 젊은 수녀 여기는 사연이 있어요. 찾아갔는데 잠 잘 수 없소. 거절한 거예요. 왜 여기는 봉쇄 여자수도원입니다. 남자는 절대 근처에도 못 오게 되어있는 곳이란 말입니다. 남자 손님이 해가질 무렵에 찾아왔으니 용납이 안 된다. 그러니까 참 구사일생이랄까? 그 비탈길 얼음길을 찾아, 찾아 찾아갔는데 그 순례자가 돌아간단 말이지요. 걸쳐 가는 순례자의 그런데 이 해는 졌는데 어두운 밤중에 초는 줬어요. 촛불은 줬지만 촛불이 꺼져버리든지 이 낭떠러지 비탈길에서 얼음길에서 떨어지면 얼어 죽지요. 밤중에, 이건 모진마음이 아니 여. 이것도 역시 신비여.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랑인데 거절해야하는 사랑이 있어요. 무조건 환영이 아니야. 그러니까 거절하는 사랑도 절대의 사랑에 속한다는 그런 시상을 우리한테 가르치는 시지요.
어서 오세요. 어서 잡수세요. 많이 주고 그것만 사랑이 아니다. 거절하는 것도 절대의 사랑이고 성스러운 사랑이다. 그 교육적인 의미가 있어요. 그러면 이거 신이 아니 여. 거절했지만 신이 아니야. 가다가 얼어 죽을지 빠져죽을지 거절한 수녀는 그냥 있을 수 없어요. 자기는 편히 잠을 들 수 없어. 제단에 촛불을 켜놓고 빌어 줘야해. 기도해야해. 저 손님이 무사히 남자수도원을 찾아갈 수 있게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주님이 그 발길 안 지켜 주시면 저 손님 위태롭습니다. 그냥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 여. 가슴이 떨리고 불안하고 걱정이 되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어요. 잠깐 찾아온 것이 아니에요. 몇 시간 찾아가야 나오니까 사람도 없고 뭐 볼 것도 없어요. 바람이 불면 길이 다 없어지지요. 그런 눈길에서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한 젊은 수녀 이것은 비유인데 ‘늦은 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이듯이 그 눈에 눈물이 고이었도다.’그러니까 이 눈물이 우리 장로님 말씀대로 속된 감정이냐? 그거 아니에요. 천사의 감정이랄까요? 엄마가 자식을 객지에 보내고 걱정하는 눈물이랄까요? 또 예수님의 눈물이지요. 내 어린양을 이리가운데 보내는 것 같다. 위태위태한데 생명을 내보낸 걱정의 눈물이지요. 그 눈에 눈물이 고이었도다. 먼 길에 휘진 몸 피곤도 하련만 그럼 남자손님이지요. 거절당했으니까 무정한가? 섭섭한가? 아 낙심인가? 그거 아니야. 그 설명을 다 들어보고 아, 내 인류는 희망이 있다. 내 동포는 희망 있다. 이 지구도 희망 있다. 이 사랑을 가르친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 사랑을 지도해주고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아 나도 구도자다. 나는 손님이 비록 나는 손님이지만 나도 구도자다. 이 거절을 기쁘게 받아들여. 감사히 받아들여. 내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가다 얼어 죽더라도 감사하다 이거야. 이 거절을 당하는 사랑이 내게는 얼마나 고상한 인생인가? 고상한 발걸음인가? 고상한 찰나인가? 그러니까 거절당한 손님도 차원이 높아야지요. 종일 걸어왔는데 며칠을 걸어왔는데 몸은 피곤한데 배는 고픈데 휘진 몸 피곤도 하련만 아주 여유 있게 촛불을 딱 눈 속에 꽂아 놓고 지도를 딱 펴놓고 어느 쪽이 북쪽이고 남쪽인가? 방향을 알아야지, 냉정 해야지요. 지도 표 손에 들고 눈 쌓인 령을 넘어 남자 수도원을 찾아가는 그 모습 성스럽도다. 거절하기는 쉬워요. 사랑 때문에 그런데 거절한 것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감사하고 떠나는 그 수도자는 성스럽단 말이에요. 성스러워요.
