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Cambodia Herald 2012-4-28 (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환경운동가 살인사건 : 동행했던 여기자들의 증언
Two reporters with slain activist did not see who fired sh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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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CHR) 총격으로 피살된 캄보디아의 저명 환경운동가 춧 우티 씨의 모습. |
(프놈펜) - 목요일(4.26) 환경운동가인 춧 우티(Chut Wutty 혹은 Chhut Vuthy) 씨가 '왕립 헌병' 소속 요원인 인 로따나(In Rattana)에게 사살당한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춧 우티 씨와 동행했던 <캄보디아 데일리>(Cambodia Daily) 소속 여기자 2명은 누가 총격을 가했는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데일리>는 토요일(4.28) 발행된 신문을 통해 이 사건에 관한 직접적인 설명을 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춧 우티 씨와 여기자 2명 등] 세 사람이 꺼꽁(Koh Kong) 도, 몬돌 세이마(Mondol Seima) 군에 위치한 한 소규모 정착지에서 떠나려고 준비 중일 때, 춧 우티 씨의 차량에 2발의 총격이 관통했다고 한다.

(자료사진: DAP-News) <캄보디아 데일리> 소속의 폰 보파 기자.
당시 춧 우티 씨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고, 캄보디아인 기자인 폰 보파(Phorn Bopha) 씨는 뒷자석에 앉아 <캄보디아 데일리>의 케빈 도일(Kevin Doyle) 편집장과 전화통화를 하던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인 기자 올레시아 플로키(Olesia Plokhii) 씨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 보도는 그들이 "총격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보파 기자도 총격 가해자를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두 여성들은 차에서 뛰쳐나와 흙먼지 길을 가로지른 후 숲으로 몸을 숨겼다. 이들은 이후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와서, 차량 앞에 부상을 입고 쓰러져있던 헌병 1명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보도는 "춧 우티는 운전석에 있었고, 몸이 한쪽으로 쓰러져 있었가"고 전했다.
이후 또 다른 헌병 1명과 군인 1명이 인근 거주지에서 걸어나왔지만, "총격을 당한 두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 상태였지만, 아무런 구조활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파 기자가 그 군인들 중 1명에세 [쓰러져 있는] 헌병을 구하도록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 군인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이 플로키 기자는 춧 우티 씨를 구하려 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춧 우티는 이미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왼쪽 무릅에 관통상을 입고 있었고, 그의 복부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헌병 요원인 인 로따나 역시 움직임이 없었고, 죽은듯이 보였다." |
두 여성들은 불안감에 휩싸인 채로 인근의 거주지에서 일부 주민들과 함께 피난처를 찾았다. 이후 인근 오두막에서 더 많은 군인들이 나타났다. 그 중 1명이 "2명 모두 죽이기만 해"(Just kill them both)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그는 다른 군인들에게 차량을 숲속으로 끌어넣으라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약 90분 가량이 지나자, 더 많은 경찰과 헌병들이 나타나 기자들에게 음식과 식수를 제공하면서, 그들이 구속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었다. 이 보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후 법원 검사가 나타났고, 그들이 춧 우티 씨의 시신을 차량에서 끌어냈다. 시신은 깨끗한 흰색 플라스틱 깔개에 놓이게 되었고, 소지품도 함께 놓아졌다. 그러한 소지품 가운데는 권총도 1정 있었다." |
<캄보디아 데일리>는 총격사건 발생 전에 현장에 왔던 헌병 1명 및 군인 1명이 AK-47 공격형 소총들을 들고 있었고, "술 냄새가 심하게 나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후 춧 우티 씨와 언쟁이 벌어졌을 때, 그 군인 3명 중 1명이 춧 우티 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모두 노예들이고, 서로 같은 입장 아닌가. 너무 도도하게 굴지마라." |
(보도) CEN 2012-4-28 (영문번역) Khmerization (국문번역) 크메르의 세계
여기자들의 현장 증언 의혹 증폭
Eyewitness account of Chut Wutty's murder:
"Don't talk too much, just kill both of them
<캄보디아 데일리>는 사망한 춧 우티 씨와 동행했던 소속 기자들인 폰 보파(27세)와 올레시아 플로키(27세)가 작성한 기사를 발행했다. '천연자원 보존그룹'(Natural Resource Conservation Group) 소장인 춧 우티 씨는 목요일(4.26)에 총격을 받고 사망한 바 있다.
<카르다몸 산맥에서, 두 사람의 죽음을 설명하다>(In Cardamom Mountains, Two Deaths Recounted)란 제목으로 발행된 <캄보디아 데일리>의 기사는 4월28~29일 주말판에 실렸다. 이 기사는 춧 우티 씨와 두 여기자가 '끄러완 산맥'(Cardamom Mountains: 카르다몸 산맥)의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도로를 따라 여행했다면서, 이들은 춧 우티 씨가 운전하는 4륜 구동 자동차를 타고 뽀우삿(Pursat) 도에서 꺼꽁 도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사진) 사건 직후의 현장 모습.
