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좇기를 소원하였던 유대인들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 생활 중에서 겪었던 쓰라린 경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다시는 하나님의 권면하시는 말씀을 거절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은, 그들이 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갈 때, 그들에게 이르러 올 심각한 결과들을 두려워하였다.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스 9:14)
그리스도의 초림 2세기 전에 기록된 부조들의 윤리 라는 유대인들의 책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심판에 대해서 생각하라. 많은 수련생을 훈련해라. 그리고 율법을 지키라. " 이스라엘 가운데서 지혜가 있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려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좀 더 잘 이해하게 하려고, 각종 주석과 설명과 규칙을 만들었으며, 여러 가지 종교적인 도움들을 백성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경에 나타나 있는 요구 조건들을 백성에게 교육하는 일에서, 그들은 커다란 돌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얏두아의 영접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리스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우호 관계가 발전하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에 있던 장군들은, 스코퍼스 산에서 그들의 대왕이 대제사장인 얏두아를 죽이는 대신에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마케도니아에 있을 때 보았던 계시에 대해서 그의 지휘관들에게 말해 주었다. 계시 가운데서 알렉산더 대왕은 얏두아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성전에 들어가서 얏두아의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스는 자신들이 유대 국가와 참된 우호 관계를 가짐으로써, 유대 나라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고자 하였다.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숫자의 유대 랍비들이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갔고, 거기서 유대인의 성경을 그리스 언어로 번역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스의 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세련된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모든 정보와 지식을 얻고자 하였다. 또한, 그리스는 이스라엘의 똑똑한 청년들을 알렉산드리아로 초청하여 그리스의 발전한 철학과 과학과 지식을 그들에게 교육했다.
이스라엘의 많은 지도자는 이러한 상황이 가져오게 될 결과에 대해서 두려워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이방인들의 관습과 문물을 받아들인 결과로서 받았던 고통과 슬픔을 기억했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이 그리스의 교육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그러나 적극적이면서도 총명하고 활력있는 젊은이들이 그리스의 학교에 들어가서 유대 종교의 위대한 진리를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학자들에게 전파하여,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유대교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굉장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발생하였다. 이스라엘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에 반대하였다. 젊은이들을 그리스로 보내어 이방의 문물을 배우도록 허용한다면, 유대 국가의 장래는 파멸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스라엘 청년들이 유대교의 표준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유대 지도자들을 설득하였다. 이스라엘의 교육과 어긋나지 않는 교육을 그리스에서 받을 수 있으며, 그리스의 교육을 받은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단지 그리스 학자들의 지혜와 지식만 받아들이면 된다고 설명하였다. 만일 이스라엘 청년들이 당대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 국가의 교육을 받게 된다면, 유대 청년들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적 유익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그리스의 설득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진실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하실 것이며, 유대 학교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제 유대 학자들은 자신들이 도달해야 할 또 하나의 목표와 동기를 갖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지식과 영향력과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다양한 지식을 얻을수록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점차 이스라엘 학교들은 졸업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하였다. Rav, 랍비, Tana, Gayon, Sadi, Rabbon과 같은 등급들이 생겼다. 랍비 학교의 졸업생들은 다른 의복을 입음으로써, 자신들의 등급을 표시하게 되었다. 학위를 가진 사람은 독특한 옷과 모자를 써야만 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귀족적인 교육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을 산헤드린이라고 불렀다. 산헤드린이라는 말은 그리스 어이며, 히브리 이름은 Beth Din Hagodol로서 위대한 법정 이라는 뜻이다. 지식과 학위가 강조되면서 영성은 쇠퇴하였다. 이스라엘의 종교 학교들이 계속해서 운영되었지만, 영성과 능력이 눈에 뜨이게 쇠퇴하였다. 해마다 철학과 문화에 대한 교육 과정이 증가함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는 줄어들었다.
랍비 학교의 교육 과정이 지성주의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사람이 높여지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낮아지게 되었다. 학식 있는 랍비들이 칭송받게 되었으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무시당하게 되었다. 깊은 신앙은 사라져 갔으며 형식과 예식이 증가하였다. 랍비 중심의 교육에 관한 수많은 법이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라는 권면이 장려되고 있었다. 부조들의 윤리 라는 책에서, 랍비들이 다음과 같이 가르쳤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5살에는 성경을 연구해야 하며, 10살에는 미스나(Mishna), 15살에는 저머라(Germara)를 공부해야 한다. 미스나는 매우 두꺼운 성경 주석 책이었으며, 저머라는 미스나를 주석하는 책이었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서 지성적인 면만이 개발되었다. 학생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점점 덜 연구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글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연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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