작년 이땐가요? 진달래 집에서 모였어요. 전주서, 이거보다 쪼금 늦었어요. 2월 달인가요? 마침 동광원을 연구한다는 일행이 서울서 내려 오셔가지고 지지리에 찾아갔다. 근데 거기 자매들이 거절해 버렸다. 여자들만 있으니까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인제 마을 어른을 모시고 갔는데 참 난처하지요. 그때 추울 땝니다. 아주 추울 때 밤중에, 그래서 그 봉쇄수도원이 아니니까 거절은 했지만 마지못해서 윗집을 문을 열어 줬어요. 가 주무시라고, 아침밥도 못 얻어먹고 오셨더라고, 전주까지 설명을 안 했어요. 취재를 해가지고 그분이 동광원 귀일원 잡지에 냈어요. 섭섭하단 말 안 썼습디다. 그것도 일종의 소위 말하는 인생을 구경한 거지요. 어디 간들 환영하면 다 된 거 아니에요? 깊은 산속에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이기 때문에 남자 손님을 용납 못하겠다고 해가 다지도록 거절했다고, 어쩔 수 없이 방을 빌려줬다. 그래요. 그런데 그 손님이 이해를 했어요. 냉대를 받기는 받았지만 동광원 멋이 있다. 자기 좋은 글써주고 취재해주면 다 환영하는 줄 알았는데 거절을 당했다고. 그러니까 남자 수도원을 찾아가는 그 모습 성스럽도다. 그러면 거절을 하고 돌려보내고 촛불 켜놓고 기도하는 수녀는 편하냐? 그렇지를 못해. 내일이고 모레고 기별이 오던지 무사히 도착했단 소식이 올 때까지야 어머니 심정으로 항상 걱정하고 있겠지요. 그 젊은 수녀의 탄식 탄식의 기도는 (끊김)
그 조화를 이룬 것이 인격이지요. 그 조화, 그 젊은 수녀의 가벼운 탄식은 산간에 스미고 그 눈물은 창공에 흐르도다. 창밖에 흐르도다. 성탄 전야의 가장 성스러운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은총을 감사하는 순례자는 성탄까지 찾아간 것이지요. 성당에 가서 같이 성탄전야에 철야를 하고 같이 찬양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니까 어찌되었든지 이왕에 찾아 갈 거면 성탄이 되기 전에 찾아가야지. 12월 1일부터 시작해서 찾아갔으면 15일 전야까지는 찾아가야 하니까, 길이 빗나가서 잘못 찾아가 가지고 다시 내려와서 또 올라가니까 성탄전야에 가장 성스러운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은총을 감사하는 순례자의 찬미소리, 이제는 성공했지요. 남자 수도원을 찾아갔어요. 찬미소리 멀리 멀리 들리도다. 요 경험은 현동완 선생님이 친히 하신거지요. 이 딱한 일을 당한 분이 본인이란 말이여. 그러면 이 일 있기까지 왜이냐? 자기 70평생에 한 십년 이십년 월급타서 쓰고 저축해놨다가 비행기 표 사가지요. 다섯 번 찾아가요. 세계 수도원 성지를 자기가 다섯 번 이 지구를 돌았어요. 어디 가냐? 이 성지를 찾아 간 거여. 성지, 그 깊은 수도원을 찾아가요. 왜 자기도 30이 될 때까지 수도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80노모여서, 그 어머니의 눈물을 거절 못하고 결혼했어요. 항상 가슴에 한이 있어. 