이들 일행이 꺼꽁 도의 트모 바잉(Thmor Baing)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노변에 있는 한 오두막 근처에 쌓여있는 골든바인(golden vine) 더미를 촬영하기 위해 차를 멈췄다. 잠시 후 티셔츠를 입은 남성 1명이 나타나서 사진 촬영을 중단시키고 그곳을 떠나라고 말했다.
상황에 긴장감이 흐르자, 여기자들은 흙먼지 도로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차량에 도착한 후, 춧 우티 씨는 미군 군복을 입은 군인에게 말을 하는 중이었고, 민간인 복장의 또 다른 남성은 춧 우티 씨와 함께 서 있었다. 이때 미군 군복을 입은 군인은 춧 우티 씨와 여기자 2명에게 말하기를, 자신의 지휘관이 그들에게 떠나도 좋다는 명령을 내릴 때까지 해당 지역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군인들은 자신의 지휘관이 누군지를 말하지 않았고, 그가 언제 그곳으로 올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여기자들이 춧 우티와 함께 해당 지역을 떠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 군인은 춧 우티 씨가 차에 타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탄 군인 3명이 도착했다. 그 중 2명은 왕립 헌병 복장을 하고 있었고, 다른 1명은 육군 복장을 했지만, 입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3명 모두 AK-47 소총을 소지했고, 마스크를 착용한 군인들에게서는 술 냄새가 심하게 나고 있었다.
이들 군인 3명은 춧 우티 씨에게 자신들의 지휘관을 만나기 위해 꺼공 시내로 자신들과 동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춧 우티 씨에게 차에 타지 말라고 명령했다. 여기자 2명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5명의 헌병과 군인들은 춧 우티 씨의 카메라들을 압수한 후, 그가 차에 타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실랑이를 벌이면서 그들은 춧 우티 씨의 셔츠 단추들을 떼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카메라를 압수한 후 춧 우티 씨와 여기자 2명이 해당 지역을 떠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차량 밧데리가 나가버렸다. 그래서 춧 우티 씨는 여기자들에게 엔진 시동을 걸기 위해 차를 밀어달라고 말했다.
군인들은 차량으로 다가와서 춧 우티 시에게 말하기를, 두 여성들이 그의 종 아니냐며 빈정거렸다. 그러자 양측에서 열띤 언쟁을 주고받게 되었다. 군인들이 춧 우티 씨 차량의 시동용 열쇠를 반복해서 끄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마침내 춧 우티 씨가 다시금 차량의 시동을 걸고 떠나려 했다. 하지만 군인들 모두가 차량 앞을 가로막고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폰 보파 기자는 케빈 도일 편집장에게 상황을 전하려 시도했다. 그녀가 차량 안에서 총소리를 들었을 때, 축 우티 씨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부상을 입지 않았던 두 여기자들은 차량 문을 열고 숲속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온 실탄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를 보지 못했다.
잠시 후, 기자들은 차량으로 되돌아와서 춧 우티 씨가 피를 흥건하게 흘린 채 한쪽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헌병인 인 로따나 역시 차량 앞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다른 헌병들과 군인들은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고, 여기자들이 이들을 병원으로 호송하는 것도 허가하지 않아, 춧 우티 씨와 인 로따나가 출혈로 사망토록 내버려두었다.
이후 군인들과 헌병들은 여기자들에게 해당 지역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때 여기자들은 군인 중 1명이 "말 많이 하지 마라. 그 두 명만 죽여"(Don't talk too much, just kill both of them)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후 군인들은 춧 우티 씨의 차량과 그의 시신을 길가의 숲으로 옮기려했다.
90분 후, 일군의 병력이 도착하여 시신을 찾아내 살펴보았고, 시신들을 꺼꽁 시내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비고]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 발표는 얼마 안 있어 변화됐다. 당국은 최초에 춧 우티 씨와 인 로따나가 상호간에 총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인 로따나가 춧 우티 씨의 차에 총격을 가했고, 그 과정에 튀어나온 유탄에 맞아 스스로도 즉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가장 나중에 발표된 내용은 인 로따나가 춧 우티 씨를 사살한 후, 자신의 AK-47 소총을 이용하여 자신의 복부와 가슴에 1발씩을 발사해 자살했다고 바뀌었다.
<크메라이제이션>이 공개한 관련 화보집
공식적인 수사결과는 춧 우티 씨가 1발의 실탄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발표됐다. 하지만 엑스레이 사진은 그가 총탄 3발을 맞았음을 보여준다.
이하의 사진들에는 차량 내부의 총격 흔적들과 수사현장의 모습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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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자지인 <캄보디아 데일리>는 온라인판으로는 발행하지 않아서..
일단 간접 보도 2편을 번역하여 소개합니다.
상당히 의혹이 많네요..
와 상당히 많은 의혹이 있는것 같습니다.
군인들의 음주 상태인것과 AK소총으로 복부와 가슴에 총을쏘고 자살했다는 보도
생각보다 AK가 반동이 심해서 가슴에 총을 쏘고 다시 복부에 총을 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또한 가슴에 대고 쏜사람이 다시 복부에 총을 쏜다는것이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