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산행기
북한산 칼바위 능선을 오르기 위해 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쪽으로 갔다. 산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시간 여유가 필요한데 일을 하다 보니 늦어져 오후가 되었다.
12시 57분 정릉 탐방안내소 입구를 지나다보니 우측에 개울물이 보였다. 개울 옆에 진달래가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물속에서는 송사리 때가 수런거리고 있었다. 겨우내 얼었던 계곡물이 입춘을 지나며 서서히 녹아서 얼음 자취는 가셨지만 물은 차가울 것 같았다. 그래도 물고기들은 이제 다시 살만한 세상이 된 듯이 재롱처럼 물살을 헤치고 있었다. 개울 쪽으로 몸을 기울인 진달래도 청초했다.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다보니 쉼터가 나왔다. 팻말에 안전쉼터라고 쓰여 있었다. 몇 팀의 일행이 벤치 위에 음식을 꺼내놓고 즐겁게 예기를 나누고 있었다. 봄기운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헤쳐 놓은 것 같았다.
계곡길을 가다 정릉 2교를 건넜다. 거기까지가 특별보호구 구간 종점이었다. 거기서부터 점차 오름길이 가팔라졌다. 바짝 마른 참나무 낙엽이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번들거렸다. 흙은 메말라 먼지가 일었다. 오르다 보니 색상이 아주 선명한 노랑색꽃이 돌틈 사이서 피어 있었다. 주변 숲속 초목은 아직 앙상한 상태여서 그 매혹적인 모습이 더욱 눈에 띠었다.
노랑꽃
김석환
비탈진 산길을 오르다
부스스 눈뜬
노랑색 꽃을 만났다.
돌틈 사이
마사토가 흘러내리는
척박한 삶터
아랑곳 하지 않고
선명한 진노랑
가지런히 펼쳐진
귀티나는 꽃잎이
고혹스럽다.
작년에
다른 산을 오르며
만났던 그 꽃
그 때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한데
한 해가 지났다.
20230326
계속 오르다 보니 능선으로 시야가 트였다. 능선 아래쪽 길가에 키 큰 회양목 몇 그루가 터널처럼 푸르게 서 있었다. 잠시 후 능선에 올라 좌측으로 갔다. 거기서부터 험하기로 유명한 칼바위 능선이 시작된다. 맨 몸도 버거워하는 곳인데 화구를 메고 오르려니 이곳저곳 돌 모서리를 피하며 오르기가 난감했다.
칼바위 능선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곳의 험준한 암릉을 지나야 한다. 아래쪽보다 위쪽이 더 험한 편이다. 그 두 번째 구간을 오르려는데 위쪽에서 다른 일행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화구를 챙겨 올라가는 것이 힘들어 보이는지 한 분이 화판을 달라고 하며 윗사람에게 연쇄적으로 넘겨주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잠시 후 내가 목적지로 한 바위 봉우리에 도착했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한번 빙 둘러본 다음 늘 앉았던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손꼽는 북한산 정상과 도봉산이 연이어 펼쳐보였다. 그 광경을 그리려고 화구를 챙겨온 것이다. 시야가 시내를 건너 수락산까지 시원스레 트여나갔다. 잠시 후 아까 칼바위 능선을 오를 때 먼저 가라고 배려해 주었던 분이 올라왔다. 나에게 화구를 가리키며 뭐 하는 것이냐고 물어서 그림을 그리러 온 것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 곳에 머물러 그림을 그리고 있자니 점차 추위가 느껴졌다. 오늘은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서 체감 기온이 너 낮았다. 정상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온 한 여자분이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해도 되느냐고 했다. 자신도 그림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잠시 후 다른 연세든 남자분이 내가 그리고 있는 모습이 반가운 듯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분도 도착해서 인사를 나누었다. 순간순간 바람에 화판이 들썩거렸다. 내가 그들에게 산에서 바람과 싸우는 것이 이십년도 넘게 되었다고 했다. 언젠가는 바람 때문에 하루에 3번 오르기도 했다.
오늘은 작은 그림을 그렸다. 한점은 전에 와서 반쯤 그리다 만 것이다. 먼저 그러던 그림을 다 완성하고 연필로 그릴 다른 종이를 붙이려고 바위 뒤로 내려갔다. 한 키큰 외국인이 와서 그림을 보며 엄지척을 했다. 나에게 언제부터 그렸느냐고 했다. 바람이 심해서 거기서 붙이고 다시 바위 위로 올라섰다. 연필 그림은 더 빠르게 그렸다. 연필을 계속 깍아 쓰다 보니 아주짧아져서 손에 쥘 수 없게 되었다.
그림을 마치고 서둘러 하산을 했다. 계속 떨고 있으면 감기가 걸릴 염려가 있었다. 빨리 내려가 광화문 광장에서 백악산을 그릴 생각을 했다. 올라온 정릉길로 원점회귀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어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바쁜 하루가 지나갔다.
(2023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