자기가 이루지 못한 그 소원을 이미 이루어준 사람을 찾아간 거예요. 그래서 백두산도 몇 번 올라갔다 그래요. 거기 성인이 계신가? 거기 수도사가 계신가? 오대산 지리산 백두산 또 다시 말하면 높은 산들을 늘 찾아가봤노라고, 그 말씀 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두 어른이 해방되어서 여기 찾아온 것이 아니에요. 이 세종 선생님의 일생을 그렇게 깨끗하게 사셨다는 말씀을 듣고 흠모하는 마음이 있어서 등광리를 찾아간 거예요. 현 선생님이 찾아가서 보시니까 이공 선생님이 살았다는 옛집을 찾아가 봤어요. 그런데 안 믿는 분이 그 집에 살던지 할아버지가 담배 대를 가지고 푹 푹 피우는걸 보고 아주 슬퍼했었어요. 다른 나라는 어진분이 살고가면 그 집터에는 수도원이 서고 성당이서고 그러는데 안 믿는 분이 담배를 피우고 앉아있어. 아, 이래야 될까? 내 나라에 태어나신 어진분이 산 흔적 그분이 주무시던 때 이래야 될까? 그렇게 해서 서울가셔가지고 그분이 일평생 집이 없는 것이 지조에요. 집 없는 동포가운데 태어난 나로서는 집을 갖는 것이 너무나도 황송하다. 나만이라도 일생 집을 갖지 않겠다. 평생 셋집에서 살아요. 임종할 때도 셋집에서 임종하셨지요. 그런데 그 가난한 살림에 십일조를 모았어요. 해방되던해가 그때 한 40은 되셨지요. 결혼 후에 모은 십일조를 이공님 집 샀으면 거기다 기념했으면 쓰겠다고 돈을 가지고 왔어요. 근데 이 선생님 일행이 생각을 해봤어요. 거기 깊은 산에다 그렇게 기념하는 것 보다는 그때 여기에 수복이 되어 많은 집 없는 사람들이 생겨가지고 매일 이렇게 모여 있는데 이 방한 칸이 없어요. 오두막뿐이고 그렇게 해서 저기 교회 사무실자리입니다. 저기다가 지었어요. 집을, 솔밭이지요. 솔밭이고 밤나무 동산인데 그런데 저기다가 그 돈을 가지고 소위 말하면 이공님의 기념관이라고 할까요? 또 현 선생님을 기념하는 집이랄까? 저 집 있었습니다. 쭉 저 집 뜯긴지 얼마 안 되어요. 다시 지었어요. 저기가 본산입니다. 그 정신 기념하는 본산입니다. 우리도 생각했어요. 때가되면 이공님이 주무시고 사셨던 집터, 지금 오두막살 이지요. 집터 지금은 친족이 인계받아가지고 살고 있어요. 그분이 물러갈 때는 우리가 인계를 받아야 쓰지 않겠나? 배 밭에 우물이 있어요. 부인이 시집가서 우물을 못 먹게 하니까 자기 집에다 우물을 파놓고 대문을 잠 궈 놓고 부인을 보호했어요. 마을 사람들이 털어낼라고 하니까요. 대밭이 조금 있고 마당이 있고 오두막 한 칸이 있는데 방 한 칸 정자 한 칸이에요. 왜 그 집도 육이오 때 없어졌더니 조금 새로 지었어요. 그런 것이 다 역사가 되겠습니다. 그 어른이 남기고 가신 시입니다. 하나 더 보겠습니다. 그분도 글을 잘 쓰는 분은 아니에요. 그 성스러운 자기의 추억과 보고 느낀 것을 기념하려고 적은 것인데요. 성 세라의 소위 말하면 성인 세라라는 분의 성지를 가보고 오신 겁니다. 그래 여기 적었어요. 바라보니 월광은 창공에 흐르고 푸른 물결 하늘가에 닿았도다. 마음으로 헤매는 길에 그곳이 천성인 듯, 유량한 풍류 속에 가슴이 울리도다. 가슴이 울릴 때마다 흙도 지고 돌도 날라 사원을 짓는 동안 강남에 갔던 제비 세 번 찾아오도다. 터 닦아 주초 놓고 성광의 종이 울릴 때까지 그 땀과 그 눈물 아는 이 알리로다. 어린수녀들이 전별을 준비하여 제단에 촛불을 헤이기도 전에 낙성식을 하루 둔 그날 가시도다. 그 성스러운 수제자의 가시는 그 모양 뭇사람의 가슴을 울리도다.
사연을 이렇게 적었지요. 이것이 소위 말하면 전기 내역 어떤 인물이 나타나지요. 성 세라의 국적은 모르지만 이 배경은 아프리카입니다. 흑인의 나라인데 일찍 예수님의 일생을 배우고 예수님을 사랑하다 보니까 예수님이 땅위에 오셔서 고생하신 햇수가 33년인데 젊은 마음에 우리 주님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서 내가 성당을 33채를 짓고 하늘나라 가야겠다. 그렇게 자기 결심을 했어요. 그리고 미개하고 종교 없는 나라에 들어가서 한 20대부터 50대까진가, 자기 평생에 성당을 한 17채 짓고 나머지는 그 주민들이 감화를 받아가지고 세웠어요. 33채를,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지방 우리 한국에도 그런 백토가 나오는데요. 찬물 이겨서 빚어서 말리면 비가와도 절대 풀어지지 않습니다. 반석 회 역할을 하지요. 그런 흙이 있어요. 한국에요. 그 나라에는 그런 흙이 많아요. 물에 개어가지고 벽돌을 만들어가지고 말려서 집을 지어놓으면 백년이가도 천년이가도 비바람이 불어도 절대 안 무너져요. 그렇게 해서 성당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짓는데, 한 채를 짓는데 3년이 걸렸어요. 열채를 지으면 30년이지요. 그러니까 17채까지는 거의 지었다. 그래요. 그러면 인제 걸어서 30년에 한 채를 지으니까 10년을 걸어가면 성당이 나오도록 양쪽이 30리, 그렇게 해서 그 지대를 설정해가지고 성당을 지어놓았는데 사원을 짓는 동안 강남 갔던 제비 세 번 찾아오도다. 그런 사연이 나오지요. 터 닦아 주초 놓고 종곽의 종이 울릴 때까지 그 땀과 그 눈물 아는 이 아니로다. 혼자 그일 한다는 것 대체 그일 혼자 한 것이 아니고 지금도 그 나라를 가보고 온 사람들은 다 인심이 좋다 그래요. 미개한 것뿐이지, 처음에는 이렇게 벽돌이 올라오고 윤곽이 잡히겠지요? 담이 그때까지는 한 수백 명 구경을 해요. 산에 가서 나뭇잎 따먹으며 구경을 해. 웃어 쌌고 미친 줄 알겠지요. 그런데 그 뜻을 알아요. 무얼 로 뜻을 알아? 아, 우리를 위해 짓는 집이다. 한두 사람이 와서 협력을 해요. 10사람, 20사람, 30사람, ....백사람, 다들 나와 달라 들면 지붕이 올라가지요. 그래요. 집이 모자라 가지고 우리처럼 기와가 있는가? 없지요. 너무 덥기 때문에 비가 안 오면 전부 말려가지고 하늘이 보여야 해요. 비가 오면 잎사귀들이 딱 덥혀 져요. 비가 안 새요. 혼자는 안 되지요. 수백 명이 달라붙어가지고 들보 얹고 서까래 올려가지고 집을 짓는 거지요. 그 땀과 그 눈물 아는 이는 알리로다. 그 낙성식이지요. 다 지어갖고 종교 뒤 바침이기 때문에 천주교 다른 종파에서 이제는 수녀가 파송되지요. 성당이 완성되었으니까 어린 수녀들이 전별을 준비하여 인제 그분은 목수고 토수고 일꾼이고 건축가니까 그분은 내일 떠나거든요. 다 지었으니까 그분이 떠나기 전에 낙성식을 올리기 위해서 준비를 다했단 말이에요. 제단에 촛불 올리기 전에 낙성식을 내일 몇 시에 올린다 하면 오늘 떠난다는 거예요. 한 번도 낙성식을 참석을 안 해 낙성식을 하루 두고 그는 가시도다. 그 성스러운 수제자의 가시는 모양 뭇사람의 가슴을 울리도다. 그래 감격하는 거예요. 사람사람 자기가 집짓고 상패올리고 찬송 부르고 영광 다 받데요. 다 식어버리는 거예요. 아무 영감이 식어져 종교가 아니고 세속이야. 그런데 그 영광을 다 사절하고 딱 떠나버린 거예요. 밤중에 자기 보따리 짐 지고 그렇게 떠나갔다는 그게 성인이시지요. 성 세라 그러니까 친히 가보고 오셨고 느꼈기 때문에 그 이야기 할 때는 얼굴이 빨개 확 감격해 가지고 그걸 본받아야한다. 공로자들 예배당 공로자 이런 공동체의 공로자, 어떤 공동적인 일하고 영광 다 받아서는 안 된다 이거야. 양보해야지 사양을 해야지. 그것 참 아주 깊은 교훈이지요. 교훈 그런 시가 있다. 그럼 이 책을 집에서 가지고 오셨다. 왜 왔냐? 여기 이 귀일원이 왜섰냐? 뿌리가 있다. 뿌리가 씨가 있다는 거예요. 요 씨를 현동완 선생이 지었다는 거예요. 귀일원의 뿌리지요. 성 세라의 이야기는 어느 아프리카에 서있는 성당의 뿌리고, 이 동광원이 왜 여기가 주추를 놓았냐? 천리만리 수레에 모여 소금 섬을 실었으니 뭇 심한 아이들은 웃음 짓도 하건마는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소금 그 얼마나 귀중하며 거룩하신 어른의 뜻이라면 그 어딘들 못 가리. 1951년 12월 27일. 현동완 지음. 여기 정월달에 오셨을 때 그러니까 미리 오셨겠지요. 12월 보았다고요. 그때는 여기 집이 없을 때고 여기 집한 칸이 없어요. 이쪽 밤나무 밭, 저쪽 감나무 밭, 부자가 사논 저기 감나무 밭이 육천 평 가깝게 있었지요. 최흥종 목사님 그때 나환자들이 심은 동산인데 저쪽이 나환자들이 사는 곳인데 그래 인제 그때 심은 나무를 누가 거름을 안주니까 나무가 다 늙어죽어 갈 때 여기 이 선생님이 계신걸 보고 농장주가 당신들 이걸 벌어먹으시오. 세는 안 받겠습니다. 세는 조금 받겠습니다. 그 대신 이 감나무를 가꿔 주십시오. 그때는 육이오 후인데 그러니까 김은연 씨가 물론 주체지요. 다른 언니들 계시지만 그때 3-40대 20대 많이 살으셨을 때 새벽 4시에 예배를 보면 5시면 끝나겠지요. 한 시간 그때 3시에 예배를 봤으면 4시에 끝나는 거예요. 왜 4시가 되면 사이렌 울리니까 나갈 수 있어 시내를 그 안에는 못나가니까 소 한 마리가 있었어요. 암소, 그러면 장로님이 똥통을 짜줬어요. 똥이 한 석 섬 들어가도록 크게, 그러면 똥이 없어요. 너도나도 퍼가 버리니까 없고, 금동 양동 깊이 들어가야 되요. 시청 대학병원 거기까지 가야 똥이 남아있으니까, 거기 가서 똥 푸고 들어오면 해가 뜨지요. 그걸 목격했어요. 그때 여기 계실 때, 12월 27일에 오셨으면 며칠 한 일주일 이주일 계시지요. 새벽마다 이 자매들이 예배를 보고 옷이 있습니까? 누더기 그 걸레 같은 옷으로 몸배라고 이상한 옷을 입고 새벽마다 똥을 퍼다 감나무 밭에다 주고 그걸 보셨어요. 아 이거다. 이거, ‘예수 믿는 것이 이거다’그래요. 성당도 아니고 수도원도 아니고 이것이 수도다. 이것이 예수를 따라가는 길이다. 그렇게 본 것이지요. 그러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이 기쁜 것뿐이야. 새벽 일찍이 예배드리고 그리고 똥 퍼다가 찌끌어 준 것뿐이야. 그 똥을 찌끄러서 십년 후에 나중에 감이 열었으니까 이해타산이 아니야. 사람의 도리겠지요. 이 시를 보면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 똥 푸러갔다는 이야기여. 천리마에? 암소 한 마리야. 천리마가 아니야. 소금 섬을 실었으니 소금이 뭐야 똥 구루만데 무심한 아이들 오다가다 애기들이 돌 던지고 똥 퍼고 .. 간다고 저 소금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거여. 낮아지라. 겸손해라. 지라. 십자가, 진다는 게 뭐인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소금 얼마나 귀중하며 그래 이 동광원 역사는 그거에요. 선생님 모시고 기도회가고 똥 퍼다가 땅에다 주고 그렇게 살았다네. 그것이 동광원의 역사지요. 그것이 떨어져버리면 동광원이 없어져 버리지요. 거룩하신 어른의 뜻이라면 그게 아버지의 뜻이야. 그게 예수님의 뜻이라면 그 어디 못 가리. 그 이야기를 어떻게 부끄럽다고 말 하겠냐? 그걸 자꾸 이야기해야 한다 이거야. 그것이 없다면 공중 뭐가 기야 괜한 소리 아닌가? 지금도 이 선생님이 하늘나라 가기 전에 못을 박아놨어요. 이 사람들 생활이 늘어지고 배부르면 안 된다. 제일 땅에서 버림받는 사람을 옆에다 두고 살아라. 그것이 예수님을 찾아가는 길이다. 실상 선생님 계실 때에는 양로원 가실 수 있는 사람은 다가요. 노인이니까, 고아원에 갈 수 있는 애기들은 다 가버려요. 또 나병이면 찾아가요. 해당이 안 되는 사람이 찾아와요. 해당이 안 되어. 국가 혜택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다시 말하면 완전히 버림당한 사람이지요. 여기 용납하라. 그 사람 데리고 살아야한다. 자꾸 말합니다만 귀일원의 제일은 어른들 오셨으니까 귀일원은 여럿이 살라는 곳이 아닙니다. 한사람 살라는 겁니다. 한사람 선생님을 존경하던 처녀 의사가 있었어요. 또 처녀 간호원이 있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늘 찾아와서 보고 한 몇 년 사귀었지요. 그런데 하루는 와서 울어요. 둘이 왜 우냐고? 우리가 보는 환자 하나가 지방 촌에서 올라왔는데 무의무탁한 사람인데 병이 전신불수, 다시 말하면 몸 모두가 굳어있는 병에 걸렸는데 병원 당국에서 얻어먹도록 해주자. 앉아있도록 해주자. 이래가지고 다리 하나는 수술해가지고 리을자로 만들었었답니다. 앉도록 해주었답니다. 정부 예산이 없어가지고 의사들이 돈이 없어가지고 울면서 내일 퇴원시킨다. 이거에요. 퇴원안하면 갈 데가 없다고 그래 할 수 없으니까 리아카 하나 구해서 실어다가 공원 땅에 내버려라. 그랬다. 자기가 담당 의사고 간호원이야. 선생님 이일을 어떻게 할까요? 우리 이렇게 합시다. 우리도 그걸 전부 무마할 수 없어. 왜 양식이 없어 피죽을 ... 강냉이죽도 없는데 풀뿌리 캐먹고 하던 때인데 두 분이 밥 먹을 때 한술씩 덜먹으시오. 그럼 두 수저 친구한테 말하면 열이면 한 그릇 됩니다. 십시일반 그러니까 간호원 의사들이 의논해 갖고 이 사람이 하루 세끼 먹으면 밥만 가져오시오. 그럼 우리는 잠자리는 드리겠소. 똥을 못 가리니까 똥은 우리가 쳐드리겠소. 그때는 인가 없지요. 귀일원 인가가 없고 하니까 은연자매님이 불러서 어떻게 할까? 나 밥해줄 수 있소? 아들 홍석씨가 있었어요. 그 남자는 하나뿐이었어요. 여자동산이니까 남자는 너 하나뿐이다. 이 사람 남자인데 어떻게 할까? 그래 용납해가지고 잠재워 주기로 하고 방내주기로 하고 그것이 이 선생님이 허락한 일입니다. 그것이 일작운동인데 밥을 갖고 오는 건 어려우니까 밥을 할 때 쌀을 떼어서 가지고 오라 그거에요. 그 소문 듣고 일작씩 많이 가져왔어요. 멀어서 할 수 없게 되면 돈으로 하루에 천원 세 사람이 모이면 삼천 원 그래 제자삼아 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건 그것뿐입니다. 그 일하라 이거에요. 그런 사람을 용납안하면 우리 영혼이 타락한다 말이에요. 아까 그랬지요. 가슴에 눈을 품고 살아. 예수님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지 우리만 좋아서는 안 되겠다. 그러니 요 뒤에 보모님이 계세요. 아침마다 예배 보러 오는데 자기 남동생인가 올 데 갈 데 없고 버려있다 이거에요. 간질만 가져온 게 아니라 정신병에다 간질에다가 여러 가지 병이 겹쳤기 때문에 또 온다 말이에요. 그 사람이 와있는걸 보고 자기 동생도 어떻게 할까요? 거절 못했어요. 들어왔어요. 그래 두 사람이지요. 또 두 사람이 있는걸 보고 또 사정해요. 세 사람 네 사람 그래 결국 우리는 실력대로 해야겠다. 스물두사람만 데리고 있자. 곡정 함평 진도 거기서 양식을 가져오도록 이 사람들 먹도록 해줘야지, 하신 것이 소위 말하면 귀일원의 시작이지요. 전혀 이렇게 모여서 사업하려는 뜻은 아니었고 그 때 그때 어쩔 수 없는 예수님들, 우리가 모시고 살아야한다. 아까 법대로 하면 여기도 남자 환자 용납 못하지요. 여자들 동산이니까 용납해야 한다. 그건 지극한 거야. 사업이 아니야. 그럼 어쩔 수없이 생명 법을 초월한 것이지요.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시작은 남자를 용납 안 한 것이 비상한 용납이었지요. 비상한 용납 그래서 여기는 이사회에서 결의를 여자반만 해야 된다. 왜 남자를 용납 못해? 남자 수종 군이 없지요. 남자를 수종들 수 없잖아요? 그래 남자는 십여 명 있어요. 있기는 그때 시작된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역사가 시작된다. 정신원의 역사가, 그럼 역사를 아시는 분이 현동완 선생 유영모 선생이다. 그럼 자비의 운동 사랑의 운동이지요. 그 지극한 사랑의 운동을 예수님이 시작을 했고 그 두 어른이 볼 때는 한국도 사랑이 있다 이거에요. 이공님한테 있다 그걸 봤어요. 아까 그랬지요. 내 아내 내 남편 이 하던 사랑은 쉬워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끊자. 그걸 능히 하신 사람이 이공님이다 이거에요. 자기 아내를 성모 이상 사랑했어요. 예수님 이상 사랑했어요. 사모님이 실력이 없어. 그러니까 개가를 두 번했어요. 개가한 거를 자기한테는 책임을 지지요. 내 탓이다 이거에요. 어찌하던 다시 돌아오도록 빌었어요. 돌아와 주세요. 그 사모님의 무릎에서 임종하셨어요. 그걸 원하셨어요. 그 사모님이 깊은 산속에 계실 때 찾아가서 쑥을 석 달 쒀서 드렸어요. 왜 곡식을 원치 않으시니까 쑥을 안 잡수실 때는 냉수를 한 달 떠드렸어요. 물을 끊은 후에는 공기를 잡수시라고 한 달 동안 문을 열어놨어요 엄동설한 문을 안 닫으셨어요. 그 사모님이 그렇게 이야기합시다. 나 혼자 밥먹으러가요. 아 방에 와서 먹으라고 아 미안하니 괜찮다고 추우니까 아주 깊은 산속이지요. 화학산 추우니까 방으로와 자세요. 추우니까 문을 딱 닫고 밥을 먹으려고 하니까 여보십쇼, 너무해요. 어찌 혼자 잡수시오. 오매 밥 주면 안 잡수시면서 아 나는 공기먹지 않소? 왜 문을 닫느냐? 이거에요. 문을 열면 아 고맙소. 아 맛있소. 당신은 밥 먹고 나는 공기 먹고 한 달 동안 그렇게 사셨다는 거예요. 결국에 그러니까 숨이 바짝 말라서 숨을 쉬는데 누워있어서 숨이 막히니까 부인이 일으켜 줘야지요. 오래 이렇게 있으면 숨이 막히니까 눕혀드려야지요.
그래 석 달 일으키고 눕히고 일으키고 눕히고 부인 가슴에 딱 붙어서 일으키고 눕히고 또 이렇게 무릎에 눕히시고 그런 부부지간이 어디가 있을까요? 성모님도 되시고 노인도 되시고 어머님도 되시고 여종도 되시고 그렇게 사랑하며 사셨어요. 그 젊은 여자더러 여동생 삼자고하니까 감당 못하고 개가한 것은 자기 탓이에요. 부인 죄가 아니에요. 그건 시험이었지요. 그러니 사랑 안에는 죄가 없어요. 우리가 공동번역 이랄까 현대어 성경을 보면서 아, 참말로 번역을 이렇게 해준 분들께 감사한 것은 요한복음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